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교안 대표가 기도하면 비가 올까

  • 기자명 김우재
  • 기사승인 2019.06.24 08: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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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인이 종교계에 잘 보여야 하는건 당연한 일이다. 무종교인이 한국에서 한번도 대통령이 된 적이 없다는건, 종교계가 가진 표를 의식하는 정치인들이 어떤 종교에던 귀의했기 때문이다. 한국사회에서 가장 영향력이 막강했던 종교는 불교였으나, 이제 그 누구도 개신교 세력의 강대함에 의문을 품지 않는다. 그리고 한국의 보수 기독교계는 언젠가부터 우파 정당과 긴밀하게 공조하고 있다.

 

정치인이 교회에서의 발언으로 물의를 빚은 적이 몇 차례 있다. 그 중 하나는 재판 중인 이명박이다. 그는 서울 시장으로 재직하던 당시, 서울을 하나님께 봉헌하겠다는 발언으로 여론의 도마에 올랐다. 소망교회 장로였던 그와 교계의 연결고리 때문에, 당시 불교계는 상당히 긴장하기도 했다. 이명박 장로는 교계의 표를 이용하기 위해, 개신교 세력을 이용했지만 적어도 기복신앙에 가까운 발언으로 물의를 빚진 않았다. 

 

합리적으로 국정을 돌봐야 할 대통령이, 개인적인 차원을 넘어 공공의 영역으로 기복신앙을 끌어들이면 안된다. 사이비종교의 교주였던 최태민과의 관계로 시작한 박근혜의 신앙생활은 최순실에 의한 국정농단으로 마무리되었다. 최근 밝혀진 최순실과 박근혜의 대화 녹음 파일은, 사이비종교에 세뇌당한 박근혜가 얼마나 꼭두각시처럼 국정을 농단했을지 여실히 증명한다. 이제야 그가 대통령 시절 환단고기의 한 구절을 공식적인 자리에서 인용하고, 혼이니 기운이니 하는 말로 포장했던 배후가, 사이비종교에서 유래한 비과학적 기복신앙이라는 게 밝혀졌다. 정치권력이 종교적 광신, 특히 기복신앙에 노출된 국가는 위험하다.

 

개신교는 수 많은 이단의 뿌리인 만큼, 스스로를 정통 종교로 인식하는 몇 안되는 종교다. 정통 종교의 기준이 무엇인지는 잘 모르지만, 정통 개신교에선 기복신앙을 인정하지 않는다. 황교안 새누리당 대표는 독실한 기독교인으로 잘 알려져 있다. 최근 그가 2018년 12월 경기도 용인의 한 교회 집회에서 한 발언이 알려졌다. 그는 자신이 기도로 비를 내리게 했다고 말한다.

 

2018년 12월 16일 경기도 용인 영통영락교회에서 발언하는 황교안 전 총리. 유튜브 캡처. 시사저널 재인용

 

 

"내가 2015년 6월18일에 총리가 됐는데, 당시 가뭄이 심했다. 봄에 시작돼 가을까지 계속됐다. 그래서 내가 어떻게 했겠나. 가뭄을 극복해 달라고 기도를 시작한 것이 2015년 10월25일이다. 내가 다니던 교회 성도들에게도 같이 기도하자고 부탁했다. 내가 선봉에 섰다. 2주가 지나자 하늘의 문이 열려서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기도해서 비가 왔다. 총리까지 기도했더니, 하나님께서 응답하신 거다. 국정에 임하고 있는 사람들이 기도하니 하나님이 비도 내리게 하셨다. 1년 내내 안 오던 비가 기도를 시작한 지 2주 만에 온 것이다."

 

기도의 효과에 대한 역사적 논란들

한 국가의 제1야당을 이끄는 정치지도자가, 가뭄 극복을 위해 기도를 청한건 이상한 일이 아니다. 하지만 자신과 교인들의 기도 '때문에' 비가 왔다고 믿는건 문제가 될 수 있다. 이미 우리는 기복신앙에 조종당한 정치인이 국정을 어떻게 농단할 수 있는지 경험했기 때문이다. 이 증언이 사실이라면, 위험하다. 하지만 정말 기도가 비를 내리게 할 수 있지 않을까? 과학은 근거로 이야기하는 법이다.

 

1872년 이름을 감춘 저자 -훗날 외과의사인 헨리 톰슨 Henry Thompson으로 밝혀짐-가 병동, 혹은 병원 하나로 실험을 제안한다. 그는 이 제안을 몇 번이나 지역 신문에 기고할 정도로 진심이었는데, 그의 제안이란 병원의 환자들을 대상으로, 약 3~7년 간 기도가 환자들의 건강에 미치는 영향을 검증하자는 것이었다. 물론 이 제안은 받아들여지지 않았지만, 영국 사회에 큰 논란을 불러 일으킨다.

