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거제 바뀌면 ○○당은 XX석? '시간여행자' 언론들

  • 기자명 김수민
  • 기사승인 2019.05.02 09: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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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민의 <선거제도 개편> 시리즈

 

"내년 총선 각당이 몇 석을 얻을 것 같습니까?" 맞힌다 해도 '얻어걸리는 것'에 불과한 이런 질문을 던지고 받는 언론은 드물다. 있더라도 팟캐스트나 유튜브에서 재미삼아 나오는 주제일 뿐이며, 현 시점에서 적어도 신문, 라디오, TV 등에서 버젓이 나오기는 어려운 질문이다. 하지만 그냥 의석을 예측하는 것도 아니고 "선거제도가 바뀌면 각당 의석은 이렇게 나온다"고 감히 점을 치는 언론들이 있다.

<한국경제>는 패스트트랙에 오른 선거법 개정안이 통과되고 총선을 치르면 자유한국당 의석이 20석 줄어든다는 대담무쌍한 예측을 그대로 실었다. <파이낸셜뉴스>는 선거제 개편안인 준연동형제가 실시되면 민주당•바른미래당•민주평화당•정의당 등이 최소 160석을 거두고 자유한국당이 고립된다고 내다봤다. 

이 기사들이 자유한국당 한쪽에게만 선거제 개편이 불리하다고 보는 반면, 전혀 다른 이야기를 늘어놓는 정치인도 있다. 한국당의 어느 초선의원은 CBS와의 통화 인터뷰에서 "선거법은 민주당과 우리당이 이해관계가 완전히 일치한다.", "한국당, 민주당 의석 깎아서 정의당에게 바치는 지금의 선거법 개정안 대로라면 민주당은 의석 70~80명짜리 중견정당이 될 가능성이 크다"고 밝혔다. 

'과감하게' 내년 총선 의석수를 예상한 언론 보도.

선거제 개편안 보자 내년 총선 의석수부터 예상?

수치와 산출방법을 일일이 적어놓지 않아 왜 그런 예측을 하는지 의아하지만 굳이 들춰내며 궁금해 할 가치도 없다. 내년 총선 결과로 나올 의석수 이전에 그때 각 정당이 거둘 지지율부터가 미지수다. 선거제 개편안이 뭐길래 이런 만용이 튀어나오는지 이해할 수 없다. 우리가 우선 확실히 할 수 있는 시뮬레이션은 일단 과거의 선거 결과를 선거제 개편안에 입력해서 어떻게 결과가 달라지는지 보여주는 것 정도다. 이것은 선거제도의 특징을 보여줄 뿐 아직 오지 않은 선거에 대한 예측으로 이어질 수는 없다.

아예 가상 상황을 만드는 시뮬레이션이야 가능하다. 이 경우는 사실상 정치판을 새로 창조해야 한다. 의석수 산출에 필요한 데이터를 가공해내는 것이니 여기에 등장하는 정당도 가상 정당이라고 봐야 한다. 혹은 그나마 '지금 곧바로 선거를 실시한다면?'이라는 가정을 달아서 해볼 수는 있다. 물론 총선은 지금 당장 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그 가정에서부터 시뮬레이션은 굵고 확실한 한계에 갇힌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한국의 현행 선거제도든 준연동형 비례제든, 이런 가정에 따른 예측조차도 힘들게 만든다는 점이다. 더 나아가 예측은커녕 출구조사조차도 정확하기 어렵다. 출구조사 결과가 '시시한' 한 나라의 사례를 보자. 

미국 여론조사기관 리얼클리어폴리틱스의 6일 조사에 따르면, 민주당은 203곳, 공화당은 194곳에서 유리한 고지를 점하고 있으며 38곳에서 경합을 벌이는 중이다.

