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토피아> 영화 촬영을 위해 '유토피아 언어'를 창조하다

  • 기자명 홍상현
  • 기사승인 2019.04.25 09: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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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fundamental things apply...

As time goes by”

 

마이클 커티즈 감독의 1942년 작, <카사블랑카>에서 둘리 윌슨이 피아노연주와 함께 부르는 노래(As time goes by)의 주제가 함축되어 있는 소절.

옛 연인의 재회와 두 사람의 회한이 스토리의 핵심인 <카사블랑카>의 이미지가 강해서일까. 작곡가 허만 헙펠드가 1931년에 만든 이 발라드가 브로드웨이 뮤지컬 코미디에 처음 사용된 것을 아는 이는 많지 않다. 우수에 찬 멜로디에 더해 아홉 살 때 교회의 오르간 연주가이던 아버지에 의해 독일로 보내졌다가, 제1차 세계대전 발발 후 군복무를 위해 귀국한 헙펠드의 개인사를 (<카사블랑카>로 오스카를 거머쥔) 줄리어스 엡스타인의 시나리오와 결부시킨다면 선곡의 근거가 더해질 수도 있을까.

특히 필자가 이 가사를 인용한 것은 ‘멜로적 요소’와 무관하다. 분위기보다 그 의미(consistency, 한결같음) 자체가 오늘의 인터뷰이를 연상시키는 까닭이다.

좀 더 구체적인 이야기를 위해 2006년, 관동지역의 한 수도권 도시로 가보자. 한 해 전 친구들과 만든 영화로 전국 고교생영화콩쿠르에서 최우수상을 거머쥔 만화가 지망생에게 학교당국이 영화제작을 의뢰한다. 하지만 애초부터 말썽의 소지가 있었다. 학교가 지역 유수의 입시명문이었던 데다, 제작진과 출연진 모두 졸업반이었다. 학부모들의 반발 속에 가까스로 작품이 완성되지만, 상영에 주어진 시간은 단 30분. 절반 이상의 분량을 잘려나간 축소판이 상영되었다.

그러나 결국 작품의 완성도를 눈여겨본 도쿄의 예술영화 전용관(시모기타자와 토리우드) 대표가 극장개봉을 제안했다. 이 일로 대학 1학년 여름방학 때 다시 모인 친구들은 언젠가 또 한 편의 영화를 만들어보기로 한다. 제44회 서울독립영화제에 초청된 <유토피아>의 감독 이토 슌타와 그의 극장용 장편 데뷔작 <무지갯빛 로켓>에 관한 이야기다.

그렇지만 세상은 생각만큼 낭만적인 곳이 아니다. 그들 중 대부분은 대학 졸업 후 취직을 하거나 결혼해 가정을 꾸리며 뿔뿔이 흩어졌고, 약속도 ‘20대의 추억’으로 남았다.

다만 <무지갯빛 로켓>의 음악감독이던 시이나 료는 달랐다. 태평양 건너 캘리포니아에 살고 있었기에 모두의 뇌리에서 더 쉽게 사라질 수도 있었는데도. 이토 슌타 감독을 주축으로 결성된 크리에이터그룹 “예술가족 라티메리아실러캔스”의 차기작 <라스트 스타캐처>에서도 음악감독을 하더니 <유토피아>에서는 음악감독과 촬영감독은 물론 VFX 스태프(Lead VFX Artist)로도 이름을 걸었다. 그렇게 시이나 료는 12년의 세월을 건너오면서 이토 슌타 감독이 주저 없이 “파트너”라 부르는 존재가 되어갔다.

음악에서부터 촬영, VFX에 이르기까지 다방면에서 두각을 나타내고 있는 시이나 료의 재능을 더욱 빛나게 하는 것은 특유의 겸허함과 진중함, 그리고 한결같음이다. ⓒ 2018 Utopia

 

홍상현:

<무지갯빛 로켓>의 음악감독으로 처음 이토 슌타 감독과 같은 엔딩크레디트에 등장한다. 여기까지는 딱히 특별할 게 없는데, 재미있는 사실 하나가 더해진다. 그 시절 당신은 <무지갯빛 로켓>을 제작한 동료들이 있는 지바 현이 아니라 태평양 건너 캘리포니아에 있었다.

