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팩트체크] "엄청난 부자지만 미국을 안 좋아하는 나라"가 한국?

  • 기자명 김준일 기자
  • 기사승인 2019.05.15 05: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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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8일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플로리다주 패너마시티비치에서 열린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Make America Great Again) 집회에서 본인의 성과를 강조하기 위해 동맹국을 압박해 방위 분담금을 더 받아낸 사례를 거론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어느 나라라고 얘기하진 않겠지만, 우리가 아주 위험한 영토를 지키기 위해 많은 돈을 지불하는 나라가 있다"며 "엄청 부자이면서 어쩌면 우리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 나라를 지키느라 45억달러 손해를 보고 있다"고 말했다. 

이후 한국 언론은 트럼프 대통령 발언을 기사로 내기 시작했다. 9일 매일경제의 <[단독] 트럼프, 한국 겨냥해 "美 좋아하지 않는 나라"> 기사를 시작으로 조선일보한국경제뉴스1머니투데이국민일보 등이 기사를 썼고 중앙일보는 동일한 내용의 기사를 두 건 올렸다. 이중 조선, 중앙, 매경, 한경 등은 트럼프 대통령이 지목한 국가가 한국이라고 단정했다. 반면 뉴시스, 뉴스1, 머니투데이, 국민일보 등은 해당 국가가 한국일수도 있지만 확인된 것은 아니라고 보도했다. 

왜 이런 차이가 나는 것일까. 보수언론은 어떤 근거로 한국이라고 단정했는지 근거를 살펴보자. 지난 8일 트럼프 대통령의 발언을 동영상으로 확인했다. 당시 발언은 스크립트에서 확인할 수 있다. 

이날 트럼프는 "방금 우리쪽 사람들에게 '그들이 나머지도 내도록 요구했다. 그들은 돈을 더 내게 될 것"이라며 "군 장성에게 그 나라를 지키기 위해 얼마나 쓰는지 물어봤더니 연간 50억 달러(약 5조8000억원)라고 했다. 그러나 그 나라는 우리나라에 5억달러(약 5800억원)만 주고 있다"고 말했다. 트럼프는 "우리에겐 사우디 같은 매우 부자인 나라가 있으며 내 생각엔 그들은 방어의 대가로 돈을 지불할 능력이 있다"고 말했다 또 "우리는 유럽을 방어하고 있지만 유럽은 내야할 돈을 내지 않고 있고 그것은 불공평하다"고 말했다. 동맹국의 방위비 분담 언급은 5분간 지속됐다.

 

① 50억달러/5억달러가 한국을 지칭?  수치만으로 판단할 수 없다

지난 2월 트럼프 대통령은 각료회의 때 "미국이 한국 방위를 위해 연 50억 달러를 쓰는 반면, 한국은 5억달러만 내고 있다"고 주장한 바 있다. 그는 "한국이 전화 두어통으로 방위비 분담금을 5억달러 더 내기로 했다"며 "앞으로 수년에 걸쳐 오를 것"이라고 말했다. 이는 최근 플로리다 유세에서 언급한 숫자와 동일하다. 그 국가가 한국을 지칭한 것이라는 주장이 나오는 이유다. 

하지만 트럼프가 언급한 수치는 한국이 지불하는 방위비 분담금과 일치하지 않는다. 외교부에 따르면 2019년도 방위비 분담금은 1조389억원으로 2018년도 방위비 분담금 9602억원 대비 8.2% 증가했다. 한국은 5억달러가 아니라 7천만달러를 인상했으며 트럼프가 언급한 수치의 7분의 1에 불과했다. 워싱턴포스트는 팩트체크 기사에서 트럼프 대통령이 주한미군 비용 및 한국의 방위비 분담금 인상액을 부풀려서 말했다고 지적한 바 있다. 한국은 방위비 분담 협정에 따라 미군 측 주둔 비용의 약 40%를 지불했고, 그래서 미국이 부담하는 비용은 50억 달러가 아니라 12억5천만 달러라는 것이다. 

