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만권 "기본소득과 기초자본으로 '실패할 기회'를 주자"

  • 기자명 이고은 기자
  • 기사승인 2019.07.08 10: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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팩트체크 전문미디어 <뉴스톱>은 인공지능, 기후변화, 뇌과학, 자율주행 자동차 등 다양한 미래 4차 산업혁명 분야의 현재와 미래를 진단하는 기획 ‘미래 지식을 담다, 미래담론 <미담>’을 연재한다. 각 분야별 최고의 전문가들과 김준일·강양구 뉴스톱 팩트체커의 대담으로 구성된 <미담>은 지식콘텐츠 팟캐스트다. 대담의 풀 버전은 네이버 오디오클립에서 청취할 수 있다

한국 사회에는 ‘실패할 기회’가 있는가? 이 질문에 대한 비관적 대답은 최근 우리에게 익숙한 ‘수저론’이 대신 해주고 있다. 상속 자본이 없는 청년들은 처음부터 빚을 안고 사회에 진입하고, 교육과 노력을 통해 상위 계층으로 이동하는 것이 거의 불가능해진 시대. 우리는 이 지점에서 사회와 국가의 역할을 떠올린다. 지금 한국 사회에서는 소득 및 자산 불평등을 해결하기 위한 해법에 대한 논의가 활발하다. 그 중 하나가 바로 ‘기본소득’이다.

정치철학자 김만권 박사는 2018년 저서 <열심히 일하지 않아도 괜찮아!>를 통해 사회 불평등을 해소할 수 있는 21세기형 새로운 분배 방식에 대해 제안했다. 김 박사가 대중에게 점차 알려지고 있는 기본소득에 더해 함께 제시한 또 하나의 방안은 ‘기초자본’이다. 김 박사는 <뉴스톱>의 기획 <미래 지식을 담다, 미래담론 미담> 7회 ‘기본소득 vs 기초자본, 자유로운 시대’에 출연해 두 가지 분배 방식에 대한 담론을 소개했다.

'열심히 일하지 않아도 괜찮아' 저자 김만권 박사

 

“21세기의 산업구조는 기술이 너무 발전해서 이른바 ‘소비 사회’로 재편되었습니다. 하지만 분배 방식은 여전히 20세기에 머물러있어요. 소비력이 없는 구성원은 인간 취급을 못 받는 시대가 되고 있습니다. 사회가 소비력이 없는 사람을 보호해주지 않죠.”

자본과 기술을 소유한 사람은 노동하지 않아도 소비력을 갖는 데 문제가 없다. 그들은 점차 임금을 요구하는 노동자 대신 임금이 필요 없는 기계와 로봇으로 생산력을 유지하고 부를 축적한다. 인간 노동의 가치가 점차 떨어지고 있는 현실 속에서, 우리는 과연 로봇이 인간의 노동을 빼앗아간다고 개탄해야만 할까?

빌 게이츠는 기술의 발전에 따라 일자리를 잃는 이들의 생계를 보전해주기 위해 ‘로봇세’를 활용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기술의 발전에 의해 인류가 얻게 된 이익을 노동의 기회를 빼앗긴 모든 사람에게 공평하게 나눠주어 기본적인 소비력을 유지하도록 하자는 개념이 바로 ‘기본소득’이다. 김 박사는 “기본소득주의자들은 일했느냐 하지 않았느냐를 따지지도 않고, 같은 지역 내에 거주하거나 일정 거주기간 등 요건만 되면 지급하는 열린 제도”라고 설명했다.

한국에서는 아동수당이나 노인수당, 이재명 경기도지사의 공약인 ‘기본소득제’ 등으로 기본소득의 개념이 알려지고 있다. 그러나 이미 기본소득 제도를 실현하고 있는 곳도 있다. 미국 알래스카주는 천연자원에 의한 이익배당금을 거주민들에게 나눠주는 ‘알래스카주 영구기금제도(Alaska Permanent Fund)’를 시행하고 있다. 이미 1956년 주 의회가 주 헌법에 법적 근거를 마련했고, 1976년부터 자산평가 작업을 진행한 후 1980년에 알래스카 영구기금법이 제정됐다. 영구기금제도에 따라 알래스카 거주민들은 1인당 매년 1000~2000달러를 지급받는다. 거주민들은 인생의 고비가 닥칠 때마다 이익배당금을 기본적인 삶을 이어갈 수 있는 기초적 토대로 삼고 있다.

