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짜뉴스는 어떻게 전 세계를 낚았나

  • 기자명 김준일 기자
  • 기사승인 2017.07.04 09: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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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짜뉴스는 어떻게 탄생할까. 가짜뉴스가 진짜로 둔갑하는 과정엔 어떤 비밀이 있을까. 팩트체크 미디어 <뉴스톱>은 루머가 뉴스로 둔갑하는 과정을 추적해 가짜뉴스에 대한 책임을 누가 져야하는지 살펴본다.

 

지난달 말 놀라운 뉴스가 발표됐다. 미 항공우주국 나사(NASA)가 외계인과 접촉했다는 사실을 곧 발표할 것이란 보도였다. 출처는 국제 해커그룹 어나니머스를 자처하는 유튜브 계정이었다. 그동안 외계인의 존재가 공식적으로 확인된 적은 한번도 없었기에 이 뉴스는 큰 화제가 되었다. 

가이 포크스 가면을 쓰고 어나니머스를 사칭한 사람이 나사의 외계인 접촉을 발표하는 모습 ⓒ유튜브 캡처

권위있는 뉴스미디어가 이를 보도했기에 이 기사를 접한 사람들은 믿지 않을 수가 없었다. 한국에서는 조선일보, 동아일보 등 국내 최고 신문 상당수가 이를 보도했다. 그러나 이 뉴스는 일주일 만에 거짓으로 밝혀졌다. 전 세계 언론이 나사의 외계인 발표설을 보도하자 나사가 직접 '가짜'라고 확인을 해줬다. 

팩트체크 미디어 <뉴스톱>은 전 세계 언론이 가짜뉴스에 낚이게 된 과정을 상세히 살펴보고자 한다. 가짜 뉴스가 어떤 과정을 통해 확산이 되는지, 왜 미디어는 가짜뉴스를 퍼뜨리는지, 가짜 뉴스로 누가 이익을 얻는지 확인했다.

 

1. 최초에 유튜버(YouTuber)가 있었다. 

'나사의 외계인 발표설'의 최초 소스(출처)는 유튜브였다. 어나니머스 글로벌(Anonymous Global)이라는 유튜브 사용자는 6월 20일에 ‘Anonymous believe NASA is poised to announce discovery of aliens”라는 동영상을 게시했다. 국제해커그룹 어나니머스는 미 항공우주국이 외계인의 발견을 곧 발표한 것으로 믿고 있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어나니머스' '나사' '외계인'  등의 단어는 음모론의 단골 소재다. 외계인의 존재를 믿는 사람들은 '드디어 올 것이 왔다'며 이를 반겼다. 2주가 지난 7월 4일 현재 이 동영상의 클릭수는 270만건이 넘었다. 10분 가량인 동영상 내용은 단순하다. 그동안 각종 음모론에 나왔던 내용의 반복이며 나사가 외계인의 존재를 발표할 예정이라는 것이다. 현재 동영상을 올린 anoymous global이란 유저의 유튜브 계정이 삭제되어 원본 동영상도 같이 삭제됐다. 과도한 낚시 동영상으로 유튜브의 제재를 받았을 가능성이 있다.

 

 

2. 어나니머스를 사칭하다. 

어나니머스는 국제적인 해커그룹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동영상 계정 '어나니머스 글로벌'이 국제 해커그룹 어나니머스를 대표한다는 근거는 전혀 밝혀지지 않았다. 어나니머스는 느슨한 해커들의 연합체로 권위주의에 반대하는 해커라면 누구나 어나니머스가 될 수 있다. 그래서 어나니머스는 공식 홈페이지나 유튜브 계정이 없다. 어나니머스는 법률대리인을 통해 저작권이나 초상권 침해를 주장하지 않는다. 인터넷에는 어나니머스를 사칭하는 수많은 사이트들이 있다.   

ⓒwikimedia

해당 동영상이 어나니머스의 발표라는 증거는 계정 이름이 '어나니머스 글로벌'이며 동영상의 나레이터가 어나니머스의 상징인 ‘가이 포크스’ 가면을 쓰고 나왔다는 점이다. 그러나 가이 포크스 가면 역시 누구나 쓸 수 있다.  가이 포크스 가면은 영화 '브이 포 벤데타'에 등장해 유명해졌으며 반체제 운동의 상징으로 쓰이고 있다. 결국 이 동영상이 어나니머스의 발표라는 증거는 사실상 없는 것이다.  가짜 동영상 뉴스의 시발점이었다.

 

3. 음모론 미디어의 가십이 되다.

이 동영상은 주로 음모론과 가십거리를 다루는 영미권 매체들에 의해 인용되기 시작했다. 예를 들면, 또 다른 어나니머스가 운영하는 것처럼 보이는 어노뉴스 (anonews.co)는 해당 동영상과 함께 “나사가 곧 외계인 존재를 발표할 것"이라고 보도했다 (현재 이 게시물은 삭제된 상태다). 이 사이트 소개글에는 어노뉴스가 어나니머스에 의해 운영된다는 주장을 담고 있다. 그러나 이 역시 전혀 증거가 없다. 오히려 이들 사이트는 어나니머스의 명성을 이용해 돈을 벌려는 상업적인 사이트인 것으로 알려졌다.

