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를 향해, 시간을 달리는 '디지털 프론티어' 엔도 니이나

  • 기자명 홍상현
  • 기사승인 2019.07.25 09: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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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사 시작 15분 전입니다.”

“네. 저는 준비됐습니다.”

대략 한 달 전부터 준비해온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연회를 앞두고 재킷의 앞단추를 채웠다. 행사 타임 테이블을 점검하고 준비상황 브리핑을 받으며 주변을 둘러보다 시선이 멈춘 자리에, 그녀가 서 있었다.

누가 보든 ‘파티용 복장’이 아니라는 점도 그렇지만, 무엇보다 캣우먼의 신분을 감추고 파티장에 나온 <다크 나이트 라이즈>의 앤 해서워이처럼 개구진 표정. 호스트들이 등장하면 그녀는 호텔에서 대략 30킬로 가까이 떨어진 곳으로 향할 것이다. 동대문. 건축과 도시, 그리고 디자인의 경계를 끊임없이 시험했던 건축가 자하 하디드의 역작,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와 한국 섬유산업을 짊어진 이들의 열정이 합류하는 거리. 흡사 『올리버 트위스트』만큼이나 처절했던 노동의 역사 위로, 포스트모던의 환희가 피어난 그곳에서의 시간은, 컨베이어벨트 위의 공산품 같은 파티의 찬사보다 그녀를 더욱 즐겁게 해주리라. 서커스단의 선전원을 흉내 낸 익살스러운 영어로 인사를 건넸다.

 

“어울리는 복장이네요. 복작거리는 파티가 아니라, 미래로 가는 시간여행에.”

 

“정성스럽게 준비하신 파티에 내내 함께하지 못하는 건 죄송하지만, 서울에 자주 올 수 있을 만큼 부자는 아니어서.”

“아닙니다. 바로 이 순간에도 시간이 흐르고 있는데요.”

미소와 함께 목례를 하고, 그녀 곁에 선 제이피(JP)의 어깨를 살짝 건드리며 속삭였다.

“조심하시고(Take care)!”

엔도 니이나(Endo Niina). 아일랜드ㆍ영국인의 혼혈인 아버지, 일본인 어머니의 딸로 태어나, 핀란드식 이름(Niina)으로 불리며 자란 오늘 인터뷰의 주인공. 파티의 막이 오른 지 몇 분 만에 상동역으로 바쁜 걸음을 옮기는 그녀의 모습에서 떠오른 것은 헨리 2세 시절 웨일스의 궁정사제 기랄두스 캄브렌시스가 기록한 아일랜드인의 기질에 관한 문장이다.

 

They go into battle without armour, considering it a burthen (burden) and esteeming it brave and honourable to fight without it.

한 단어로 요약하면, “용기(courage).” 이 테마와 자로 잰 듯 딱 떨어지는 그녀는 올해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부천 초이스 부문 초청작, <투어리즘>의 히로인이다.

엔도 니이나는 대형연예기획사중심의 질서에서 ‘완전히 독립적’인 유형의 캐릭터다. ⓒ Endo Niina

홍상현:

아시아 최대의 장르영화 페스티벌인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에 잘 오셨다. 특별히 좋아하는 장르를 꼽아 본다면?

엔도 니이나:

SF다. <스타워즈>나 <스타트랙> 시리즈도 즐겨보지만 인생영화로 꼽을만한 작품은 단연 <트론: 새로운 시작>. OST도 너무 멋지고. 세대를 뛰어넘어 즐길 수 있는, 첫 눈에 확 끌어당기는 느낌의 영화가 좋다. 오늘의 현실을 뛰어넘은 세계를 보여주는 영화를 통해 살아갈 힘을 얻으니까. 현실도피는 아니다. ‘언젠가 이런 미래를 맞게 될지 모른다’는 상상을 하면 저도 모르게 가슴이 두근거릴 뿐.

