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위정보 바이러스’와 싸우는 ‘백신전문가’들이 모였다

  • 기자명 송영훈 기자
  • 기사승인 2019.07.02 11: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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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사, 비영리단체, IT기업, 미디어 스타트업 등에서 허위정보(Misinformation) 혹은 가짜뉴스(fake news)와 싸우는 전 세계 팩트체커들이 한 자리에 모여 팩트체킹의 현재와 미래를 논의하는 국제 팩트체킹 컨퍼런스 <Global Fact-Checking Summit>(이하 Global Fact 6)가 지난 6월 19일부터 21일까지 사흘 동안 남아프리카공화국 케이프타운에서 열렸다. 2014년 영국 런던에서 시작돼 올해로 여섯 번째를 맞은 이번 ‘Global Fact 6’에는 55개국 251명이 참여한 가운데 40개 세션에서 57명의 발표가 진행돼 역대 가장 큰 규모를 기록했다.

 

 

사진 제공 : IFCN

한 단계 더 진보하기 위한 고민들

 

“허위정보(가짜뉴스)와의 싸움은 바이러스와 싸우는 것과 같다. 팩트체크는 백신이다. 허위정보는 다양한 형태의 문제를 갖고 있고 그에 따른 다양한 방식의 해결책이 필요하다.” - Peter Cunliffe-Jones

 

아프리카 지역의 팩트체크 전문기관인 '아프리카 체크(Africa Check)'의 설립자이자 국제팩트체킹네트워크(International Fact-Checking Network)의 상임고문인 피터 컨리프 존즈(Peter Cunliffe-Jones)는 첫 날 기조연설에서 잘못된 정보가 어떻게 사람들의 실제 삶에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는지에 대해 이야기했다. “백신에 대한 잘못된 정보의 증가는 전 세계적으로 홍역 같은 예방 가능한 질병의 발생과 관련이 있으며, 소셜 미디어의 거짓말은 나이지리아와 같은 국가에서 정기적으로 사회적, 종교적 긴장을 유발한다”고 설명했다.

기조연설에 이어 세계 각지에서 모인 팩트체커들이 자신의 경험을 발표하고 고민을 공유하는 시간들이 진행됐다.

특히 첫 번째 쇼우 앤 텔 세션(show & tell session)에서 발표된 두 가지 주제는 현재 전 세계 팩트체커들의 가장 큰 고민을 고스란히 보여줘 관심을 모았다.

미국의 3대 팩트체크 기관 중 하나인 폴리티팩트는(PolitiFact)는 편집자들이 다양한 정치적 진술에 대해 팩트체킹하는 TV쇼 형식의 <What the Fact>를 소개했다.

최근 허위정보와 가짜뉴스는 기존의 (유사)미디어는 물론, 온라인 커뮤니티, SNS 등 플랫폼을 가리지 않고 생겨나고 있다. <What the Fact>는 수용자들에게 더욱 쉽게 팩트체킹 결과물을 전하기 위한 시도이다. 진행자의 능력비중이 크기는 하지만 일반적으로 팩트체킹 결과가 도출돼 수용자에게 전달되기까지 많은 시간이 소요되는 것을 감안하면 속도와 자극에 반응이 빠른 국내 정서와도 어울릴 것으로 보인다.

아르헨티나에서 설립돼 현재는 중남미 지역을 아우르는 팩트체크 기관인 '체케아도(Chequeado)'는 사실 확인 가능한 주장을 뉴스룸으로 자동 전송하는 시스템 ‘체케아봇(Chequeabot)’을 선보였다.

체케아봇은 논쟁적인 지점을 찾아 해당 주장의 근거, 관련 자료의 공식 출처 등의 서비스를 제공한다. 유튜브 영상의 음성을 텍스트로 옮겨주기도 한다.

체케아봇 홈페이지 갈무리

한국의 팩트체킹은 대다수가 국내 주요 언론사들의 일부 조직으로 운영되고 있지만 대부분의 해외 팩트체킹 기관들은 시민단체나 독립언론인 경우가 많다. 넘쳐나는 허위정보에 비해 일반 뉴스보다 더 많은 취재가 필요한 팩트체커들에게 자동화된 팩트체킹프로그램은 항상 가장 큰 관심사이다.

이를 반영하듯 영국의 ‘풀팩트(Full fact)’도 개발이 진행중인 팩트체크 자동화 기술을 선보였다. 각종 미디어와 플랫폼에서 제기된 주장이 자체 데이터베이스에 있는 경우 빠르게 찾아주는데 단순한 판정 여부는 물론 근거가 되는 통계 자료도 제시한다.

이밖에 미국의 IT기업인 ‘팩트스퀘어드(Fact squared)’는 트럼프 대통령을 비롯한 미국 정치인들의 음성, 영상, SNS 기록 등을 자동화된 스크립트로 제공할 수 있는 데이터 베이스를 구축했고, 텍스트로 된 팩트체크 기사를 영상물로 쉽게 만들 수 있는 자동화 기술 ‘루멘5’도 소개됐다.

팩트 체크의 미래로 불리는 ‘팩트 체크 자동화’는 데이터를 보유하고 있는 플랫폼과 밀접하게 연결된다. 방대한 데이터로 필요한 정보를 바로 찾아내는 기술이 기본이 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풀팩트와 체케아도도 현재 구글의 지원으로 후속 개발을 진행중이다.

