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청춘학원멜로 '클리셰’를 박살낸 '웃기는 호러'의 탄생

  • 기자명 홍상현
  • 기사승인 2019.06.27 09: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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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기는 이 없는 집안행사는 썩 유쾌하지 않으나 대략 두세 시간 정도 인내심을 발휘하면 넘길 수 있는 가벼운 난관이다. 그러나 ‘모두가 한 장소에 묵는’ 형태를 띠면 상황이 심각해진다. 일단 숨소리조차 크게 내지 못하는 상태로 시선을 접시에 고정한 채 음식을 한 입에 우겨넣어야 하는 디너테이블부터 스트레스의 레벨이 다르다.

할리우드 무성영화시기를 대표하는 D. W. 그리피스의 대작 사극 <인톨러런스> 촬영장 자리에 스페인 식민지 부흥 양식(The Spanish Colonial Revival Style)으로 세워진 영화관. 비스타시어터의 레이트 쇼(late show)를 찾게 된 계기는 이렇듯 별로 낭만적이지 않았다. 물론 사람들에게 ‘명소’라 불리는 대부분의 장소가 그렇듯 내부 풍경이 애초에 상상한 것과 좀 다르기는 했다. 3년에 걸쳐 이루어진 리뉴얼 공사가 막 마무리 된 시점이었으니까. 하지만 상영관 안으로 들어서자 이내 모든 것이 익숙해졌다. “밥을 먹으니까 밥이 먹고 싶어”지더라는 어떤 시인의 말처럼. 비스타시어터의 프로그램에는 애초에 시공간의 제약이 존재하지 않았다. 알프레드 히치콕이나 스탠리 큐브릭의 고전부터 멕시코, 우크라이나 감독의 독립영화, 미야자키 하야오의 애니메이션, 심지어 오우삼의 홍콩느와르에 이르기까지. 오직 영화에 대한 사랑만이 모든 것을 지배하는 공간이었다.

호기 카마이클의 노래에서 딴 이름을 쓰는 영화사의 타이완 친구에게 80년대를 풍미한 '당신이 떠날 때마다(Everytime You Go Away)'의 가수, 폴 영과 동명이인인 감독과, 그의 신작 <고스트마스터>에 대해 듣는 순간 떠오른 추억.

이 연상에는 충분한 이유가 있다. 비스타시네마는 토니 스콧의 1993년 작 <트루 로맨스>의 두 주인공 알라바마(패트리샤 아퀘트)와 클라렌스(크리스찬 슬레이터)의 첫 만남이 이루어지는 곳이다. 소니 치바의 <스트리트 파이터> 레이트 쇼를 보러갔다가 ‘트루 로맨스’를 시작하는 클라랜스가 영화의 시나리오를 쓴 쿠엔틴 타란티노의 페르소나임은 말할 필요도 없다. 테네시 출신으로 네 살 때 캘리포니아로 이주, 영화와 함께 자라난 타란티노는 비디오가게 점원을 하다 조감독으로 할리우드생활을 시작하기까지, 아마 문턱이 닳도록 이 오래된 영화관을 드나들었을 것이다.

외모에서 풍기는 아우라(aura)부터가 범상치 않은 <고스트마스터>의 감독, 영의 성장사도 크게 다르지 많다. 미국인 아버지와 일본인 어머니의 아들로 토치기의 산간마을에서 태어난 그는 유학 갈 형편이 못 되는 영화감독 지망생이 선택 가능한 최선의 코스를 거쳤다. 하지만 그 어떤 ‘은사’의 이름도 거론하지 않는다. (※ 예컨대 고레에다 히로카즈의 조감독 출신인 어느 신인감독은 데뷔작 개봉 당시 자신의 이름이 아닌 “고레에다의 애제자”로 회자되었다) 도쿄 변두리의 동시상영관 ‘신문예좌가 저를 키웠다’고 잘라 말할 뿐.