지난해 미국 중간선거에 대한 출구조사 보도다. 박빙이라서 어디가 이길지 예측이 되지 않는 지역구 때문에, 저 구절만 읽으면 민주당과 공화당 중 누가 다수당이 될지도 장담할 수 없다. 이것은 여론조사기관의 역량 부족으로 몰 수는 없다. 소선거구제 자체의 문제다. 미국과 마찬가지로 1개 선거구에서 1명의 국회의원을 뽑는 프랑스의 2017년 총선 출구조사 기사를 읽어보면 재확인된다. 

18일(현지시간) 실시된 프랑스 총선 결선투표 결과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이 이끄는 레퓌블리크 앙마르슈(전진하는 공화국)의 압승이 확실시되고 있다. 여론조사기관 해리스인터랙티브·오피니언웨이 등이 결선투표 직전 조사를 바탕으로 예상 의석을 추산한 결과 앙마르슈는 440~470석을 차지할 것으로 예측됐다. 중도우파 공화당계(민주독립연합 포함)는 60~80석, 중도좌파 사회당계 22~35석, 강경좌파그룹 프랑스 앵수미즈(굴복하지 않는 프랑스) 14~25석, 극우 국민전선(FN) 1~6석으로 예측됐다. 

워낙 앙마르슈의 강세가 두드러져 어느 쪽이 제1당인지 예측하기는 쉽지만, 각당 의석수는 미국 선거처럼 'x석~y석'으로 예측해야만 하고 (y-x)의 값이 적지 않게 나타나는 건 프랑스 출구조사도 마찬가지다. 소선거구제는 해당 지역구에서 한 표만 이겨도 1석을 가져가며, 1만 표를 져도 1석을 내준다. 한 지역에서 크게 이기느니 여러 지역에서 근소하게 이기는 것이 훨씬 남는 선거다. 전국적 정당 지지율은 의석수에 관한 어떤 예측도 뒷받침해주지 않는다. 전국 지지율에서 1위인 정당도 의석수에서는 1위가 아닐 수 있다. 지역구별로 모두 살펴봐야 누가 제1당이 될지 어림할 수 있건만, 그렇게 하더라도 위에서처럼 출구조사 결과가 그리 뾰족하지 않다.

1996년 총선 출구조사 결과. 신한국당은 130~189석으로 예측되었고 최종 결과는 139석이었다. 결과는 범위내에 있었지만 범위가 무려 59석이라서 하나마나한 예측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MBC 화면 캡처

각국 출구조사의 차이에 깔린 선거제도

2016년 한국의 제20대 총선 출구조사 결과도 '새누리당 118-136석, 더불어민주당 107-128석, 국민의당 32-42석'이라는 예측치를 내보냈다. 많게는 20석에 가까운 편차가 한심하게 느껴질 수도 있겠지만, 이조차 출구조사 발전의 산물이다. 1996년 총선 출구조사는 여당인 신한국당의 의석을 '130석~189석'이라며 하나마나한 예측을 내놨고, 최종 결과는 '139석'으로 130과 189의 중간치인 159.5와도 한참 차이가 났다.

흥미로운 건 바로 이듬해인 1997년 대선에서 발표되었던 출구조사는 '김대중 39.9%, 이회창 38.9%로'였고, 실제 개표 결과인 '김대중 40.3%, 이회창 38.7%'와 거의 같았다. 여기서 눈치를 챈 이들이 있을 것이다. 대선은 전국을 하나의 선거구로 삼기 때문에 예측이 훨씬 용이하고 정확성이 높았다. 그렇다면 전국이 하나의 선거구나 다름없는 선거제를 채택한 국가의 총선 출구조사를 살펴보자.

스웨덴 언론 출구조사에 따르면 스테판 뢰벤 총리가 이끄는 현 연립여당(사민당+녹색당+좌파당)과 야권 4개 정당 연맹(보수당+자유당+중앙당+기독민주당)이 엎치락뒤치락 치열한 접전을 벌이는 가운데 양측 모두 과반 의석 득표는 어려울 것으로 예상됐다. 

