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갱의 원형은 '양고기 수프'인가 '양의 선지'인가

  • 기자명 김현경
  • 기사승인 2019.07.11 09: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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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갱의 원형을 찾아서> 시리즈

팥과 한천 등을 재료로 해서 만들어지는 양갱은 이제는 우리에게 제법 친숙해진 과자이다. 예를 들면 영화 <설국열차>가 개봉하였을 때는 영화 속에 등장하는 단백질 블록이 양갱과 닮았다고 해서 주목을 받는 해프닝이 일어났다. 또한 양갱을 전문으로 파는 상점이 등장해 인기를 끌기도 했고, 2017년에는 김정숙 여사가 문재인 대통령의 취임 100일을 맞아 청와대 출입기자단에게 직접 만든 양갱을 대접하였다고 화제가 된 바 있다. 

 

김정숙 여사가 만든 양갱. 출처: 청와대 인스타그램

 

그런데 양갱은 한자로 羊羹이라고 표기한다. 양 양(羊)에 국 갱(羹), 즉 양고깃국이라는 뜻을 가진 단어이다. 양고기는 조금도 들어가지 않는 과자 이름에 왜 이런 이름이 붙게 되었을까. 이러한 의문에 대해 <한겨레21> 제445호(2003년 2월 13일 발행)에 실린 <김학민의 음식이야기: 양고기> 편에서는 다음과 같이 적고 있다.

 

이처럼 양갱은 고대 중국에서 사람들이 가장 좋아하는 음식이었다. 그리고 중국 내 회족들은 양의 피를 이용해 수프를 만들어 즐기면서 이것을 또한 양갱이라고 했다. 16세기에 일본인들이 팥앙금으로 달콤한 과자를 만들었는데, 색깔이 수프와 비슷하고 양고기 국처럼 그 과자의 맛 또한 최고라고 해 과자 이름을 양갱, 곧 요오깡이라고 했다.
-한겨레21 2003년 2월 13일자 '양갱 속엔 양이 없다' 중 

 

이 내용은 한국어 위키백과 ‘양갱’ 항목(2019년 6월 23일 열람)에도 인용되어 있다. 한편 나무위키 ‘양갱’ 항목(2019년 6월 23일 열람)에서는 조금 다른 이야기를 하고 있다. 양갱이라는 음식이 춘추전국시대부터 이미 ‘양의 고기와 피 등을 이용해서 선지처럼 굳혀서 먹는 것’이었고, ‘이걸 보고 고기를 먹지 못하는 승려들이 팥을 넣고 비슷하게 졸여 만들어 먹기 시작했고, 일부 승려들이 일본으로 전파하여 지금은 일본에서 더 다양하게 발전한 음식이 되었다’는 것이다.

이상의 내용으로 보았을 때 양갱의 기원과 유래에 관하여 엇갈리는 설명을 다음과 같이 정리해 볼 수 있다.

1. 양갱의 원래 형태

가. 양고기를 넣은 국 또는 양의 피를 이용한 수프

나. 양의 고기와 피를 이용해서 선지처럼 굳힌 것

 

2. 과자 이름인 ‘양갱’의 유래

가. 양갱 국물과 색깔이 비슷하고 양갱처럼 최고의 맛이라서

나. 양갱과 비슷한 형태로 만들었기 때문에

 

과연 어느 쪽이 맞는 이야기일까. 사실 양갱 과자의 어원에 대해서는 일본 내에서도 몇 가지 설이 제기되어 왔는데, 그 중에서도 도라야 문고(虎屋文庫)의 연구자들이 내놓은 연구 성과가 설득력이 있다고 사료되어 이를 바탕으로 위의 문제를 검토하고자 한다. 덧붙이자면 도라야 문고는 한국에서도 양갱 하면 떠오르는 대표적인 가게로 유명한 수백 년 역사의 과자점 도라야(虎屋)가 설립한 화과자 자료실이다.

 

 

우선 중국의 양갱에 대하여 살펴보면, 갱(羹)이란 국에다 쌀가루나 곡물의 가루를 넣어서 걸쭉하게 만든 것을 말한다고 한다. 즉, 양갱은 양고기로 만든 걸쭉한 국이라고 할 수 있다. 춘추전국시대의 경서와 역사서 등에 이미 갱과 양갱이라는 단어가 나타난다. 안타깝게도 구체적인 조리법을 알 길은 없지만, 전국시대의 일화를 기록한 『전국책(戰國策)』의 중산책(中山策)에는 ‘내가 한 그릇 양갱으로 나라를 망하게 했구나(吾以一杯羊羹亡國)’라는 문장이 나온다. 이를 통해서 양갱이 잔이나 대접에 담긴 국물 형태의 음식임을 짐작할 수 있다.

