합법화 이후...안전한 '먹는 임신중절약' 허가 필요하다

  • 기자명 박한슬
  • 기사승인 2019.05.03 08: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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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헌법재판소(이하 헌재)에서 ‘낙태죄’에 대해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렸습니다. 여성 단체들은 역사적인 결정이라며 환영의 목소리를 냈고, 천주교 등의 일부 종교계에서는 우려의 목소리를 냈지만 헌재가 시한을 못 박은 만큼 관련 법률이 낙태 일부 허용 쪽으로 개정될 것은 분명해 보입니다. 구체적인 변화까지는 시간이 더 걸리겠지만, 이번 헌재 결정으로 바뀌게 될, 그리고 바뀌어야 할 부분들을 뉴스톱에서 짚어봤습니다.

 

헌법재판소 결정은 ‘인공임신중절 일부 허용’

우선은 ‘낙태죄’입니다. 일반적으로 낙태죄라는 이름으로 불리지만, 낙태죄는 실은 하나의 법률이라기 보단 관련 법률 여러 가지를 같이 묶어서 부르는 포괄적인 명칭이라고 보는 것이 더 적확합니다. 당장 이번 헌법재판소의 헌법 불합치 결정도 직접적으로는 형법 제269조(낙태)와 형법 제270조(의사 등의 낙태, 부동의의 낙태) 두 개의 조문을 대상으로 삼고 있고, 관련 조항인 모자보건법 제14조(인공임신중절수술의 허용한계)와 그 시행령 역시도 같이 개정되어야 하니 이런 법률들에 대한 포괄적인 개정을 2020년 12월 31일까지 마쳐야 하는 셈입니다.

최근의 헌재 결정(2017헌바127)을 두고 낙태죄가 전면 폐지 수순을 밟는 것이라고 오해하시는 분들도 계시지만, 이번 헌재 결정은 낙태죄 처벌 자체는 헌법에 부합하지만 기한에 무관하게 인공임신중절을 일괄적으로 처벌하는 것은 가혹하다는 입장에 가깝습니다. 결정요지에서 재판관 4인이 밝혔듯, 자기낙태죄 조항은 태아의 생명을 보호하기 위한 것으로서 그 입법목적이 정당하고, 낙태를 방지하기 위하여 임신한 여성의 낙태를 형사처벌하는 것은 이러한 입법목적을 달성하는 데 적합한 수단임을 분명히 하고 있습니다. 다만 현행 낙태죄는 임신기간 전체를 통틀어 모든 낙태를 전면적·일률적으로 금지하고, 이를 위반할 경우 형벌을 부과하고 있으므로 임신한 여성의 자기결정권을 제한하는 정도가 지나치기에 ‘헌법불합치’에 해당한다는 것이죠.

그렇기에 태아의 생명권을 침해하는 정도가 크지 않으면서도, 여성이 자기결정권이 충분히 행사될 수 있는 기준치로 '임신 22주 이내'라는 선을 정해준 것이 이번 결정의 가장 핵심적인 부분입니다. 특히나 임신기간을 의학적으로 세 구간으로 나누었을 때, 임신 초기에 해당하는 기간(약 12-13주)에는 여성이 임신중절로 인해 생명이나 신체의 위험을 받을 가능성이 상대적으로 낮으니 그 기간에 안전한 임신중절이 이루어 질 수 있도록 국가가 정책적 안배를 해야 한다는 내용도 담겨있죠. 이를 토대로 정의당 이정미 의원이 법률 개정안을 대표 발의한 상태입니다. 그럼 구체적인 보건의료 환경에서는 무엇이 바뀌게 될까요?

 

주요 포털에 임신중절약을 검색하면 먹는 임신중절약을 판매한다는 많은 업체들을 볼 수 있다. 현행법상으로는 모두 불법이다.

 

국내에서도 ‘먹는 임신중절약’ 허가돼야

국내에서는 낙태죄의 존재로 인해 논의 자체가 거의 불가능했었지만, 실제로 세계보건기구(WHO)가 권장하는 가장 효과적이고 안전한 인공임신중절 방법 중 하나는 임신중절약물입니다. 여성의 몸은 생리주기에 따라 프로게스테론(Progesterone)이라는 여성호르몬을 분비하게 되는데, 이 프로게스테론이 자궁에 작용하면 자궁벽이 두꺼워져 수정란이 착상되어 자랄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줍니다. 임신을 하지 않는 경우에는 프로게스테론 분비가 주기적으로 중단되어 두꺼워진 자궁 내벽이 무너지는 월경을 경험하게 되는데, 임신을 하는 경우에는 프로게스테론이 지속적으로 분비되어 태아가 자랄 수 있는 환경을 지속적으로 유지시킵니다.

인공임신중절 목적으로 개발된 미페프리스톤(Mifepristone)이라는 약물은 월경의 원리를 이용해서, 자궁에 대한 프로게스테론의 작용을 차단하는 역할을 수행합니다. 그래서 임신 초기에 태아가 거의 발생되지 않은 기간(대략 임신 10주 이내)에는 별다른 조치 없이도 약을 복용하면 월경과 비슷한 방식으로 자궁 내벽을 무너트려서 임신상태를 중단할 수 있습니다. ‘미프진’이라는 상품명으로 알려진 것이 이 성분의 약이죠. 이런 작용을 조금 더 확실히 하기 위해서 미소프로스톨(Misoprostol)이라는 약물을 같이 투여하게 되는데, 미소프로스톨은 두터워진 자궁 내벽이 더 쉽게 떨어질 수 있도록 보조하는 성분이므로 두 약물을 같이 복용하면 극히 이례적인 경우 외에는 대부분의 초기 임신이 종료될 수 있습니다. 간단한 주의사항만 잘 지킨다면 산모의 건강에 큰 위해가 없이 인공임신중절이 가능한 것입니다.