그가 청춘학원멜로 촬영장을 무대로 영화판에 대한 신랄한 풍자와 80년대 할리우드 호러영화에 대한 재치 넘치는 오마주로 관객을 포복절도케 하는 '열혈 호러 코미디' <고스트마스터>로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를 찾았다.

“폴 영이라는 전형적인 구미인의 이름에 척 봐도 구미인의 외모를 가지고 있는” 감독에게 미국인인 아버지는 영어를 따로 가르쳐주지 않았다. 그런 까닭에 그는 내내 일본인과 외국인과 양쪽으로부터 “거 희한하네?” 소리를 들어왔다. 사진: 주식회사SDP(SDP, Inc.) 제공

홍상현 :

4년 전 한일합작 중편을 연출해서 이번이 첫 한국행은 아닌 것은 안다. 그래도 장편영화 데뷔작이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에 초청되었으니 이 기회에 말해보자. (웃음) 평소 좋아하는 한국영화 감독이나 배우가 있나?

폴 영 :

그보다 일단 칸국제영화제 황금종려상 수상부터 축하드리고 싶다. 제가 봉준호 감독을 워낙 좋아해서. 상업성과 작가성 사이에서 싸우면서도 그 투쟁의 스타일 자체에 다른 감독에게는 없는 오리지널리티가 있어, 매번 작품을 발표하실 때마다 기대하게 된다. 데뷔작 <플란다스의 개>가 흥행에 성공하지 못해 <살인의 추억>을 만들게 되었다는 에피소드도 좋고. 그밖에 한국영화의 고전으로 몇 년 전에 다시 소개된 김기영 감독의 작품들도 놀라웠다.

 

홍상현 : 

영화제 기간 중 <고스트마스터> 상영과 GV 때문에 기회는 있겠지만, 그래도 지면을 통해 처음 당신을 접하게 될 관객이 훨씬 많을 것이다. 게다가 분명히 재미있을 것 같으니 부탁드린다. 당신은 어떤 사람인가?

폴 영 :

무슨 말씀을 하시는지 잘 안다. (웃음) 태어나서 지금껏 대략 10만 번 이상 스스로에 대해 설명할 필요가 있었기 때문이다. 일본의 산 속 작은 마을에서 미국인 아버지와 일본인 어머니의 아들로 태어났다. 폴 영(Paul Young)이라는 전형적인 구미인의 이름에, 머리카락은 천연 파마, 척 봐도 구미인의 외모를 가지고 있지. 하지만(이건 제 인생의 커다란 수수께끼의 하나다) 도대체 어째서인지 아버지가 영어를 가르쳐주지 않았기 때문에 할 줄 모르고, 그런 까닭에 내내 일본인과 외국인과 양쪽으로부터 “거 희한하네?” 소리를 들어왔다. 결국 견디다 못해 독학으로 영어를 조금이나마 할 수 있게 된 지금은, 사태가 더 복잡해지고 있다. (웃음)

토치기의 산간마을에서 태어난 폴 영 감독(가운데)은 유학 갈 형편이 못 되는 영화감독 지망생이 선택 가능한 최선의 코스를 거쳤다. 하지만 어떤 ‘은사’의 이름도 거론하지 않는다. 그저 도쿄 변두리의 동시상영관인 신문예좌가 자신을 키웠다고 잘라 말할 뿐. 그게 사실일 뿐더러 학맥을 내세우고 싶지도 않아서다. 사진: 주식회사SDP(SDP, Inc.) 제공

홍상현 :

역시 만만찮은 캐릭터. (웃음) 자기소개에 덧붙여서 하나 더 질문하고 싶다. 당신은 왠지 미국 대중문화와 뗄 라야 뗄 수 없는 관계성을 가지고 태어난 사람 같다. 당신이 태어났을 즈음 “당신이 떠날 때마다(Everytime You Go Away)”라는 곡을 세계적으로 히트시킨 동명이인 가수가 일본을 방문했다.