 

홍상현:

인터뷰 시작 전에 ‘한국 작품은 따로 언급하게 해 달라’는 언질을 받았는데.

엔도 니이나:

<부산행>이 정말 재미있었기 때문에 드린 부탁이다. (웃음) 일상에서는 상상조차 않던 상황을 설정해놓고 흥미진진하게 스토리를 풀어가는 게 너무 놀랍더라, 한국말도 모르는데 마지막 장면을 보다 주르륵 눈물을 흘렸다. ‘와’ 하는 감탄이 절로 나오는 영화였다. 배우들의 연기가 뛰어난 건 말할 필요도 없고.

 

홍상현:

당신의 캐릭터와 관련한 이야기를 해보자. 필자가 가장 먼저 이 화제를 꺼낸 건 당신이 보도진 앞에서의 표정 하나, 말투 하나까지 관여하는 대형연예기획사중심의 질서에서 ‘완전히 독립적’이라는 느낌을 받아서다.

엔도 니이나:

물론 사회생활을 하면서 지켜야할 최소한의 원칙이라는 건 있겠지. 하지만 열네 살 때부터 지금까지 쇼 비즈니스 업계를 경험하며 느낀 건 ‘필요 이상의 간섭이 판을 친다’는 사실이었다. 어린 시절에야 딱히 다른 대응을 할 수 없으니 요구하는 내용을 곧이곧대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성년이 되면서부터 이야기가 달라졌다. 매순간 필사적으로 노력하는 저 자신의 자존감도 소중하고 아닌 건 아니라고 말할 수 있는 의사표현 또한 중요하다.

 

홍상현:

아일랜드ㆍ영국인의 혼혈인 아버지, 일본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다. 문화적인 영향도 많이 받았나.

엔도 니이나:

세계적인 차원에서 봤을 때 ‘하프(half)’란 흔한 시추에이션(situation)이지만, 제가 성장기를 보낸 일본이라는 나라에서는 좀 달랐다. 초등학교 시절부터 남들과 다른 제 정체성을 의식할 수밖에 없었으니까. 물론 당시에는 힘들었지만 결과적으로 볼 때 좋은 일이 더 많았다고 생각한다. 많은 분들께서 예상하시듯 언어가 그렇고. 게다가, 그런데 우리 집 문화라는 게 워낙 뒤죽박죽이었다. 애초에 어느 나라의 문화도 메인으로 설정하지 않았거든. (웃음) 다만, 부계에서 특히 아일랜드 쪽 영향을 많이 받기는 했다. 제가 시야를 가리던 짙은 안개를 ‘정다운 이미지’로 기억하는 이유다.

 

홍상현:

모델로 활동한 어린 시절까지 합하면 커리어가 여간한 중견 배우 이상이다.

엔도 니이나:

뮤지션이셨던 어머니의 영향인지 어린 시절부터 막연하게 문화와 관련한 직업을 갖게 될 거라고 예감했었다. 물론 따로 권유를 받은 적은 한 번도 없고. 도리어 ‘네가 정말 하고 싶은 일을 하라’는 말을 자주 들으니 더 관심이 생기더라. 그렇다 하더라도 연기자의 길까지 걷게 되리라고는 전혀 예상치 못했다. 쭉 모델 활동을 했지만 고등학교도 다른 친구들과 마찬가지로 입시를 거쳐 평범한 공립학교에 들어갔고. 다만, 고등학교 시절부터는 본격적으로 일에 집중하기 위해 학교 성적보다 오디션 등에 더 힘을 쏟았다. 대학진학도 하지 않기로 일찌감치 결정했고.

