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일상'의 기억이 가장 행복했다, 그래서 떠난다

  • 기자명 탁재형
  • 기사승인 2019.06.20 1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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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강연 말미에 한 분이 질문을 했다. ‘방송이나 인터넷을 통해 해외 여행지가 넘쳐나는 요즈음인데, 그것들을 활용하는 것으로도 충분한 만족감을 얻을 수 있음에도 왜 굳이 직접 여행을 떠나야 하는가?’라고 말하는 지인에게 어떤 조언을 해주고 싶냐는 것이었다.

 

알랭 드 보통의 <여행에 기술> 첫 장에는, J.K. 위스망스의 1884년작 소설 <거꾸로>의 한 부분이 묘사되어 있다. 파리 교외의 별장에 거주하는 데제생트 공작은 좀처럼 문밖 출입을 하지 않는 사람이다. 젊은 시절, 근처 시골 마을에 나가 사람들의 지저분함과 어리석음에 실망한 나머지, 자신의 서재에서 고전 문헌을 읽으며 상상 속의 세상을 주유하는 것에 더 만족하게 되었다. 그러던 그가, 디킨스의 책을 읽던 중 영국을 가보고 싶다는 강렬한 열망에 사로잡히게 된다. 하인들을 재촉해 짐을 꾸린 다음, 그는 영국행 배가 떠나는 항구로 가기 위해 일단 파리로 향한다. 여행에 대한 기대로 들뜬 나머지, 그는 조금이라도 일찍 영국의 분위기를 느끼고자 영국인들이 즐겨 찾는 선술집에 들른다. 거기서 그는 자신이 마치 영국에 있는 듯한 인상을 받게 되고, 동시에 앞으로 겪어야 하는 고단한 여행에 대한 귀찮음이 밀려오는 것을 느낀다. 역까지 달려가서 짐꾼을 차지하려 다투고, 기차를 타고, 추위를 이겨가며 가이드북에 나와 있는 볼거리들을 찾아 헤매야 한다는 데 생각이 미치자, 여행에 대해 가지고 있던 환상은 깨어지고 만다. 결국 그는 자신의 서재 의자에 앉아서 하는 여행이 훨씬 더 낫다는 결론을 내리고, 선술집을 떠나 집으로 돌아가고 만다. 그리고 두 번 다시 집을 떠나지 않았다.

 

 

이 소설을 통해 우리가 여행에 대해 가지고 있는 환상과, 그것이 현실이 되었을 때의 차이에 대해 이야기하던 저자는 챕터 말미에 이렇게 고백한다. 자신 역시 ‘그냥 집에 눌러 앉아 얇은 종이로 만든 브리티시 항공사의 비행 시간표의 페이지를 천천히 넘기며 상상력의 자극을 받는 것보다 더 나은 여행은 없을지도 모른다고 느낀 적이 몇 번 있다’고. 하지만 그런 것이 <여행의 기술>을 통해 저자가 하고 싶었던 말의 전부는 아닐 것이다. 오히려 그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행을 떠나야 하는 이유와 그로부터 우리가 얻을 수 있는 것들에 대해 훨씬 더 많은 챕터를 할애해 이야기하고 있다. 나 역시 7년째 팟캐스트와 책을 통해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행을 떠나야 하는 이유에 대해 줄곧 이야기해오고 있는 참이다.

 

