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국 임명강행'이 '반문연대' 매개가 될 수 있다

  • 기자명 김준일 기자
  • 기사승인 2019.08.22 13: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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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회는 평등하고, 과정은 공정하며, 결과는 정의로울 것”. 문재인 대통령의 취임사입니다. 21일 유승민 바른미래당 의원이 본인 페이스북에 이 취임사를 거론했습니다. “저는 평등·공정·정의라는 대통령의 저 말씀에 공감했었다. 그런데 지금 법무부장관 후보자에 대해 제기되는 의혹들은 대통령의 평등·공정·정의가 가증스러운 위선임을 증명하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유 의원은 “만약 대통령이 임명을 강행한다면 이 정권은 걷잡을 수 없는 국민의 저항에 직면하고 몰락의 길을 걷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습니다.

나경원 자유한국당 원내대표도 같은 날 최고위원회의에서 “기회는 특권으로, 과정은 불공정, 부패로 점철된 인물을 법무부 장관 후보자에 지명했다. 이게 문재인 정권이 말한 정의로운 결과인가”라며 비난했습니다. 야당의 두 유력 정치인이 평등·공정·정의 키워드를 가지고 조국 후보자와 문재인 정부를 비판한 겁니다. <평등·공정·정의가 죽었다는 유승민> 이 뉴스의 행간을 살펴보겠습니다.

YTN 화면 캡처.

1. '조적조’가 떴다

21일 기사 제목에서 ‘조적조’라는 단어가 나왔습니다. 원래는 벽돌을 쌓는 방식을 의미하는 단어로 건축계에서 쓰입니다. 이게 몇 년 전부터는 “조선일보의 적은 조선일보다”라는 의미로 사용됐습니다. 조선일보 보도가 앞뒤가 안 맞는게 워낙 많아서 과거 조선일보 기사로 현재 조선일보 기사를 반박할 수 있다는 의미였습니다. 요즘 쓰이는 ‘조적조’는 “조국의 적은 조국”이라는 의미입니다. 과거 조국 후보자가 SNS나 책에서 주장했던 내용과 조국 후보자의 행동이 전혀 일치하지 않는다, 한마디로 '내로남불'이라는 의미입니다.

조 후보자는 본인의 저서 <왜 나는 법을 공부하는가>에서 “중·고교생에게는 학교 성적을 잘 받아서 ‘SKY 대학’에 가라는 지상 명령이 떨어진다. 적어도 내 아이에게는 이런 말을 하고 싶지 않다”고 밝혔습니다. 정작 조 후보자는 온갖 편법을 동원해 자녀가 명문대에 가도록 방조했단 의혹을 받고 있죠. 2012년 4월 19일 조 후보자는 트위터에 “직업적 학인과 그렇지 않은 사람의 논문 수준은 다르다. 그러나 후자의 경우도 논문의 기본은 갖추어야 한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조 후보자 딸은 2주간 인턴을 통해 6페이지짜리 논문 1저자로 등극했습니다. 2012년 4월 15일 트윗에선 “장학금 지급 기준을 성적 중심에서 경제 상태 중심으로 옮겨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수십억대 자산가 아버지를 둔 조 후보자 딸은 의학전문대학원에서 6학기 연속 장학금을 받았습니다. 

물론 조 후보자가 법을 위반했다는 증거는 현재까지는 나오지 않았습니다. 조 후보자는 현재 딸 부정입학 의혹에 대해 "명백한 가짜뉴스"라고 이야기했습니다. 하지만 상당수 국민들은 이게 공정하지 않다고 인식하고 있습니다. 과거 최순실 국정농단에 국민들이 결정적으로 분노하게 된 계기도 정유라씨의 이대 불법입학이었습니다. 그만큼 학업 공정성에 대해 국민들이 민감합니다. 조적조란 단어는 평등·공정·정의를 지키지 않는 집권층의 이중성과 내로남불을 비판하는 단어입니다. 386특권층이 '합법적 스카이캐슬'을 구축한다는 것에 분노하고 있는 것입니다. 청와대와 여당은 "불법은 없다"고 강조하지만 지금 상황은 합법·불법의 영역이 아닌 것이기에 그 주장은 큰 의미가 없습니다. 지난 3월에 낙마한 최정호 국토교통부 장관 후보자도 '다주택 논란'이 있었을 뿐 불법은 없었습니다.

