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론] 청소년 고용보험 가입이 청년수당보다 우월하다고 볼 수 없다

  • 기자명 윤형중
  • 기사승인 2019.04.25 09: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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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2일 김형모 팩트체커(정의당 부설 정의정책연구소 정책자문위원)가 '포퓰리즘 논란 '청년수당' 확대가 능사?'란 기고를 통해 만15살 청소년에게 고용보험을 가입시켜 실업급여를 지급하는 정책 아이디어를 제시했다. 그는 경기도, 서울시 등 14개 지자체가 실시하는 청년수당/청년배당 등의 정책이 복지 우선순위에서 절박한 정도가 떨어지는 청년층을 지원하고, 당사자 기여 없는 조세로 지원돼 '포퓰리즘' 논란이 일고 있다고 지적했고, 이 정책보다 나은 대안이 있다고 주장했다. 그 대안은 법률을 개정해 취업자가 아니어도 예비 직장인이자 예비 창업자인 만15세 청소년들을 고용보험에 가입시키고 향후 실업급여를 받게 하는 것이다. 실업급여는 1일 하한액이 6만120원이고, 이 금액을 최저 지급기간(90일) 동안 받으면 총액 541만800원이다. 월 50만원에 최장 6개월 지급하는 청년수당보다 많은 금액일 뿐 아니라, 이 기회에 청소년들이 고용보험 제도를 체험하며 학습한다는 것도 그가 제시한 '대안'이 우월하단 근거였다.

 

하지만 실제로 청년수당보다 우월하다고 논증할 수 있는지, 또한 새로운 정책 아이디어로서 '청소년의 고용보험 가입'이 사회 문제를 해결하는 효과적인 방법인지, 부작용은 없는지 등을 알아보기 위해선 이모저모를 따져볼 필요가 있다. 따져본 결과, 이 글에서 내리는 결론은 이렇다. 청소년의 고용보험 가입과 청년수당 사이엔 무엇이 더 우월한지를 따져보는 것 자체가 어렵고, 새로운 정책아이디어도 포퓰리즘 논란을 피하기 어렵다. 게다가 사회보험이 포괄하지 못하는 영역들을 고려한다면 새로운 대안을 적극적으로 모색해볼 필요도 있다. 이 주장들의 근거를 제시하면서 공론장에서 의미 있는 정책 논쟁을 유도하는 것이 이 글의 집필 목적이다.

 

정치저널리즘의 드문 사례

모든 정책에는 나름의 사회 문제가 담겨 있다. 정책 자체가 이 사회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등장했기 때문이다. 정책은 '특정한 사회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법규와 예산의 조합'이라고 정의할 수 있다.(출처: <공약파기> p8, 알마, 2017.3 ) 정부가 사용할 수 있는 정책수단이 법규를 만들거나 바꾸고, 정부 재원을 사용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법규와 예산을 창의적으로 조합하면 좋은 정책이 등장할 수 있다. 그렇다면 '청소년의 고용보험 가입'이란 제도는 어떤 문제를 해결하려 하는지, 어떤 법규와 예산의 조합인지를 검토한 뒤에 문제를 해결하는 적절한 정책인지를 검토해보고자 한다.

 

본격적으로 정책 아이디어를 살펴보기 전에 김형모 팩트체커의 기고가 한국의 정치 담론에서 지니는 의미를 평가하고 싶다. 한국에서 정치 저널리즘은 정책을 다루는 빈도가 낮고, 지식인들의 언론 기고에서도 주로 정책이 배제된 정치 담론을 다룬다. 간혹 정책을 다루더라도 정치적 목적을 가지고 한 방향의 근거들만 모아서 제시하는 것이 대다수다. 이는 최근의 최저임금을 둘러싼 논란에서도 자주 발견된다. 정책 담론 자체가 저발전된 한국의 정치 저널리즘에서 새로운 정책을 취지와 근거까지 담아 언론에 기고하며 제시하는 일은 극히 드물다. '청소년 고용보험 가입'이란 정책 아이디어가 그 드문 사례에 해당한다. 이 글은 대분분 새로 제시된 정책 아이디어를 비판하는 내용이지만, 근본적인 집필 취지는 이런 유형의 정책 담론을 응원하는 것임을 미리 밝혀둔다.

