"어머니 보고 싶어" 군함도 조선인 광부 낙서, 날조됐다

  • 기자명 정재환
  • 기사승인 2019.04.22 08: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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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BS 영재발굴단 118회에 영어영재 장유훈 군이 소개되었습니다. 2017년 방영 당시 9살이었는데 신기하게도 영어를 술술 잘 합니다. 그때는 군함도가 화제여서 그랬는지 이태원에 작은 무대를 차려 놓고 군함도에 관한 길거리 강연을 영어로 했습니다. 이태원답게 무대 앞에 외국인들이 눈에 띱니다.

SBS 영재발굴단 화면 캡처

영어로 이름과 나이를 밝힌 유훈이가 무대 위 사진을 보여주며 섬의 이름이 군함도인 이유가 그 섬이 일본 군함을 닮았기 때문이고, 한국인들이 군함도를 심각하게 생각하는 이유는 한국인들이 이 섬으로 끌려가 하루 16시간 석탄을 캐는 강제 노역에 시달렸기 때문이라고 말합니다. 이야기를 듣던 외국인이 한 사진을 가리키며 뭐라고 쓰여 있는 거냐고 묻자, 유훈이가 영어로 번역합니다.

 

“어머니 보고 싶어. 배가 고파요. 고향에 가고 싶다.”

 

유훈이는 식사는 하루 두 번 주먹밥이었고, 쉬는 시간은 없었다고 말합니다. 그런데 일본은 이러한 사실을 유네스코에 알리지 않았으며, 이것은 매우 잘못되었다고 목소리를 높였습니다. 유훈이의 연설이 끝나고 외국 청년이 이렇게 말했습니다.

 

“어머니가 보고 싶고 배가 고프고 고향에 가고 싶다고 적힌 사진을 보여주었을 때 그 곳에 있었던 사람들의 마음을 느낄 수 있었어요.”

 

아마도 많은 이들이 9살 유훈이의 유창한 영어 실력에 감동하고 군함도에 강제 동원된 한국인 광부들이 겪은 고통스러운 삶에 눈물지으며 다시금 일본의 만행에 분노했을 겁니다. 동영상을 볼 수 있는 여러 사이트 가운데 한 곳의 주소입니다.

잠시 동영상을 보고 오셨다면, 여러분도 두 말할 나위 없이 감동하셨겠지요? 그런데 유훈이가 연설하면서 소개한 글은 군함도에서 발견된 것도 아니고, 조선인들이 강제 노역에 시달린 일본의 많은 탄광 가운데 하나에서 발견된 것도 아닙니다. 그러면 유훈이는 어떻게 그 글을 자신의 길거리 연설에서 소개하게 되었을까요? 이유는 많은 한국인들이 그것이 일본 어느 탄광에서 발견된 것이라 알고 있고 믿고 있기 때문입니다. 영재발굴단 제작진도 마찬가지였을 겁니다.

그 글이 담긴 사진은 너무나도 유명해서 인터넷 공간 어디서나 쉽게 접할 수 있습니다. 헤럴드경제 2015년 6월 25일자 “징용 등 일제 만행 ‘민간 대 민간 소송 법안’ 통과 서광”이라는 기사에서는 ‘일제강점기 일본으로 끌려간 한국인 징용 노동자들이 탄광에 남긴 글귀’라는 설명과 함께 문제의 사진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출처: 헤럴드 경제 <징용 등 일제 만행 ‘민간 대 민간’ 소송 법안 통과 ‘서광’>기사

 

 

다음은 스브스뉴스 2015년 7월 21일자 ‘지옥의 섬 군함도의 진실’이라는 기사에 실린 사진입니다. ‘소름 돋는 섬’이라는 설명이 달린 군함도 사진 바로 아래 문제의 사진을 배치하고 있기 때문에 그것이 군함도 탄광에서 발견된 것이라고 생각하기 십상입니다.

출처: 스브스 뉴스 '지옥의 섬 군함도의 진실' 기사

 

다음은 ‘세계에서 가장 으스스한 곳 중 한 곳’으로 선정된 하시마(군함도)를 소개하는 EBS 역사채널e에 삽입된 사진입니다. 이 동영상의 제작 시기는 2015년으로 추정합니다.

EBS 역사채널e에 삽입된 낙서 사진.