 

19세기 말, 영국에선 과학자라는 전문직업이 제도권으로 편입하고 있었고, 이들 과학자들은 당시 영국사회 지식인의 주류였던 성직자들의 지위에 도전하려 했다. 톰슨의 제안은 바로 이런 분위기에 기름을 부운 꼴이 됐다. 기도의 효과를 검증하자는 톰슨의 제안은, 지식인들의 논쟁으로 번져, 기독교 자유당의 매튜 아놀드 Matthew Arnold와 로버트 시실리 Robert Seeley, 존경받던 중산층 불가지론자 토머스 헉슬리 T. H. Huxley 등과, 세속적 무신론자 조지 홀리오크 George Holyoake 등을 전장으로 끌어들인다.

 

1870년대 영국엔 과학자라는 직업이 눈에 띄게 약진 중이었고, 이들은 자연신학에 맞선 전쟁을 벌이고 있었다. 당시까지도 자연신학은 주류 우주론으로 인정받았고, 윌리엄 페일리 William Paley의 <자연신학>은 대표적인 저술이었다. 톰슨의 제안을 기점으로 특별한 갈등 없이 지내던 과학자와 사제들은 라이엘의 지질학과 다윈의 진화론을 두고 치열한 논쟁을 벌이기 시작한다. 그 유명한 헉슬리와 윌버포스 주교 사이의 원숭이 논쟁도 이때 벌어진 것이다. 이 전쟁으로 성직자들로 구성된 학파인 메타피지칼 소사이어티가 쇠퇴하고, 과학자들은 새로운 계급으로 영국사회에 등장하게 된다. 

 

특히 지구 온난화를 처음 증명한 존 틴들 John Tyndall은 급진적인 주장을 했다. 그는 1874년 벨페스트에서 열린 영국과학진흥협회 의장 취임연설에서, 모든 종교에 기반한 우주론은 과학에 종속되어야 한다고 선언한다. '벨페스트 어드레스'로 알려진 이 문헌에서 그는, 에피쿠로스에서 다윈에 이르는 유물론의 발전을 해설하고(이 자리에 마르크스가 참석했을 수도 있다는 주장도 있다), 이제 자연신학이 아닌 과학이 우주론을 설명할 유일한 지위를 가진다는 의견을 피력했다(기도의 효과에 대한 역사적 접근은 다음 논문을 참고하는 것이 좋다. Turner, F. M. (1974). Rainfall, plagues, and the Prince of Wales: a chapter in the conflict of religion and science. Journal of British Studies, 13(2), 46-65.).

 

기도의 효과를 과학적으로 검증해 보자는 톰슨의 제안, 그리고 그 제안으로 촉발된 지식인들의 논쟁은, 역설적으로 영국사회에서 과학자의 지위를 격상시키는 계기가 됐다. 물론 톰슨의 제안이 잘 설계된 실험으로 수행된 적은 없지만, 이미 영국교회는 기도의 효과를 입증하기 위한 다양한 시도를 해왔고, 이에 대한 자료를 보유하고 있었다. 기도가 건강에 미치는 영향이 없다는 결론을 내린 건 다윈의 사촌이자, 통계학의 아버지 프랜시스 골턴 Francis Galton이다. 그는 1872년 <기도자의 효과에 대한 통계적 접근>이라는 논문을 통해, 영국교회가 기도의 효과를 검증했던 자료들에는 기도의 효과에 대한 통계적 유의성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결론내렸다(Galton, F. (2012). Statistical inquiries into the efficacy of prayer. International journal of epidemiology41(4), 923-928.). 예를 들어, 아래 표는 사제의 평균연령이 다른 어느 직업과도 통계적으로 더 길지 않다는 증거로 골턴이 제시한 것이다. 평생 사제처럼 열심히 기도를 하는 직업은 없을 테니 말이다.