시이나 료:

미국으로 이주한 건 중학교 3학년 때인데, 이미 영상에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 이내 같은 관심사를 가진 시모조 타케시(<무지갯빛 로켓>과 <라스트 스타캐처>의 촬영감독)를 만나게 되었고, 그와 2003년 겨울 일본에서 <시싱 시즌(Ceasing Season)>이라는 중편영화를 만들었다. 모든 것이 어렴풋한 상태에서 시나리오는 물론 촬영, 음악까지 담당했는데 이 친구와 같은 반에 만화가를 지망하던 이토 슌타가 있었다. 이야기를 표현해 보려는 꿈을 가졌다는 공감대가 있었기에 쉽게 의기투합했고, 후에 <유토피아>의 주연이 되는 마쓰나가 유카와도 알게 되었다.

 

홍상현:

<무지갯빛 로켓>을 제작한 멤버들은 이토 슌타 감독을 중심으로 또 한편의 영화를 만들어보기로 하지만 대부분 약속을 지키지 못했다. 하지만 여건이 훨씬 불리할 수도 있었던 당신은 끝까지 남아 <유토피아>를 완성했다.

시이나 료:

이토 슌타 말고도 영화감독을 지망하는 친구가 몇 명 있었고, 그들을 위해 촬영을 해주었다. 모두들 꿈을 향해 질주했지만 차츰 현실에 눈을 뜨면서 하나둘 영상제작의 세계에서 멀어져 가더라. 이토 슌타, 그리고 다른 동료들과의 사이에서 다리역할을 해 준 친구도 동일본대지진을 계기로 영화감독의 꿈을 접었다.

하지만 이토 슌타는 그 와중에도 포기하지 않고 시나리오를 썼다. 도리어 시나리오에 반영해야할 부분이 늘어났다면서 더 열심히 작업을 하는 거다. 그런 모습을 지켜보며 “저 친구가 끝까지 해낼 수 있도록 도와줘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덧붙여서, 그가 <유토피아>를 만들게 되었을 당시 저는 음악만 말기로 되어있었는데 시네마토그래퍼(cinematographer)가 되고 싶다는 열망도 있고, 어떻게든 <유토피아>를 직접 찍어보고 싶어 여러 번 부탁한 끝에 뜻을 이루었다.

이토 슌타, 시이나 료 등과 고등학교 시절부터 인연을 맺어온 <유토피아>의 주연배우 마쓰나가 유카는“예술가족 라티메리아실러캔스”의 작품에서 매번 주제가를 불렀다. 그는 대학 졸업 후 연기자가 아닌 간호사의 길을 택했다. ⓒ 2018 Utopia

홍상현:

단순히 부탁해서 뜻을 이루었던 것 같지는 않은데. (웃음) ‘의지’를 가지고 있다고 평생의 프로젝트에서 결정적인 역할을 맡길 수는 없는 노릇이니까. 미국에서 쌓은 당신의 커리어가 이토 슌타 감독의 결정에 영향을 주었을 것이라 본다. (일본인이 아닌) 새로운 동료들과 계속 단편영화를 만들었고, 연출작 <차이니스 엔틱(Chinese Antique)>이 로스앤젤레스 단편영화제 등에서 입상했다. 가족들과 함께 이주한 것이 중학교 3학년 시절이니 단순히 변화된 환경에 적응하는 것만으로도 시간이 걸렸을 텐데.

시이나 료:

실력이라기보다 운이 무척 좋았다고 할 수 있다. (웃음) 제가 다닌 아카디아하이스쿨에 프로덕션 클래스가 있었다. 클래스에서 제작한 뉴스프로가 매주 금요일 전교에 방송되기도 했고. 여기 엔터테인먼트 섹터에서 대단히 창의적인 코미디를 프로듀스했는데, 거기 참가해서 특수효과를 쓰는 영상을 잔뜩 만들자 이것을 본 학생들이 저를 찾아왔다.

