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가 국가채무 기준? 경제적·통계적 근거 없는 수치다

  • 기자명 이상민
  • 기사승인 2019.05.23 13: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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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홉 수란 말이 있다. 29살, 39살 같은 나이를 조심하라는 뜻이다. 개인적 경험을 말하자면 나는 39살 때, 다소 우울했던 것 같다. 앞자리 숫자가 바뀌어 40대 중년에 접어든다는 심리적 부담감이다. 그래서 한국 나이 40이 되자, 만 나이로 39세라고 주장했다. 아홉 수가 다시 찾아오니 우울감도 다시 찾아왔다. 그러나 당연한 말이지만 아홉 수라고 특별한 액운이 찾아올 리는 없다. 그냥 십진법 체계에서 9라는 상징이 가진 심리적 이유에 불과하다.

 

올해 국가채무 비율이 39%다. 아홉 수다. 내년도 재정을 확대한다면 40%를 초과하게 된다. 홍남기 경제부총리는 국가채무 비율 40%를 지켜야 한단다. 문재인 대통령은 40%가 마지노선이라는 근거를 물었다고 한다.

 

그런데 국가채무 비율 39%는 왠지 낯익다. 지난 정부 마지막 해에 기재부가 작성한 ‘2016 중기 국가채무관리계획’을 보면 16년도 국가채무 비율이 이미 39%, 아홉수였다. 17년부터 40%가 넘어갈 것으로 계획(예상)되었다.   

 

그런데 문재인 정부 첫해 작성된 ‘17년 국가채무관리계획’에서는 17년에 찾아오기로 된 40%대를 부정하고 다시 아홉 수를 유지하기로 변경했다. 19년까지 30%대를 간신히(39.9%) 유지하고 20년부터 40%가 넘어갈 것으로 계획(예상)되었다. 19년 현재 국가채무 비율은 39.4%다.(추경안이 통과되어도 39.5%)  17년 예상보다 채무 비율이 조금 좋아졌다.(39.9%->39.5%) 맘만 먹는다면 20년에도 다시 한번 39%대를 사수할 수도 있게 되었다. 그런데 한 해 더 39% 아홉 수를 유지하는 것이 의미가 있을까?


40%대를 마지노선으로 하는 계획의 원조는 15년에 발표한 ‘2060년 장기재정 전망’계획이다.

 

당시 장기재정 전망에 따르면, 국가채무 비율이 장기적으로 60%가 넘게 된다며, 이를 40%로 낮추는 방안을 발표했다. 이를 위해 첫째, 신규 의무지출을 억제하고, 둘째, 강력한 구조조정을 통해 국가채무 비율을 40% 밑으로 유지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목표에 따라 실제로 당시 공무원연금의 강력한 개혁방안이 관철되었다.

그런데 왜 하필이면 40%일까? 사실 근거는 없다. 경제적인 논리도, 통계적인 근거도 부족하다. 이를 이해하고자 한다면 일단 국가채무비율의 의미를 알아야 한다.

국가채무 비율은 우리나라 국내총생산(GDP) 대비 국가채무 비율을 나타낸 수치다. 그럼 국가채무란 무엇일까? 국가채무란 중앙정부와 지방정부의 채무의 합을 의미한다. 그럼 중앙정부와 지방정부의 채무는 무엇일까? 채무는 많으면 나쁜 것이고, 적으면 좋은 것일까? 꼭 그렇지는 않다. 나쁜 채무도 있고 덜 나쁜 채무도 있다.

채무는 적자성 채무와 금융성 채무로 분류되기도 한다. 적자성 채무와 금융성 채무 비율은 약 반 반 정도 된다.(57: 43) 적자성 채무는 쉽게 생각할 수 있는 빚이다. 국가가 쓸 돈이 부족해서 국채를 발행해서 발생한 채무다. 반면, 금융성 채무는 별로 나쁘지 않은 채무다. 금융성 채무는 발생한 빚만큼 대응 자산이 있다. 예를 들어, 외환시장 조정용으로 국채를 1조원 발행해서 달러를 매입하면 국채는 1조원 증가한다. 반면에 대응 자산인 달러도 1조원 생긴다. 빚은 1조원 늘었지만, 그만큼 달러 자산이 새로 생겼으니 걱정할 필요는 없다. 만약 원화 가치가 하락한다면, 오히려 환차익을 볼 수도 있다.(반대인 경우엔 환차손이 발생한다) 그런데 이렇게 진짜 갚아야 할 빚(적자성 채무)과 나쁠 게 없는 빚(금융성 채무)을 합쳐서 국가채무 비율을 일정하게(40%) 유지해야 한다? 경제적, 논리적 필요성이 좀 의심이 간다.

