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짜 뉴스의 진짜 수혜자는 따로 있다

  • 기자명 김준일 기자
  • 기사승인 2017.07.17 13: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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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①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사이버선거범죄대응센터에 따르면 올해 초부터 5월 6일까지 적발된 ‘가짜 뉴스’는 총 3만8,657건이다. 2012년 대선 당시 7,201건에 비하면 5년 만에 5배가 증가했다. 그런데 선관위가 ‘가짜 뉴스’라 한 게시물의 공식 명칭은 ‘대선 사이버 위법 게시글’이다. 2012년엔 당연히 ‘가짜 뉴스’로 불리지 않았다.
  • ② 국정농단 주역인 최순실 씨의 딸 정유라 씨의 두 번째 구속영장 실질심사가 있던 지난 6월 20일, 변호인 이경재 변호사는 정씨의 몰타 국적 취득 의혹에 대해 “전형적인 페이크 뉴스(가짜 뉴스)”라고 단언했다. 이 변호사는 “검찰의 영장청구 사유에 (몰타 국적 취득) 언급이 없었다”며 이같이 주장했다. 그러나 실제 정씨가 몰타 국적 취득 시도를 했는지 여부는 밝히지 않았다.
  • ③ 지난 3월 자유한국당이 “세월호 침몰 원인은 문재인”이라는 논평을 냈다. 노무현 정부 때 유병언 기업에 국민 세금 1,153억 원이 투입돼 회사 빚이 탕감됐는데 당시 공직에 있던 문재인 후보에게 책임이 있다는 논리였다. 이에 대해 문재인 캠프는 “근거 없는 유언비어와 ‘가짜 뉴스’를 생산해 조직적으로 유통시키는 자유한국당”이라고 반박했다.

가짜 뉴스로 재미 보기

2017년 대선 기간에 국민이 가장 많이 들은 단어 중 하나가 ‘가짜 뉴스’ 혹은 ‘페이크 뉴스’란 단어일 것이다. 2016년 미국 대선을 뜨겁게 달궜던 페이크 뉴스 논란은 올해 한국 대선에서도 어김없이 재현됐다. 정치인들은 본인에게 불리한 보도나 주장을 진위와 상관없이 가짜 뉴스로 치부했다. ‘내 주장은 진짜, 상대 주장은 가짜’라는 이중적 태도는 가짜 뉴스의 개념 혼돈을 불렀다. 규제의 목소리는 높아졌다. 더불어민주당 표창원 의원은 지난 5월 정보통신망 이용촉진 및 정보보호에 관한 법률에 가짜 뉴스 금지 조항과 벌칙 조항을 신설해 가짜 뉴스를 강력 제재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표현의 자유를 침해할 소지가 다분함에도 국민 여론이 나쁘지 않다.

그런데 최근 가짜 뉴스를 규제하려는 정치권과 업계의 노력을 보면 실체가 없는 상대 앞에서 헛손질을 하는 ‘섀도복싱’이 떠오른다. 도대체 가짜 뉴스는 무엇이고 왜, 어떻게 규제해야 하는가. 학계의 일치된 의견은 아니지만 가짜 뉴스에 대한 정의는 대략적으로 윤곽을 드러냈다. 지난 2월 한국언론진흥재단과 한국언론학회는 ‘가짜 뉴스 개념과 대응 방안’이라는 토론회를 개최했다. 황용석 건국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과 교수는 한국의 ‘가짜 뉴스’ 개념에는 풍자적 가짜 뉴스, 루머, 잘못된 정보, 의도된 가짜 정보 등이 모두 포함되어서 개념의 혼란이 빚어졌다고 분석했다. 그래서 가짜 뉴스를 ‘속이려는 목적을 가지고, 뉴스의 형식을 빌려, 검증된 사실인 것처럼 포장한 콘텐츠’로 범위를 좁힐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문제는 학계의 이런 정의가 현실에서 거의 적용이 안 된다는 점이다. 앞선 예에서 봤듯이 대중은 가짜 뉴스란 단어를 거짓 정보가 들어 있는 기사를 지칭할 때만 사용하지 않는다. 문재인 정부 지지자 중 상당수는 정부에 비판적인 기사를 봤을 때 이를 ‘가짜 뉴스’로 치부한다. 사실에 얼마나 기반을 두고 있느냐, 진실에 부합하느냐를 따지기보다는 정파적 이해관계를 따진다. 이렇게 된 데는 가짜 뉴스란 단어를 남용한 정치권에 가장 큰 책임이 있지만 언론과 학계도 책임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또 다른 문제는 ‘가짜 뉴스 규제’가 일종의 산업이 되면서 시장 논리에 의해 의미가 변한다는 점이다. 그간의 가짜 뉴스 담론을 살펴보자. “가짜 뉴스는 민주주의에 대한 위협이다. 사전에 이를 차단해야 한다. 효과적으로 차단하기 위해선 새로운 기술이 필요하다. 관련 분야에 대한 정부 지원이 필요하다. 가짜 뉴스 탐지 기술은 4차 산업혁명의 주요 과제로 부상했다”.