결국 50억달러/5억달러는 트럼프 특유의 과장화법에 의해 부풀려진 것으로 봐야 한다. 트럼프 대통령은 사우디아라비아 언론인 자말 카슈끄지 살해와 관련해, 사우디 정부를 제재하면 무기 판매금액 4500억 달러(약 500조원)를 손해볼 것이라며 제재를 반대한 적이 있는데, 이 금액 역시 실체가 없으며 부풀려져 있다고 폴리티팩트가 지적했다. 트럼프는 이란 핵협상에서 1500만달러를 줬지만 얻은게 하나도 없다고 언급한 적이 있는데 이 역시 사실이 아니었다. 트럼프는 지난 4월 한미정상회담에서 문재인 대통령에게 "엄청난 군사장비를 미국에서 구매하기로 했다"며 감사의 표시를 했으나 당시 한국은 미국 무기를 구매하기로 결정한 것이 없었다. 트럼프가 언급한 수치는 대부분 과장됐으며 상황에 따라 변하기까지 한다. 50억달러/5억달러 언급이 한국이라고 단정할 근거가 되지는 못한다는 것이다.

 

② 외신들이 일제히 한국을 지목? 외신도 추측만 했다

보수 언론들은 외신과 안보 전문가들이 일제히 한국을 지목했다며 해당 국가가 한국이 확실하다고 주장한다. VOA(미국의소리)와 북한소식을 전문적으로 다루는 NK뉴스 등은 실제 트럼프가 언급한 국가가 한국이라고 보도하기도 했다.

하지만 외신이 한국을 언급했다고 해서 한국으로 확정되는 것은 아니다. 외신은 어떤 근거로 이런 주장을 했는지 따져볼 필요가 있다. VOA 기사의 경우 윌리암 갈로라는 한국 특파원이 기사를 썼으며 그는 트위터에서도 그 국가가 한국을 지칭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VOA가 판단한 근거는 국내 언론과 다를 바가 없다. 데이비드 맥스웰이란 미군 퇴역 장성의 "한국을 지칭한 것이라고 생각한다"는 주장을 소개했을 뿐이다. 즉 VOA 한국특파원은 미군 퇴역장군의 생각을 근거로 해당 국가가 한국이라고 소개했고, 한국 언론은 외신이 확인했으니 한국이 확실하다고 기사를 썼다. 이 중간에 어떤 팩트체크도 없었고 추측만 있을 뿐이다.

NK뉴스에 기사를 쓴 콜린 쥐르코 역시 한국 특파원이다. 그는 익명의 한국 전문가를 인용해 해당 국가가 한국이라고 주장했다. 트럼프가 "두달이 지났다(now the two months is up)"고 얘기했는데 한국과 방위비 협상한 것이 지난 2월이고 약 3달이 지났으므로 한국이라는 주장을 폈다. NK뉴스 역시 익명의 전문가와 함께 트럼프의 발언의 행간을 읽었을 뿐 팩트체크를 한 것이 아니다.

한국언론은 워싱턴DC 북한 전문가들이 일제히 한국을 지칭한 것이라고 입을 모았다고 했지만 확인 결과 실제 한국을 직접 언급한 것은  비핀 나랑 MIT 교수 한명  뿐이다. 그는 트위터에 "트럼프가 한국을 지칭한 것이 분명하다"고 말했지만 근거는 없었다. 브루스 클링너 헤리티지재단 연구원 등은 트럼프가 동맹국을 경시하는 것에 대해 비판을 했을 뿐 한국을 직접 언급하지 않았다.

VOA와 NK뉴스, 뉴스위크 등 몇몇 언론만이 그 국가가 한국이라고 쓴 반면, 영국 언론은 유럽연합을 겨냥한 것이라고 보도했다. 미국의 주요 언론은 그 국가가 어디를 지칭하는지 확인하지 않았다. 외신을 입맛대로 인용하는 한국언론의 고질병이 도졌다고 볼 수밖에 없다. 

 

③ 4월엔 사우디, 5월엔 한국? 둘다 확정된 게 아니다

동맹국에게 전화를 해 방위비 분담금을 더 얻어냈다는 트럼프의 발언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앞서 지난 4월 27일에 트럼프 대통령은 위스콘신 주 그린베이에서 열린 '미국을 위대하게' 집회에서 거의 동일한 내용을 말한 바 있다. 당시 한국 언론은 대부분 트럼프 대통령이 지목한 국가가 한국이라고 보도했다. 하지만 중동의 알 자지라가 트럼프가 언급한 국가가 사우디라는 분석을 내보내면서 분위기가 바뀌었다. 사우디국왕과 트럼프가 통화한 사실을 밝혀냈기 때문이다. 뉴욕타임스도 '트럼프가 주장한 사우디와의 배드딜 사실일까' 기사에서 사우디 국왕과 통화했다는 일화를 소개했다. 