 

2. '반문연대'의 명분

유승민·나경원, 바른미래당과 자유한국당을 대표하는 두 의원이 거의 비슷한 키워드로 조 후보자와 정부를 비판했습니다. 안티조국을 매개로 소위 '반문연대'가 이뤄질 가능성이 열린 것으로 볼 수도 있습니다. 그동안 자유한국당과 나경원 원내대표는 유승민 의원을 비롯한 구 새누리당 출신 바른미래당 의원들에게 구애를 해왔습니다. 하지만 유 의원은 자유한국당이 변하지 않는 이상 통합은 무의미하다는 입장이었습니다. 이틀전 나 원내대표는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대한민국 위기극복 대토론회’에서 "문재인 정권의 폭주를 막기 위해서 큰 그림의 반문연대 틀 안에서 작은 차이를 무시하는 통합의 길로 가야 한다 안철수부터 우리공화당까지 함께 반문연대를 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여전히 반문연대를 포기하지 않은 상태에서 명분이 제대로 주어진다면 보수성향 의원들이 다시 뭉치는 것을 상상하는 건 이상한 것이 아닙니다. 

문재인 정부의 평등·공정·정의에 공감했지만 지금은 실망했다는 유승민을 움직이게 할 명분은 바로 조국 임명 강행이 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자신들의 주장처럼 '문재인 정부의 폭정'을 막기 위해 보수양당이 손을 잡을 가능성이 있다는 겁니다. 현재 정치권은 총선을 앞둔 상황에서 민주당을 제외하고 모든 정치세력이 이합집산하며 합종연횡을 추구하고 있습니다. 현재 지지율을 감안하고 현 정당구조가 그대로 가는 것을 전제하면 내년 총선 구도는 ‘1강 1중 3약’이 예상됩니다. 하지만 '반문연대'가 성사되면 ‘2강 1약’ 혹은 ‘2강 1중 1약’으로 재편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

 

3. ‘문재인 아바타’의 딜레마

문재인 정부에서 문재인 대통령을 빼고 가장 먼저 생각나는 정치인은 조국 전 민정수석입니다. 좋든 싫든 조 후보자는 문재인 정부를 대표하는 인물이 되어 버렸습니다. 사실상 ‘문재인 아바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그런 사람이 불평등·불공정·부정의하다고 공격받고 있습니다. 문재인 정부에도 큰 타격입니다. 그래서 여당 지지층에서도 의견이 엇갈리고 있습니다. ‘지금 밀리면 계속 밀린다’는 의견과 ‘장관이 되면 정부에 큰 부담이 될 것이다’는 의견이 모두 나오고 있습니다.

전폭적으로 조국을 지지하던 민주당 내에서도 미묘한 분위기 변화가 감지되고 있습니다. 21일 <김현정의 뉴스쇼>에 나온 박용진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국민들이 납득하지 못하는 해명을 내놓는다면 최악의 상황으로 갈 수 밖에 없다”며 “결단이 불가피한 상황”이라는 말을 했습니다. 김상조 청와대 정책실장은 한국방송기자클럽 초청 토론회에서 조국 딸 논문 저자 논란에 대해 “지금 한다면 불법”이라는 말을 했습니다. 추후 "불법은 아니다"고 바로잡았습니다. 김 실장 발언의 의미는 '지금은 정부가 제도 개선을 하고 철저히 단속한다'는 말이지만 거꾸로 해석하면 그때 조 후보자 딸과 관련된 일이 편법이었다는 말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이제 조 후보자 건은 '합법이냐 불법이냐'의 문제를 넘어섰습니다. '정권에 부담이 되느냐 안되느냐' 차원입니다. 임명을 강행한다면 강력한 검찰개혁 의지를 보여주는 것이지만 일부 지지층 이탈은 불가피해보입니다. 다만 지지층의 결집효과는 예상할 수 있습니다. 작가 공지영씨는 "문재인 대통령이 지지했으므로 조국을 지지한다"고 트위터에 밝혔습니다. 조 후보자가 사퇴한다면 야당의 반문연대 명분을 잠시 저지하는 효과가 있습니다. 현재까지 청와대와 민주당은 청문회는 받아봐야 한다는 입장이지만, 자진사퇴 형식을 빌린 임명철회론이 솔솔 나오는 이유입니다. 결정도 부담도 모두 대통령의 몫이 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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