폴 영 :

솔직히 말하면 저는 “떨어져 나갈 수 없다”는 것보다 오히려 “어느 쪽에도 속할 수 없다”는 느낌이 더 강하게 든다. 지나치게 다감(多感)한 성격이 부끄러웠던 10대 중반 무렵부터 자신이 “어느 땅에도 뿌리를 내릴 수 없는 수초 같은 존재”라고 생각했다. (웃음) 알맹이는 거의 일본인 감성으로 채워져 있다고 여기면서도 어딘지 일본적인 것에 적응하지 못하는 제가 있었으니까. 이번 영화의 극중극에서도 등장하지만 일본의 학교에서 입는 교복조차, 제가 입으면 미국인의 “일본 학원 만화 코스프레” 같은 느낌이라 좀처럼 익숙해질 수 없었다. (웃음) 그렇다고 미국인이냐면 그건 또 아니고. 어느 쪽도 될 수 없는 거리감이라는 게 늘 존재했다. 그런 ‘서로 이질적인 두 가지 사이의 분리된 감각’이 영화적 표현에도 나타나는 것 같다.

 

홍상현 :

그래도 현장에 나가기 전, 국내파 영화감독지망생 최고의 엘리트코스(일본대학 예술학부ㆍ도쿄예술대학 대학원)를 거쳤다. 굳이 이 이야기를 하는 것은, 이후 당신의 행보가 독특하기 때문이다. 영국의 레인던스국제영화제에 의해 '주목할 만한 독립영화감독'에 선정된 경력도 있지만, 심각한 영화작가가 되기보다 TV드라마, MV 등 폭넓은 장르를 넘나들며 다양한 ‘재미’를 추구해왔다.

폴 영 :

행인지 불행인지, 말씀하신 그 '엘리트코스'를 마쳐도, 저의 재능을 인정하는 프로듀서의 데뷔 권유 같은 건 전혀 없더라. 먹고 살기 위해 뭐든 닥치는 대로 해내야 했다. 학창시절 신세를 졌던 배우의 연줄로 핑크영화 조감독을 하는가 하면, 어린이를 위한 교육용 비디오를 제작하기도 했고, 무슨 신흥종교의 기적을 그린 재현드라마를 만들기도 했다. (웃음) 그러다 TV드라마를 연출하게 되었는데 늘 머릿속에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은 영화였다. 그렇게 다양한 장소를 통해 이루어진 '지나치리만큼 재미있는' 캐릭터를 가진 이들과의 ‘크레이지(crazy)’한 만남은 제게 좋은 경험이 되어주었다. 오히려 제 '통일감 없는 프로필'이야말로 스스로를 위해 진정 필요했던 것이라고 생각할 만큼. 성격적으로 어떤 한가지에 물들어가는 것에 거부감이 있는 것일지도 모르고.

<고스트마스터>는 첫 장면부터 일본 청춘학원멜로를 저격해 웃음을 유발한다. 폴 영 감독은 “예컨대 주인공들이 서로를 부둥켜안고 ‘너를 죽을 때까지 놓지 않을 거야’ 같은 닭살 돋는 대사를 치는 경우가 종종 나오지 않나. 그래서 ‘좋아, 정 그렇다면 문자 그대로 숨 넘어갈 때까지 딱 붙어있게 해 주지’ 하는 심정으로 연출해 보면 재미있을 것 같았다”고 말했다. 사진: 주식회사SDP(SDP, Inc.) 제공

홍상현 :

단도직입적으로 말하면, <고스트마스터>는 사람들에게 주목을 받을 수밖에 없는 작품이다. 기획 자체가 신진 크리에이터의 발굴과 육성을 위한 경연인 TCP(TSUTAYA Creator‘s Program)에서 준우승을 거두었기 때문이다. 다만, 이런 기획을 프로듀서 등에게 제안하지 않고, 직접 경쟁 프레젠테이션에까지 나서게 된 계기가 궁금하다.