 

더 심각한 개념상 문제가 있다. 실질적으로는 채무지만 기록되지 않는 채무도 있고, 실질적으로는 수입이지만 채무로 기록되는 수입도 있다. 다시 한번 반복하면, 국가채무는 중앙정부와 지방정부의 채무의 합이다. 이말은 정부의 채무가 아니면 제외된다는 의미다. 실질로는 정부나 마찬가지이지만 형식적으론 정부가 아닌 기관들이 있다. 예를 들어 자산관리공사나 사립학교교직원연금공단, 건강보험공단 같은 기관이다. 이런 준정부기관의 채무는 국가채무 규모에 포함되지 않는다. 기금이나 특별회계에서 하던 동일한 사업을 이런 준정부기관이 하게 되면 국가채무 규모가 줄게 된다. 그래서 국가채무 외에 이런 준정부기관의 부채도 포함된 ‘일반정부부채’도 따로 산정하고는 있으나 국가채무관리 계획상으로는 국가채무만 고려한다.

 

특히, 지방정부의 채무의 큰 비중은 지역개발채권에서 발생하는 채무다. 지역개발채권이란 자동차를 살 때, 의무적으로 사야 하는 채권이다. 자동차 구매자가 채권자니, 채권 발행 지자체는 채무자가 된다. 그런데 지역개발채권 이자는 시장금리보다 낮다. 채권자는 손해고 그만큼 채무자는 이익이다. 그래서 자동차를 사는 사람은 보통 채권을 할인해서 팔고 채권자는 그 차액만큼 손해를 보게 된다. 지자체 입장에서는 싼 금리로 자금을 조달할 수 있으니 이러한 채무는 많으면 많을수록 이익이다. ('경기·경남 '채무제로' 선언, 사실 아니고 의미도 없다' 참조)

 

경제적 실질에서는 금리 차이만큼 지방정부의 수입이지만 통계적으로는 국가채무가 된다. 그래서 나쁜 빚, 나쁘지 않은 빚, 좋은 빚을 다 합친 현재의 국가채무 비율을 일정하게 유지하는 것에 논리적 타당성을 부여하기는 어렵다.

 

그런데 왜 40%가 왜 국가채무 비율의 마지노선이 되었을까? 이는 단순한 행정적 관행에 불과하다. 문재인 대통령도 4년 전 박근혜 정부를 비판하는데 사용했던 개념이다. 이제는 공수가 바뀌어서 4년 전 여당이 이제는 40%를 지켜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할까? 새로운 국가재정운용 계획의 청사진을 마련해야 한다. 지난 정부에서 마련한 빛나는 재정 방안이 있다. 참여정부부터 기존의 1년 단위 예산안의 한계를 보완하고자 중기재정 계획(5년)을 발표하기 시작했다. 박근혜 정부는 매달 공개하는 ‘월간 재정동향’을 신설하고  2060년까지의 장기 재정 계획을 발표하였다. 문재인 정부는 ‘월간 재정동향’ 발표는 유지하면서도 30년 이상의 장기재정 계획은 아직 발표한 바 없다. 2015년에 발표한 장기재정계획은 국가채무 비율을 장기적으로 40% 아래로 유지하는 것이 핵심이다. 즉, 지난 정부가 발표한 장기 재정 계획을 수정한 적이 없으니 기획재정부는 2015년 계획 그대로 국가채무 비율이 40%라고 유지한다는 말을 되풀이할 수 밖에 없다.

 

그러니 이제 국가채무, 국가부채 규모를 새롭게 정하는 논의를 시작해야 한다. 우리나라 국가부채는 OECD 국가보다 대단히 안정적이다. 우리나라 일반정부 부채는 GDP대비 43% 수준이나 독일 64%, 프랑스 112%, 미국 136%, 일본 233% 등 대부분 우리나라 부채 수준보다 크게 높다.  

