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이 태평양 전쟁 중 미야자키에 '평화의탑'을 세운 이유

  • 기자명 정재환
  • 기사승인 2019.05.06 07:44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일본 신화에서 천손이 강림했다는 신화의 땅 미야자키는 규슈의 남동부에 있다. 동쪽의 푸른 바다 외에는 삼면이 산으로 둘러싸여 있어 계절풍의 영향을 적게 받고 난류의 기운 덕분에 겨울에도 따뜻하다. 한국 관광객들에게 특별히 유명한 곳은 아니지만 겨울이면 두산 베어즈나 기아 타이거즈가 전지훈련을 하고, 따뜻한 날씨와 푸른 잔디를 그리워하는 골퍼들의 발걸음도 잦다.

미야자키시 해발 60m에 평화대공원(平和台公園)이 자리하고 있다. 푸른 잔디밭은 산책하기에 좋고, 아이들이 마음껏 뛰놀 수 있는 놀이터가 있으며, 일본의 고분에서 출토된 하니와(はにわ)를 전시하는 하니와엔(はにわ園)도 있다. 지대가 높지는 않지만 미야자키시내를 내려다 볼 수 있고 시가지 풍경 너머 보이는 망망대해를 감상하기도 좋다. 사실 이곳에서 제일 먼저 눈에 들어오는 것은 공원 중앙에 우뚝 솟은 ‘평화의 탑(平和の塔)’이다. 크기뿐만 아니라 짙은 회색과 검정, 어두운 갈색 등이 뒤섞인 거대한 돌덩어리 탑이어서 짙푸른 녹음과 대비된다.

멀리서 본 미야자키의 평화의 탑 전경.

평화는 인류가 가장 소중하게 생각하는 가치 중 하나다. 일본인들이라고 해서 다를 바 없을 것이다. 그런데 이 평화의 탑이 만들어진 때를 보면 절로 고개를 갸우뚱하게 된다. 이 탑은 1939년 「기원2600년기념사업」의 일환으로 착수되었고, 1940년 11월 15일 완성되었다. 당시 일본은 1939년 5월 노몬한사건으로 소련과 충돌하고, 1940년 9월 인도차이나에서 프랑스와 전투를 벌이는 등 1931년 만주사변에서 1945년 패전에 이르는 15년 전쟁의 소용돌이 한복판에 있었다. 침략전쟁을 일으킨 장본인 일본이 만든 평화의 탑은 어떤 의미를 갖는 것일까?

조선을 식민지로 만들고 만주와 중국을 침략하던 일본의 목표는 대동아공영권 건설이었다. 서양의 침략에 대항해 일본이 아시아를 지키고 일본 중심의 새로운 질서를 갖겠다는 것이었지만, 현실적으로 그들이 취한 길은 만주와 중국을 제압하고 오랫동안 서양 제국주의 열강의 식민지였던 인도차이나, 말레이시아, 필리핀 등을 일본의 지배 아래 놓겠다는 것이었다.

전장에서 목숨을 잃은 것은 군인들뿐만이 아니었고, 전쟁의 아비규환 속에서 수많은 아시아인들이 희생당했다. 밖으로는 이웃 국가들을 침략하고 안으로는 온 국민을 전시 총동원체제에 묶어 놓고 평화를 기원한다는 것은 아무리 생각해도 앞뒤가 맞지 않는 행동이다. 한편에서는 이웃 나라를 침략하면서 다른 한편에서는 평화를 주장한다? 도대체 그들이 얘기한 ‘평화’란 어떤 것이었을까?

2016년 여름, 공원을 방문했을 때 마침 탑 내부를 공개하고 있어 안을 살펴볼 수 있었다. 플래시를 들고 안으로 들어서니 정면에 걸린 지구의 서반구와 동반구를 담은 석고 부조가 눈에 들어왔고, 니니기노미코토(邇邇藝命)가 창을 들고 땅으로 내려온 장면, 오오쿠니누시(大國主)의 아들들이 아마테라스오미카미(天照大御神)의 사자 다케미카츠치(建御雷)에게 땅을 양보하는 장면, 1867년 대정봉환(大政奉還)으로 쇼군(将軍) 도쿠가와 요시노부(徳川慶喜)가 통치권을 조정에 반납한 이후 메이지천황이 교토에서 도쿄로 천도하는 장면 등이 담긴 부조 8개가 탑 내부의 3면을 장식하고 있었다.