출처: 청와대 일자리상황판

청소년 고용보험 가입은 포퓰리즘이 아닌가

김형모 팩트체커는 청년수당이 포퓰리즘 논란에 휩싸인 이유로 두 가지를 제시한다. 하나는 '복지 우선순위로 보았을 때 지원 대상으로서 청년이 후순위'라는 것이다. 그는 '빈곤 노인, 아동, 중장년 실직자' 등을 위한 복지가 더 절박하다고 밝혔다. 또한 그는 한국의 중심적 복지제도가 사회보험으로 운영되기에 조세로 직접 지원하기에 앞서 취약계층이 기존 사회보험에서 벗어나지 않도록 최대한 돕는 게 우선이라고 주장한다. 즉, 사회보험은 가입자가 보험료를 납입하는 기금으로 운영되는데 반해, 청년수당은 당사자의 기여 없는 조세로 지원되기에 포퓰리즘 논란을 피할 수 없다는 논리다.

 

그런데 자신이 청년수당을 비판하기 위해 사용한 논리가 자신에게 되돌아온다는 문제가 발생한다. 청년수당이 포퓰리즘 정책이 된 두 가지 이유가 청소년의 고용보험 가입 제도를 피해갈 수 있을까. 일단 청년과 아동, 중장년, 노인 중 누가 복지 지원이 더 절박한지는 쉽게 판단할 수 없는 문제지만, 김형모 팩트체커가 주장한대로 청년이 덜 절박하다면 그가 제시한 정책도 덜 절박한 사람들인 청(소)년을 지원하게 된다. 게다가 고용보험이 당사자의 기여로 운영되는 사회보험임에도 포퓰리즘 논란을 피할 수 없다. 청소년들이 기여한 만큼 수혜를 입는 구조가 아니기 때문이다. 기여보다 훨씬 큰 수혜를 입는다. 이는 때론 재원으로 세금을 사용하는 것보다 더 큰 문제를 야기할 수 있다. 사용처가 한 두가지인 작은 주머니에서 큰 몫을 가져가는 것이 때로는 여러 목적으로 사용되는 큰 주머니에서 일정한 몫을 가져가는 것보다 큰 타격을 주기 때문이다.

 

기여에 비해 너무도 큰 보상

김형모 팩트체커가 설계한 대로 취업하지 않은 만15세 청소년의 고용보험 가입을 허용하면 이들이 내는 보험료가 최저임금에 보험료율 0.65%를 적용 받아 월 1만1343원이 된다. 실업급여 수급자격을 얻기 위해 최저 가입기간인 180일 이상 7개월 가입하면 개인당 총 7만9401원의 보험료를 기금에 지급한다. 김 팩트체커는 "참고로 올해 기준 만15세 주민등록상 인구는 49만1474명이다. 모든 15세 인구에 대해 고용보험 특례가입을 실시할 경우 총 소요되는 예산은 390억원이다"고 밝혔다. 고용보험료의 사업자몫은 국가가 부담하고, 만15세 49만1474명 중에서도 월 1만1343원이 부담되는 취약계층을 정부가 지원하면 된다고도 덧붙였다. 결국 청소년이 고용보험기금에 기여하는 몫은 많아야 최대 390억원이다.

 

그렇다면 이들이 받는 수혜액은 얼마일까. 원칙적으로 실업급여는 퇴직해 고용보험을 상실하고서 12개월간 수급 자격을 얻는다. 애초에 취직하지 않은 청소년이 고용보험료를 내지 않은 시점부터 바로 수급자격을 얻는지는 좀 애매한 부분이 있지만, 설계의 취지대로 모든 청소년들이 실업급여를 지급 받는다고 가정하면 연 2조 6592억원의 예산이 소요된다. 청소년들이 보험료로 내는 최대 390억원의 68배 이상인 금액이다.

 

김형모 팩트체커가 주장한대로 '당자사의 기여'가 의미있는 수준인지를 판단하려면 연 2조6592억원을 고용보험기금이 감당할 수 있어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세금으로 충당하는 청년수당과 크게 다를 바가 없다. 고용보험기금의 최근 통계는 지난해 5월 발간된 '2017 고용보험기금 결산보고서'에 담겨 있지만, 이 보고서보다 더 최신 통계가 최근 정부가 '[사실은...]고용보험 목적인 사회안전망으로 적절히 작동'이란 제목으로 발표한 '정책브리핑'이다. 여기에 '연도별 고용보험기금 수입지출 현황(2006~2018년)'이 정리된 표가 있다.