그 중 하나가 안토니 마라는 배우 겸 감독 지망생이었고, 졸업 후 이 친구와 함께 영화를 만들게 된 거다. 언급하신 작품을 같이 만들었던 그 친구는 지금도 연기자로 활동하면서 TV드라마에서 조금씩 역할의 비중을 늘려가고 있다.

홍상현:

<유토피아>에서 주목할 만한 것은 모티브를 구성하는 두 축, 즉 『하멜른의 피리 부는 사나이』와 토마스 모어의 『유토피아』다. 어찌 보면 ‘본고장’에서 필름메이커를 지망하는 친구들과 지냈으니 필자보다 더 잘 아실 수도 있을 거라 생각하지만, 이는 단지 ‘기사도이야기’를 먼 우주의 어딘가로 옮겨놓은 <스타워즈> 같은 판타지와는 발 딛고 있는 토양 자체가 다르다. 다만, 제재(material)의 무게감이 상당하다 보니 조력자의 역할도 중요했을 텐데.

시이나 료:

제가 특별히 공헌한 바가 있으려나. 작품을 통해 확인하셨다시피 이토 슌타가 워낙 ‘설정의 귀신’이다. 단지 그것이 지나치다 보니 종종 이야기를 너무 꼬아놓아서 사람들이 이해하기 힘들게 만들어버리는 측면이 있는데, 바로 이 부분에 개입해서 자제를 시켰다. 말은 이렇게 해놓고도 오히려 ‘공헌’의 반대가 되는 역할을 한 건 아닐까 싶기도 하고. (웃음)

시이나 료는 방대한 배경을 가진 <유토피아>의 트라마투르기 과정에서 객관적 시점의 관찰자로써 이야기가 관객들에게 보다 쉽게 다가갈 수 있도록 구성되는데 기여했다. ⓒ 2018 Utopia

홍상현:

그럴 리가. <유토피아>의 제작기간이 조금이나마 줄어드는데 분명히 공헌한 바가 있을 거라 믿는다. (웃음) 농담이고. 드라마투르기를 해나가는데 있어서 객관적 시점은 더없이 중요하다.

그럼 다음 주제로 넘어가 보자. <유토피아>에서 사용된 고유의 언어, 유토피아어에 관한 것. 미국에서 지내던 시절 세계 곳곳에서 온 동료들과 제 2언어(second language)로 소통하면서 작업했다. 다른 방향으로 풀어 설명해 보면 “모국어가 아닌 언어에 통해 공감”하는 과정을 경험한 거다. 이러한 이력이 <유토피아>의 프리프로덕션 과정에서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언어를 만드는 데 도움을 주지 않았을까?

시이나 료:

저는 일본인 아버지와 중국인 어머니의 아들로 태어난 혼혈인으로, 중국어는 거의 못하지만 어쨌든 ‘일본어 이외의 뭔가’를 어린 시절부터 접할 기회가 있었다.

거기에 성장기에는 영어를 쓰는 환경에서 지내다 보니 아무래도 ‘언어’에 민감해질 수밖에 없더라. 그런 상황에 시나리오에 등장하는 유토피아인들이 가공의 언어를 쓰도록 하자는 결정이 내려졌다. 기왕 하는 거 나름의 문법체계를 갖추고 반복적으로 나오는 단어 등의 패턴이 관객에게 명확하게 어필될 수 있도록 제대로 준비해 보자고 생각했다. 아시다시피 <유토피아>는 저예산 영화인 까닭에 등장인물이 별세계(another world)의 인간이라는 설정에 설득력을 부여할 방법이 제한적이었다. 그 몇 안 되는 선택지 가운데 하나가 언어였고. 당연히 구애되지 않을 수 없어 고집을 부렸다.