남자친구인 힙합뮤지션 제이피 더 웨비와 함께. 그녀는 처음부터 제이피와의 교제사실을 공개해왔다. “아무리 생각해도 남자친구를 감춰야할 이유가 없을뿐더러, 그렇게 하고 싶지도 않아서”이다. ⓒ Endo Niina

 

홍상현:

이미 뮤지션인 남자친구 제이피 더 웨비(JP The Wavy)의 뮤직비디오로 연출 데뷔를 한 상태다. 여기서 다시 한 번 일본의 관련업계 분위기를 언급하지 않을 수 없는데, 대개 여성 연예인은 소속사의 압력으로 연애는 물론 심한 경우 결혼 사실조차 숨겨야하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당신은 남자친구와의 교제사실을 처음부터 숨기지 않았고, 지금도 크리에이터로서 서로의 성장에 바람직한 영향을 주고받는 이상적 커플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엔도 니이나:

아주 간단한 이야기인데, 아무리 생각해도 남자친구를 감춰야할 이유가 없을뿐더러, 그렇게 하고 싶지도 않았다. 그만큼 제 삶에서 필요불가결한 존재이기도 하고. 늘 제 곁을 지키고 있는 사람을 어떻게 숨길 수 있겠나. (웃음) 그냥 당당히 함께하면서 창작 작업 또한 같이 하면 좋겠다는 생각이었다. 비단 제 사례가 아니더라도 사랑하는 이와 더불어 치열한 삶을 살고 있는 분들이 얼마든지 계시지 않을까.

다만, 사람살이의 모습이 워낙 다양하다 보니, 이런 제 모습을 통해 조금이나마 용기를 얻는 분들이 계시다면 무척 기쁘겠다.

 

홍상현:

이제 필모그래피 이야기를 할 텐데,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게 올해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유럽판타스틱영화제연맹 아시아 영화상 수상작 <만리키>의 프로듀서이자 주연배우, 사이토 타쿠미와 공연(共演)한 <아카펠라>다. 68혁명의 영향으로 예술의 부흥과 더불어 반전운동이 치열했던 1969년도를 배경으로 한 이 영화는 전주국제영화제 초청작이기도 했는데, 필자 개인적으로는 높은 완성도에도 불구하고, 언론보도가 온통 당신의 노출 장면과 관련한 것들로 도배되어 분통을 터뜨린 기억이 있다.

엔도 니이나:

이해해주셔서 감사하다. <아카펠라>에 출연할 당시‘노출’은 전혀 중요한 고려점이 아니었다. 그럼에도 말씀처럼 “스무 살에 노출 도전” 같은 제목의 기사가 쏟아지더라. 원작 소설까지 있으니 그들도 내용을 몰랐을 리 없고, 작품에서의 캐릭터를 표현하려면 어쩔 수 없이 필요한 부분이었는데. 주위 사람들로부터 “아무리 검색을 해도 노출과 관련된 이야기만 나오더라”는 말을 듣고 상당히 불편했다. 물론 그런 일들을 두려워하지 않으니 맡은 배역이다. 허나, 그런 단편적인 측면보다 제가 궁극적으로 표현하고자 한 것들을 보다 현명(wise)하게 다뤄주었다면 좋았을 텐데 하는 아쉬움은 있다.

 

홍상현: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에서의 일정을 함께하는 동안 특히 필자의 시선을 끌었던 일이 있다. 누구든 기념촬영을 부탁하면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심지어 거울 한 번 보지 않고 응해주더라는 점. ‘팬서비스 정신’ 외에도, 그 배경에 ‘나는 외모는 내 전부가 아니다’ 즉, ‘그것 말고도 보여줄 것이 있다’는 자신감이 엿보였다.

엔도 니이나:

어차피 일상의 자질구레한 장면까지 공개되는 삶을 살고 있으니 다른 이미지를 꾸며댈 여지도 없다. 바로 그렇기 때문에 어떤 장면이 포착되어도 당당히 설명할 수 있도록 하자는 생각도 항상 가지고 있다. 두렵지 않다. 주로 《논노》같은 패션매거진 모델로 활동하던 10대 시절에는 ‘상황’에 의해 강제되는 일들이 많았다. 하지만, 앞서 말씀드린 내용과 다소 겹치는 내용인데, 제 나이 스물을 넘기면서부터는 스스로의 행동이나 선택에 대해 책임감을 잃지 않고, 납득하기 힘든 요구에 대해서는 정확하게 제 입장을 밝히는 삶의 태도를 견지해왔다.

