힌두 최고의 성지 '아마르나트' 순례는 왜 테러 협박을 받을까?

  • 기자명 이광수
  • 기사승인 2019.07.23 09: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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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는 종교의 자유를 법으로 보장하는 세속국가다. 종교 때문에 인도와 파키스탄으로 분단되는 비극을 안고 그 후 세 차례에 걸친 전쟁까지 치른 인도는 초대 수상 네루 이래로 이 원칙을 견지해왔다. 그러나 1990년대 후반부터 바로 이 제1의 국시(國是)라고 할 수 있는 세속국가의 성격이 인도국민당(Bharatiya Janata Party)에 의해 심각하게 저해되고 있다. 그들은 여러 방계 정치 조직을 동원해 소수인 무슬림을 핍박하고, 학살하면서 몇 차례에 걸쳐 힌두주의 국가로 이행하려고 하는 중이다. 지난 5월에 치른 총선에서 그들은 2014년보다 더 큰 압승을 거둬 힌두주의로 이행하는 길이 더욱 확고하게 다져지는 중이다. 그러는 와중에 도처에서 무슬림들이 힌두교의 기도문을 암송하라면서 그것을 거부하면 린치를 가하는 수구 힌두 세력에게 심각한 사태가 끊이지 않는 중이다.

 

2019년 2월 14일 벌어진 뿔와마 테러 현장. 40여명의 힌두 민병대가 사망했다.

 

힌두가 무슬림에게 집단 린치 내지는 학살을 가하면, 무슬림은 테러로 보복하는 것이 남아시아 정치의 일상 순환이 된 지 벌써 20년이 넘었다. 가장 최근의 테러는 2019년 2월 14일 일어난 카시미르의 뿔와마(Pulwama) 테러다. 그 테러로 40여 명의 힌두 민병대가 사망했고, 총선을 앞 둔 모디 정부가 다분히 정치 이슈의 일환으로 파키스탄의 테러범 은신처로 추정된 곳을 공습했다고 전한다. 인도 측은 테러범을 수 명 사살했다고 발표했으나, 파키스탄 측은 아무도 죽은 흔적이 없다고 맞받아 쳤다. 선거는 인도국민당과 모디의 압승으로 끝났고, 두 나라 정상은 화해 모드로 접어드는 듯 보였으나 또 다른 곳에서 파키스탄의 테러 협박이 생겼다. 히말라야 힌두 성지에서 최고 가운데 하나인 쉬바의 상징 링가(linga 남근)가 40미터 높이의 빙하 얼음으로 굴에 천연으로 조성된 성지다. 이곳에 대한 테러 예고가 있어서 원래는 6월 28일에 출발하기로 되어 있던 것을 네 차례나 연기하고 7월 14일 일요일에 출발을 했다. 아마르나트(Amarnath) 테러는 2017년에 발생해서 59명이나 되는 순례객이 몰살당한 적이 있다. 그래서 올해에도 단순 협박으로 그치지 않을 것으로 만반의 경계 태세를 갖추고 출발한 것이다. 7월부터 시작해 8월까지 걸친 48일 간의 힌두 순례인 아마르나트 성지 순례는 60만 명 이상의 순례객이 참가하는 것으로 예상되는 힌두교 순례 여행이다.

 

순례는 잠무-카시미르 주의 빠할감(Pahalgam)에 있는 베이스캠프를 출발하여 43킬로미터의 거리를 트레킹으로 가는 순례길인데, 셰슈나그(Sheshnag) 호수와 빤쯔따르니(Panchtarni) 캠프에서 1박을 하고 쉬바 링가 성소에 닿는 코스다. 잠무-카시미르 주는 인도와 파키스탄의 분쟁 주인데 이곳은 그 영향 아래 있기 때문에 이 성지 순례로 인해 힌두와 무슬림 두 집단 간에 물질적 이해가 충돌이 된다. 인도의 카시미르 주 입장에서는 순례세를 부과하여 주 수입을 늘이는 수단이기 때문에 순례를 장려해야 하고, 그 지역 주민인 시아파인 바까르왈-굿자르(Bakarwal-Gujjar) 사람들은 그들 힌두 순례객에게 여러 편의를 제공해줌으로써 소득을 늘리는 주요 소득원이 되기 때문에 순례에 대해 긍정적이다. 그렇지만 순니파 무장 조직은 이러한 양 측의 우호적인 관계를 깨기 위해 혈안이 되어 있고, 그들이 2017년 테러를 일으켰고, 지금도 계속해서 협박 중이다.