춘추전국시대는 그렇다 치더라도 혹시 이후 시대에는 양의 피를 섞는다든지 선지 같은 음식이 된 게 아닌가 생각할 수 있다. 13세기의 기록에는 양혈분갱(羊血粉羹), 즉 양의 핏가루를 재료로 한 국도 등장한다. 그러나 중국의 양갱은 어디까지나 양고기를 사용한 국의 형태를 한 요리였고 선지처럼 굳힌 고체 형태를 가리키는 말이 아니었다. 한참 후대의 기록이지만 청나라 때의 음식 관련 서적인 『수원식단(隨園食單)』에는 양갱을 만드는 방법이 적혀 있는데, 삶아서 익힌 양고기를 깍둑썰기하여 닭육수에 넣고 다시 삶은 뒤 죽순이나 버섯, 마 등을 넣어 함께 조리한 요리라고 한다.

양갱의 기원을 소개하는 글 중에는 회족이 양의 피를 수프로 만들어 먹으면서 이를 양갱이라고 하였다든지, 북방의 유목민들이 먹던 양의 선지에도 양갱이라는 말이 붙었다는 이야기를 전하는 것이 보인다. 물론 당시 그 사람들이 양을 주로 섭취하면서 그러한 요리를 즐겨 먹었을 가능성은 높아 보이지만 그런 음식을 ‘양갱’이라고 불렀다는 문헌상의 근거는 찾기가 어렵다. 따라서 선지인 양갱과 비슷한 형태로 만들었기 때문에 양갱이라는 이름이 붙었다는 설은 전제부터 허물어진다.

그렇다면 양고깃국의 국물 색깔과 비슷하고 양고깃국 같은 최고의 맛이라서 과자에 ‘양갱’ 이름을 붙였다는 설에 손을 들어줘야 하는 것일까. 문제는 그렇게 간단하지 않다. 일단 최고의 맛 운운하는 부분은 사료적인 근거가 있지는 않은 듯하다. 반면 양고깃국의 국물 색깔과 양갱 과자의 주재료인 팥의 색깔이 유사하다는 점이 ‘양갱’이라는 명칭의 연결고리라는 것은 몇몇 연구자들도 추정하고 있는 바이다. 단, 이름이 색깔이 유사성에서 비롯되었다는 것은 그렇다 치더라도 과자 자체는 그러면 어디서 유래했는가 하는 의문이 남게 된다.

그런데 그 과자의 원형도 사실은 중국의 양고깃국이었다고 하면 여러분은 믿을 수 있는가. 앞서 인용한 글에 따르면 일본에서는 16세기에 팥앙금으로 과자를 만들었고 이를 양갱이라 불렀다고 하는데, 일본의 문헌상에는 이미 14세기부터 양갱이라는 말이 등장하고 있다. 일본의 중세 시대에는 편지를 쓰거나 문장을 만들 때 필요한 단어, 구절, 예문 등을 수록하여 일종의 서민용 교과서 역할을 하던 오라이모노(往來物)라는 서적류가 존재했는데, 그러한 오라이모노 중 하나로 14세기 중엽에 성립된 『데이킨오라이(庭訓往來)』라는 책이 있다. 여기에 ‘순양갱(笋羊羹)’과 ‘사탕양갱(砂糖羊羹)’, 즉 죽순 양갱과 설탕 양갱이라는 말이 등장하고 있다. 게다가 같은 책에는 양갱 외에도 백어갱(白魚羹), 별갱(鼈羹), 해로갱(海老羹) 등 여러 종류의 ‘갱’이 함께 보인다. 양 뿐만 아니라 물고기, 자라, 새우를 재료로 하는 국이 일본에도 함께 들어와 있던 것일까. 양갱의 명칭 유래를 살펴보기 위해서는 바로 14세기를 전후한 시기에 있었던 중국 음식과 일본 음식 사이의 연결고리에 주목해야 한다. (다음에 계속)

 

<참고문헌>

株式會社虎屋 虎屋文庫 編, 『和菓子展 「羊羹物語」』, 虎屋文庫, 1991

靑木直己, 「羊肝餠と羊羹: 日中食物交流史の一コマ」, 『和菓子』 20, 2013

 

*필자 김현경은 일본 고대사 및 중세사를 연구하고 있으며, 최근에는 신분과 계층, 혈통과 세습 등에 관심을 갖고 있다. 서울대학교 동양사학과 대학원과 일본 교토대학 대학원에서 각각 석사학위를 받았고, 교토대학 대학원 박사과정을 이수하였다. 현재 일본 도쿄국립박물관에서 어소시에이트 펠로우로 일하고 있다. 논문으로 <원 근신(院近臣)과 귀족사회의 신분질서: 실무관료계 근신을 중심으로>(<일본역사연구> 46, 2017)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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