‘어떤 이미지든 보여줄 수 있지만, 한 순간에 전복해버릴 수 있는 힘’은‘엔도 니이나라는 존재’를 증명하는 에너지다. ⓒ Endo Niina

홍상현:

<투어리즘>의 미야자키 다이스케 감독과 처음 만난 건 몬트리올 누보시네마영화제 초청작 <야마토(캘리포니아)>를 통해서다.

엔도 니이나:

그렇다. 일단 시나리오를 읽고 흥미를 느껴 <야마토(캘리포니아)>의 오디션에 자발적으로 응시했다. 대부분은 이렇게 시나리오나 기획의도에 대해 충분히 고려한 후에 출연을 결정한다. 하지만 전체적인 틀을 살펴보는 정도로 납득이 가능한 작품이라면 시나리오를 세세하게 뜯어보지 않는 케이스도 있다. 전체적인 방향성만 유지하면 내용에는 수정이 가해질 수도 있다고 전제하는 거다. <투어리즘>이 그랬다.

 

홍상현:

데뷔작 <바다에 잠기다> 이후 지금까지의 출연작을 살펴보며 당신이 ‘나라는 사람의 이미지’가 어떻게 보여 것인지 보다, 작품을 먼저 생각하는 배우임을 알 수 있다. 패션ㆍ헤어스타일은 물론, 일부러 체중을 늘린 사례도 적지 않다.

엔도 니이나:

작품을 위해 필요하다면 얼마든지 할 수 있는 일이다. 연기자의 기본이니까. 일단 작품에 대해 제 나름 여러 가지를 고려해서 판단을 내린 후에는 가급적 감독의 요구에 아무 협의 없이 ‘노(NO)’를 말하는 배우가 되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그녀는 어떤 자리에서든 ‘나 한사람만을 위한 메이크업 아티스트’를 요구하지 않는다. “제 얼굴을 가장 잘 아는 사람은 저 자신이기 때문”이라고 . ⓒ Endo Niina

홍상현:

《버라이어티》기사를 통해서도 언급된 바 있지만, <투어리즘>의 감독 미야자키 다이스케는 우익에 대한 반감을 공공연하게, 정면으로 드러내는 연출가다. 그렇다 보니 상대적으로 소프트한 느낌인 <투어리즘>에서도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싱가포르를 전장으로 만들었던 일본의 역사적 책임을 암시하는 시퀀스가 나온다. 보통의 연기자라면 아마 골치 아픈 상황을 피해 출연을 꺼렸을 수도 있다.

엔도 니이나:

(웃음) <투어리즘>이라는 작품을 선택한 사람은 바로 저자신이다. 아울러 역사에 대한 책임의식 또한 명확했다는 말씀 또한 분명히 드릴 수 있다.

배움이 짧다 보니 설명이 좀 막연할 수도 있겠지만, 제 주변에는 수많은 나라에서 온 친구들이 있다. 아니, 심지어 어느 나라 사람인지 알 수 없는 케이스도 있다. 하지만 그건 중요하지 않다. 언어가 통하지 않는 상황에서라도 결국 어찌어찌 소통하게 되니까. 제게 ‘역사’를 생각하는 실마리가 되어준 게 바로 이 지점이다. TV를 켜는 순간 흘러나오는 뉴스를 아무 생각 없이 받아들이기보다, 제가 발 딛고 선 땅에서 ‘이방인’이라는 이름으로 함께 지내는 친구들의 목소리는 지금껏 아무렇지 않게 여겨왔던 일들이 ‘전혀 당연하지 않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러자 관심이 자연스럽게 ‘자. 그럼 도대체 어떻게 해야 이런 내 친구들과 평화롭게, 사이좋게 지낼 수 있을까’로 발전하더라.

