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야구에서 지명될 권리와 지명되지 않을 권리

  • 기자명 최민규
  • 기사승인 2019.06.28 13: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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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G 트윈스 신인 사이드암 투수 한선태(25)는 6월 25일 잠실구장 SK전에서 1군 데뷔전을 치렀다. 3-7로 뒤진 8회초 마운드에 올라 안타와 몸에맞는공 하나를 내주고 무실점으로 이닝을 마쳤다. 이 경기로 한선태는 이름 석 자를 한국 프로야구사에 남겼다. ‘비선수 출신’의 사상 최초 1군 경기 등판이었다.

JTBC 방송화면 갈무리

여기서 ‘선수 출신’은 아마추어시절 대한야구소프트볼협회(이하 협회)에 소속됐는지가 기준이다. 한선태가 졸업한 부천공고는 협회에 등록된 야구부가 없었다. 세종대 시절엔 야구부 활동을 했다. 당시 세종대 야구부엔 중고교 시절 선수 출신들이 많았지만 역시 협회 산하인 대학야구연맹 소속이 아니었다.

 

KBO리그에서 신인선수는 드래프트를 거쳐 첫 계약을 하는 게 원칙이다. KBO규약 106조는 “구단은 신인 드래프트 절차에 따라 지명한 신인선수에 한해 선수계약을 체결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그 외의 신인선수와는 계약이 불가능하다. 드래프트를 거치지 않는 육성선수 입단이라는 방법은 있다. 하지만 육성선수는 구단당 최대 65명인 선수 정원에 포함되지 않는다. ‘정식 선수’가 아닌 셈이다. 미국 프로야구에서 40인 로스터에 포함되지 않은 선수는 메이저리거가 아닌 것과 마찬가지다.

 

2017년까지는 협회 소속 선수들만 KBO리그 드래프트 대상이었다. 2018년 1월 30일에야 규약 개정***으로 협회 미등록 선수도 드래프트 지명 대상이 됐다. 이에 따라 한선태는 지난해 9월 5일 서울 중구 웨스틴조선호텔에서 열린 신인 드래프트에서 LG에 10라운더로 뽑힐 수 있었다.

 

***제110조 [2차지명] ⑤ 대한야구소프트볼협회에 등록되지 않은 자 중 KBO가 정한 시행세칙에 따라 참가자격을 갖춘 선수가 구단에 입단하고자 하는 경우 제4항 소정의 절차에 따라 2차지명에 참가해야 한다.

 

한선태의 데뷔전은 야구팬들의 열렬한 지지를 받았다. 대만 언론에서 기사로 다뤄지기도 했다. 2018년 규약 개정은 한선태와 같은 도전을 가능케 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프로야구 선수가 될 의지와 능력이 있는 선수가 제도 때문에 뜻을 이루지 못하는 건 바람직하지 않다.

JTBC 방송화면 갈무리

하지만 현행 KBO규약의 지명제도에는 또다른 문제가 있다. 한선태와 같은 비선수 출신은 최근까지 드래프트에 참가할 권리가 없었다. 그리고 선수 출신에겐 지금도 '참가하지 않을 권리’가 없다. 

 

드래프트는 선수 선발 기회를 일정 기준에 따라 여러 구단에 공평하게 배분하는 제도다. 연원은 1892년 미국 프로야구로 거슬러 올라간다. 이해부터 메이저리그 구단들은 마이너리그를 D에서 A까지 등급을 나눈 뒤 드래프트로 선수를 선발했다. 마이너리그 등급은 원 소속 구단에 지급하는 이적료 액수에 따라 정해졌다. 지금 마이너리그가 싱글A, 더블A, 트리플A 등으로 분류되는 데서 그 흔적을 찾아볼 수 있다. 아마추어 선수 드래프트는 메이저리그가 1965년 처음 채택했고, 일본 프로야구(NPB)도 1965년 시즌 뒤 첫 드래프트를 개최했다. 특정 구단의 선수 독식을 막아 균형잡힌 경쟁을 이루며, 구단의 수요 독점을 실현해 선수 몸값을 낮춘다는 게 드래프트 제도의 기본 취지다.