 

 

그렇다고 국가부채 비율을 OECD 국가와 바로 비교하는 것은 무리가 있다. 국가별로 처한 상황이 다르기 때문이다. 특히, 우리나라는 저출생 고령화 사회를 대비하고자 큰 폭의 복지 수요가 예상된다. 실제로 각 경제 단계별 시점을 고려해 보면 우리나라 부채도 아주 좋지만은 않다. 예를 들어 고령사회 도달 시점이나 생산가능 인구 비율이 정점인 시점의 우리나라 일반정부 부채 비율은 미국, 영국, 일본 보다는 낮지만 독일, 프랑스보다는 다소 높다.

주: * 한국 2018년 일반정부부채는 아직 산출전으로 2017년 일반정부 부채 수치임. ** 외국 데이터는 국회예산정책처, 2017 결산총괄 분석 *** 고령사회: UN 기준에 따라 65세 인구 비중이 14% 이상 **** 생산가능인구: 15~64세

다만, 독일과 프랑스는 1980년대 수치다. 그 이후에 세계 경제, 특히 국가 재정 운용 방식에 많은 변화가 발생하였다. 국가 재정의 적극적인 역할을 기대하는 이론도 활발히 논의되고 있으며, 실제로 OECD 많은 국가는 재정지출과 빚을 늘리고 있다. OECD 중앙정부 채무양은 지난 십년 동안 약 두 배로 증가했다. 2007년 22.5조 달러에서 2019년 47.3조원까지 증가할 전망이다.

 

결국, 각 OECD 국가들의 경제적 상황을 고려해서 우리나라에 맞는 새로운 부채 규모를 결정하는 재정전략을 위한 적극적인 논의를 시작해야 한다. 그리고 이러한 논의는 객관적인 현실 진단부터 시작되어야 한다. 그런데 정파적인 이유로 객관적인 현실진단조차 합의되지 못하고 있는 것은 아쉽다. 매년 재정 규모와 부채 규모가 발표될 때마다 ‘사상 최초’라는 단어를 통해 ‘슈퍼예산’, ‘초슈퍼예산’이라는 반응이 나온다.

 

그러나 경제 규모가 커지면 모든 경제통계는 매년 ‘사상 최초’를 경신하는 것은 당연하다. 사상 최초로 정부지출이 500조원을 초과한다는 말은 마치 올해는 ‘사상 최초로 2019년이 되었다.’라는 말 만큼 의미 없는 평가다. 언론의 반응과는 달리 최근 재정의 확장 또는 긴축 여부를 평가하는 재정충격지수(FI)를 보면 지난 2016년, 2017년 모두 긴축재정이었음을 알 수 있다. (FI지수가 음수인 경우에는 긴축)

 

 

2016 결산

2017 결산

2018.9. 기준

(2019 예산안 제출시)

-1.03

-0.25

*서형수 의원실, 2018. 10, 국회예산정책처

 

 최근 초과 세수는 2016년, 2017년, 2018년 연속으로 20조원, 23조원, 25조원 발생하였다. 이에 따라 국고채 발행량도 2015년 최대(109조원)치를 기록한 이후, 매년 발행량이 감소하여 2018년에는 계획보다 9조원을 덜 발행했다.  

 

결국, 최근 발생한 초과 세수 규모를 고려해보면, 현재는 재정 확대 여력이 있다고 평가될 수 있다. 초과 세수 발생은 그 자체로 재정지출 여력이 있다는 뜻이며, 그만큼 민간 자금이 위축되었기에 재정 지출의 필요성도 요청되었다는 의미다. 이렇게 현실 진단을 명확히 한 이후에 저출산 고령화 정도, 복지 수요, 그리고 통일 비용까지 고려하여 새로운 재정 운용 기준을 만들고 중장기 재정계획을 마련해야 한다.

 

만 나이까지 동원해가면서 아홉 수를 아무리 연장해도 40대는 어김없이 찾아왔다. 이제 40대 중반이 되니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 포기하니 편안하다. 더는 우울하지 않다. 이제 또다시 50대가 되고 60대, 그리고 어쩌면 100세 시대를 맞이 할 수도 있겠다. 마찬가지로 국가채무 비율도 50%, 60%를 넘어 어쩌면 100%를 넘을 수도 있다. 또다시 찾아올 아홉 수인  49세, 59세가 되면, 10년을 돌아보고 반성하는 건 좋다. 다만, 우울해 하지는 말자. 국가채무 비율이 49%, 59%가 될 때, 다시 한번 중장기 계획을 세우는 건 좋다. 그러나 우울해하지는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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