그렇지만 아직 국내에서 이런 제품을 합법적으로 구할 수 있는 방법은 없습니다. 특정 성분의 의약품이 국내에서 유통되려면 식약처에서 판매허가를 받아야 하는데, 그 동안은 인공임신중절 자체가 대부분 불법의 영역에 속해있었다 보니 그 어떤 제약회사도 먹는 임신중절약물에 대한 허가를 받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관련 정보를 아는 여성들이 알음알음 인터넷 등으로 관련 약물을 구입하는 경우는 있었지만, 불법적인 유통망을 통해서 구매하는 것이다 보니 실제로 그 성분의 약이 맞는 것인지도 확인이 힘들어 임신중절 문제로 부담을 지는 여성들에게는 또 다른 짐이 됐었습니다. 낙태죄에 대한 개정은 기정사실화 된 상태이니, 관련 약물에 대한 수입 혹은 제조 허가가 현재로선 가장 시급한 문제 중 하나입니다.

 

인공임신중절 이전에 ‘성교육’ 바로 세워야

앞으로 합법화될 인공임신중절을 위한 제도들을 정비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산모에게도 어느 정도의 위험이 발생할 수밖에 없는 인공임신중절을 받는 일 자체를 미리 예방하는 것입니다. 보건사회연구원에서 발표한 <2018년 인공임신중절 실태조사>의 주요결과를 살펴보면, 성경험이 있는 만 15세 이상 44세 이하 여성의 10.3% 정도가 인공임신중절을 경험했다고 밝혔습니다. 충격적인 것은 그 다음 결과인데, 인공임신중절을 했을 당시 콘돔 등의 피임을 사용한 경우가 12.7%에 불과했었습니다. 적절한 피임법을 사용했음에도 임신을 한 12.7%을 제외하면, 나머지 87.3%는 피임을 제대로 하지 않아서 원치 않은 임신을 하고 결과적으로는 인공임신중절까지 하게 된 것입니다.

WHO의 인공임신중절 가이드라인에서는 콘돔으로만 피임을 하는 경우 피임 실패를 대비해 사후피임약을 구비해두길 권장하고 있으며, 인공임신중절 시술을 하는 경우에는 추후 원치 않는 임신을 막을 수 있는 법을 안내하여야 한다고 명시하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앞의 실태조사에서 응답자들이 피임 지식을 얻은 경로는 ‘인터넷 등 언론매체(72.5%)’가 가장 많았고 학교/교육은 32.8%, 산부인과 등의 병원은 26%에 불과해 실질적으로 공적인 영역에서 적절한 피임교육이 제대로 진행되지 않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실제로 인공임신중절을 경험했다고 밝힌 여성들의 47% 정도는 ‘질외사정법’이나 ‘월경주기법’과 같은 실질적으로 피임법이라고 하기 힘든 불완전한 방법으로 피임이 시행했었습니다. 이런 부정확한 피임 지식이 제대로 교정되지 않는다면 인공임신중절은 늘 수밖에 없고, 합법화 여부와는 별개로 여성들의 건강에 부정적 영향이 커질 것은 자명합니다.

이에 더해, 이정미 의원이 대표발의한 모자보건법 개정안과 같이 인공임신중절에 있어서 배우자 혹은 사실혼 관계에 있는 이의 동의를 받아야만 하던 기존 모자보건법 조문 역시 수정되어야 합니다. 세계보건기구에서는 이미 청소년에게도 인공임신중절에 대한 자기결정권을 존중하라는 권고안을 가이드라인에 포함시킨 상태입니다. 배우자 혹은 보호자의 허가가 필수적으로 요구되는 경우에는 임신중절을 단념하는 것이 아니라 불법적이고 음성적인 낙태 시술소로 내몰리는 일종의 ‘풍선 효과’가 발생할 수밖에 없습니다. 관련 사항을 공교육 과정에서 진행하는 성교육 시간에 충분히 설명함으로써, 몰래 아이를 출산 후 방치하여 살인자가 되는 비극적인 일을 예방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믿습니다.

먹는 임신중절약 전세계 판매 현황. 한국은 아직 불법이다. 출처: Women on Waves

 

첫 걸음은 뗐지만… 갈길 먼 임신중절 합법화

인공임신중절 합법화는 이제 첫 걸음을 뗀 수준입니다. 헌재의 헌법불합치 결정이 나오긴 했지만 국회에서 관련 법률을 개정해야 하니 2020년 12월 31일은 되어야 법률이 정비가 될 것이고, 이후에도 건강보험 적용 문제라던가 관련 의약품 허가 문제가 남아있어 아직은 갈 길이 먼 상황입니다. 그렇지만 원치 않은 임신을 중단하려는 여성들에게 가장 큰 문제는 인공임신중절에 대한 차별적인 낙인입니다. 시간이 걸렸지만 결국 임신중절에 대한 제도 변화가 시작됐듯, 임신중절에 대한 인식수준의 변화도 빨리 찾아왔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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