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칙주의자' 윤석열은 문 대통령에게 어떻게 화답했나

  • 기자명 김준일 기자
  • 기사승인 2019.07.26 08:34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윤석열 신임 검찰총장이 임기를 시작했습니다. 윤 총장은 25일 오전 청와대에서 문재인 대통령으로부터 임명장을 받은 뒤 오후 4시쯤 서울 서초동 대검찰청 15층에서 취임식을 가졌습니다. 윤 총장은 취임사에서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는 헌법 1조를 언급했고 ‘공정한 경쟁 질서’를 강조했습니다. <취임식에서 헌법 1조 읊은 윤석열>, 이 뉴스의 행간을 살펴보겠습니다.

KBS 화면 캡처.

 

1. 문대통령의 '원칙론'에 화답하다

문재인 대통령의 원칙주의는 유명합니다. 야당 대표시절에도 총선 공천갈등으로 국민의당 분당사태까지 있었지만 비대위원장에게 맡긴 공천에 개입하지 않았습니다. 적폐청산도 원칙에 따라 끝까지 밀어붙이겠다는 의지를 자주 밝혔습니다. 현재 일본과의 외교갈등, 러시아 군용기 영공침범 역시 원칙적으로 대응하고 있습니다. 이런 원칙주의자의 면모는 윤석열 검찰총장에게도 보입니다. 국정원 댓글 수사 때 정치적인 이해관계를 고려하지 않고 수사만 하겠다는 원칙을 견지하다 좌천됐습니다. 이게 검찰총장으로 발탁되는데 상당히 큰 역할을 했습니다.

윤석열 총장이 어제 취임사에서 일단 헌법 1조를 언급한 것 자체가 원칙을 지키겠다는 선언이나 다름 아닙니다. ‘공정한 경쟁질서의 확립’을 강조했는데, 자본주의의 핵심 원칙이 공정함입니다. 윤 총장은 “공정한 경쟁이야말로 우리 헌법의 핵심 가치인 자유와 평등을 조화시키는 정의입니다”라고 말했습니다(전문). 핵심 키워드는 공정, 평등, 정의입니다.

이 키워드는 문재인 대통령이 2012년 민주당 대통령 후보 수락연설에서 했던 발언, “기회는 평등할 것입니다. 과정은 공정할 것입니다. 결과는 정의로울 것입니다”와 거의 정확하게 일치합니다. 이 발언은 2017년 대통령 취임사에서도 반복됐습니다. 윤석열 신임 검찰총장이 인사권자의 원칙론과 철학에 화답해 의도적으로 해당 키워드를 넣은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2. 자신의 목소리를 내다

윤석열 하면 떠오르는 건 ‘사람에게 충성하지 않는다’ 이 발언입니다. 문재인 대통령은 어제 임명장을 수여하면서 “권력에 휘둘리지 않고 눈치도 보지 않고 사람에게 충성하지 않는 자세로 공정하게 처리해 국민의 희망을 받았는데, 그런 자세를 끝까지 지켜주기 바란다”고 당부했습니다. 대통령도 언급할 정도로 윤 총장의 트레이드 마크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이 발언은 윤석열 본인이 주도적으로 꺼낸 것이 아닙니다. 2013년 10월 21일 국정감사 중 정갑윤 당시 새누리당 의원은 “증인은 조직을 사랑합니까”라고 물었고 윤석열 검사는 “예, 대단히 사랑하고 있습니다”라고 답했습니다. 이어 정 의원이 “사랑합니까? 혹시 사람에 충성하는 것은 아니에요?” 묻자 “저는 사람에 충성하지 않기 때문에 제가 오늘도 이런 말씀을 드리는 겁니다”라고 답했습니다. 당시 여당이던 새누리당에선 윤석열 검사가 댓글 수사를 지켜주다 경질된 채동욱 검찰총장에게 충성하기 위해 국정감사에 나와 증언한 것 아니냐는 의혹을 제기한 것인데, 아이러니하게 이 발언이 윤석열의 트레이드마크가 되고 검찰총장까지 만들어 준겁니다.

어제 취임사는 자신의 언어를 구사한 첫 날이었습니다. 키워드는 “공정한 경쟁 질서”와 “국민과 함께하는 검찰”. 어제 윤 총장은 취임사에서 헌법 1조를 포함해 국민이라는 단어를 24번이나 사용했습니다.

 

3. 적폐청산은 계속된다

취임사에서 윤 총장은 상당히 단호하지만 정제된 언어를 사용했습니다. “권력기관의 정치 및 선거 개입, 불법자금 수수, 시장교란 반칙행위, 우월적 지위의 남용 등 정치와 경제 분야의 공정한 경쟁질서를 무너뜨리는 범죄에 대해서는 추호의 망설임도 없이 단호하게 대응해야 할 것입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정치권은 물론 불공정 행위를 일삼하는 재벌을 대상으로 고강도 수사를 할 것임을 예고했습니다. 지난 2년간 정치·사법 적페 청산에 집중했다면 앞으로는 경제 적폐청산을 목표로 하겠다는 겁니다. 삼성바이오로직스 분식회계 및 증거인멸 수사는 윤 총장이 서울중앙지검장 시절 지휘했던 것이기 때문에 직접 챙길 가능성이 높습니다.

임명장 수여를 위해 윤석열 검찰총장은 청와대에서 조국 민정수석을 만났습니다. 조 수석이 직접 윤 총장에게 자리를 안내했고 상당시간 얘기를 나눈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조국 수석은 오늘 청와대를 떠납니다. 현재로서는 법무부 장관 후보가 유력합니다. 조국과 윤석열, 이 조합은 하반기 문재인 정부의 검찰개혁과 적폐청산의 상징이 될 것으로 보입니다. 민경욱 자유한국당 대변인은 "윤 총장은 '사람에게 충성하지 않는다'고 했으니 자기 말에 책임지는 사람의 모습을 보여주기 바란다"고 당부했습니다.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오늘의 이슈
모바일버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