당연히 시간이 걸리겠지, 저 혼자만의 힘으로는 부족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래도 서로에 대해 제대로 알고, 진심으로 다가가려는 마음을 갖는 것만으로 조금은 나아질 수 있지 않을까.

 

홍상현:

“배움이 짧다” 같은 겸양적인 표현이 전혀 어울리지 않는다. (웃음) 반대로 사색의 깊이가 엄청난 것 같은데?

엔도 니이나:

감사하다. 제가 워낙 감각(sense)과 감정(feeling)에 의지해 살아가는 사람이다 보니 아직 모르는 것들이 많다. 게다가 사고 자체도 좀 독특한 면이 없지 않은 까닭에 이질감이 느껴지는 분도 계시겠지만, 저 자신 누구하고든 ‘좋다’는 말 한마디로 충분한, 그렇게 서로를 소중히 여기며 지낼 수 있는 관계를 꿈꾼다.

 

홍상현:

<투어리즘> 감독 인터뷰를 진행하면서 미야자키 감독에게 사진 하나를 받았다. 누가 봐도 ‘작업 모드’인 분위기로 제작진과 함께 찍은 사진이었는데, 실제로도 현장에서 본인의 촬영분량이 없을 경우‘ 만능 스태프’ 역할을 했다고.

엔도 니이나:

어린 시절부터 영화 현장을 경험하면서 배우들이 의식적으로 다른 스태프와 거리를 두는 모습을 종종 보았다. 물론 그것도 이유가 있다. 연기만으로도 엄청난 에너지가 소모되고, 따라서 케어를 받는다는 건 중요하다. 하지만 제 스타일상, 그렇게 저 자신에게만 집중하는 게 어색하더라. 촬영장에서 육체적으로, 혹은 정신적으로 힘든 사람은 저 뿐만이 아닌데. 연출부와 제작부, 미술부, 그 많은 분들이 나름의 고민거리를 안고 제대로 쉬시지도 못하는 게 뻔히 눈이 보이는 상황에서. 그 모든 걸 외면하고 저만 힘들다는 생각을 하는 게 싫었다.

<투어리즘>은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폐막 직후인 7월 13일부터 극장에서 공개되었다. ⓒ TOURISM 2019

홍상현:

<야마토(캘리포니아)>에서 공연한 한영혜도 비슷한 유형의 배우다. (웃음)

엔도 니이나:

맞다. 너무 좋아하는 분이다. 방금 말씀드린 부분과 관련해서 그녀는 확실한 모범을 보여준다. 오케이 사인이 떨어지자마자 ‘괜찮냐’면서 스태프부터 챙기는 배우니까. <야마토(캘리포니아)> 촬영 당시에도 대사나 연기 면에서 저보다 훨씬 난이도가 높은 장면을 찍었으면서, 시선이 마주치자 “힘들지?”라며 꽉 안아주더라. 유쾌한 한편으로 얼마나 마음이 든든했는지 모른다. 우리는 같은 열정을 지니고 있다고 생각한다. 결국 ‘영화’를 대하는 방식이 닮았다는 거지. 그러니 함께하면 즐거운 거고.

 

홍상현:

그 둘 사이에서 가교역할을 한 사람이 미야자키 감독이다. 배우의 입장에서 보는 미야자키 감독은 어떤 연출자인가? (웃음)

엔도 니이나:

사적으로도 친한 관계라 일상적인 대화를 자주 하다 보니 배우의 입장에서 바라보게 되는 경우는 그리 많지 않은데. (웃음) 무엇보다 세상을 보는 시선이 저와 비슷하다. 그의 디렉션에 백퍼센트 부합하는 연기를 보여주는 건 아니겠지만, 일단 납득할 수 있는 이유다. 물론 그가 쉬운 이야기만 하는 감독은 아니다. 하지만 함께 만들어낸 아웃풋을 보면 항상 만족스러웠다. 아, 그리고 화를 내거나 해서 배우를 힘들게 하지도 않는 감독이라는 점도 중요하다. 저 자신 그런 스트레스 지수 높은 현장을 아주 싫어해서. (웃음) 배우를 다그치지 않기 때문에 오히려 더 긴장하고 노력하고 있다.