새로운 담론이 형성되면 이득을 보는 세력이 있다. 그래서 가짜 뉴스가 무엇인지 아는 것만큼 담론의 배경을 이해하는 게 중요하다. 도대체 정치권은 왜 가짜 뉴스를 규제하려고 하나. 학자와 기업은 왜 가짜 뉴스를 막겠다고 나서나. 언론은 왜 가짜 뉴스가 문제라고 지적하나.

이와 관련 재미있는 분석이 있다. 대미안 탐비니 런던정경대 교수는 “누가 가짜 뉴스란 단어를 사용해 이득을 보나 (Who benefits from using the term ‘fake news’?)” 란 글에서 가짜 뉴스로 이득을 보는 세 부류의 세력을 명시했다. 첫 번째는 상대방 주장의 정당성을 훼손하기 위해 가짜 뉴스를 입에 달고 사는 트럼프 같은 ‘새로운 포퓰리스트’. 두 번째는 선거에서 진 이유가 가짜 뉴스 때문 이라며 자신을 변호하는 ‘역사적 패배자들’, 그리고 세 번째는 집단지성과 대안언론을 가짜 뉴스로 치부하고 본인들을 신뢰할 만한 언론으로 자리매김하려는 ‘주류 언론’이다.

가짜 뉴스 담론의 진짜 배경 

이러면 왜 가짜 뉴스 담론이 쏟아져 나오는지 이해할 수 있게 된다. 한국에서 가짜 뉴스를 규제해야 한다는 주장이 주로 나오는 곳은 정치권과 언론이다. 정치권은 가짜 뉴스 프레임을 통해 반대진영의 공격을 무력화하는 등 가짜 뉴스를 가장 잘 활용해온 곳이지만, 규제 논의에서는 가짜 뉴스와 전혀 관련이 없는 듯 행동하며 ‘피해자 코스프레’를 한다. 주류 언론, 특히 보수 언론도 규제에 앞장서고 있지만 논의 과정에서 자신들의 책임은 제외한다. 앞서 언급했듯이 학문적인 정의를 엄격하게 적용하면 주류 언론의 틀린 보도는 오보일지언정 가짜 뉴스는 아니기 때문이다.

가볍지 않은 해프닝이 있었다. 6월 18일 오전 연합뉴스는 ‘문 대통령 오후 2시 강경화 법무장관 후보자 임명’이라는 속보를 냈다. 안경환 법무장관 후보자 논란이 머릿속에 가득했던 담당 기자가 실수한 것으로 추정된다. 그런데 다수 언론이 이를 그대로 받아썼다. 심지어 공영방송 KBS마저 자막 속보로 이를 처리했다 (사진 참조). 이것은 가짜 뉴스에 해당할까? 굳이 속이려는 의도가 없었고 기성 언론이 보도한 것이기 때문에 앞의 기준을 따르면 가짜 뉴스에 해당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대중은 이것도 가짜 뉴스의 일종으로 보고 있다. 대중과 학계 사이 인식의 괴리가 있는 것이다.

6월 18일 강경화 법무장관 후보자 임명이라는 오보를 낸 연합뉴스.
연합뉴스의 오보를 그대로 뉴스속보로 처리한 연합뉴스TV.
연합뉴스 오보를 그대로 자막으로 속보처리한 KBS.

