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조업 고용' 괜찮다? 위기는 이미 시작됐다

  • 기자명 뉴스톱
  • 기사승인 2019.06.03 1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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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의 고용은 어떤 상태일까? 패스트푸드점 키오스크, 제조업 생산공장의 로봇 등 기계가 일자리를 대체하는 현상, 배달앱 등 플랫폼에 의해 일자리가 분절되고 불안정해지는 현상, 인공지능(AI)에 의해 전문적인 일자리들까지 위협받는 현상 등이 중첩되면서 일자리에 대한 불안은 전에 없이 높아져 있다.

그에 반해 최근 발표된 고용지표와 관련한 정부의 해석은 “전반적으로 상황은 괜찮다. 점차 나아지고 있다.”는 쪽이다. 정부가 공식적으로 그렇게 밝힌다면 적어도 현재의 고용 상황은 나쁘지 않다고 안심할 수 있어야 한다. 정부가 펼치고 있거나 준비 중인 정책의 효과가 잘 나타난다면 큰 위기는 없을 것이라고 전망할 수도 있겠다. 그러나 우려가 되는 것도 사실이다. 정부의 발표를 곧이곧대로 믿기에는 석연치 않다. 여러 가지 현상을 각기 주목하지 않고 전체를 뭉뚱그려서 보고 있거나, 목표가 다른 정책을 섞어서 언급하는 지점들이 있기 때문이다.

 

대표적인 것이 ‘제조업 고용’에 대한 측면이다. 지난 5월 19일 정태호 청와대 일자리수석의 4월 고용동향 관련 입장 발표 중 제조업 관련한 부분을 다음과 같이 정리할 수 있다.

① 2018년 제조업 분야의 취업자 수 감소를 주도했던 자동차, 조선업에서 일자리 상황이 많이 개선되고 있는 것 같다. 시황의 변화와 함께 정부의 정책적 지원 영향이 있다.
② (자영업과 함께) 제조업 취업자 수 감소현상이 전체 고용상황을 상당히 어렵게 만들고 있다. 때문에 핵심 일자리 정책 중 하나로 제조업 르네상스 정책을 강력히 추진해나가야 한다. 특히 스마트공장을 중심으로 하는 중소제조혁신은 무엇보다 중요하다.

 

이와 같은 정부 입장에 대해 제시할 수 있는 반론은 다음 세 가지다.

① 자동차, 조선업 등의 고용이 유지되거나 다시 늘어난다고 하더라도(실제 그런지는 차치하더라도) 이전의 고용 규모를 회복한다는 보장은 없다. 줄었던 고용이 다시 늘어난다 해도 이전에 일하던 사람들이, 예전에 누리던 것과 비슷한 형태와 수준의 일자리로 다시 고용되는 것이 아니다.
② 제조업 르네상스, 스마트 공장 등의 제조혁신은 ‘고용’을 위한 전략이 아니다. 이를 통해 고용이 늘어난다 하더라도 연구개발 등 이전과는 다른 부문에서 발생하므로 생산직 등 기존 일자리가 줄어드는 것은 막지 못 한다.
③ 최근 제조업 기업들이 연구개발직 일자리들을 수도권 내에 위치시키려는 경향이 크기 때문에, 이 분야에서 일자리가 늘어나는 것은 지방 제조업 도시들에서의 고용 위기 개선에 도움이 안 될 가능성이 높다.

 

필자가 속한 민간 독립 연구소 LAB2050은 지난해부터 기술 및 산업 변화에 따른 일자리 지형의 변화에 대해 연구하고 있다. 그 중에서 지방 제조업 도시들의 고용위기 가능성과 대안에 대해 연구한 결과를 지난 4월 ‘제조업 도시들이 흔들린다:지역별 고용위기 시그널과 위기 대응 모델’ 보고서로 발표했다.

 

문제의식의 출발은 제조업 고용위기를 지역 관점에서, 거기서 종사하는 사람들의 관점에서 봐야 한다는 것이었다. 2015년 이후로 조선업 위기가 계속되고, 2018년 5월 군산 한국GM 자동차공장이 문을 닫으면서 제조업 대기업(대공장) 일자리도 안전하지 않다는 인식이 확산되고 있었다. 군산은 2018년 4월 고용위기지역, 산업위기대응특별지역으로 지정됐고, 조선업 도시들인 울산 동구, 거제, 통영, 영암, 진해 등도 잇따라 지정됐다.

이후 최근까지의 상황을 보면,  한국GM은 창원 공장에 대해 투자를 늘리기로 했고, 현대중공업은 대우조선해양을 인수하기로 했다. 산업 관점에서 볼 때는 최악의 시나리오는 면한 상황이다. 군산 GM 공장은 없어졌지만 다른 지역 공장에서라도 생산이 늘어난다면 한국 경제에는 좋은 것이고, 간헐적인 수주 물량으로 기업 유지에 어려움을 겪어 온 조선업체들이 현대중공업 산하로 합쳐진다면 위기에 대한 대응력이 높아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역 경제 및 지역 고용의 관점에서는 해법이라 할 수 없다. 군산 고용위기로 도미노식 충격을 받고 있는 지역 업체들로서는 창원에서 자동차 생산이 늘어나는 것이 희소식일 수 없고, 대우조선해양의 위기로 지역 경제가 휘청이는 거제시 입장에서는 울산의 현대중공업이 주도권을 가져가는 것은 심각하게 받아들여야 할 일이다.