홍상현:

‘고집’이라는 표현을 쓰셨는데, 오히려 대단히 ‘설득력’있는 이유다. 물론 새로운 언어를 만들어 낸다는, 보통의 사람이라면 미처 생각이 미치지 못하는 전제를 실현해낼 경우의 이야기지만. 그런데 해냈다. 그것도 이토 슌타 감독과 단 둘이서.

시이나 료:

언어를 만들 때는 그 인종의 성립 과정이나 생활모습 등까지 고려해야한다. 결국 ‘문화’에 대한 이야기가 될 테니까. 따라서 감독과 굉장히 긴 시간동안 페이스타임을 하며 세밀한 설정에 설정을 거듭하는 과정을 거쳤다. 예컨대 숫자를 한 손으로 헤아리는 습관이 그대로 언어가 된다면 어떨까? 10진법이 아니라 5진법을 사용하지 않을까? 냉정하게 보신다면 이거야말로 자기만족의 세계겠지만. (웃음)

 

코니 역을 맡은 모리 카츠키가 유토피아어를 익힌 레슨용 MP3는 시이나 료가 만든 것이다. ⓒ 2018 Utopia

 

 

올데 역의 우다 타카키는 유토피아어 문법은 물론 단어의 의미, 심지어 자신과 같은 신에 출연한 다른 연기자의 대사까지 기억하고 있었다고 한다. ⓒ 2018 Utopia

 

홍상현:

생각이나 느낌을 표현 또는 전달하기 위해 사용하는 수단 또는 사회ㆍ관습적 체계가 언어니까, 상당히 바람직한 방향설정이다. 프로덕션 과정에서 이토 슌타 감독보다 더 꼼꼼하게 유토피아어를 습득, 연기자들의 실수까지 꼼꼼하게 체크해 주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시이나 료:

이토 슌타는 방대한 작업량 때문에 유토피아어를 충분히 습득할 여유가 없었으니까. 하지만 저는 배우를 위한 데모촬영까지 진행한 지라 이미 대사가 자연스레 몸에 배어있었다. 그래서 유토피아어와 관련한 체크까지 도맡게 된 거고. 오히려 그 역할에 집중한 나머지 촬영이 뒷전으로 밀려날 뻔했던 경우마저 있었다. (웃음)

 

홍상현:

이토 슌타 감독이 왜 자꾸 당신을 ‘특정한 포지션’이 아니라 ‘파트너’라는 호칭으로 부르는지 아주 잘 알겠다. (웃음) 다음 화제로 넘어가자. 제작비의 차이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할리우드처럼 압도적인 자본력이 뒷받침되지 않는 필름메이커가 만든 판타지 영화의 경우, 특수촬영 부분과 다른 부분의 연결이 부자연스러워 관객의 몰입을 방해되는 경우도 적지 않다. 하지만 <유토피아>는 거의 완벽에 가까운 시각적 완성도를 보여준다.

시이나 료:

물론 격려의 의도로 하시는 말씀이실 테지만, 그토록 긍정적으로 평가해주시니 뭐라 말씀을 드려야 할지 모르겠다.

부족한 예산과 시간이라는 환경에서 어떻게든 ‘그림’을 건져내야 했던 까닭에 촬영 당시에는 정말 뒷일을 생각할 수가 없었다. 여러 가지로 어려운 상황에서 어떻게든 시각적 효과를 연출해내다가 셀 수 없는 시행착오가 반복되다 보니 포스트프로덕션에 아주 긴 시간이 걸렸다. CG팀에는 실로 고개를 들 수 없을 정도다.

저예산 독립영화라는 열악한 환경에도 불구하고 <유토피아>는 한정된 자원의 최대한 효율적으로 활용, 특수효과 면에서도 상당한 완성도를 보여준다. 촬영과 조명은 물론, VFX까지 거들었던 시이나 료의 존재감이 느껴지는 부분이다. ⓒ 2018 Utopia

홍상현:

사람들은 그런 것을 ‘경험을 통한 습득’이라고 부른다. 보통 음악감독은 누군가 촬영해 놓은 장면에 음악을 끼워 넣는 형태로 작업을 한다. 하지만 유토피아를 제작 과정에서 당신은 촬영과 음악을 동시에 담당했다. 지금까지의 술회를 들어보면 촬영 하나만으로도 충분히 능력의 한계치를 경험했을 것 같은데, 용케 멋진 사운드트랙까지 만들어냈다.