Anonews.co의 게시물을 공유한 페이스북 페이지 화면 캡처

 

4. 주요 인터넷 신문의 '일용할 양식'이 되다. 

하루 뒤 영국과 미국의 각종 인터넷 언론이 이를 집중적으로 보도하기 시작했다. 샌디에고유니온트리뷴RT.comBGR.com 노르만지스타데일리스타 등 일일이 거론할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언론이 주요 뉴스로 다뤘다. 일부는 출처가 의심된다고 보도했지만, 기사 끝에 보이지 않게 몇 줄 덧붙인 정도다. 대부분 언론은 독자의 호기심을 유발하기 위해 유튜브 영상 제목을 그대로 가져다 썼다.

이미지 출처 ⓒRebecca-louise https://www.flickr.com/photos/50066720@N03/5051540562/sizes/o/

영국의 대표적인 대중지인 데일리메일(DailyMail)도 이 뉴스를 보도했다. 데일리메일은 영국 타블로이드판형 열독률 3위를 차지할 정도로 인지도가 높다. 데일리메일 기사 후반부에는 지난 4월 나사의 프로젝트 책임자인 토마스 저버첸 박사가 외계생명체의 존재 가능성이 높다는 발표한 내용을 붙여놨다. 당시 나사는 토성의 위성 엔켈라두스와 목성의 위성 유로파에 생명체 존재 가능성을 증명하는 추가 증거를 확보했다고 발표한 바 있다. 두 사건이 관련이 없음에도 한 기사에 묶어 놓아 마치 나사의 외계인 발표가 사실인 것처럼 보이게 만든 것이다. 영국의 대표적인 대중지 더선(TheSun) 역시 나사의 발표가 임박했다고 보도했다. 본격적인 경쟁에 돌입한 것이다. 

5. 정론지도 '밥숟가락'을 얻다.

세계적 시사주간지 뉴스위크도 이 기사를 다뤘다. 뉴스위크는 '어나니머스는 외계 생명체의 증거를 갖고 있다고 말한다. 그런가?'란 제목의 6월 26일 기사에서 이 내용을 전한 뒤 기사 끝에 이 동영상이 조작된 것임을 밝혔다. 러시아 정부가 발행하는 스푸트니크뉴스 역시 '나사가 외계인을 발견했다는 발표가 임박했나'란 기사에서 위의 내용을 다루고 마지막 한 문단에 이 같은 내용이 사실이 아님을 밝혔다. 사이언스알럿 등 거짓 정보를 검증하는 사이트도 메인제목에 가짜 어나니머스의 주장을 그대로 실어 독자의 혼선을 부추겼다.  

이에 대해 워싱턴포스는 시사지 뉴스위크마저 '클릭 낚시 수법'을 구사했다고 비판했다. 호기심을 자극하는 제목으로 독자가 일단 클릭하게 만들었다는 것이다. 외계인 존재를 발표할 것이라는 잘못된 뉴스가 언론을 통해 확대재생산되자, 나사의 과학임무위원회 토마스 저버첸 박사는 트위터를 통해 이를 공식부인하는 발표를 했다.  

 

 

6. 한국언론 "나도 끼어야지"

한국 언론 역시 가짜 뉴스 보도 대열에 동참했다. 차이가 있다면 해외 언론과 하루이틀 정도 시차가 있었다는 점이다. 외신 담당 기자들이 워싱턴포스트 등 유명 언론을 집중적으로 체크하는데, 해당 미디어의 보도가 주로 25~26일에 집중됐기 때문이다. 더 큰 문제는 베껴쓰기다. 국내 언론 한 곳이 외신을 인용해 보도를 하면, 대부분 언론은 내용의 진위 여부를 확인하지 않고 "000에 따르면"이라는 기사작법으로 그대로 베끼는 것이 관행이다.

6월 26일 나사의 외계생명체 발표설을 보도한 조선일보 화면 캡처

'외계인 오보'에 동참한 언론은 국내 최고신문이라는 조선일보 동아일보그리고 뉴스큐레이션 업체 인사이트, 그 밖에 디지털타임스시사플러스브레이크뉴스 등 중소 규모의 매체들이었다. 내용은 거의 대동소이하다. 어나니머스가 나사의 외계인 발표를 주장했으며, 데일리메일등 외신들이 이를 보도했다는 내용이다.

 

7. 해명 기사도 베낀다.

나사의 공식 부인 성명이 나오고 워싱턴포스트 등 주요 언론이 이 해프닝을 비판하는 기사를 게재하자, 국내에서도 비슷한 보도가 이어졌다. 연합뉴스는 6월 27일 <"NASA가 외계인 존재 발표" 가짜 동영상에 언론매체들 낚여>란 기사에서 어떻게 국내외 언론들이 가짜 동영상에 낚였는지 그 과정을 소개했다. 