구글과 페이스북의 가짜 뉴스 확산 책임론이 언론에서 빈번하게 등장하는 데에도 이유가 있다. 2000년대 중반 한국 언론은 포털의 사회적 책임론을 내세우며 네이버를 공격하는 기사를 연재한 바 있다. 배경에는 미디어 광고 시장을 독식하는 포털에 대한 불만이 깔려 있었다는 것이 중론이다. 최근 전 세계 미디어 광고의 블랙홀이 된 구글과 페이스북에 전통 언론의 포화가 집중되는 것은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정부의 지원과 언론의 관심이 가짜 뉴스 대처법에 집중되면서 학계도 편승하려는 분위기다 . 현대경제연구원은 지난 3월 <가짜뉴스의 경제적 비용 추정과 시사점> 보고서를 냈다. 보고서는 2016년 인터넷 언론 백서를 토대로 하루 기사 수를 3만5948개로 추정했고 이 중 1%를 가짜 뉴스로 추정해 피해액을 산정했다. 그래서 나온 가짜 뉴스 피해액수가 연간 30조 원. 언론사에서 출고해 유통되는 공식 뉴스의 1%가 가짜 뉴스라는 추정부터가 무리수였다. 사회적 신뢰 훼손을 비용으로 자의적으로 환산해 계산했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카이스트는 올해부터 인공지능으로 가짜 뉴스를 탐지/판별하는 기술을 10대 연구 혁신 과제에 포함했다. 차미영 문화기술대학원 연구팀은 가짜 뉴스(루머)의 확산 패턴이 진짜 뉴스(일반 정보)의 패턴과 다르다는 점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진짜 뉴스는 사실이 한번 전파된 후 대중의 관심에서 멀어지면 사라지지만, 가짜 뉴스는 의제 설정을 위해 지속 재생산되는 특징이 있어 확산 패턴이 다르다는 것이다.

필자는 인공지능 전문가가 아니어서 이 기술의 정확성에 대해서는 평할 수 없다. 하지만 이 기술을 실제 언론 현장에서 적용할 수 있는지에 대해서는 의구심을 가질 수밖에 없다. ‘교황이 트럼프를 지지했다’는 기사처럼 진위가 금방 확인되는 가짜 뉴스는 굳이 저런 분석틀을 사용하지 않아도 쉽게 판정할 수 있다. 반면 매우 복잡한 사실관계와 인과관계를 포함한 음모론적 루머는 분석 기술을 사용하더라도 전문가의 팩트체킹이 뒤따르지 않으면 가짜 뉴스임을 확인할 수 없다.

루머가 사실이 되는 경우도 많다. 2011년 10월 새누리당의 선관위 디도스 공격은 ‘나꼼수’에서 처음 의혹을 제기했을 때만 해도 근거 없는 의혹 제기, 혹은 루머로 받아들여졌으나 결국 사실로 판명됐다. 카이스트 연구팀의 연구 성과를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확산 패턴으로 가짜 뉴스를 사전에 판별하는 것은 쉽지 않고 사후에 이를 분석하는 것은 큰 장점이 없음을 지적하고자 하는 것이다.

우리를 당혹스럽게 만드는 사실 하나는 대중은 가짜 뉴스 ‘논란’을 즐긴다는 점이다. 미국 인터넷 뉴스 버즈피드가 미국 대선 전 3개월 동안 페이스북 검색 상위 20위 뉴스를 조사한 결과, 가짜 뉴스에 대한 관심(좋아요, 공유, 댓글 수 모두 포함)이 871만 건으로 진짜 뉴스 736만 건보다 훨씬 많았다. 최근 페이스북은 가짜 뉴스를 가려내기 위해 다양한 방법을 도입했다. 그중 하나가 팩트체크가 되지 않아 논란의 소지가 있는 뉴스에 ‘Disputed(논란 중)’라고 표시하는 것이다. 그런데 페이스북이 ‘논란 중’ 라벨을 붙이자 해당 기사의 트래픽이 급상승한 것으로 나타났다. 가짜 뉴스를 효과적으로 통제하기가 쉽지 않음을 보여주는 사례다.

지난 4월 구글도 가짜 뉴스에 맞서기 위해 알고리즘을 개편했다고 발표한 바 있다. 구글 내부에서는 이를 ‘프로젝트 아울(Project Owl)’로 부르고 있다. 검색 순위에 사용자의 검색 품질에 대한 평가를 반영해 정확하지 않은 정보가 검색 상단에 위치하는 것을 막겠다는 것이다. 또 피드백 시스템을 도입했다. 사용자가 검색창에서 자동 완성된 검색어에 대해 ‘부적절한 예상 검색어 신고’를 클릭해 예상 검색의 내용과 정확성을 직접 평가할 수 있게 만들었다. 또 검색 알고리즘의 투명성을 제고하기 위해 검색엔진이 작동하는 방법 사이트를 업데이트하기도 했다.

