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의원 소환제'가 선진국 대다수에 없는 이유

  • 기자명 김수민
  • 기사승인 2019.06.10 08: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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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방자치단체장이나 지방의원을 지역 주민이 끌어내릴 수 있도록 하는 제도를 ‘주민소환제’라고 부른다. 한국에서 이미 시행중이다. ‘국민소환제’는 국회의원이나 대통령을 지역주민이나 국민이 끌어내릴 수 있도록 하는 제도다. 현재 국내에서 논의되는 국민소환제는 주로 ‘국회의원 소환제’다. 이에 대한 국민적 지지는 2016년 말, 박근혜 당시 대통령에 대한 탄핵 지지와 매우 흡사한 수준으로 높아 보인다.

여론조사기관 ‘리얼미터’가 지난 5월 31일 국회의원을 국민이 소환하는 ‘국민소환제’에 대한 여론조사를 실시했다. ‘민의 위반 국회의원의 퇴출장치가 필요하다’는 찬성 의견이 77.5%로 절대 다수를 차지했고, ‘의정활동 위축, 정치적 악용을 우려’하는 반대 의견은 15.6%에 묶였다. (이 조사는 전국 19세 이상 성인 9830명 중 504명이 응답해 5.1%의 응답률을 기록했다. 무선 전화면접(10%) 및 무선(70%)·유선(20%) 자동응답 혼용, 무선전화(80%)와 유선전화(20%) 병행 무작위생성 표집틀을 통한 임의전화걸기 방법으로 실시했으며, 표본오차는 95% 신뢰수준에 ±4.4%p다.)

출처: 리얼미터 홈페이지

지난 5월 2일 영국으로부터 ‘국회의원 소환’ 소식이 전해졌을 때는 보도를 접하고 댓글을 단 한국 네티즌들의 대다수가 “우리도 실시해야 한다”며 호응하기도 했다. 영국은 2016년부터 하원의원 소환법을 시행했다. 지난 6월 4일 국민소환제 도입을 촉구한 녹색당도 <영국도 도입한 국민소환제, 우리도 도입해야>라고 논평 제목을 달았다. 녹색당 논평은 영국의 전례를 다음과 같이 소개하고 있다.

 

“영국의 경우에 국민소환제가 도입된 계기는 2009년에 터진 하원의원들의 예산부정사용 스캔들 때문이었다. 영국 하원의원들이 국민세금으로 지원되는 예산을 사적인 용도로 사용한 사례들이 적발되었던 것이다. 그 결과 당시에 6명의 장관이 사임했고, 하원의장을 포함한 46명의 국회의원이 사퇴를 했다. 그리고 여야를 불문하고 142명의 국회의원들이 차기 총선 불출마를 선언하게 되었다. 그러나 영국국민들의 여론은 국민소환제 도입까지 요구했다. 당시에 79%의 영국국민들이 국민소환제 도입에 찬성할 정도였다. 그래서 2015년 영국에서는 국민소환법(Recall of MPs Act 2015)이 통과되게 되었다.”

 

연동형 비례대표제 도입론자들에게 독일과 뉴질랜드가 주요 참고국이라면, 이렇듯 국민소환제 도입론자들에게는 영국이 주요 참고국인 셈이다. 그러나 얼마 전 영국에서 일어난 하원의원 소환 사례의 전말을 뜯어보면 허무한 결론이 내려질 뿐이다. 또한 현재 민주주의 선진국 가운데 현재 국회의원 소환제를 실시하는 나라는 영국 말고는 찾기 어렵다. 오히려 영국이 과연 민주주의 선진국인지도 돌아볼 일이다. 찬반 입장을 떠나, 국민소환제가 선진적인 제도가 아니며 정치개혁의 방안이 아니라 정치개혁 실패의 결과물일 뿐임을 일단 인정해야 한다.

 

‘자동박탈제 보유 한국'이 영국 소환청구제를 부러워할 이유 없어

5월 초 영국 하원의회에서 쫓겨난 피오나 오나산야 의원은 2017년 6월, 속도가 30마일(48km)로 제한된 구간에서 자신의 차를 41마일(66km)로 몰다 적발되었다. 과속으로 의원직을 상실했다고 친다면 국민소환제 찬성자 상당수도 “너무 가혹한 것 아닌가” 싶을지 모르겠지만, 오나산야 의원이 그로 인해 의원직을 잃은 건 아니다. 오나산야 의원은 과속 벌점을 피하기 위해 자신의 차를 다른 사람이 몰았다가 거짓말했다가 들통났다. 이 거짓말은 단지 여론의 지탄을 받는 데 머무르지 않았다. 이 거짓말로 오나산야 의원은 징역 3개월형을 선고받고 4주동안 형을 살았다.