 

또 하나 주목해야 할 것은 두 기업과 관련해서 공통적으로 ‘기업 분리’에 대한 갈등이 나타나고 있다는 점이다. 한국GM은 연구개발 부문을 분리하겠다고 발표한 후 노조의 가처분소송 등 반발에도 불구하고 올해 초 생산·판매 법인에서 연구개발 부문을 분리, GM테크니컬센터코리아(GMTCK)라는 신설법인을 부평에 설립했다.  노동조합은 이것이 생산부문 구조조정을 용이하게 하려는 의도가 아닌지 의심하고 있다.

현대중공업도 대우조선해양 인수 과정에서 법인을 분리(물적분할) 하겠다고 밝혔고 노동조합의 강력한 반대 속에서도 5월 31일 임시주주총회를 통해서 관철시켰다. 한국조선해양(가칭)이라는 중간지주회사를 세워서 현대중공업, 대우조선해양, 현대삼호중공업, 현대미포조선 등 4개 조선소를 통합 관리하는 컨트롤타워 역할을 맡긴다는 것이다. 문제는 이 본사는 서울에 위치하며 각 조선소 소속 연구개발(R&D)과 투자, 경영지원 담당 일부 인력 등이 여기서 근무하게 된다는 것이다.

 

이 두 사안이 상징적인 것은, 제조업체들이 갈수록 주요 인력들을 서울 및 수도권 인근에 집중시키고자 하는 경향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연구개발 등 기술집약적인 부문을 수도권 안에 두려는 데는 관련 인재들이 수도권에서만 근무하려는 한다는 점이 크게 작용하는 것으로 보인다. 이는 대한민국만의 현상이 아니다. OECD(2018)에 따르면, 기술 변화 등에 따라서 전국적으로 일자리가 없어지는 동시에 신규 일자리가 생겨날 때는 수도 주위에 집중되는 현상이 전 세계적으로 나타나고 있다. 따라서, 지방 제조업 도시들의 일자리 수는 지속적으로 감소할 수밖에 없고, 유지되더라도 핵심 공정 및 인력이 빠져나간 단순한 일자리 위주가 될 가능성이 높은 것이다.

 

OECD 국가 신규 일자리 중 수도 주위에서 창출되는 일자리 비율(%), 출처 (OECD, 2018)

이런 흐름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또다른 현상이 지방 제조업 인력의 고령화다. 지방 제조업 고용 중에서 20대가 차지하는 비율은 눈에 띄게 줄어들고 있다. 동종 업계 경력직 채용이 드문 제조업 문화에서는 신규 인력 채용을 할 때 20대~30대 초 연령를 선호하기 때문에, 20대 인력이 줄어들고 있다는 것은 신규 인력 채용이 장기간 이뤄지지 않고 있다는 뜻이다. 정년퇴직 등 자연감소 인력은 있는데 신규 인력을 채용하지 않으면 전체 고용 인원도 줄어들 수밖에 없다.

 

데이터 출처: 한국고용정보원, 고용보험 비정형통계 피보험자현황

 

어떤 지역에 이렇게 단순 생산 공정만 남아 있고, 고용 인력은 고령화 돼 있다고 한다면 이 곳은 고용위기에 취약한 상태라 할 수 있다. 또, 그 지역의 고용이 특정 산업 및 기업에 대해 지나치게 의존적이라면 그 산업 및 기업에 변화가 찾아왔을 때 고용위기 지역이 될 가능성이 더 높을 수밖에 없다. 이런 여러 가지 요인들을 지역별로 종합해서 나타내 본 것이 LAB2050의 우리 지역 고용위기 시그널 지도다. 그 결과로 고용위기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나타난 지역(2016년 지표 기준)들이 곡성군, 영암군, 금산군, 울산 북구, 완주군, 거제시 등이다.

LAB2050이 제작한 우리 지역 고용위기 시그널 지도 화면

 

정부와 몇몇 지자체들은 제조업의 상황을 개선하기 위해 ‘제조업 르네상스’, ‘스마트 제조업’ 등 전략을 밝힌 바 있다. 그러나 이 전략이 최소한 제조업 도시들의 고용위기 대책이 아닌 것은 분명하다. 연구개발, 첨단 ICT를 활용한 공정 고도화 등을 통해서 제조업을 재편하고 공정을 혁신하는 것은 경쟁력 유지를 위해 꼭 필요한 일이겠지만 지역 관점에서 볼 때는 제조업 고용 비중을 낮출 수 있는 일이다. 주요 인력 및 공정의 수도권 집중화를 가속화 시킬 것이기 때문이다. 