 

아마르나트 성지 순례에 나선 사람들. 출처: Indian Holiday

 

힌두교는 범신교로서 모든 생물은 물론이고 산이나 강 혹은 바람이나 새벽 등 무생물 그리고 사랑이나 우정 등 추상명사에도 어떤 본질이 들어 있어 신으로 숭배하는 신앙을 6,000년도 넘은 예부터 믿어왔다. 역사가 변해오는 중에 여러 이질적인 요소들을 흡수하고 통합하는 전통이 만들어져 상대적으로 다른 종교에 비해 관용적인 성격을 유지해왔다. 그런데 그 관용성이라는 게 항상 문자 그대로의 뜻대로 상대를 이해하고 받아들인다는 것만은 아니다. 기독교와 이슬람의 개념과 비슷한 개종이나 박해라는 문제가 상대적으로 적었다는 것일 뿐, 각 종파 간에 그리고 힌두교가 불교나 자이나교에 대해서 충돌과 박해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고대 슝가(Shunga)왕조의 태조 뿌샤미뜨라 슝가(Pushyamitra Shunga)가 군대를 이끌고 위에서 언급한 카시미르 지역이 포함된 간다라 지역에 이르기까지의 넓은 영토 내 모든 지역의 불교 사원, 탑 등을 파괴하고, 불교 승려를 현상금까지 걸면서 학살한 기록이 분명히 있다. 중국 승려 현장법사의 기록이나 12세기 카시미르 사서 《라자따랑기니》에는 왕이나 힌두교 광신도들에 의해 불교 사원이 약탈되는 사례도 많이 나온다. 8세기의 기세(棄世) 승려인 샹까라짜리야(Shankaracharya)는 불교에 신학적으로 상당히 적대적인 태도를 취했으니, 붓다가 세상 사람들을 속이고 사교(邪敎)를 퍼뜨리려 이 땅에 왔다는 주장을 널리 퍼뜨려 불교를 크게 약화시켰다. 그는 수도원과 더불어 소위 열 개의 교단을 대륙 곳곳에 세우고 불교를 비판하고 힌두교를 사방으로 널리 전파하는데 앞장섰다. 그가 세운 교단은 남인도에서 불교와 자이나교의 세력을 크게 약화시키고 정통 베다 전통 위에 힌두교를 세워 전인도적인 틀을 세우는데 역할을 했다. 이후 인도아대륙 국토의 동서남북 곳곳에 있는 성지를 순례하는 사람들은 힌두교 신앙의 보편성을 제공해주는 정체성의 근본 행위가 되어 왔다. 힌두교의 다양한 전통에 따라 규정되는 장소가 다르기 때문에 인도에는 일정하게 정리된 통일된 성지는 없다. 일반적으로 북부 히말라야 지역의 아마르나트, 바드리나트, 께다르나트, 하리드와르, 강고뜨리, 야무노뜨리 등 갠지스와 야무나 강의 발원지에서부터 갠지스 강을 따라 바라나시, 알라하바드 등과 서쪽의 드와르까, 남쪽의 라메슈와람, 동쪽의 뿌리, 주요 도시로 아요디야, 바라나시, 마투라, 웃자인(Ujjain), 깐치뿌람 등이 주요 성지로 숭배 받는다.