폴 영 :

그때껏 제가 만난 프로듀서들이 과연 제 오리지널 기획(그래, 대인기의 소녀만화 원작도 아니고, 어디서 굴러온 말 뼈다귀인지 알 수 없는 젊은 놈의 머릿속에서만 존재하는 오리지널 기획. 사람에 따라서는 이를 ‘망상’이라 부른다. ※ 감독 본인의 설명)을 현실화 시켜줄 수 있을까 생각해봤는데, 전혀 그렇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에 비해 TCP는 “재미있기만 하면 영화화시켜주겠다”는 심플함에 끌려 응모했다.

 

홍상현 :

당신에 대한 아무 사전 정보 없이 <고스트마스터>를 본 뒤, 당신의 프로필을 확인하는 사람들은 무척 놀랄 거다. 영화에 셀 수도 없이 등장하는 80년대 할리우드 호러영화 오마주를 보고, 당신이 분명 캘리포니아의 비디오대여점에서 꽤 오래 아르바이트를 한 경력의 미국인 아저씨 일 거라 생각할 테니까. (웃음) 어쨌든 아무리 봐도 하루 이틀에 형성된 ‘소양’이 아니다. 무척 오랜 시간에 걸쳐 엄청나게 많은 영화를 본 것 같은데.

폴 영 :

도쿄 이케부쿠로에 신문예좌(新文藝坐)라는, 신작 영화 한 편의 반값에 과거의 명작 영화 두 편을 볼 수 있는 영화관(재개봉관)이 있다. 그 영화관이 바로 제 스승이었다. 대학시절에 본 '나카지마 사다오 감독 특집' (후카사쿠 킨지와 함께 회자되는 갱스터무비의 거장)과 '페데리코 펠리니 특집'이 제게 영화의 길로 나가야겠다는 생각을 심어주었지. 물론 할리우드 호러영화도 잔뜩 봤다. 그 극장의 가르침은, 조금 과장을 곁들여 말해보면 “때로는 픽션이, 진실보다 진실을 비쳐준다”는 것이었다.

단순히 패러디의 소재로서 재미있어하는데 그치지 않고, 언젠가 영화를 만들 기회가 주어진다면 저를 길러준 그 영화들에 반드시 보답하고 싶다는, 그렇게 바로 그 신문예좌에서 20XX년 쯤 상영될만한 영화를 만들고 싶다는 생각이 있다.

<고스트마스터>에서 사방에서 구박을 받는 걸로 묘사되는 주인공(미우라 타카히로의 이름은 ‘구로사와 아키라’, 영화촬영 현장의 조감독이다. 영화업계의 결코 낙관적이지 않은 상황을 목전에 두고도 ‘괜찮아, 우리에게는 구로사와 아키라가 있으니까’ 라면서 과거의 영광에 정신적으로 의존하는 업계의 경향을 풍자하려는 설정이다. 사진: 주식회사SDP(SDP, Inc.) 제공

홍상현 :

뭔가, ‘거리에서 영화를 배운 소년의 금의환향’같은 감동이 있다. 그럼 다음 이야기. <고스트마스터>에는 쿠엔틴 타란티노의 작품이 아니라고 확신할만한 이유가 있다. (웃음) 『파랑새』를 읽는 소녀와 소년의 닭살 돋는 대사, 불치병, 사랑의 라이벌, 무슨 도덕교과서에 나올 것 같은 소리를 퍽이나 감동적이라는 듯 외치는 교사 등, 이른바 ‘청춘학원멜로의 클리셰’를 완전히 산산조각 내 버리기 때문이다. 적어도 한국, 일본, 그리고 타이완 관객들이라면 다들 데굴데굴 구를 거다.