시이나 료:

이 또한 말 그대로 ‘막다른 골목’에 몰려 있던 상황이었다. 촬영 당시에는 촬영 외에 다른 것을 거의 생각하지 못했다.

픽처 로크 (picture lock, 그림 편집이 종료되어 그림이 확정된 단계)가 촬영 종료 시점에서 2년이나 지나있다 보니, 촬영감독으로써의 경험을 활용하기보다 순전히 음악감독으로만 참여하는 느낌이었다. 제가 조금만 더 노력했다면 영상과 스토리가 좀 더 치밀하게 뒤얽힐 수 있었을 텐데, 저로서는 아쉬운 점이 많아 도리어 반성을 하게 된다.

 

홍상현:

말씀하신 것처럼 생각하는 관객은 많지 않을 거다. (웃음) 개인적으로 <유토피아>가 거둔 가장 큰 성과 중 하나는 영상을 비롯한 조형예술은 물론, 음악적 재능 또한 겸비한 ‘토털아티스트’, 시이나 료의 완성을 선보인 것이라고 생각한다. 앞으로의 포부를 들려달라.

시이나 료:

촬영과 음악 외에도 CG, 합성, 매트페인팅 등 <유토피아>를 완성하고 싶다는 생각만으로 손이 모자라면 어떤 분야에든 손을 댔다.

괴로운 한편으로 더 없이 즐거운 일이었다. 입으로는 “이제 정말 지긋지긋하다”고 수없이 말하지만, 다음에 반드시 이 ‘창작지옥’을 다시 맛보고 싶다는 게 제 진심이다. 장차 더 많은 예산을 들인 작품을 만들게 되더라도 아무쪼록 <유포피아>에서 경험한 것 같은 ‘핸드메이드’ 영화 작업을 이어가고 싶다.

시이나 료(왼쪽)과 이토 슌타(오른쪽). 두 친구는 감독과 음악감독으로 첫 작품을 함께했지만, 이제는 예술적으로도 서로를 ‘파트너’라 부른다. ⓒ 2018 Utopia

 

 

인터뷰가 이어질수록 선명하게 떠오른 영화 한 편이 있다. 이준익 감독의 대표작 중 하나인 <라디오 스타>.

공교롭게도 시이나 료와 이토 슌타 감독이 함께한 첫 작품 <무지갯빛 로켓>과 같은 해 공개된 이 영화는 과거의 영광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는 록 스타 최곤(박중훈)과 묵묵히 그의 곁을 지키는 매니저이자 가장 좋은 친구 박민수(안성기)를 주인공으로 하는 버디무비다.

물론 이토 슌타가 앞으로도 수많은 관객들을 만나게 될 뛰어난 청년예술가이며, 그 자신 영화제 입상 경력이 있을 뿐더러, 음악은 물론 VFX 분야에서까지 두각을 나타내는 시이나 료의 장래를 생각할 때, ‘오랜 우정을 간직해 왔다’는 공통점이면 모를까 ‘왕년’ 운운하는 수사는 거리가 있을 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글 말미에서 필자가 굳이 이 영화를 언급한 데는 이유가 있다.

동일본대지진으로 인한 혼란 속에서도 끝내 창작자로서의 초심을 다잡는 이토 슌타를 보며 “저 친구가 끝까지 해낼 수 있도록 도와줘야겠다”고 결심했다는 그의 말에서, 쓸쓸히 빗속으로 향하던 최곤 앞에 박민수가 우산을 들고 나타난 <라디오 스타>의 라스트신과, 영화가 끝나고 난 뒤에도 오랫동안 필자를 객석에 붙들어 두었던 저 유명한 대사를 떠올렸기 때문이다.

“자기 혼자 빛나는 별은 없어. 별은 다 빛을 받아서 반사하는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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