 

Galton, F. (2012). Statistical inquiries into the efficacy of prayer. International journal of epidemiology, 41(4), 923-928. 에서 인용

 

비오는 날씨는 공화당에 유리하다

나는 G20 국가의 제1야당 대표가, 자신의 기도 때문에 1년동안 내리지 않던 비가 2주 만에 내렸다는 생각을 하리라 꿈에도 믿지 않는다. 그런 정치지도자를 제1야당의 대표로 뽑은 당원들의 상식을 농락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대신 나는 황교안 대표가 이 발언을 통해 몇 가지 정치적 목적을 달성하려 한다고 생각한다. 그 중 하나는 이렇게 기도를 통해 비가 내리게 한다면, 투표율을 저하시켜 우파 정당의 승리에 도움이 될 수 있다는 과학적 분석에 기반할지 모른다. 미국 선거에서 밝혀진 바에 의하면, 1인치의 비는 1%의 투표율을 깍는다(Gomez, B. T., Hansford, T. G., & Krause, G. A. (2007). The Republicans should pray for rain: Weather, turnout, and voting in US presidential elections. The Journal of Politics, 69(3), 649-663.). 즉, 황교안 대표가 마음대로 기도를 통해 비를 내리게 할 수 있다면, 그는 새누리당의 총선 승리에 1%, 아니 폭우를 내릴 수 있다면 10%까지도 기여할 수 있다. 이 경우 25.4cm의 비가 내려야 한다.

 

두 번째 가능성은 황교안 대표가 고도의 전략으로 사회적 통합을 꾀하는 경우다. 기우제의 역사는 오래되었지만, 여전히 농촌에서는 기우제를 지낸다. 기도나 기우제로 비가 오지 않는다는걸 아는 사람들도 기우제를 지내는 이유는, 마을 기우제가 사회통합적 성격을 갖기 때문이라는 설명이 우세하다(이기태. (2007). 마을기우제의 구조와 사회통합적 성격. 한국민속학, 46, 265-301.). 즉, 교회 신도들과 기우제와 비슷한 집단 기도를 실행함으로써, 황교안 대표는 우리 사회의 통합을 꾀하는 중인지도 모른다. 조선시대 가뭄이 들면, 왕이 직접 기우제를 지내곤 했다. 조선시대 왕이, 기우제를 지내지 않아 비가 오지 않았다고 생각했다고 믿기는 어렵다. 하지만 왕은 기우제를 지내야 한다. 왜냐하면, 기우제를 지내며 가뭄에 고통받는 백성의 아픔을 함께 해야, 자신의 정치적 정당성이 보장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기우제문엔 왕이 가뭄에 대해 스스로를 꾸짖는 대목이 있다. 황교안 대표의 기도에, 스스로를 꾸짖는 기도문이 있었을지 궁금하다. 한 나라의 대통령이 되려는 정치인이라면, 그 정도의 공감능력은 필요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권근이 쓴 기우제문을 옮긴다.

 

기우제문(祈雨祭文)

 

아하나님 위엄으로 임하시고 맑고밝은 멋진형상 드러내어

온인민이 쳐다보고 만물들을 사랑하며 크고작음 상관없이

상서재앙 내리시되 찬건덜고 빈건채워 알차지는 못한저를

백성들과 농사지며 덕은없고 중한책임 어우르고 꾸짖으소

빈번하게 가뭄들어 백성들은 고통속에 이제올해 여름들어

또때양볕 폭염맞아 한발재난 심한데다 비렴풍신 합세하여

더운기운 부채질에 더위불꽃 천지이고 밭이랑은 먼지날고

내와못은 물이없고 많은풀은 바싹말라 짐승들도 고통받고

불쌍토다 저의백성 장차무얼 권할건가 죄는실로 내게있네

근심걱정 쓴가슴에 흉년기근 거듭닥쳐 망할시점 경각이라

시름에찬 신음소리 마음마다 넘치나니 오하나님 은혜로이

편안하게 잘길러서 어리석은 백성들은 죄없으니 도우소서

어찌차마 이리하여 갖은고통 못이기고 온갖농사 다마르고

삶고찌는 솥이로니 오오비여 애탄소리 뭇입들이 같은바라

죄는실로 내게있네 나의백성 견디려나 뽕밭에서 기도하며

여섯가지 일을추려 두손모은 정성으로 명맥있길 염려하니

저의마음 근심우려 어찌모두 말하리요 사직종묘 묘사제사

신이연루 불참없고 제물폐백 극진하니 신이아니 흠향하랴

총명함은 나로부터 이에구벼 살펴주오 한번비를 뿌려주오

만물들을 적셔주오 잠깐기운 이사이에 풍성풍년 점치오니

여러번을 굽히오니 나의정성 믿어주고 값진단비 내려주소

넉넉하게 흡족하게 곡식들에 여유있고 비단길쌈 여유있게

홀애비도 수급되고 젖고젖어 길러지리 하나님뜻 받들어서

길이백성 보호하고 해해마다 제사갖춰 지극정성 다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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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우재, 과학뉴스를 의심하는 과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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