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보험 외국인 의무가입은 퍼주기? 오히려 외국인이 반대한다

  • 기자명 박한슬
  • 기사승인 2019.08.05 08:23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장기체류 재외국민 및 외국인에 대한 건강보험 적용기준이 개정되며, 국내에 6개월 이상 체류하는 모든 외국인은 의무적으로 건강보험에 가입하게 됐습니다. 의료 사각지대에 있는 외국인 체류자들이 적절한 의료 혜택을 받을 수 있게 된 것은 다행스러운 일이지만, 내국인이 납부하는 건강보험료를 이용해 외국인들에게 혜택을 주는 것이란 반론도 만만찮습니다. 당사자인 국내 체류 외국인들도 그리 반기지 않는 이 정책은 왜 나오게 된 것일까요? 뉴스톱에서 외국인 건강보험 의무적용에 대해 짚어봤습니다.

 

사회적 합의로 시작된 외국인 건강보험

국민건강보험에서 외국인의 가입 여부가 본격적으로 논의된 것은 2006년부터 입니다. 국내에 외국인 이주노동자가 늘어나고, 이들이 소위 ‘3D 업종’이라 불리는 건강 위험성이 큰 분야에서 일하고 있음에도 의료적 도움을 받을 수 없는 점이 사회적 이슈로 부각 되자 우선 직장가입자를 대상으로 외국인도 건강보험에 의무가입을 하도록 제도를 바꾼 것입니다. 직장에 다니지 않는 외국인은 별다른 조건 없이 선택적으로 지역가입자로 편입될 수 있었지만, 2008년부터는 국내에 90일 이상 체류한 외국인만 지역가입자로 가입할 수 있게 개정이 됐죠.

내국인에 비해 워낙 적은 숫자라, 처음에는 이런 조치가 크게 주목을 받지 못했습니다. 사회적 약자인 외국인 노동자들에게도 어느 정도의 의료 안전망이 갖춰졌다는 정도의 인식만 있었죠. 그러다 외국인 건강보험이 주목을 받기 시작한 것은 2015년 경입니다. 당시 국정감사에서 '외국인·재외동포의 건강보험 적용'에 대한 질타가 나오며, 소액의 건강보험료만 지급하고 억대 혜택을 받은 다음 해외로 출국하는 이들을 막아야 한다는 여론이 생긴 것입니다.

실제로 이런 ‘먹튀’ 사례들은 충격적인 수준입니다.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김광수 의원(민주평화당)이 건강보험공단에서 받은 자료에 따르면, 어떤 외국인은 고작 30만 원의 보험료를 내고 2억 5천만 원의 막대한 보험 혜택을 받은 적도 있었습니다. 그보다 조금 더 일반적인 사례는 국가가 치료비의 전액에 가까운 비용을 부담하는 ‘결핵’ 환자입니다. 국내 결핵 환자 치료를 위해 도입된 제도를 악용해, 해외의 결핵 환자가 국내에 입국 후 5천만 원에서 1억에 가까운 보험 혜택을 받는 경우가 종종 발생했다는 것이 드러난 겁니다.

이런 소식을 접한 여론은 들끓었고, 그즈음의 제주도 난민 사태와 맞물리며 외국인에 대한 건강보험 적용을 전면 철폐해야 한다는 식의 주장까지 등장했지만, 실상은 좀 다릅니다.

 

건강보험료 부담은 내국인에게도 동등하지 않다

우리나라 국민건강보험의 가입자는 크게 직장가입자와 지역가입자라는 두 가지 유형으로 나뉩니다. 직장에서 월급을 받는 사람은 직장가입자로 분류되고, 그렇지 않은 사람들은 모두 지역가입자로 나뉘죠. 두 유형 사이에는 이런저런 차이가 있지만 가장 눈에 띄는 차이점은 ‘건강보험료 산정 방식’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소득 산정 방식의 차이 때문에, 두 가입자 집단은 건강보험료 산정 방식도 달라질 수밖에 없거든요. 그렇지만 정작 두 보험 가입자 간의 가장 두드러지는 차이는 따로 있습니다. 바로 가입자의 전반적인 연령과 건강 상태입니다.

2018년 건강보험 주요통계에 따르면 지역가입자의 65세 이상 인구 비율은 15% 정도입니다. 직장 가입자의 65세 이상 인구 비율이 13% 정도임을 고려하면 큰 차이가 없어 보이지만, 이 수치는 일종의 착시입니다. 우리가 아는 대부분의 직장은 정년이 65세입니다. 그마저도 다 못 채우고 나오는 경우가 많은데, 65세 이상 인구가 직장 가입자의 13%를 차지한다는 것은 좀 이상하죠. 이는 돈을 내는 주체인 직장가입자와 가입자가 부양하는 피부양자를 모두 포함한 수치라서 생기는 현상입니다.