 

홍상현:

오늘(6월 30일) GV 종료 후 관객들과 사인 및 기념촬영 할 때 지나가던 장년층 여성 관객 한 분이 “만화에 나오는 소공녀 같다”고 하셨다. 하지만 <투어리즘>에서의 빈곤층 청년 연기는 지나칠 정도로 사실적이었다.

엔도 니이나:

“예쁘다”는 의미에서 말씀하셨을 테니 먼저 감사하다는 말씀부터 드리고. (웃음) 『소공녀』의 영문 타이틀이 “A Little Princess”일 텐데, 최근 들어 형편이 나아졌지만 저는 원래 도쿄 도내에서도 살지 못했다. 독립해 남자친구와 지내게 되기 전까지 가족과 함께 살던 집은 위성도시인 하치오지 시에 있었다. 일을 하러나갈 때마다 왕복 두 시간이 걸렸고, 친구 집을 전전하던 시절도 있었지. 그렇다고 경제적으로 자립이 가능한 형편도 아니었다. 개런티가 그리 넉넉한 수준이 아니었으니까. 아니, 정확하게는 “빈곤”이라는 단어의 의미를 어느 정도 알고 있다고 표현하는 게 맞겠다. 그래도 고등학교까지 다녔으니 최저한의 생활수준은 유지했다고 볼 수 있지만, 무조건 공립학교 입시를 준비해야 했던 것도 실은 선택의 여지가 없었기 때문이다. 머리도 좋은 편이 아닌데 공부하느라 고생했다. (웃음) 물론 경제적으로 윤택하지 않다고 힘든 기억만 있는 건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게 많은 걸 주셨던 부모님이 안심하실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고 있다.

<투어리즘>은 그녀에게 “한 번도 ‘밖’으로 나가보지 못한 상황에서 모든 걸 안다고 믿던 시절의 대척점에 서있는 작품이다. ⓒ TOURISM 2019

“한 번도 ‘밖’으로 나가보지 못한 상황에서 모든 걸 안다고 믿던 시절이 제게도 있었습니다. <투어리즘>은 바로 그 대척점에 서있는 작품이죠. 너무나 익숙한 탓에 내 스스로가 갇혀있는 사실조차 모르는 장소에서 벗어나, 낯선 어딘가를 경험하는 기회. 거기서 느끼는 차이와 공감. 이 주제는 제가 앞으로 해보고 싶은 작품과도 연관되지요. 그 밖에, 이미지를 소비하기만 하는 작업만으로는 지칠 것 같은 성격인지라 창작자의 입장에도 서 보고 싶습니다. 발상이 유니크하다는 말씀을 많이들 해주시는데, 그에 어울리는 다양한 작업도 해보고 싶고. 그렇게 저를 가장 즐겁고, 행복하게 하는 게 뭔지. 매순간 갈망하고, 찾아내는 삶을 원합니다. 망설이고 싶지 않아요. 단 한 번뿐인 인생이니까.”

이야기는 출국항공편의 이륙 체크인 마감을 아슬아슬하게 앞둔 시점까지 이어졌다. 잠시나마 시간이 더디게 흘려주었으면 하는 바람마저 들었던 만남. 때로는 차분하면서도 결연하게, 때로는 웅변적으로 이어지는 목소리의 떨림에서, 아들에게 디지털 세상으로 가는 통로를 발견했음을 고백하던 <트론: 새로운 시작>의 ‘디지털 프론티어’, 케빈 플린(제프 브리지스 분)의 오프닝이 겹쳐진 것은 분명, 우연이 아니었을 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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