폴 영 :

확실히 말해서, 일본은 만화나 소설원작의 청춘학원멜로영화를 지나치게 많이 만든다. 다들 진즉부터 느끼고 있을 거라 생각하지만. (웃음) 연기자 매니지먼트사나 투자자의 사정 등이 복잡하게 얽혀 독자적으로 진화한 결과, 개중에는 열사병에 걸렸을 때 보는 백주몽(oneirism)같은 결말의 영화가 적지 않다. 그건 그것대로 재미있다 쳐도, 예컨대 주인공들이 서로를 부둥켜안고 “너를 죽을 때까지 놓지 않을 거야” 같은 닭살 돋는 대사를 치는 경우도 종종 나오지 않나. 그래서 “좋아, 정 그렇다면 문자 그대로 ‘숨넘어갈 때까지 딱 붙어있게’ 해 주지” 하는 심정으로 연출해 보면 재미있을 것 같았다.

 

홍상현 :

사방에서 구박받는 주인공(미우라 타카히로) 이름이 무려 ‘구로사와 아키라’다. 필자 개인적으로는 좀 시원한 느낌도 있었다. 물론 불세출의 예술가지이지만 타계하신 게 벌써 21년 전인데 여태 일본영화라면 구로사와가 전부인 줄 아는 사람이 수두룩하니까.

폴 영 :

제 말이! 그리고, 그건 일본에서도 마찬가지다. 영화업계의 결코 낙관적이지 않은 상황을 목전에 두고도 ‘괜찮아, 우리에게는 구로사와 아키라가 있으니까’ 라면서 과거의 영광에 정신적으로 의존한단 말이지. 구로사와 아키라의 ‘유산(legacy)’은 도리어 애니메이션과 미국영화에 계승되었는데도. 사방에서 깨지는 구로사와 아키라라는 이름의 조감독도, 100만 번 카피된 것 같은 청춘학원멜로도 일본영화계의 현실을 풍자하는 코미디에서 표현할 수 있는 요소라고 생각한 결과다.

폴 영 감독에게 영화란 “자신을 두 동강 내버리는 존재”이다. “영화에 손을 대다 보면 창작의 기쁨과 괴로움, 희망과 절망, 위대한 작품들에 대한 동경과 체념 등 서로 정 반대편에 서있는 양극단을 끊임없이 오가는 신세가 되기 때문”이다. 한편, 주인공과 똑같은 디자인의 티셔츠를 입고 있다는 대목에서 보는 이들은 다시 한 번 '빵' 터질 수밖에 없다. 사진: 주식회사SDP(SDP, Inc.) 제공

홍상현 :

<고스트마스터>의 장르는 당신이 제안한 바에 따르면 “열혈 호러 코미디”이다.

폴 영 :

작품의 기획 초기에 제가 제안했다. 영화에 강한 애정을 가지고 있던 사람들이 일본영화계의 가혹한 현실 때문에 열정을 잃고 증오 속에서, 그야말로 좀비처럼 영화를 만들고 있다. 이렇듯 ‘기이하기가 실로 호러영화 같은 상황’에서, 생명의 위협을 경험하는 가운데 영화에 대한 열정을 되찾아간다는 내용의 이야기를 만들고 싶었다.

 

홍상현 :

뭔가 ‘본질’에 관한 이야기를 할 수 있을만한 분위기가 무르익었다. 여기서 다소 포괄적이지나, 궁극적이라 할 수 있는 질문을 던지겠다. 당신에게 영화란 무엇인가?

폴 영 :

저를 두 동강 내버리는 존재?

영화에 손을 대다 보면 창작의 기쁨과 괴로움, 희망과 절망, 위대한 작품들에 대한 동경과 체념 등 서로 정 반대편에 서있는 양극단을 끊임없이 오가는 신세가 된다. 사랑하기 때문에 미워할 때도 있다. 그러나 미워하는 것은 곧 사랑하기 때문이라고도 생각한다. 이는 <고스트마스터>의 내용과도 통한다.

