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팩트체크] 리얼돌은 성범죄 유발? 연예인 얼굴로 제작가능?

  • 기자명 문기훈 기자
  • 기사승인 2019.08.23 12: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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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계를 중심으로 리얼돌 사용이 여성의 성적 대상화를 부추겨 성범죄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가 크다. 지난 6월 대법원이 여성의 신체를 본뜬 성인용품 리얼돌의 수입을 허용하다는 판결을 내린 뒤 논란이 불거졌다. 윤김지영 건국대 몸문화연구소 교수는 “포르노는 남성의 성적 판타지를 충족하는 자위 영역이라고 하지만, 현실 관계에 반영된다”며, “남성들은 리얼돌과 했던 행위들을 여성들에게 반복할 가능성이 크다”고 지적했다. 서승희 한국사이버성폭력대응센터 부대표는 7일 CBS 라디오에 출연해 리얼돌 시판 허용으로 “성폭력이 증가할 수 있기 때문"에 전면적인 유통 및 수입금지가 필요하다는 주장을 폈다.

하지만 리얼돌 금지에 대한 반대 의견도 만만치 않다. 이미 대법원이 허용한 것이기 때문에 막을 법적 근거가 없다는 주장이 있다. 또 리얼돌을 수입할 경우 성범죄가 증가할 수도 있다는 주장은 남성을 잠재적 범죄자로 보는 시각이라는 주장도 제기됐다.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는 "리얼돌 수입 및 판매를 금지해주세요"라는 청원에 26만여명이 참여했다. 20만명이 넘었기 때문에 청와대가 답변을 할 것으로 보인다. 뉴스톱이 리얼돌 논란에서 제기된 각종 주장에 대해 팩트체크했다.

온라인 캡처.

1. 선진국에서는 리얼돌을 제재하지 않는다?

대부분의 서방 국가들은 성인의 모습을 한 리얼돌을 성기구의 일종으로 보고 수입 및 매매를 허용한다아동의 모습을 본떠 만든 이른바 ‘아동 리얼돌’에 한에서는 선별적으로 규제가 이루어진다. 다만 관련 법안의 실제 적용 여부에는 국가별로 조금씩 차이가 있다.

지난 3월 영국 검찰청은 아동 리얼돌 수입을 제재하기 위한 유권 해석 가이드라인을 내놓았다. 기존의 통상법 조항들을 아동 리얼돌에 확대 적용해 수입 및 구매자를 처벌할 수 있도록 했다. 단순 소지 (possession)는 처벌하지 않되 수입 (importation)과 ‘고의적인 취득 (knowingly acquiring possession of goods),’ 즉 구매를 차단하는 방식으로 규제에 나선 것이다. 이전에도 해외에서 아동 리얼돌을 주문했다가 세관당국에서 적발돼 실형에 처해진 사례들이 확인된다.

호주 의회는 지난 2월 아동 리얼돌의 소지와 유통을 금지하는 법안을 발의했다. 기존에도 주에 따라 아동 리얼돌을 아동 포르노의 일종으로 보고 소지자를 징역 2년 3개월에 처한 사례가 있었으나 연방 의회 차원에서 규제 법안을 재차 마련한 것이다. 하지만 해당 법안은 회기 내에 처리되지 못하고 4월 11일 자동 폐기된 것으로 드러났다.

캐나다 세관당국은 2016년 1월부터 2018년 8월에 이르는 기간동안 최소 42개의 아동 리얼돌을 아동 포르노로 간주, 압수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구매자가 검찰에 기소된 사례는 지금껏 한 건이 유일하며, 그마저도 지난 5월 최종 무죄 판결을 받았다. 고의성이 충분히 입증되지 않았다는 이유였다.

미국에서는 작년 6월 성적인 용도로 만들어진 아동 리얼돌의 수입, 운반 및 소지를 금지하는 법안 (일명 크리퍼법)이 하원을 만장일치로 통과했고 현재 상원에서 계류 중이다. 해당 법안은 아동 리얼돌이 아동 대상 성범죄를 유발한다고 단정적으로 명시해 전문가들의 반발에 부딪힌 바 있다플로리다테네시켄터키 등 일부 주에서는 이미 독자적으로 아동 리얼돌 소지를 처벌하는 법을 시행 중이다. 실제로 기소된 사례는 아직까지 없는 것으로 확인된다.

한국도 위 국가들과 비슷하게 아동 리얼돌을 규제하는 독자적인 법리 마련에 나섰다. 지난 8일 민주평화당 정의화 의원은 '아동 청소년의 성보호에 관한 법률 일부개정법률안'을 발의했다. ‘아동 리얼돌’을 제작하거나 수입할 경우 3년 이하의 징역, 영리목적으로 판매하거나 전시, 광고를 한 경우에는 5년 이하의 징역에 처할 수 있다. 단순 소지는 1000만원 이하의 벌금형에 처한다.

 

2. 리얼돌 사용이 성범죄를 유발한다?

리얼돌 사용이 여성 및 아동을 대상으로 한 성범죄를 초래한다는 실증적인 연구 결과는 현재까지 없다. 직접적인 인과 관계 (causation)는 물론이고 상관 관계 (correlation)조차 객관적으로 규명되지 않았다. 해당 문제를 다룬 논문들은 포르노와 성범죄 사이의 연관성을 다룬 기존의 연구결과를 참조하는 데 그치고 있다. 리얼돌이 포르노 문화의 일종이므로 포르노와 비슷한 사회적 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추정에 기반한 접근이다.