 

 

이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고용보험기금은 수입 10조7696억원, 사업비 11조5778억원으로 8082억원의 적자를 기록했다. 이로 인해 고용보험기금의 적립금 규모는 2017년 10조2544억원에서 지난해 9조4462억원으로 줄었다. 고용보험기금의 재정건전성을 위해 정부는 고용보험료율을 올리려 한다. 이미 노사가 참여하는 고용보험위원회에서 실업급여 계정의 보험료율 인상을 2017년 12월 19일에 의결했고, 국회에서 정부안대로 고용보험법 개정안이 통과되면 현행 1.3%인 보험료율이 1.6%로 인상된다. 국회에서 정부가 의도한대로 법안이 처리될지는 예측하기 어렵지만, 고용보험기금을 사용하는 새로운 정책을 추가하지 않아도 기금의 재정은 그리 넉넉한 편이 아니다.

 

따라서 청소년들에게 실업급여로 연 2조6592억원을 신규로 지급하는 새로운 정책을 시행하면 고용보험기금은 4년도 되지 않아 바닥난다. 세금을 투입하지 않는 한 실업급여, 육아휴직급여 등을 지급할 수 없게 되고, 대표적인 사회안전망인 고용보험 시스템이 완전히 작동은 멈춘다. 이런 점을 감안하면 청소년의 당사자 기여는 포퓰리즘 논란을 벗어날 수준이 아니며 이 점에서 사실상 세금으로 지원하는 청년수당과 큰 차이가 없다.

 

청소년은 자영업자, 중소기업주와 어떻게 다른가

고용보험은 <고용보험 및 산업재해보상보험의 보험료징수 등에 관한 법률> 제49조의 특례로 중소기업 사업주와 자영업자의 가입을 허용한다. 김형모 팩트체커는 이 논리를 준용해 "근로자도 아니고 고용인도 없지만 예비 직장인이자 예비 창업자인 청소년의 경우도 특례조항 신설로 고용보험 가입이 가능하지 않을까"라고 밝혔다. 이 과정에서 사소한 오류가 있는데, 동법의 제49조(중소기업 사업주에 대한 특례)로 가입가능한 사회보험은 산재보험일 뿐, 고용보험은 해당되지 않는다.

 

그동안 고용보험의 가입 대상으로 법률상 '근로자'가 아니어도 특수고용직이나 자영업자 등 특정 경제활동 형태를 고려한 적은 있었어도, 만15세 청소년 등 근로자가 아닌 특정 연령층을 편입하잔 논의는 거의 없었다. 특정 연령대만 지원할 만한 강력한 근거를 찾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게다가 김형모 팩트체커가 제안한 정책은 지급한 보험료보다 68배 이상인 보험금을 돌려 받는 수혜 대상을 특정 연령층에만 한정하자는 것이다. 이 경우 더더욱 '특혜' 논란을 피할 수 없다.

 

청소년이 고용보험을 잘못 배울 우려가 있다

김형모 팩트체커는 '청소년의 고용보험 가입'이란 정책 아이디어를 제안한 이유 중 하나로 '교육 효과'를 꼽는다. 그는 "만약 이 제도가 도입된다면 각급 학교 등을 통해 대대적인 고용보험 가입안내가 진행된다"고 밝혔다. 하지만 오히려 이 제도가 시행되면 청소년들이 고용보험을 잘못 배울 우려가 있다. 당초 최소 기간을 납입하고 최대한 보험금을 받을 계획으로 보험에 가입하는 행위는 보험이 유지되는 기본 원리에 반하고, 결과적으로 보험기금의 지속가능성을 훼손한다.

 

사회보험인 고용보험도 말 그대로 '보험'이다. 사전적인 정의로 보험은 '우발적으로 발생하는 일정한 위험(사고)에서 생기는 경제적 타격이나 부담을 덜어주기 위하여 다수의 경제주체가 협동하여 합리적으로 산정(算定)된 금액을 조달하고 지급하는 경제적 제도'를 의미한다. 정리하자면, 보험은 여러 주체들에게서 자금을 조달하고, 우발적으로 발생한 위험에 조달된 기금을 사용하는 제도다. 고용보험도 이 원리대로 운영되고 있다. <2017 고용보험통계연보>를 보면 2017년 연말을 기준으로 고용보험의 피보험자의 숫자는 1295만8825명이고, 2017년 한 해 동안 실업급여를 지급 받은 인원은 129만5789명이었다. 고용보험기금은 실업급여 외에도 고용안정, 직업능력개발, 출산전후 휴가와 육아휴직 수당에도 사용되지만, 수급자 총 인원이 피보험자의 절반에도 미치지 않는다. 게다가 고용보험은 피보험자인 근로자, 자영업자 등 외에 사업자도 분담한다.