이 기사에 자세한 수치는 나와 있지 않지만, 득표율 출구조사 결과를 토대로 어느 쪽이 정권을 잡는 국회 다수파가 될지에 대해서도 예측을 하고 있다. "과반 의석 득표는 어려울 것으로 예상"할 수 있는 것은 득표율만 알아도 의석수를 알 수 있다는 뜻이다. 스웨덴은 한 선거구에서 평균 11명 가량을 뽑아서 지역구 선거에서부터 비례성을 높이며, 그래도 지지율과 의석이 맞지 않는 당에게는 전국구 보정의석을 배분해준다. 정당의 지지율과 의석수간에 매우 높은 연관성이 있다.

독일은 미국이나 프랑스처럼 지역구 의원을 소선거구로 뽑지만, 정당 지지율과 의석수를 일치시키는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채택하고 있다. 독일의 출구조사 결과 역시, 따로 의석수를 계산해주지 않아도 의회 구성을 가늠케 해준다. 독일의 선거제도를 대략 아는 사람이라면 다음의 기사만 읽어도 특정 정당이 과반 의석을 확보하지 못했음을, 두 거대정치세력인 기독민주-기독사회연합과 사회민주당의 의석을 합쳐야 과반 의석이 가능함을 간파할 수 있다. 실제로 독일 정부는 양세력의 대연정으로 꾸려졌다. 

영국 일간 가디언, BBC 등에 따르면 이날 오후 6시(한국시간 25일 새벽 1시) 투표가 끝난 뒤 첫번째로 공개된 출구조사에서 메르켈 총리의 기독민주당(CDU)-기독사회당(CSU) 연합은 32.5%로 가장 많은 지지율을 확보했다. 또 반(反) 난민정책을 앞세우고 있는 극우정당 독일을 위한 대안(AfD)이 13.5%의 지지율을 얻어 독일 정치사에서 60년 만에 처음으로 연방의회 진출에 성공한 것으로 나왔다. 반면 사회민주당(SPD)는 출구조사에서 20% 밖에 지지율을 확보하지 못했다.

 

준연동형 되어도 소선거구 위주... 예측 어려운 건 여전

다음은 최근에 있었던 스페인 총선의 출구조사 결과다. 출구조사 결과, 사회당의 예상의석은 전체 350석 중 116∼121석이다. 이어 현 제1당인 우파 국민당(PP)이 예상의석 69∼73석으로 제2당으로 밀려날 것으로 예상됐다. 중도 시민당(시우다다노스)은 48∼49석, 급진좌파 포데모스는 42∼45석, 극우 복스(Vox)는 36∼38석으로 전망됐다. 

'몇 석에서 몇 석 사이'라는 예측치가 나온다. 그러나 미국이나 프랑스처럼 그 격차가 크지 않다. 스페인은 주별로 의석을 나누고, 그 의석은 그 지역의 정당 득표율과 일치시키는 선거제를 갖고 있다. '권역별 연동형(전면적) 비례대표제'라고 부를 만하다. 전국단위 득표율과 의석수를 일치시키는 제도보다는 예측하기 어렵지만, 1개 선거구에서 1명을 선출하는 제도보다는 예측 수준이 훨씬 높다.

한국의 현행 선거제도는 300명 국회의원 가운데 253명을 소선거구에서 선출하고 나머지 47석은 정당득표율에 비례해서 배분한다. 정당 지지율 조사를 하더라도 독일, 스웨덴은 물론 스페인보다도 의석수를 예측하기가 매우 어렵다. 비례대표 없이 소선거구에서 전원을 뽑는 미국이나 프랑스보다 약간은 더 예측이 용이할 뿐이다. 그렇다면, 현행 제도를 선거제 개편안, 즉 '준연동형'으로 바꾸면 크게 달라질까?