성지 순례의 전통이 만들어진 것은 이렇듯 힌두교가 불교와 자이나교에 대해 적대적으로 갈등을 일으키면서 하나의 정체성을 키워가는 과정에서 만들어진 것이라고 해석해야 한다. 그들은 카시미르에서 힌두교도들이 했듯이 많은 자이나교 사원을 폭력적으로 빼앗아 자신들의 사원으로 만들었다. 이러한 종파 간의 분쟁 과정에서 힌두 기세 승려들의 무장화가 시작되었다. 이러한 종파 간의 분쟁 과정에서 힌두 기세 승려들의 무장화가 시작되었다. 현대 힌두교 일부에서 보이는 기세 승려 사두가 무장화를 한 기원은 바로 이 중세 때 인도에서 심각하게 전개된 힌두교와 불교 및 자이나교 간의 무력 갈등 속에서 찾아야 한다. 극우 힌두 무장 세력이 인도사에서 전혀 선례가 없이 반영 혹은 반이슬람 차원에서 형성된 것으로 볼 수는 없다는 것이다. 또한 힌두교 내에서의 종파 갈등의 개념도 없었던 것은 아니다. 예컨대, 비슈누교도와 쉬바교도 공동의 성지 하리드와르(Haridwar)를 둘러싸고 1266년에 발생한 양 집단 간의 무력 충돌로 인해 18,000 명이나 되는 사람들이 죽었고, 1707년에는 아요디야의 성지를 둘러싸고 양 집단이 심각한 갈등을 벌이기도 했다. 비록 정치 권력 차원에서 다른 종파를 박해하거나, 믿는 신자들끼리 대규모의 충돌이 구조적으로 발생한 예는 거의 없지만, 그렇다고 해서 힌두교 내 서로 다른 종파가 다른 종파를 관용하고 함께 조화를 이루는 것만은 아니라는 의미다. 그 안에는 물질적 이익이 있는 한 갈등이 상존한다는 역사적 사실은 여기에서도 충분히 있다는 것이다. 또 힌두교가 관용성을 보인다는 것은 세계의 다른 종교와 비교해서 내릴 수 있는 성격 규정이고, 신학적으로 이질적인 요소들을 통합한다는 차원에서 하는 즉 신앙 차원에서의 일일 뿐이다.

매년 60만명이 찾는 힌두의 성지 아마르나트. 사진은 아마르나트의 얼음동굴과 순례에 나선 사람들을 합성한 것이다.

 

카시미르 지역을 비롯해 인도 전역에서 과거에는 불교 사원이었던 것이 지금은 힌두교 사원으로 되어 있는 경우는 얼마든지 있다. 그 가운데 일부는 다시 불교 교단으로 소속이 바뀐 것도 있지만, 그렇지 않고 여전히 붓다를 힌두교의 한 신으로 모시고 숭배하는 경우도 많다. 문제는 그것이 불교든 힌두교든 혹은 이슬람이든, 종교 공동체 간의 싸움은 물질을 더 많이 차지하기 위해 혹은 자신의 정체성으로 더 많은 신자를 확보하기 위해 – 이것도 결국에는 물질을 더 많이 차지하기 위한 행위다 – 벌이는 갈등이다. 다른 종교와의 갈등이 유일신 세계관을 가진 이슬람은 아주 심하고, 범신론인 힌두교는 상대적으로 약한 것이 사실이긴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힌두교가 다른 종교와의 갈등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지금 아마르나트 성지 순례를 놓고 이슬람 무장 세력은 협박을 하고, 인도 정부는 순례객을 최대한 보호하기 위해 군과 경찰 병력을 동원해 안전을 유지하려 애를 쓰고 있다. 겉으로는 일방적으로 이슬람 세력의 폭력 전통이 원인인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 역사적으로 보면, 힌두교에서도 다른 종교에 대해 폭력을 사용하던 예는 많이 있었고 특히 영제국으로부터 독립하는 과정에서 나타난 무슬림에 대한 핍박과 학살은 힌두에게도 책임의 상당 부분이 있다는 근거가 된다. 특히 1980년대 후반부터 노골적으로 폭발하는 극우 힌두 세력의 무슬림에 대한 집단 린치, 강간, 소요, 학살 등의 폭력은 이러한 테러 행위가 일어나게 되는 직접적인 원인이라고 봐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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