대안은 팩트체킹과 좋은 매체 키우기

구글과 페이스북의 이러한 일련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가짜 뉴스를 효과적으로 막기는 힘들 것이란 의견이 지배적이다. 명칭이 어떻게 됐든 루머나 가짜 뉴스는 항상 있었고 이를 바로잡는 시스템도 항상 존재했다. 소셜미디어를 통해 가짜 뉴스가 급속히 확산되는 것이 문제라는 지적이 나오고 있지만 거짓 정보를 바로잡는 시간도 그만큼 단축된 것도 사실이다. 가짜 뉴스가 문제가 아니라 부정확한 인용, 정파적 보도 등 질 낮은 저널리즘이 문제라는 지적도 나온다. 제프 자비스 뉴욕시립대 저널리즘스쿨 교수는 본인의 블로그에서 “우리의 문제는 페이크뉴스가 아니다. 우리 문제는 신뢰와 조작이라며 기성 언론의 저널리즘 수준을 비판한 바 있다. 

그래서 실체도 분명치 않은 가짜 뉴스와 섀도복싱을 하는 것보다는 좋은 뉴스를 생산하는 방식을 격려하고 그런 매체를 키우는 방식에 초점을 맞출 필요가 있다. 지난 5월 위키피디아 창업자 지미 웨일스는 전문가와 대중이 함께 뉴스를 만드는 새 플랫폼인 ‘위키트리뷴’을 홍보하기 위해 한국을 방문해 기자회견을 열었다. 위키피디아의 기본 토대인 집단지성과 팩트체크 저널리즘을 결합한 새로운 플랫폼을 만들겠다는 것이다. 그는 “진실된 증거와 정확한 정보를 전달하는 위키트리뷴은 가짜 뉴스에 대한 최고의 대안”이라며 자사의 프로젝트를 소개했다. 위키피디아엔 월평균 4억 명이 방문해 자유롭게 콘텐츠를 열람하고 수정한다. 위키트리뷴에도 이 같은 방식을 적용한다는 방침이다. 다만 기사이기 때문에 팩트체커나 위키트리뷴 직원의 승인을 받아야 수정이 가능할 전망이다. 스스로 “가짜 뉴스에 대한 최고의 대안”이라고 소개한 것이 조금 낯간지럽지만, 이런 시도는 가짜 뉴스에 대한 직접적인 규제보다는 훨씬 효과적일 것으로 전망된다.

한국에서는 대선 이후 팩트체크에 대한 언론의 관심이 크게 떨어졌다. JTBC 등 일부 언론을 제외하곤 팩트체킹을 하는 언론이 거의 없다. 팩트체킹이 기본적으로 노력 대비 생산성이 떨어지는 데다가 의제 설정에 비중을 두고 있는 한국 언론이 팩트체크 포맷을 유지할 유인이 적다는 분석이다.

오히려 독립 매체들의 움직임이 눈에 띈다. 6월 중순 국내 처음으로 팩트체크를 전문으로 하는, ‘뉴스톱(newstof.com)’이 활동을 시작했다. 뉴스톱엔 필자를 포함해 정치, 과학, IT 등 다양한 분야를 담당하는 15~20년 이상의 경력자 5명의 팩트체커가 활동 중이다. 팩트체크 저널리즘은 사실상 '저널리즘의 기본으로 돌아가자'는 움직임이다. 모든 기사의 출처를 밝히고, 기사 작성/수정 과정을 독자에게 공개하고, 당파성을 피하고, 팩트를 기반으로 비판하자는 것이다. 저널리즘의 기본이 새로운 시도로 보일 만큼 한국 언론의 저널리즘 원칙은 허물어져 있다. “가짜 뉴스 생산하는 기레기” 소리를 더 이상 듣지 않으려면 한국 언론은 저널리즘의 품질을 높이는 데 투자해야 한다.

*이 글은 한국언론진흥재단이 발간하는 <신문과 방송> 7월호에 실린 김준일 팩트체커 기고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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