떠나야 하는 이유를 알기 위해선 ‘무엇으로부터’ 떠나야 하는지를 알 필요가 있다. 여행의 출발점이 되는 것은 인천국제공항도, 서울역도 아닌 자신의 일상이다. 일상이란 무엇일까? 어떤 단어나 표현들은 다른 언어로 번역해 봤을 때, 그 뜻이 좀 더 명확해지는 경우가 있다. 영어에 ‘일상’에 1:1로 대응하는 단어는 없다. 구글 번역기를 사용해 보면 나오는 표현은 ‘Daily Life'다. ’하루하루의 삶‘쯤 되는 의미다. 내가 생각하는 일상의 의미에 좀 더 가까운 영어 표현은 ’Daily Routine'이다. 우리가 속한 공동체의 일원으로서, 사회적 의미를 가지기 위해 살아내야 하는, 반복적인 일과를 말한다. 일상은 그 자체로 소중하고, 의미가 있다. 타인에 의해 내 일상이 깨어지는 일은 다툼으로 이어진다. 때로는 국가와 국가가 충돌하는 규모로 번지기도 한다. 그것을 우리는 전쟁이라고 부른다. 반복되는 일상 속에서 우리는 안정감과 평화를 느끼고, 함께 힘을 합쳐 공동체를 발전시키고 사회적 수명을 연장한다. 이렇듯 소중한 것이기에, 일상은 그 자체로 힘이 세다. 아니, ‘중력이 세다’라고 표현하는 바가 더 나을지도 모르겠다. 동굴 밖으로 나서면 긴 송곳니가 달린 고양잇과 맹수의 습격을 받던 시절부터, 우리는 경험하지 않은 것에 대한 본능적인 경계심과, 경험한 것이 반복되는 것에서 느껴지는 안정감을 학습해왔다. 특별한 노력을 하지 않으면 우리는 반복이 주는 평화 속에서 벗어나려 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그렇게 의미있고 소중한 일상 속에 파묻혀 언제까지나 머물러도 괜찮은 것이 아닐까?

 

‘죽을 뻔한 경험’은 권장할 만한 것이 결코 아니다. 미처 준비도 되지 않은 채(물론 그런 식으로 최후를 맞이하는 사람이 과연 얼마나 있겠는가마는.) 삽시간에 삶의 마지막 순간으로 내몰리는 폭력적인 경험은 워낙 극단적인 것이기에, 신체적, 정신적으로도 많은 변화를 불러일으킨다. 통설처럼 이야기되는 것이 ‘평생의 기억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간다’는 것이다. 적어도 한 번 정도는 죽을 뻔했던 나에게 (오토바이 사고였다.) 그런 신비체험은 없었지만, 정신을 차린 뒤 하마터면 ‘어떠어떠한 것들’과 영영 안녕이었겠구나 라는 오싹함은 있었다. 그리고 거기서의 어떠어떠한 것들엔 성실하게 출근을 하고, 견적서를 쓰고, 미팅을 하고, 원고를 마감하는 것들이 포함되어 있지는 않았다. 가장 강렬하게 떠오르는 기억들은 대체로 누군가와 아름다운 것을 보고, 즐거운 것을 듣고, 맛난 것을 먹고, 함께 감동했던 순간들에 대한 것이었다. 그런 것들은 대체로 ‘비일상’적인 것이다. 만일 그것들이 일상이 될 정도로 매일 매순간 반복되는 것이었다면, 그정도로 강렬한 기억이 되지는 않았을 것이다. 삶의 마지막을 유사체험해본 바로는, 우리가 최후까지 가지고 가는 기억은 일상보다 비일상에 대한 것이다. 그 이유는, 그 순간이 가장 행복했었기 때문일 것이다. 우리가 느낄 수 있는 가장 농축적인 행복의 기억은 대체로, 일상 밖에 있다. 그 행복의 에너지가 공급되지 않을 때, 우리는 일상의 대기권 안으로 과도하게 끌어당겨져, 마침내는 불타버리고 만다. 번아웃(Burn-out)이라고 부르는 단계가 바로 그것이다.

Photo by Element5 Digital on Unsplash

 

우주공간에 떠 있는 인공위성은 유유히 평화롭게 무한의 공간을 유영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 궤도는 팽팽한 힘들 사이의 균형이 만들어내는 긴장 위에 있다. 지구가 끌어당기는 인력과, 회전을 통해 그 밖으로 탈출하려는 원심력 사이의 완벽한 균형점이 바로 인공위성이 가고 있는 길인 것이다. 자신이 날고 있는 고도와 속도를 충분히 높게 유지하지 않는다면, 인공위성은 지구 중심을 향해 낙하하게 되고, 결국은 불타 없어지게 될 것이다. 일과 휴식, 일상과 비일상 사이에서 우리가 균형을 찾아야 하는 이유를 이것보다 직관적으로 보여주는 비유는 없을 듯 하다. 소중한 일상을 지켜나가기 위해서는 일상 밖으로 나가, 행복에너지를 공급받고 돌아와야 한다. TV화면을 통해서는 결코 충족될 수 없는 그 과정을 한 단어로 표현하자면, 나는 ‘여행’이라 말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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