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바마는 정말 김정은에게 정상회담을 간청(begging)했나

  • 기자명 문기훈 기자
  • 기사승인 2019.07.01 16: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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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어제 (30일) 문재인 대통령과 정상회담 직후 공동 기자회견을 가졌다. 기자회견 모두발언에서 트럼프 대통령은 DMZ에서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의 ‘깜짝 회동’이 성사되었음을 공식화하는 한편, 자신의 임기 들어 급속도로 개선된 북미관계에 대한 자랑을 늘어놓았다. 문제의 발언은 전임자인 오바마 전 대통령과 자신을 비교하는 과정에서 나왔다. 다음은 해당 발언 전문이다.

 

“They couldn’t have meetings. Nobody was going to meet. President Obama wanted to meet, and were begging for meetings constantly. And Chairman Kim would not meet with him”. 
오바마 행정부에서는 회담을 할 수 없었습니다. 아무도 만나 주지 않았습니다. 오바마 대통령은 만남을 원했고 끊임없이 회담을 간청했습니다. 하지만 김정은 위원장은 응하지 않았습니다. 출처: 백악관 공식 홈페이지

 

전임자와의 비교를 통해 자신의 치적을 강조하는 것은 트럼프 대통령의 단골 수사 중 하나다. 실제로 트럼프 대통령은 취임 이후 트위터에서 오바마 전 대통령과 힐러리 클린턴 전 국무장관의 이름을 600번 가깝게 언급했다. 이를 두고 미국 언론은 트럼프의 “집착(obsession)", “열등감(inferiority complex)” 을 보여주는 예라고 꼬집은 바 있다.

 

이번 기자회견도 예외는 아니었다. 트럼프 대통령에 따르면 오바마 전 대통령은 김정은 위원장과의 대화를 “간청”했으나 번번히 퇴짜를 맞았고, 그 결과 북미관계를 전쟁 직전까지 악화시켰다. 평화 무드가 진전되어 한국이 “완전히 다른 세상(whole different place)”이 된 데에는 그만큼 자신의 공이 컸다는 주장이다. 많은 국내 언론이 트럼프의 ‘자기 자랑’을 헤드라인으로 선정했다. SBS는 <트럼프 “오바마 행정부 했던 대로 했다면 전쟁 상황 있을 수도”> 제하의 기사를 내보냈고, 국민일보 <트럼프 “오바마 시대 이어졌다면 전쟁하고 있었을 것”>, 서울신문 <트럼프 “오바마때 정책으론 전쟁했을 것” 文대통령 “평화 프로세스 위대한 순간”>도 비슷한 제목을 달았다.

 

하지만 기자회견 직후 전임 오바마 행정부 인사들의 반박이 이어졌다. 오바마 전 대통령은 임기 중 북한과의 대화를 적극적으로 타진한 적이 없으며, 트럼프가 자신의 성과를 부풀리기 위해 ‘거짓말’을 했다는 것이다. 과연 어느 쪽의 말이 사실일까? 국내 언론에서 다루지 않은 전임 정부 인사들의 발언을 조명하여 트럼프 대통령의 주장을 팩트체크해 본다.

출처: 청와대

가장 먼저 트럼프의 주장을 반박하고 나선 것은 오바마 정부에서 국가안전보장회의 부보좌관을 지낸 벤 로즈다. 로즈 전 부보좌관은 현지시간 토요일 (29일) 밤 올린 트윗에서 트럼프 대통령이 거짓말을 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오바마 임기 8년 내내 재직했지만 회담을 추진한 적은 전혀 없었다는 것이다. 다음 날 올린 후속 트윗에서 로즈 전 부보좌관은 “비핵화는 기념 촬영이 아닌 신중한 협상을 통해서만 달성할 수 있다(Photo ops don’t get rid of nuclear weapons, carefully negotiated agreements do)"며 트럼프의 외교 정책은 “실패”라고 비난했다. 이와 같은 반응은 판문점 회동 이후 조 바이든 전 부통령버니 샌더스 버몬트주 상원의원 등 민주당 차기 유력 대권주자들이 내놓은 회의론과 궤를 같이한다. 트럼프가 내년 대선을 앞두고 자신의 정치적 이익을 위해서 쇼맨십을 발휘할 뿐, 실질적인 비핵화 협상에는 관심이 없다는 진보진영의 우려를 대변한다고 볼 수 있다.

 

오바마 정부에서 국가정보국 국장 (DNI)을 지낸 제임스 클래퍼도 트럼프 대통령의 발언 내용을 극구 부인했다. 현지시간 일요일 (30일) 아침 CNN에 출연한 클래퍼 전 국장은 트럼프 대통령의 주장이 “도대체 어디에서 나온 것인지 모르겠다(I don’t know where he’s getting that)"고 밝혔다. 오바마 정부의 대북정책 결정 과정에 여러 차례 참여했으나 오바마 전 대통령이 김정은 위원장과의 회동 의사를 밝힌 적은 “단 한 차례도 없었다(no instance whatever)"는 것이다.

 

여기에 UN 대사와 국가안보보좌관으로 재직했던 수전 라이스도 가세했다. 같은 날 올린 트윗에 트럼프의 기자회견 내용을 공유하며 "허튼소리(horse-sh*t)" 라고 일축했다. 전임정부에 몸담았던 고위급 인사로부터 이런 격한 표현이 나온 것은 다소 이례적이다. 근거 없는 이야기를 정상회담이라는 공적인 자리에서 서슴없이 한 데 대한 반감이 크게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오바마 행정부의 대북 정책 기조는 '전략적 인내(strategic patience)'로 요약된다. 군사적인 대응을 최대한 기피하되 유엔 안보리 차원의 지속적인 경제제재를 통해 북한 정권의 붕괴를 도모하는 접근법이다. 실제로 오바마 대통령은 임기 내내 계속된 북한의 크고 작은 도발에도 최대한 반응을 자제하며 ‘무시’로 일관했다. 북한의 진정성 있는 태도 변화 없이는 협상에 먼저 임할 의사가 없음을 여러 차례 분명히 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추구하는 '최대 압박과 관여(maximum pressure and engagement)'와는 정반대 노선이라 할 수 있다.

 

임기 말 북한이 4차 핵실험을 강행하는 등 도발이 계속되던 상황에서 오바마 전 대통령이 트럼프의 주장대로 물밑에서 “회담을 간청”했을 가능성은 낮다. 좌우 양쪽으로부터 쏟아지는 비판을 감수하면서까지 북한의 태도 변화를 기다렸고, 그 결과 북한의 핵개발을 방치했다고 보는 편이 타당하다. 허풍과 과장을 통해 자신의 주가를 높이는 트럼프 대통령의 전술을 또 한번 단적으로 보여준 예라고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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