15세 청소년은 언제 실업급여를 받아야 할까

'15세에 고용보험에 가입하는 청소년이 언제 실업급여를 수급하느냐'도 불명확한 부분이다. 김형모 팩트체커는 "정책 현실화의 신속성을 도모한다면 가입 연령을 늦추거나(17~18세), 초기에 한 해 3~4세 정도의 연령을 포괄해 일괄 가입할 수도 있다(예 15~18세)"고 주장했지만, 이 내용으론 실제 수급시점이 언제인지를 가늠하긴 어렵다.

 

원칙적으로 실업급여는 퇴직 후 12개월 동안 수급이 가능하다. 본인이 240일 동안 수급이 가능한 조건이라고 해도, 퇴직 6개월 뒤에 신청하면 남은 6개월만 수급이 가능하다. 만일 취업하지 않은 청소년을 고용보험에 가입시킨다면 언제부터 이들에게 실업급여를 지급하는 것인지 그 기준을 정하기가 애매하다. 고용보험 해지(보통 사회보험은 '상실'한다고 표현하지만, 이 경우엔 '해지'가 적절할 것 같다)를 기준으로 하는지, 혹은 청소년이 학교를 졸업한 뒤부터 수급 조건이 되는 것인지도 정하기가 쉽지 않다. 정책 아이디어를 보다 구체화하려면 고용보험에 가입한 미취업 청소년이 언제부터 구직급여를 받을 수 있는지, 그 기준부터 명확히 해야 할 것이다.

 

사회보험을 뛰어넘는 아이디어가 필요하지 않을까

사회보험이 근현대 많은 국가에서 자리잡아 온 과정을 돌이켜보면, 나름 장점과 한계가 뚜렷했다. 김형모 팩트체커가 설명한대로 '중심적 복지제도의 근간'으로 사회안전망의 역할을 해온 측면도 있지만, 반면에 이미 자신의 지위가 안정된 사람들이 더 많이 가입하고, 불안정한 사람들이 배제되는 한계도 있었다. 불안정한 사람들에게 사회보험이 더 필요한데도, 오히려 안정된 사람들에게 버팀목이 되는 역설적인 상황이 발생하는 것이다.

 

2018년 8월 기준 경제활동인구조사 근로형태별 부가조사 결과를 보면 고용보험과 건강보험의 가입률은 정규직이 각각 87.0%, 90.1%였으나, 비정규직은 각각 43.6%, 45.9%였다. 9년 전인 2009년에도 비정규직의 가입률은 각각 42.8%, 43.4%로 최근 통계와 큰 차이가 없다. 그동안 정부는 영세사업장에 사회보험료를 지원하는 두루누리지원사업 등 막대한 재원을 투입했지만, 사회보험의 사각지대는 사라지지도 그다지 줄어들지도 않았다.

사회보험이 미가입자에게 힘이 되지 못하고, 미가입자들의 숫자도 줄어들지 않는다면 새로운 안정의 도구들이 필요하지 않을까. 그동안 우리 사회에서 기능했던 사회안전망이 지속적인 한계를 노출하고, 익숙한 안정의 도구들도 사라지고 있다. 생계급여를 받는 기초생활수급자 중에 부양의무자 기준 때문에 수혜에서 제외되는 이들이 다수 있었고, 안정된 일자리였던 제조업 정규직의 일자리 숫자도 감소 추세다. 청년수당이 이 모든 문제의 해법이 될 순 없겠지만, 기존의 사회보험의 틀 밖에서 강구한 새로운 수단임에는 틀림 없다. 사회보험도 나름의 개선을 해야겠지만, 사회보험을 뛰어넘는 새로운 아이디어도 모색해봐야 하지 않을까.

 

윤형중 팩트체커는 민간연구소 LAB2050 연구원이다. 대학에서 재료공학을 전공했고, 경제주간지 매경이코노미와 한겨레신문사에서 기자로 일했다. 지은 책으로는 <공약파기>, <이제는 빅 데이터 시대>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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