연합뉴스 보도가 나온 뒤 국내 언론은 앞다퉈, 유사한 보도를 쏟아냈다. 동아일보는 'NASA “외계인 존재 발표 없다”…어나니머스 동영상은 가짜인 듯' 이란 제목의 기사를 게재했다. 본인들이 가짜뉴스를 국내에 유포하는데 일조했음에도 오보에 대한 반성은 전혀 없었다. '유체이탈 화법'으로 나사의 부인 성명을 보도하며 또 클릭 장사에 나선 것이다. 조선일보 역시 반성없이 해당 뉴스가 가짜뉴스였다는 후속보도를 했다.

 

 

KBS는 나사의 외계인 발표설이 오보라는 기사를 27일 보도했다. 하지만 KBS는 연합뉴스 기사를 토씨 하나 빼지 않고 그대로 베낀 뒤 자사기자 이름을 넣었다. KBS 홈페이지 캡처

헤럴드경제KBS, 국민일보 등도 연합뉴스와 비슷한 보도를 했다. KBS의 경우, 연합뉴스 보도와 토씨 하나 다르지 않게 베껴 썼지만, 자사 기자 이름을 마지막에 넣어 마치 직접 취재한 것처럼 보이게 했다. 출처를 밝히는데 인색하고 베끼는데 능숙한 한국언론의 문제점이 가짜뉴스를 지적하는 기사에도 그대로 반복된 것이다.

 

8. 출처를 밝힌 한국언론이 단 한군데도 없다. 

이 과정에서 기사를 작성한 한국언론은 단 한군데도 제대로 된 출처를 밝히지 않았다. 단지 "000에 따르면"이란 마법의 문장으로 자신들의 주장을 정당화했다. 반면 해외 언론은 기사의 소스를 밝히고 독자가 진위여부를 판단할 수 있도록 기사 안에 하이퍼링크를 제공하는 것이 보통이다. 기사의 하이퍼링크를 통해 해당 유튜브 동영상을 본 영미권 독자 상당수는 이같은 주장이 신빙성이 없음을 금방 파악할 수 있다. 하지만 한국 기사를 본 독자는 이를 확인할 방법이 없다. 언론이 독자를 바보로 만드는 셈이다.

영국 로이터 저널리즘 연구소가 공개한 '디지털 뉴스 리포트' 중 뉴스 신뢰도 항목. 한국은 36개국 중 최하위를 기록했다. ⓒ언론진흥재단 제공

9. 손익계산서는?

그러면 이 해프닝으로 누가 이득을 보고, 누가 손해을 봤을까. 처음 동영상을 올린 어나니머스를 사칭한 유튜브 이용자는 큰 돈을 벌었다. '어나니머스 글로벌'이라는 계정에는 음모론을 다룬 동영상 수백건이 올라와있다. 동영상 길이와 광고 유형에 따라 다르지만 국내에서는 보통 유튜브 1회 클릭에 1원 정도의 광고수익으로 계산하고 있다. 해당 동영상만으로 수백만원을 벌은 것이다. 이 운영자는 그동안 광고로 수억원의 돈을 벌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언론 역시 클릭 장사를 했다.  클릭은 곧 돈이다. '낚시성 제목'을 이용해 독자들이 자사 홈페이지에 들어오게 유인했다. 트래픽을 올리며 매체의 인지도를 올린 것은 덤이다. 

그런 누가 손해를 봤을까. 전 세계 독자다. 세상에는 읽고 봐야할 콘텐츠가 넘쳐나는데 가짜 뉴스에 낚여서 소중한 시간을 낭비했다. 이 기사를 본 사람이 전 세계적으로 적게는 수백만명에서 많게는 수억명이다. 결국 최초 가짜 뉴스 제작자와 전 세계 언론이 독자들의 호주머니에서 돈으로 환산할 수 있는 시간을 훔쳐간 것이다.

10. '기레기'의 천국 코리아

영국 로이터재단 연구에 따르면 한국언론의 신뢰도가 조사대상국 36개 중 꼴찌라는 보도가 최근 나왔다. 왜 한국인은 뉴스를 신뢰하지 않을까. 왜 사람들은 기자를 '기레기'라고 할까. 이 일련의 해프닝에 그 이유가 담겨 있다. 전세계 언론 상당수가 클릭 낚시를 위해 검증되지 않은 사실을 보도한다. 그 중에서 한국 언론은 최악이다. 외신을 그대로 번역하는 것은 물론, 원 소스를 확인할 방법조차 제공하지 않는다. 반박하는 자료가 나오면 오보에 대한 반성없이 남의 일인양 다시 보도한다. 타사와 외신을 그대로 베끼고 자사 기자의 이름을 넣는 관행은 여전하다. 이런 행태가 저널리즘의 신뢰 위기를 부르고 있다. 한국 언론은 기본으로 돌아가야 한다.

 

*2017년 7월 25일 오후 11시 9분 1차수정: 최초 동영상이 삭제되어 해당 내용을 업데이트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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