 

같은 사진을 반복해서 보여드리는 이유는 이 사진이 일본으로 끌려간 조선인 광부가 갱도 벽에 쓴 글이라고 아주 널리 알려져 있고, 지금도 널리 유통되고 있다는 점을 강조하기 위해서입니다. 문제는 앞서 언급했듯이 이것이 사실이 아니라는 겁니다. 이에 대해 영산대학교의 최영호 교수는 2005년에 낙서가 가짜임을 밝혔습니다만, 여전히 진실은 땅속에 묻혀 있습니다.

문제의 발단은 2005년 을사늑약 100주년을 맞아 ‘6. 15 공동선언 실천을 위한 남북해외공동행사 준비위원회 남측 위원회가 11월 17일부터 3일 동안 국회 헌정기념관에서 ’기억 36년, 한민족의 삶‘이라는 사진전을 열었는데 ’어머니 보고 싶어’, ‘배가 고파요’, ‘고향에 가고 싶다’는 글이 담긴 사진이 일본 큐슈 도요스(豊洲) 탄광 합숙소에서 나온 것이라는 설명이었습니다. 다소 길지만 다시 한 번 진실을 규명하기 위해 낙서에 대한 최 교수의 글을 소개합니다.

 

이 낙서의 문제점에 대해서는 치쿠호(筑豊) 지역의 향토사학자 김광렬씨가 그의 저서에서 비교적 상세하게 논하고 있다. 그의 기록을 이용하여 낙서의 문제점을 간단히 정리해 본다. (金光烈, 足で見た筑豊:朝鮮人炭鑛勞動の記錄, 2004年, pp.130-150)

이 낙서는 조선총련 산하 단체인 재일본조선문학예술가동맹이 한일수교에 대한 반대 운동의 일환으로 1965년에 제작한 영화 “을사년의 매국노”를 촬영하는 가운데 연출된 것이다. 이 영화에 강제연행의 흔적을 담기 위해 제작진 4명이 치쿠호 탄광촌에서 현장 촬영을 했다. 그때 폐허가 된 징용공 합숙소에서 제작진 가운데 녹음을 담당한 여성이 나무를 꺾어 벽에 문제의 낙서를 새긴 것이다. 위조 사실을 상세히 밝힌 西日本新聞의 취재에 대해, 영화 제작진 가운데 한 사람은 당시 폐허가 된 합숙소에서 촬영할 것이 없어서, 제작진이 모두 합의하여 낙서를 새기도록 했으며, 부드러운 필체로 하기 위해 여성에게 쓰도록 했다는 사실을 자백했다.

영화 촬영 이후 의외로 이 낙서에 관한 사진이 사실인양 일본 사회에 확산되어가자 영화 제작진은 고민 끝에 연출 사실을 밝히기로 했다고 한다. 강제연행 조선인에 관한 연구의 대부(大父)라고 할 수 있는 박경식(朴慶植)씨는 일찍부터 이 낙서가 위조된 것임을 알고 있었으며 김광렬씨에게 문제의 낙서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했다고 한다. “낙서의 내용은 당시 징용공들의 마음이나 처해진 상황을 아주 잘 표현하고 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그것을 당시 수용된 징용공이 썼다고 하는 것은 역사의 날조다.”

- 최영호, ‘강제징용 조선인 노동자 낙서는 연출된 것’, 『한일시평』 제84호(2005.11.22.)

 

이 글을 읽고 충격을 받으시는 분들이 없지 않겠지만, 진실은 모든 이의 심금을 울린 낙서가 끌려간 조선인 광부가 쓴 것이 아니고, 1965년 조총련계 예술가동맹이 한일수교를 반대하기 위한 영화를 만드는 과정에서 위조된 것이었으며, 일본에서는 이미 오래 전에 진짜가 아니라는 것이 판명되었으므로 이 사진을 갖고 일본의 만행을 비판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분명 하시마(군함도)는 반인륜적인 강제 노역의 현장이었습니다. 하시마에서 살아나온 조선인 광부들은 그 섬을 지옥섬이라고도 불렀습니다. 힘든 노동에 종사하고 제대로 먹지도 못했으며 약속된 임금도 받지 못했습니다. 야만적인 폭력에 시달리거나 채탄 중에 사고로 다치거나 목숨을 잃은 노동자들도 많았습니다. 이런 문제에 대해 일본은 사죄해야 합니다. 하지만 위조된 낙서를 앞세워 일본을 비난하거나 규탄하는 것은 잘못입니다. ‘9살 어린이까지 동원해 역사를 날조하고 있다’는 비아냥거림을 들을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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