최근 지역 상황을 보면 이미 이런 현상이 나타나 있다. 제조업 도시들이 밀집해 있는 경상남도를 보면, 광공업(제조업) 종사자 수 비중은 2011년 33.7%에서 2016년 31.4%로 점차 줄어들어 왔다. 자세히 들여다보면 더 큰 문제가 보인다. 제조업 일자리의 질도 현저히 떨어지고 있는 것이다. 2019 경상남도 일자리대책 세부계획에 따르면 경상남도 제조업 부문(광공업 포함)은 건설업, 도소매숙박업 등 다른 업종에 비해 충원되지 않은 채로 있는 빈 일자리가 가장 많다. 그와 동시에, 지역 내 구인 수요를 직능수준별로 보면 학력·경력 무관 일자리들에 대한 수요가 늘어나고 있다. 이전에 제조업 도시들을 떠받쳤던, 임금과 고용안정성이 대체로 높았던 일자리들이 크게 줄어드는 동시에 질 낮은 일자리들이 늘어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출처 : 통계청-KOSIS-주제별통계-고용‧임금-고용-경제활동인구조사-실업자・실업률/사업체노동력조사한국고용정보원-통계로 보는 노동시장-고용동향-인력부족현황(지역별)고용노동부-고용노동통계-통계DB-직종별사업체노동력조사-미충원인원-산업별/직종별2019 경상남도 일자리대책 세부계획에서 재인용

 

이렇게 일일이 따져봐야 하는 이유는, 정부의 인식과 대응 방향이 잘못돼 있다면 고용위기의 충격을 각 개인과 가정들이 오롯이 떠안게 되기 때문이다.

조선업 등 특정 산업에서 대한민국의 경쟁력을 유지시키는 일, 제조업 기업들이 기술변화에서 뒤쳐지지 않도록 공정 혁신 등을 지원하는 일도 중요하다. 그렇지만 이를 위한 정책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제조업 기업에서 일하며 평범하게 살아오던 사람들의 삶이 일시에 추락하지 않을지, 이들이 기반을 두고 살아오던 제조업 도시들은 ‘쇠락도시’(rust-belt city)의 길을 걷지 않을지 대해 좀 더 세심한 관심을 가져야 한다.

제조업에 오래 종사한 사람들을 재교육 시켜서 다른 일에 종사하게 하는 일은 아주 어렵다. 미국 위스콘신 주 소도시 제인스빌에서 2008년 GM 공장이 폐쇄된 이후 5년간의 상황을 워싱턴포스트지 기자가 상세하게 기록한 책 <제인스빌(Janesville-An American Story)>은 중앙정부와 지방정부, 지역 공동체와 대학이 똘똘 뭉쳐서 갖은 노력을 다 해도 그 시도가 실패할 수 있으며, 그럴 때 도시는 쇠락의 길을 걷게 된다고 실제 경험을 바탕으로 경고한다.

현재 대한민국이 가진 문제의식과 노력의 정도는 그에 비할 수 없을 정도로 미미하다. 그럼에도 ‘고용위기특별지역’ 지정과 예산 배정을 함으로써 필요한 대응을 다 한 것으로 평가하는 정부의 태도가 보일 때면 우려스럽다.

또한, 지역 고용을 위해서 다른 대기업, 다른 산업을 유치하겠다는 전략을 밝히는 지자체, 이를 지원하는 정부 정책도 보이는데 과연 이런 전략이 성공할 수 있을지도 좀 더 따져봐야 한다. 기존에 한 지역에 오래 존재했던 기업도 떠나려는 판에 어떤 기업이, 얼마나 큰 인센티브를 줘야 지역에 들어와서 신규 투자와 고용을 할 것인가? 세금 혜택과 공짜 인프라 제공 등 갖은 인센티브를 제공받고 지역에 들어온 기업이 몇 년 후면 ‘상황이 바뀌었다’면서 떠나버리는 예를 전세계 곳곳에서 찾아볼 수 있는데, 어떻게 그런 일을 막을 것인가? 이런 점들까지 미리 생각해 놓아야만 ‘전략’이라고 부를 수 있을 것이다.

정부가 적절한 정책을 마련하는 데 있어서 무엇보다 먼저 필요한 것은 현재의 고용 상황이 어느 정도 심각한지, 더 심각해질 만한 요인은 어떤 것이 있는지 제대로 인식하고 인정하는 것이다. 괜찮아 보이는 지표들만 모아서 ‘이 정도면 괜찮다’고 말하는 정부와, 아직 표면적으로 보이지 않는 위기라 해도 먼저 포착하고 밝혀서 장기적 대책을 세우는 정부 중에서 사람들이 어느쪽을 더 신뢰할지는 자명하다. 특히 지금과 같이 한 치 앞을 알 수 없는 기술변화, 고용변화의 시대에는 말이다.

필자 황세원은 LAB 2050 연구실장이다. 국민일보 기자와 사회적경제지원센터 홍보팀장으로 일했다 한신대 사회혁신경영대학원에서 '사회적경제' 전공 석사를 받았다. 희망제작소에서 좋은 일의 새로운 기준을 찾기 위한 '좋은 일, 공정한 노동' 기획 연구를 진행했고, 보드게임 '좋은 일을 찾아라!'를 개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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