준연동형에서 의석수를 산출하는 데 가장 중요한 값은 두 가지다. 첫째, 지지율만큼의 의석수. 둘째, 지역구 당선자수. 첫째를 A, 둘째를 B라고 한다면, 간단히 말해 B가 A에 못 미치는 정당에 대해서, 그 격차의 절반 정도는 일단 보태주는 것이 준연동형제이다. 달리 말해, 지역구 의석수가 얼마인지가 대단히 중요하다. 만약 지지율만큼의 의석수(A값)가 똑같이 40인 두 정당, 가당과 나당이 있다고 치자. 그런데 가당은 지역구 의석이 20석이고, 나당은 10석이다. 그렇다면 가당은 40석과 20석의 중간치인 30석을 보장받도록 되어 있고, 나당은 10석과 40석의 중간치인 25석을 보장받도록 되어 있다.(물론 이 과정에서 각당에 보태줄 비례대표 의석 총합이 75석을 넘기면, 각당의 의석수 부족분을 견주어서 75석을 배분한다. 지지율 대비 의석수와 지역구 의석수의 중간치를 보장받지 못하는 상황이다. 거꾸로, 각당에 배분하고 나서도 비례대표 의석이 남으면, 이는 각당 지지율에 비례해 배분한다.)

결국 준연동형제에서 의석수를 예측하려면 지역구 의석이 예측되어야 한다. 그런데 위에서 누누이 이야기했듯, 한국의 선거제도는 지금 나와 있는 선거제 개편안인 준연동형제로 변경하더라도 지역구는 소선거구제를 채택하며, 소선거구제는 의석수를 예측하기가 대단히 어렵다. 더구나 그 개편안에서 설정한 소선거구의 수는 225개로 전체의석 300의 75%에 달한다. 장담하건대 내년 총선이 준연동형 비례제하에서 치러지더라도 출구조사 정확도는 스페인 수준으로 나아질 리 없다. 어느 당이 몇 석을 얻는지 추정하기 전에 선거제도의 이런 경향부터 알려야 한다. 

 

‘누구에게 유(불)리한가’? 근본부터 어리석은 질문 

어떤 시민이 "선거제 개편안이 통과되면, 자유한국당이 100석(의석점유율 1/3) 미만으로 나올 수도 있는가?"라는 질문을 해왔다. 두 가지 조건을 모두 만족시키면 확실하게 100석 미만으로 간다. 이건 어떤 당이든 마찬가지다. 1)그 당의 지지율이 33.33...% 이하이며 2)그 당의 지역구 의석은 100석 미만일 경우. 만일 어떤 당이 지지율 40%를 올려도 100석 이하로 나올 가능성이 있기는 하다. 지역구에서 80석 미만으로 나온다면 말이다. 이 경우도 다른 상세한 사항을 더 살펴봐야 의석수를 산출할 수 있다. 그리고 어떤 당 지역구 의석이 100석인 경우는 그 당 지지율이 얼마든 간에 무조건 그 지역구 의석만큼은 가져가기에 최소 100석은 가져간다.

이런 몇 가지 조건만 놓고 봐도 예측이 간단치 않다. 도대체 내년 총선 당시의 특정정당 지지율을 어떻게 추정할 것이며, 더군다나 그 당이 지역구 몇 군데에서 승리할지 어떻게 안다는 말인가? 민주주의는 '불확실성의 제도화'다. 누구에게 유(불)리하기만 제도는 없다. 상황에 따라 특정세력의 유불리는 바뀔 수 있다. 그 상황이 어떨지 오지 않은 일을 두고 장담하거나 확신할 수 없다. 이런 기본적인 이치를 짓밟고 '시뮬레이션'에 나서는 언론, 출구조사조차도 높은 신뢰도를 갖기 어려운 '소선거구 위주의 제도'를 두고서, 그것이 '소선거구 위주'라는 것도 접어둔 채 의석수 예측부터 하고 보는 이런 언론의 기사부터 걸러내야 정치개혁도 이뤄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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