 

한국이라면 이 단계에서 이미 의원직을 상실한다. 금고 이상의 형이 확정되면 공직 정치인은 자동으로 직을 상실한다. 공직선거법이나 정치자금법을 위반한 경우는 벌금 100만원 이상의 형이 확정되면 직을 상실한다. 이 사건에서 두드러지는 건 영국의 국회의원 소환제가 전혀 아니다. 자신의 범죄행위에 거짓말을 했다는 이유로 조금 더 무거운 형을 물리는 제도다. 부러워하려면 이것을 부러워하는 것이 맞다. 한국 시민이 이번 사건으로 굳이 영국 정치를 부러워하는 건 우스꽝스러운 일이다.

 

오나산야 의원은 형을 살고 나서가 아니라 소환청구 절차가 끝나면서 비로소 직을 박탈당했다. 지역구 전체 유권자의 27.64%가 오나산야 의원 소환청구에 서명했다. 이 대목만 떼놓고 보면 참으로 이상한 일이다. 전체 유권자의 반의 반 정도만 서명했는데도 의원이 쫓겨났기 때문이다. 놀랍게도 영국 하원의원 소환 절차에서는 6주 이내에 지역 유권자의 10% 이상만 소환청구에 서명하면 소환이 완료된다. 그 다음에 주민투표를 치르지도 않는다. 왜 투표자 다수의 의사를 확인하지 않고도, 소수 주민의 서명만으로 소환을 완료하는가. 위에서 설명했듯 오나산야 의원은 이미 범죄 혐의가 확정되어 징벌을 받았기 때문이다.

 

영국은 하원의원 소환의 요건을 까다롭게 정하고 있다. 일단 의원이 된 후 영국내에서 형사 문제로 기소가 되어 자유형 이상이 확정된 하원의원은 소환 대상이 될 수 있다. 그리고 의회에서 일정기간 이상의 의원직 정직 처분을 받은 하원의원도 소환 대상이 될 수 있다. 영국의 하원의원 소환제는 국민이나 주민의 손에서 출발하지 않는다. 사법부나 의회가 기착역이며 막강한 권한을 쥐고 있다. 국민이나 주민은 극히 일부의 의사로 이를 승인할 뿐이다. 게다가 하나 더 유의할 점이 있다. 소환당한 정치인은 새로운 의원을 뽑는 재선거에 출마할 수 있다.

 

‘의원 하나하나’를 응징하려는 나라 vs. ‘의회 전체 구성’이 중요한 나라

영국 이외에 국민소환제를 실시하는 민주주의 선진국을 찾기 어렵다. 국회의원 소환제를 실시하는 나라는 벨라루스, 에콰도르, 에디오피아, 키리바티, 키르기즈스탄, 나이지리아, 팔라우, 베네수엘라다. 대통령 소환제를 도입한 국가는 크게 둘로 나뉜다. 첫째, 유권자가 발의해서 국민투표로 처리하는 에콰도르, 베네수엘라 등이 있다. 둘째, 의회가 발의해서 국민투표로 처리하는 오스트리아, 아이슬란드, 팔라우, 루마니아, 세르비아, 타이완 등이 있다.

 

오스트리아, 아이슬란드가 그나마 민주주의 선진국으로 눈에 띄지만 이들은 국회의원 소환제는 실시하지 않는다. 국회가 국정을 주도하는 시스템이라서 대통령 소환제가 큰 의미를 갖지도 않는다. 미국, 프랑스, 독일, 스웨덴, 핀란드, 노르웨이 등등 다 거명하기 버거울 만큼 많은 나라들은 아예 국회의원 소환제를 실시하지 않는다. 필자가 이점을 누누이 강조하면서 들어온 가장 기상천외하고도 가장 자주 등장하는 반론은 이것이었다. “그들 나라는 정치인이 좋아서이고, 실시하는 나라는 정치인이 나빠서 어쩔 수 없이 실시한다. 그러니 한국은 당연히 소환제를 시행해야 한다.”

 

영국은 다른 민주국가보다 정치인이 저질인가? 그것을 이 사람은 어떻게 알고 판단하는가? 이런 사람들은 국회의원 소환제가 어느 나라에 도입이 되었고 안 되었는지 사전 지식도 없고 사례 연구도 하지 않았다. 만약 필자가 은근슬쩍 미국이나 독일 등에 국회의원 소환제가 도입이 되었다고 거짓으로 실험을 하였다면, 저런 사람들은 “역시 선진국은 국회의원 소환제가 있다”고 둘러대지 않았을지 의심이 든다.