UPI뉴스는 27일 위스콘신 유세 연설을 통해 해당 국가가 어디인지를 특정하기 어려운데 한국 언론들이 자의적으로 해석했다고 지적했다. 4월 29일 미디어오늘은 트럼프가 언급한 '부자나라' 기사가 오보논란에 휩싸였다고 보도한 바 있다. 교차확인이 필요한 상황에서 한국 언론이 섣불리 추측성 보도를 한 것이 아니냐는 내용이다. 반면 연합뉴스는 전후 문맥 정황상 한국 가능성이 크다는 기사를 내보냈다. 

재밌는 것은 한 언론사가 두가지 기사를 동시에 보도했다는 점이다. 조선일보 전효진 기자는 5월 9일자 <트럼프 또 韓 겨냥…"미국을 좋아하지 않는 나라, '위험한 영토'에 돈 많이 썼다"> 기사에서 "지난달 유세 당시 일부 언론은 ‘트럼프 대통령의 발언이 한국이 아니라 사우디아라비아를 겨냥한 것’이라고 보도했지만, 트럼프 대통령이 취임 전부터 주장해온 주한미군 관련 방위비 분담금 인상 문제를 거론한 게 분명하다는 분석이 나온다."고 주장했다. 그런데 같은 신문 조의준 워싱턴 특파원은 5월 10일자 <트럼프, 이 판국에> 기사에서 "트럼프가 말한 '한 나라'가 사우디아라비아일 가능성도 있다. 트럼프는 이날 "내가 그 나라 지도자에게 '돈을 더 내야 한다'고 말했더니 그는 '왕처럼(like the king)' 말하면서 '누구도 우리에게 그런 요청을 한 적 없다'고 답했다"고 말했다. 왕정 국가인 사우디를 지칭했을 가능성도 있는 것이다"라고 분석했다. 하루 차이로 분석이 달라진 것이다.

5월 1일자 VOA 한국어판 기사에서는 트럼프가 지목한 국가가 한국일 수도 있고 사우디일 수도 있다고 분석했다. 그런데 보름 뒤에는 VOA에선 한국이라고 단정하는 기사가 나왔다. 4월말 당시엔 미국 정부 고위 당국자가 "어느 나라인지 확인해 줄 수 없다"고 말했다는 기사가 나온 바 있다. 사실확인이 어려운 것이 자명한 상황에서 필요에 따라 언론이 자의적으로 트럼프 속내를 해석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미국 플로리다에서 열린 '다시 미국을 위대하게' 집회에서 연설을 하고 있다. 화면 캡처.

 

④ 한미동맹이 흔들리기 바라는 그들

트럼프 대통령의 위스콘신 발언 이후 KBS는 한국인지 사우디인지를 확정하는 것은 중요치 않으며 국가를 특정하기보다는 트럼프의 속내가 무엇인지 해석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보도했다.  트럼프 특유의 과장과 모호한 화법때문에 방위비 분담금을 더 내도록 언급한 국가가 어느 나라인지는 현재 확실치 않다는 것이다. 

이 논란 자체가 수개월째 지속되고 있기 때문에 국가를 특정하는 것이 어렵다는 사실을 국내 언론이 모를리가 없다. 그런데 무슨 생각으로 한국언론은 '그 국가'가 한국이라고 특정하고 있을까. 맨 위로 올라가 5월 10일 전후 트럼프의 플로리다 발언을 보도한 언론사를 보자. 이중에서 한국이라고 단정한 언론사는 조선일보, 중앙일보, 매일경제, 한국경제다. 대표적 보수언론과 경제지다. 다른 언론은 사우디나 한국, 두 나라 모두 가능성이 있거나, 아직 확인되지 않았다고 보도했다. 한국의 보수언론은 트럼프 대통령이 '한국이 미국을 좋아하지 않는 나라'라고 인식하고 있다고 단정하고 있다. 한미동맹에 균열이 났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함으로 보인다. 근거는 자의적인 해석과 편의적 근거 선택 뿐이다. 이들은 대체 어느 나라 언론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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