 

아프리카도 베네수엘라도 ‘허위정보’는 골칫거리

정치, 사회적 배경은 다르지만 모든 나라가 ‘어떻게 하면 허위정보에 더 잘 대처할 수 있을까’라는 같은 고민을 하고 있는 것도 확인할 수 있었다.

사진 제공 : IFCN

70명이 참석한 유럽지역에 이어 두 번째로 많은 60명이 참석한 아프리카 지역 팩트체커들은 ‘비타민C가 바다에서 난다’는 루머를 믿는 지역민들에게 사실을 전달해야 하면서, 다른 지역에 잘못 알려진 아프리카에 대한 정보도 확인해 지적해야하는 이중고에 시달리고 있다.

실제로 영국의 BBC는 지난 2016년 아프리카 청소년 임신 증가에 대해 보도했지만, ‘아프리카 체크’가 가장 신뢰할만한 통계를 통해 확인한 결과, 아프리카의 출생률은 감소 추세인 것으로 나타나 BBC의 보도가 근거 없는 것으로 밝혀졌다.

이탈리아의 한 정치가는 이슬람극단주의테러집단인 ‘보코하람(Boko Haram)이 나이지리아의 60%를 장악했다고 말했지만 실제로는 약 20%인 나이지리아 북동쪽 25개 정착촌만 관리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또 아프리카 대륙의 위생과 건강 관련 문제는 다른 지역에 비해 열악한 것이 사실이지만 수치가 지나치게 과장되거나 바이러스의 발생지 등으로 잘못 알려진 정보도 많아 아프리카 방문을 주저하게 만들고 있다는 보도도 있다.

남아메리카에 위치한 베네수엘라는 현재 최악의 경제난으로 400만 명의 국민이 난민이 될 정도로 국가비상사태이다. 언론 보도도 공공기관의 데이터도 확인할 수 없어 ‘공식 출처’라는 단어도 사용하기 어렵다. 이런 상황에서도 팩트체킹은 가능할까? 베네수엘라에서 온 두 명의 팩트체커인 대니얼 아코스타(Daniel Acosta)와 장프레디 구티에레스 토레스(Jeanfreddy Gutierrez Torres)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팩트체킹에 대한 노력은 계속되고 있다고 확인해주었다.

사진 제공 : IFCN

 

팩트체커들의 공통된 고민, 대안, 그리고 교훈

57건의 발표와 이어진 질문들을 통해 본 전 세계 팩트체커들의 고민은 대체로 비슷했다. ‘팩트체크의 영향과 범위’, ‘다른 플랫폼에서의 잘못된 정보’, ‘수익 창출 및 수익원’, ‘팩트체크를 위한 새로운 형식’, ‘팩트체크 과정의 가속화 및 자동화’가 그것이다. 최근에는 정치인이나 유력인사의 발언 팩트체크와 함께 도시괴담이나 루머 등에 대한 팩트체킹 사례가 많아지고 있는 것도 공통적인 특징이다.

그래서 앞서 기조연설에서 피터 컨리프 존즈가 제시한 대안은 함께 모인 팩트체커들의 많은 공감을 받았다.

▲팩트체킹을 계속 해야 한다. 더 스마트하게 ▲진원지를 부숴야 한다 ▲보다 쉽게 관련 정보를 찾아내야 한다 ▲대중이 스스로 좋은 정보와 나쁜 정보를 더 잘 평가할 수 있게 도와야 한다

 

Global Fact6에 참여한 전 세계의 팩트체커들 (사진 제공 : IFCN)

이번 행사를 주관한 IFCN은 <9 fact-checking lessons from Global Fact 6>라는 제목으로 이번 Global Fact 6에서의 팩트체킹 교훈 9가지를 정리해 홈페이지에 게시했다. 국내 팩트체커들은 물론 언론계에서 일하는 사람들이라면 기억해 둘만한 내용이다.

  1. Don’t sleep on social media(소셜 미디어에서 잠들지 마라) 
  2. Turn fact-checks into videos(팩트체크를 동영상으로 전환) 
  3. Headline and pictures on Facebook(Facebook의 헤드 라인과 사진) 
  4. Consider your audience(청중(수용자)를 고려하라) 
  5. Engage younger generations(젊은 세대의 참여) 
  6. Use fact checks as diving points for in-depth reporting(팩트체크를 심층보고를 위한 다이빙 포인트로 사용)
  7. Take advantage of old fact checks(지난 팩트체크 활용) 
  8. Automate, automate, automate(자동화, 자동화, 자동화) 
  9. Build a diverse team(다양한 팀 구성) 
  10. Celebrate your community(당신의 커뮤니티를 축하하라)

 

2003년 미국의 <FactCheck.org>가 설립되면서 본격적으로 알려지기 시작한 팩트체킹은 2009년 폴리티팩트(PolitiFact)가 퓰리처상을 받으며 전세계적으로 빠르게 성장하기 시작했다. 한국에서는 2017년 서울대 언론정보연구소 산하에 SNU팩트체크센터가 설립되고 국내 주요 언론사들의 팩트체킹 플랫폼 역할을 수행하면서 본격화하기 시작했다.

■ 이 취재는 한국언론학회와 서울대 언론정보연구소 산하 SNU팩트체크센터의 지원을 받아 진행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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