 

메이저리그와 NPB 드래프트에 참가하는 선수들은 지원서를 작성한다. 일본 고교 야구 선수의 경우 여름 고시엔 대회가 끝난 뒤부터 드래프트 날짜까지 일본고등학교야구연맹에 ‘프로지망계’를 제출한다. 지망계를 제출하지 않았다면 NPB 드래프트 대상에서 제외된다.

 

한국 프로야구에도 비슷한 ‘지원서’가 있다. 프로 구단에 입단을 원하는 고교 선수는 지원서를 KBO로부터 발급받아야 한다. 구단은 지원서와 계약서를 KBO에 제출해 선수 등록을 신청해야 하고 지원서가 첨부되지 않은 계약은 무효다. 그런데 지원서의 발급 시점이 묘하다. KBO와 협회가 맺은 협정서에 따르면 발급 기간은 “매년 1차 및 2차 지명 직후”다. 지명이 이뤄진 뒤에 지원서를 발급한다. 즉, 프로구단들은 지금까지 선수의 지원 여부와 관계없이 아마추어 선수를 지명해왔다. 굳이 협정서에 지원서 제도를 명기한 이유는 선수의 의사를 존중해서가 아니다. 프로와 대학 팀 간 분쟁을 막는다는 취지에서 만들어진 제도다.

 

아마추어 선수가 KBO리그에서 뛰는 걸 목표로 한다면 드래프트 지원서를 쓰느냐 안쓰느냐는 큰 문제가 아니다. 하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도 있다. 선수가 해외 리그 진출을 목표로 할 때다. 이 경우 선수는 KBO리그 소속 구단에서 뛸 의사가 전혀 없음에도, 드래프트에 강제적으로 참가하게 되는 모양새이다.

 

선수의 의사를 묻지 않은 드래프트 제도는 KBO규약이 해외진출 선수에 대해 강력한 징계 규정을 두고 있다는 점에서 문제의 소지가 크다. 규약 107조는 외국 프로구단에 입단한 경력이 있는 선수는 계약 종료 뒤 2년이 지나야 2차 지명을 거쳐 입단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다. 그리고 계약금 지급은 금지되며 최저연봉만 받을 수 있다. 이에 따라 2011년 12월 메이저리거 박찬호는 한화에 입단했을 때 연봉은 당시 최저연봉이던 2400만원이었다. 올해 KT에 입단한 이대은도 최저연봉만 지급받는다. 오랜 마이너리그 경력에 일본 프로야구에서 두 시즌 뛰었고 국가대표 경력도 있는 이대은이 1년 2700만원에 서비스를 제공하는 건 공정과는 거리가 멀다.

 

NPB에서도 지명 구단에 입단을 거부하고 해외 구단과 계약했을 경우 2년 동안 지명 대상에서 제외하는 제도를 두고 있다. NPB 입단 의사를 밝히고도 철회한 선수의 향후 지명 기회를 제한한다는 취지다. 하지만 KBO리그에선 선수의 의사를 묻는 절차 자체가 없다.

 

선수의 동의 없는 드래프트가 법적 분쟁으로 이어진 사례가 있다. 1995년 연세대 투수 임선동은 NPB의 다이에 호크스와 계약에 합의했다. 그러자 4년 전 임선동을 1차 지명선수로 뽑았던 LG 트윈스가 반발했다. 김기춘 당시 KBO 총재는 요시쿠니 이치로 NPB 커미셔너와 만나 “LG의 동의 없는 계약은 승인하지 않는다”는 약속을 받아냈다. 임선동은 LG에만 입단할 수 있는 상황에 몰렸다. 

 

그러자 임선동은 1996년 1월 서울남부지법에 소송을 냈다. 자신이 동의한 바 없는 지명은 효력이 없다는 취지였다. 당시 1심 법원은 임선동의 주장이 옳다고 판단해 LG의 지명권을 무효로 했다. 이 문제는 서울고등법원이 ‘임선동은 LG와 계약하되 2년 뒤에는 원하는 구단으로 이적할 수 있다’는 강제조정을 하는 것으로 일단락됐다. 하지만 선수의 동의를 구하지 않는 프로야구의 현행 지명제도는 여전히 법적으로 폭탄을 안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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