아동 리얼돌 규제 법안을 시행하고 있는 많은 국가들이 이를 바탕으로 유추해낸 아동 리얼돌의 ‘잠재적인 위험’을 규제의 근거로 삼고 있다. 여성계에서 지적하는 성적 대상화와 여성 혐오 조장, 더 나아가 성범죄 증가와 같은 문제들이 여기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다. 다만 인과관계가 입증되지 않은 가운데 잠재적인 위험만을 가지고 개인의 성적 자기결정권을 침해할 수 있느냐는 논란이 외국에서도 꾸준히 제기되고 있다.

 

3. 연예인 등 특정인 얼굴로 리얼돌을 ‘맞춤제작’할 수 있다?

일부 업체에서 구매자가 원하는 얼굴·신체에 따라 리얼돌을 주문제작 할 수 있다는 답변을 한 것이 알려지며 논란이 됐다. 26만명 이상의 동의를 받은 청와대 국민청원 역시 이 점을 리얼돌 수입 및 판매 전면금지의 핵심 근거로 제시하고 있다. 타인의 얼굴을 무단으로 성기구 제작에 사용함으로써 심각한 인권 침해를 야기할 수 있다는 주장이다.

리얼돌 판매업체 realdol.net의 Q&A 캡쳐.

 

외국에서 유명 연예인의 모습을 본떠 만든 리얼돌이 제작 및 유통된 사례를 다수 확인할 수 있었다. 미국의 경우 마일리 사이러스킴 카다시안레이디 가가 등이 자신을 닮은 리얼돌을 제작한 업체를 대상으로 법적인 조치를 검토한 바 있다. 리얼돌과 실제 인물 사이의 실질적인 유사성이 인정되고, 인형이 상업적인 목적으로 유통된 것이 확실하다면 초상권 침해에 해당돼 민사소송을 제기할 수 있다. 이는 한국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형사적 처벌에 관해서는 근거 규정이 불명확한 만큼 사회적인 논의가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그러나 리얼돌이 일반인의 모습을 구체적으로 재현 가능하다는 주장은 지금 시점에서는 다소 과장된 것으로 보여진다. 국내에서 주문제작을 의뢰하는 것으로 알려진 중국 모 제작업체의 웹사이트 (열람 주의)에 직접 들어가 확인해 본 결과 이른바 ‘커스텀 리얼돌’은 몸통, 머리, 팔다리 등 신체 부위별로 주어진 10가지 남짓한 옵션 가운데 한가지씩 고르는 방식으로 만들어진다. 실제 사진을 바탕으로 정교하게 일대일 제작이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표준화된 디자인을 부위별로 짜집기하는 것에 가깝다. 실제로 현 단계에서는 ‘맞춤 제작’이 사실상 불가능에 가깝다는 국내 리얼돌 판매자들의 의견이 여러 언론보도를 통해 전해진 바 있다.

미국의 유명 리얼돌 제작업체인 Abyss Creations는 공식 홈페이지의 자체 Q&A를 통해 커스텀 제작의 현실적인 조건과 제약을 전하고 있다. 다음은 전 여자친구와 똑같이 생긴 인형을 만들 수 있냐는 질문에 대한 해당 업체의 답변 전문이다.

법적으로 본인의 명시적인 동의 없이 특정 인물과 똑같이 생긴 인형을 만들 수는 없습니다. 해당 인물이 이미 사망했거나 가상 캐릭터인 경우 대리인 또는 원작자의 동의가 필요합니다. 하지만 사진을 참조해 16가지의 표준화된 얼굴 디자인 가운데 한 가지를 고른 뒤 화장, 머리스타일, 피부색 등을 조합해 실제 인물과 최대한 비슷하게 만들 수는 있습니다. (중략)
We cannot legally do a likeness doll in an exact likeness of any person, celebrity or otherwise, without their explicit consent. If the person is deceased or fictional we would need consent from their trust or licensor. We can, however, use photographs of a person of your choice to select a face structure as similar as possible from our line of 16 standard female faces. If we have a face with similar structure, we can match make up style, hair style and coloring to the person you are looking at and make a similar looking doll. […] 

이렇게 만들어진 인형이 실존 인물의 초상권 및 인격권을 침해할 정도의 실질적인 유사성을 띠는지 객관적으로 판단하기는 매우 어려운 실정이다. 3D 프린터가 상용화되는 등 기술의 발달이 이루어짐에 따라 특정인 모방 리얼돌이 수년 내에 보편화될 수 있다는 우려 역시 상존하고 있다. 각계의 논의와 의견 수렴을 토대로 명확한 판단 기준을 마련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현재까지 리얼돌과 관련한 논란들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1. 흔히 '선진국'이라고 부르는 미국과 유럽 주요국에서 '리얼돌'은 불법이 아니지만, 아동 형태의 리얼돌에 대해서는 규제를 하는 추세다.

2. 리얼돌 사용이 성범죄를 유발한다는 주장에 대한 실증적 연구는 아직 없다. 하지만, 관련 논란은 여전히 진행중인 상황이다.

3. 원하는 특정인의 모습으로 리얼돌을 제작할 수 있다는 우려는 현재는 섣부른 걱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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