 

기본소득도 생소한 개념이지만, 김 박사는 더욱 생소한 개념인 ‘기초자본’의 실효성에 대해 더욱 강조한다. 기초자본이란 모든 사람이 성인이 되었을 때 투표권을 주듯이, 국가가 일정 수준의 현금 자본을 한 번에 지급하는 제도다. <분배의 재구성>의 저자 부르스 액커만과 앤 알스톳 등이 제안한 ‘사회적 지분급여(stakeholder grant)’로서, 기초자본은 개인이 삶에서 무언가를 추동해볼 수 있는 기회를 사회가 공평하게 지급하는 데 의미가 있다.

기본소득이 사회가 개인의 소비력을 유지하도록 꾸준히 보조해 준다면, 기초자본은 사회가 상속자본의 유무와 상관없이 개인에게 자본력을 가질 수 있도록 기회를 준다는 점에서 다르다. 물론 기초자본을 활용해 자립에 성공하느냐의 여부는 개인에 따라 달라지지만, 적어도 사회가 모든 구성원들에게 최소한의 ‘기회’를 부여한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모두를 ‘금수저’로 만들어 줄 수는 없지만 적어도 ‘흙수저’에서 탈피할 수 있는 최소한의 상속자본을 사회가 지급한다는 것이다.

기초자본이 실제로 시행된 사례도 있다. 영국 노동당 정부는 2005년 ‘아동신탁기금(child trust fund)’을 통해 2002년 9월 이후 출생 아동에게 개인 계정을 주고 일반 가정 아동에게 250파운드를, 저소득층 자녀에게 500파운드를 일회성으로 지급했다. 이를 가족이나 아동 자신이 적립하고 증식해 18세 이후 활용할 수 있도록 했다. 그러나 2011년 영국에서 보수당이 집권한 후 이 제도를 없애면서 기초자본에 의한 실험은 더 이상 이어지지 않고 있다.

김 박사는 “기초자본 제도의 가장 큰 단점은 시간이 너무 오래 걸린다는 점이지만, 최고의 장점은 돈이 적게 든다는 점”이라고 말했다. “지속적으로 세금을 써야 하는 기본소득은 재원이 너무 커서 현재의 복지 제도에 손을 대야” 하기 때문이다. 대신 김 박사는 “기본소득 드는 비용과 비교하면 기초자본 제도가 재원 자체가 적고 현실성이 있다”고 보았다. 2018년 심상정 정의당 의원이 상속·증여세 수입 5조4000억원(2017년 기준)을 61만명(2018년 기준)의 20살 청년에게 자산으로 배당하자는 취지의 ‘청년사회상속법’을 발의한 바 있다. 이는 복지제도의 개편 없이 현재 구조 하에서 구현이 가능한 수준이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자본가들에 의해 선호되는 것은 오히려 기본소득이다. 김 박사는 “초자본주의 사회에서는 금융 중심적으로 변화하고 있고 기업들이 단기적 이익을 추구한다”며 “사람들이 시장에 들어와 직접 바로바로 무언가를 구매해주는 것을 원한다”고 말했다. 기본소득은 재원이 더 많이 들고 사회적 분배를 위한 에너지가 더 많이 쓰임에도, 자본가들의 즉각적인 이익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오히려 유용한 방식이 된다. 기초자본의 경우 더 많은 비자본가들의 기회를 열어줄 토대가 되지만, 자본가에게 당장의 이익과는 무관하거나 혹은 잠재적 경쟁 자본을 키우는 계기가 될 수 있으므로 관심 밖인 문제다. 때문에 김 박사는 향후 새로운 분배 정책 출현의 현실성을 따져본다면 기본소득에 더 가능성을 점친다.

“기본소득이 일할 의욕을 떨어뜨릴 것이라는 전망도 나오는데, 저는 오히려 기본소득을 통해 더 일하고자 하는 의욕을 만들어준다고 생각해요. 우리나라 노동자들은 너무 많이 열심히 일하고 힘들게 살잖아요. 기본소득이 있다면 너무 지치거나 일을 못하게 될 때 쉬면서 충전을 할 수 있죠. 일할 의욕을 더 생기게 할 겁니다. 또 하나, 저임금 노동자들에게 ‘협상력’이 생긴다는 점도 기본소득의 큰 의의가 될 것이라 봅니다. 노동자들이 더 나은 환경에서 일할 수 있도록 만들어주는 사회적 토대가 될 것이라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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