예컨대 직장을 다니는 아무개 씨는 당연히 직장가입자가 됩니다. 그런데 아무개 씨의 부모가 별다른 소득도 없고, 모아둔 자산도 없는 경우엔 부모가 지역가입자로 등록되어 별도의 보험료를 내는 것이 아니라 아무개 씨의 피부양자로 건강보험 적용을 받을 수 있습니다. 돈은 직장에 다니는 아무개 씨가 내지만, 건강보험 혜택은 같이 누릴 수 있도록 배려를 해주는 것이죠. 그래서 이들이 직장가입자로 같이 묶이긴 하지만 실제로는 대부분의 가입자가 건강 상태가 비교적 좋은 20대-50대에 분포하고 있습니다. 반면에 지역가입자는 상대적으로 건강 상태가 나쁜 노인이나 저소득 자영업자가 많이 분포하고 있죠.

그래서 한국 국민건강보험은 직장가입자가 내는 보험료로 지역가입자가 쓰는 돈을 벌충해주는 방식으로 작동하고 있습니다. 2014년 기준으로 직장가입자가 납부한 보험료는 34조 원 정도이지만, 직장가입자가 건강보험에서 받은 혜택은 29조 원에 불과합니다. 반면에 지역가입자가 납부한 보험료는 7조 원인데, 혜택을 받은 것은 13조 원에 달합니다. 직장가입자가 건강보험료를 훨씬 많이 내지만, 그만큼 아프지는 않다 보니 그만큼 혜택을 보고 있지 못한 겁니다. 그런데 이런 현상은 외국인 건강보험 가입자에게서도 동일하게 나타납니다.

 

외국인 건강보험 가입자는 얌체가 아니라 ‘호구’

앞서 설명했던 내국인과 동일하게, 외국인 가입자도 직장가입자와 지역가입자로 나뉩니다. 다만 내국인과 다른 점도 있습니다. 내국인은 지역가입자도 의무가입 대상이었지만, 외국인은 3개월 이상 거주한 사람 중 원하는 사람만 선택적으로 건강보험료를 납부하고 지역가입자가 될 수 있었거든요. 그렇지만 직장가입자의 수가 훨씬 많았기에, 외국인 가입자 전체가 납부하는 보험료는 항상 흑자였습니다. 2017년 한 해에만 2,490억 원의 흑자를 보고, 2013년부터 2017년까지를 종합하면 혜택을 본 것에 비해 1조 1천억 원을 더 납부한 겁니다.

 

2016년까지의 건강보험 외국인 가입자 변화, 건강보험통계

 

이런 현상이 나타난 것에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지만, 가장 큰 이유는 국내에 일자리를 구하러 오는 외국인들이 대부분 젊고 건강한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국가통계포털의 정보에 따르면 2017년 기준 국내에 체류 중인 외국인 중 60세 이상인 사람은 22만 명에 불과합니다. 이는 전체 체류외국인의 10%이고, 그중 67%는 소위 ‘조선족’이라 불리는 중국계 한국인입니다. 실제로 국내에 체류 중인 외국인의 대부분은 20-50대의 건강한 사람이고, 그 때문에 이들은 의료 혜택을 보는 것보다 훨씬 많은 돈을 건강보험공단에 지불하고 있습니다. 일반적인 인식으로는 얌체지만, 실제로는 쓰는 것보다 큰돈을 내는 ‘호구’에 가까운 겁니다.

앞서 살펴본 것처럼 전반적인 건강보험 체계 자체가 직장가입자에게 크게 의존하는 형태이긴 하지만 일부 외국인 지역가입자들이 얌체 짓을 하는 것은 엄연한 사실이고, 원하는 사람만 지역가입자로 받도록 하고 있다 보니 실제로 건강이 나쁜 사람들만 지역가입자로 들어오는 역선택도 발생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보험제도의 근본적 원리인 위험분산(risk pooling)을 외국인 지역가입자에게도 도입하기 위해, 2019년 7월 16일부터 6개월 이상 국내에 체류하는 외국인 지역가입자도 강제적으로 건강보험에 가입하도록 제도가 바뀐 겁니다.

 

재한 중국인 커뮤니티 사이트 inckr 게시글 캡쳐

 

외국인에게 세금을 퍼준다는 일부의 주장과 달리, 제도가 시행되자 당장 외국인 유학생들이 우려를 표시하고 나섰습니다. 청와대에는 이들을 대변해 외국인 건강보험 당연가입 철회 청원이 올라왔고, 미리 소식을 접한 이들은 국내 거주 중인 중국인들이 많이 사용하는 포털사이트 icnkr에 관련 문의를 올리며 대응책을 고심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월 11만 원에 달하는 비용이 병원 이용을 할 일이 별로 없는 유학생 입장에는 너무 부담이란 거죠.

앞서 살펴봤던 것처럼 외국인 건강보험료는 매년 흑자였습니다. 일부 얌체 같은 외국인 지역가입자들이 혜택을 보는 금액을 고려하더라도, 건강한 외국인들이 타국에서 힘들게 일하며 본인이 받은 의료 혜택보다 훨씬 많은 돈을 건강보험료로 납부하고 있는 중이죠. 얌체 짓을 잡아내자고 외국인 지역가입자 모두에게 과도한 건강보험료를 부과하는 것은, 얌체를 잡는 것보다는 국내 체류 중인 외국인들의 의료 접근권을 낮출 가능성이 훨씬 큽니다. 의무가입 등의 제도개선이 필요한 것은 맞겠지만, 조금 더 유연한 적용이 필요하지 않을까요?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관련기사
오늘의 이슈
모바일버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