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방문자 무비자 입국 제한' 조치가 미국의 대북제재?

  • 기자명 김준일 기자
  • 기사승인 2019.08.07 10: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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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교부는 6일 미국 정부가 5일부터(현지시간) 북한 방문자의 전자여행허가제(ESTA)를 통한 무비자 입국을 제한하고 있다고 밝혔습니다. ESTA는 비자면제프로그램에 가입한 38개 국가 국민이 최대 90일까지 비자 없이 미국을 방문할 수 있게 한 제도입니다. 2011년 3월 1일 이후 북한을 방문한 총 3만7천명의 한국 사람이 무비자 미국 입국 제한 대상입니다. 미국 정부는 한 달 전에 우리 정부에 이런 방침을 통보했다고 합니다. <북한 방문자 무비자 입국 막은 미국> 이 뉴스의 행간을 살펴보겠습니다.

 

KBS 뉴스 화면 캡처

 

1. 20개월의 의미

미국 정부는 2016년부터 ‘비자면제 프로그램 개선 및 테러리스트 이동방지법’에 따라 테러지원국 등 지정 국가 방문자에게는 비자면제프로그램(VWP) 적용을 제한해오고 있습니다. 북한은 2008년 테러지원국 명단에서 제외됐다가 북한에 억류됐다가 귀국 후 숨진 오토 웜비어 사건을 계기로 2017년 11월에 테러지원국으로 재지정됐습니다. 그리고 2019년 8월부터 북한은 2016년부터 이미 ESTA 제한 적용을 받았던 7개 대상국(이란 이라크 수단 시리아 리비아 예멘 소말리아)과 함께 묶이게 됐습니다. 북한이 테러지원국 재지정된 이후 비자면제프로그램 적용 제한 지역으로 분류되기까지 20개월이나 걸린 겁니다.

한국 외교부 설명에 따르면 미국의 이번 조치는 테러 위협대응과 국내법 준수를 위한 기술적·행정적 조치며 후속준비 절차가 완료되어 시행했습니다. 미국측의 이런 설명에도 불구하고 행정적인 조치에 20개월이나 걸린 이유가 명쾌하게 이해되지 않습니다. 왜 하필 이 시점이냐는 의문이 나오는 이유입니다.

보수언론에서는 사실상 미국이 추가 대북제재를 나선 것 아니냐는 겁니다. 하지만 추가 대북제재로 보기엔 실질적으로 북한에 끼치는 영향이 거의 없습니다. 북한 방문객 숫자가 매우 제한적이기 때문입니다. 미국이 북한 방문자의 비자 발급을 안해주겠다는 것도 아닙니다. 북한을 방문하는 사람이 번거로워진 수준입니다. 이번 조치는 북한이 여전히 테러지원국이고 협상이 끝나기 전까지는 제재조치가 풀리지는 않을 것이라는 미국 정부의 원칙을 재확인시켜 준 것으로 봐야합니다. 일부 보수언론이 주장하는 것처럼 남북 경협에 의지를 보이는 문재인 정부에 ‘비토’ 신호를 보냈다는 분석은 오버입니다. 북미 비핵화 협상이 진전되면 미국은 북한에 대한 테러지원국 지정을 해제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2. 한 달의 의미

미국 정부는 이미 지난달에 한국 정부에 이 같은 조치가 시행될 것임을 통보했습니다. 그런데 외교부는 시행 당일인 어제 발표를 했습니다. 내용을 보면 각별히 보안을 유지할 이유도 없어보입니다. 시민 생활에 불편을 끼칠 행정적 변화라면 정부가 사전 예고하고 충분히 설명을 하는 것이 상식입니다. 경향신문은 사설에서 "외교부의 안이한 대응에 화가 치민다"고 밝혔습니다. 왜 우리 정부는 미국측의 이런 조치를 바로 발표하지 않고 한달이나 걸려서 발표를 했을까요.

발표가 늦어진 배경엔 국내외 정치적 이유가 있다고 보는 것이 합리적입니다. 미국의 이번 조치는 분명 북한에 대한 우호적 조치는 아닙니다. 북미관계와 남북관계가 냉각기에 접어든 상황에서 굳이 이 조치를 미리 발표해 북미관계에 안 좋은 해석이 나오는 것을 막고 싶었던 것이 우리 정부의 솔직한 속내였을 겁니다.

게다가 미국 무비자 입국은 2008년부터 시행됐습니다. 이명박 정부의 업적입니다. 전면적인 무비자 입국 제외는 아닐지라도 무비자 입국에 일정 정도 제한이 걸린다는 것은 분명 문재인 정부에는 부담입니다. 정권간 비교가 될 수밖에 없는 사안입니다. 지난 한달간 한국 외교부가 미국의 이 조치를 완화하기 위해 물밑에서 노력했을 것입니다. 

 

3. 3만7천명의 의미

통일부는 2011년 3월 1일부터 2019년 7월 31일까지 방북 신청한 인원이 3만7000여명이라고 밝혔습니다. 실제 방북 인원은 약 3만명 안팎이 될 것으로 보입니다. 적지 않은 숫자이긴 하지만, 한 해에 미국을 방문하는 한국인 숫자는 200만명이 넘습니다. 전체 미국 방문자의 1.5% 수준입니다.

그런데 지난 8년간 북한을 방문했던 사람들은 대부분 개성공단 관계자, 공무원, 아니면 정관재계 고위급 인사 및 일부 예술계 인사입니다. 예를 들면 지난해 9월 평양 정상회담에 참석했던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최태원 SK그룹 회장 등 기업인도 ESTA를 통한 비자 면제 혜택을 받을 수 없습니다. 지난해 4월 평양에서 예술단 공연을 한 가수 조용필, 윤상, 백지영, 서현씨와 걸그룹 ‘레드벨벳’ 멤버들도 무비자로 미국에 갈 수 없게 됩니다. 북한을 방문한 문재인 대통령도 퇴임 이후에는 원칙적으론 미국 비자 심사를 받아야 한다고 합니다. 많은 언론들이 기사 제목에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을 넣은 이유입니다.

다만 미국 비자 면제 혜택이 없어진다고 업무적으로 북한에 가야할 사람이 안 가는 일은 없을 것입니다. 이번 조치가 남북관계에 미치는 영향은 제한적이란 의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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