국토봉환(國土奉還): 오오쿠니누시의 아들들이 아마테라스의 사자에게 땅을 양보하는 장면

 이 부조들을 만든 사람은 이 탑을 설계한 조각가로 일본축구협회의 심벌인 야타가라스(八咫烏)를 디자인한 히나고 지츠조우(日名子実三)다. 야타가라스는 진무천황이 지금의 오사카지방인 야마토로 동정할 때 길 안내를 했다는 다리가 셋 달린 까마귀다. 일본 축구 응원단 울트라 닛폰(ウルトラス・ニッポン)의 심벌이 바로 야타가라스다.

‘울트라(ultra)’는 중의적이다. 왜냐하면 긍정과 부정의 느낌이 드는 뜻을 동시에 갖고 있기 때문이다. 좋게 말하면 ‘크다, 최고, 열정적’이란 뜻이지만, ‘극단적인, 과격한’이란 뜻도 있다. 울트라를 잣대로 이야기하면 일본은 ‘크고 열정적’이면서 언제든지 ‘과격하고 극단적’이 될 수도 있다. 일본인들은 일본(日本)이란 국명을 발음할 때, ‘니혼’과 ‘닛폰’ 두 가지로 한다. 발음이 왜 두 개인지, 왜 발음을 달리하는지 일본인들도 아는 사람이 많지 않다.

‘일본어’와 ‘일본인’은 일반적으로 ‘니혼고’와 ‘니혼진’이라고 하지만, ‘일본제일(日本第一)’은 ‘니혼이치’라고도 하고 ‘닛폰이치’라고도 한다. 한 낱말 두 개의 발음에 혼란을 느꼈을까? 

탑신에 새겨진 팔굉일우(八紘一宇)가 선명하다

1934년 일본정부는 ‘日本’의 발음을 부드러운(?) 어감을 지닌 ‘니혼’이 아니라 힘과 위엄이 느껴지는 ‘닛폰’으로 통일했다. 1932년 만주국 수립 이후 중국을 넘보던 일본이 대동아공영권으로 가는 강한 일본을 추구하던 때였다.

평화의 탑은 높이가 36.4m이고, 탑의 사면에는 무인, 어민, 농민, 상공인을 상징하는 사신상이 세워져 있다. 사신상이 같은 높이에 배치된 것은 사농공상의 차별이 없는 평등한 세상을 의미한다. 무엇보다도 눈길을 끄는 것은, 쇼와(昭和天皇)의 동생 치치부노미야 야스히토신노우(秩父宮雍仁親王)가 썼다는 탑 정면의 ‘팔굉일우(八紘一宇)’라는 글자다. ‘팔굉일우’란 천하를 하나의 집으로 만드는 것을 의미한다. 팔굉의 ‘팔’과 탑 내부를 장식한 8개 부조의 ‘8’은 의도적으로 맞춰진 듯하다. ‘8’은 어떤 의미를 갖는 것일까?

‘팔굉일우’는 『일본서기(日本書紀)』에 나오는 말이다. 일본을 건국한 진무천황((神武天皇)이 야마토(大和)의 가시와라(橿原)에 수도를 정하고, “팔굉을 덮어 집으로 삼겠다.”라고 했는데, 여기서 팔굉(八紘)은 ‘전 세계’라는 의미이므로, 온 세상을 자신의 집으로 삼겠다는 것이고, 이것은 곧 국토창생의 당위성으로 연결된다. 그러니까 일본이 목표로 한 대동아공영권은 아시아를 한 집으로 만들겠다는 것이고, 이것을 완수하면 평화로운 세상이 온다는 것이다.

그런데 ‘팔굉일우’를 새긴 ‘평화의 탑’은 왜 이곳 미야자키에 세워졌을까? 이에 대한 답도 일본의 건국신화에서 찾을 수 있다. 진무의 할아버지인 니니기노미코토가 강림한 곳이 지금의 미야자키다. 그래서 시내에는 진무를 제신으로 모시는 미야자키신궁이 있다. 그러니까 1940년을 전후한 일본은 그들의 역사가 시작되었다고 생각하는 신령한 땅에 그들의 위대한 역사를 시작한 초대천황 진무의 포부와 이상을 다시 한 번 상기하고 각인함으로써 선조의 뜻을 잇는 자랑스러운 후손으로서 대동아공영권 건설의 깃발을 높이 들고 전쟁의 당위성을 역설했던 것이다.

*2019년 5월 6일 오전 10시 41분 1차수정: 제목의 '대동아전쟁'을 '태평양 전쟁'으로 수정했습니다. '대동아전쟁'은 공식 명칭은 태평양 전쟁이지만 일본이 대동아공영권을 목표로 한다는 의미를 잘 드러내기에 편집팀에서 '대동아전쟁'을 선택했는데, 필자가 공식명칭인 '태평양 전쟁'으로 교체할 것을 요청했습니다.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오늘의 이슈
모바일버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