폴 영 감독은 아루미 리코(액션배우가 가업인 주인공을 연기하는 그녀의 손에 들린 것은 무기로 사용할 수 있을 정도로 얼어버린 단팥 맛 아이스 바)를 비롯한 <고스트마스터>의 주연배우들을 높은 평가한다. 일단 촬영이 이루어지는 동안 웃지 않았기 때문이다. 한편, 카메라가 돌고 있는데 끝내 웃음을 터뜨려 NG를 낸 유일한 인물이 있었으니, 다름 아닌 영 감독 자신이었다. 사진: 주식회사SDP(SDP, Inc.) 제공

홍상현 :

<고스트마스터>라는 작품은, 물론 슬래셔(slasher)의 요소를 가지고 있지만, 그것을 상쇄할 정도로 엄청난 코미디의 요소 또한 갖추고 있다. 배우들이 웃느라 NG를 내는 상황은 없었나? (웃음)

폴 영 :

다들 정말 멋지게 해냈다. 촬영이 이루어지는 동안 웃지 않았다는 점 한 가지만 놓고 보더라도. (웃음) 물론 쉽지 않았다. 베테랑들이 너무 상상을 초월한 연기를 보여주니까 어떤 배우는 제게 “일단 연기를 하면서 웃음을 참기기 쉽지 않았거니와, 그들의 연기력을 눈앞에서 지켜보다 패배감을 느끼는 등 여러 가지 힘든 촬영이었다”고 하더라. 참고로, 카메라가 돌고 있는데 끝내 웃음을 터뜨려 NG를 냈던 인물은 바로 저다. (웃음)

 

홍상현 :

<고스트마스터>는 “열혈 호러 코미디”인 동시에 필름메이커영화이기도 하다. 오직 경험을 통하지 않고는 표현할 수 없는 촬영현장의 수많은 디테일이 반영되어 극의 전개나 웃음을 위한 장치로 기능하기 때문이다. 다만, 영화를 만드는 사람의 이야기는 보편적인 관심을 모으기 어렵다는 면도 있는데 리스크를 감수할만한 이유가 있었나?

폴 영:

이 영화는 ‘억압의 경험’을 가진 이들의 이야기다. 그런 그들이 다시 한 번 열정을 되찾아가는 과정을 그린. 여기에는 분명히 ‘보편성’이 있다고 생각했다. 억압 속에서 열정이 시들어가는 일은, 우리 모두가 언제 어디서든, 수도 없이 경험할 가능한 상황이니까. 또, <고스트마스터>는 말씀하신대로 분명한 “필름 메이커 영화”이며 인용도 많이 등장하나 ‘덕후’ 전용의 닫힌 영화로 만든 작품은 아니다.

<고스트마스터>에는 80년대 할리우드 호러영화의 숱한 오마주가 등장한다. 그러나 레퍼런스가 되는 작품에 대해 알고 있을 필요는 없다. 어차피 영화 속에서 제시되는 상황 자체만으로 웃음을 자아내기에 충분하기 때문이다. 사진: 주식회사SDP(SDP, Inc.) 제공

“클래식과 새로움이 카오틱(chaotic) 속에 동거하는, 기발한 작품입니다. <고스트마스터>라는 제목의 영화에 조금이라도 흥미를 갖고 계시다는 시점에서, 당신은 이미 극장에서 이 영화를 체감해야 할 타입이신 겁니다. 정말이라니까요?! (웃음) 거짓말 같은 사건이 꼬리를 물지만, 동시에 영화계의 한구석을 무대로 하는 청춘영화라고도 할 수 있어서, 아무쪼록 영화 보는 식견이 높기로 유명하신 한국 관객 여러분의 반응을 꼭 들어보고 싶습니다. 늘 여러분을 깜짝 놀라게 할 작품을 만드는 감독이 되겠습니다.”

한국 관객에게 보내는 메시지와 덧붙여, 차기작 소개를 부탁해 볼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능력 있는 영화작가들은 보통 ‘나’에 대한 성찰을 끝낸 뒤, 본격적으로 ‘세계’에 대한 이야기를 시작하니까. 하지만 굳이 질문을 덧붙이지 않았다. 왠지 미리 알아버리면 즐거움이 덜해질 것 같아서. 왜 아니겠나. 지금 이 순간에도 그의 머릿속에서 세상에 나오기를 기다리는 시나리오가 포트녹스의 금괴만큼이나 많을 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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