 

국민소환제 여론에 비해 선거제도 개혁 여론이 약한 것도 주지할 만하다. 한마디로, 제대로 뽑는 일에는 관심 없고 나중에 분풀이할 작정만 하고 있는 것이다. 선거가 끝나고 나서 나쁜 의원 몇몇을 떨어트릴 생각을 할 시간에, 처음부터 의회 구성을 최대한 좋게 할 생각을 해야 한다. 국민소환제는 정치개혁 기획이 아니라 사후 수습책에 불과하며, 문제의 해법이 아니라 문제의 원인인 셈이다.

 

흥미롭고 의미심장한 대목이 있다. 유럽의 연동형 또는 전면적 비례대표제 도입국 가운데 국회의원 소환제를 도입한 나라는 아무도 없다. 개혁된 선거제도는 '내 한 표가 국회의원의 전체 구성에 영향을 끼치는 제도'다. 내가 좋아하는 OOO 의원이 있고, 내가 싫어하는 XXX 의원이 있다면, 연동형 비례대표제 같은 제도에서는 OOO이 재선되고 XXX이 심판당하는 것보다, 누가 의회에 들어가든 그 의회가 유권자인 나의 의사에 되도록 가깝게 운영되는 것이 목적이다.

 

반면 국회의원 소환제나 소선거구 위주 선거제도는 XXX을 응징하고 OOO를 떠받치는 데 골몰한다. 그러면서도 유권자는 치명적인 사태를 자초한다. 자신이 좋아하는 OOO 의원이 지역구 반대자들에 의해 소환당한다면? 그때는 또 ‘국민개새끼론’과 같은 혐오 선동이 판을 칠 것이다. 이것은 알아두기 바란다. 그건 크레타인이 “모든 크레타인은 거짓말쟁이”라고 주장하는 꼴이다. 당신도 크레타인이다.

 

1/5 지지로 당선되어도 1/6에게 끌려내려온다?

사실 필자는 오래 전부터 국회의원 중간심판제도 도입을 주창해왔다. 한때는 열렬한 국민소환제 도입론자이기도했다. 유권자가 직접 국회의원을 끌어내릴 가능성을 아예 봉쇄해서는 안 된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더군다나 정치인을 향한 불신과 의심이 정치개혁 가능성까지 옥죄고 있으므로, ‘거래’의 차원에서라도 연동형 비례대표제와 국회의원을 중간심판제는 동시 추구해야 한다는 ‘정무적 판단’을 한다.

 

그러나 국민소환제에는 결정적 난점이 있다. 어차피 공직 정치인의 임기는 제한되어 있다. 또 선거라는 절차는 만만하지 않다. 국회의원은 이 두 가지 험난한 조건에 갇혀 있다. 비리 정치인은 한국에서 법정 최종 단계에서 직을 곧바로 상실한다. 소환제를 실시한다면 비리 정치인이 퇴출되는 것이 아니라, 어떤 정치인이 정책적 반대자들에게 끌려내려오는 일이 더 잦을 수밖에 없다. 이것은 민주주의를 떠받치기보다 뒤흔들기가 훨씬 쉽다.

 

현행 한국의 주민소환제를 살펴보자. 해당 지역내 유권자의 1/3 이상이 투표해서 그중 과반이 소환에 찬성하면 지방의원이나 단체장이 소환된다. 사실 이조차 현실적으로는 까다로워서 실제로 소환된 단체장은 전무하다. 하지만 공직선거에 비추어보면 소환 요건이 느슨하기도 하다. 예컨대 투표율 50%에서 40% 지지를 받아 당선된 의원이 있다고 가정하자. 전체 유권자 기준 20%의 지지를 얻은 셈이다. 하지만 국회의원 소환이 현행 주민소환과 같은 요건을 가졌다고 가정했을 때, 이 의원은 1/3 이상의 투표율에 과반의 소환 찬성만으로도 소환될 수 있다. 전체 유권자 20%의 지지를 받은 의원이 전체 유권자 1/6에 의해 끌려내려오는 것이다. 부당하다.

 

필자는 국민소환제 대신으로 도입할 정치인 중간심판 제도가 필요하다고 본다. 이에 대한 아이디어도 얼마간 마련해두고 있다. 또한 국민소환제보다 국민발안제 도입이나 국민투표제 개혁이 훨씬 중요하고 시급하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다. 이들에 관한 이야기는 나중으로 미룬다. 분명한 것은, 국민소환제는 정치개혁이라고 부르기에는 오류와 한계나 너무 크고 뚜렷하다.

[참고문헌]

김선화, <헌법개정시 국민소환제 도입의 쟁점(헌법 개정의 주요 쟁점 시리즈4)>, 국회입법조사처, 2017. 11.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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