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프트파워 강국 코리아는 '하루 아침'에 만들어졌다

  • 기자명 한윤형
  • 기사승인 2019.09.04 08: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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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리안 쿨 - 세계를 사로잡은 대중문화 강국 ‘코리아’ 탄생기>(유니 홍 지음, 2015)

 

<코리안 쿨> 후기①: 외국의 ‘한국 개론서’와 한국의 ‘외국인 체험담’ 맥락 사이

이 책은 영어권에서 2014년에 나온 책을 2015년에 번역한 것인데, 출간시기가 조금 아쉽다. 아마 2017년쯤 나왔다면 훨씬 잘 팔렸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저 시기에 나온 것이 단순한 우연이 아닐 수도 있다. 다음 편에 설명하게 되겠지만, 민주당 지지층이 다소 불편해할 요소가 있다.  

1990년 이전에 태어난 한국인들은 대체로 알겠지만 이 나라가 서구 사회의 관심의 대상이 된지는 그리 오래 되지 않는다(얼마 전 나는 문득 1983년에 내가 태어났을 때는 한국이 명백하게 제3세계에 속했음을 상기했다). 1960년대부터 30여년 동안의 한국의 고도성장은 분명히 대단한 것이었고 지금의 한국의 기반을 다졌지만(이 사실을 부정하는 것은 철저한 신자유주의자들로, 그들은 박정희가 금융위기나 일으켰고 오직 김대중으로 인해 한국이 부흥했으며 노무현은 김대중 노선에서 이탈하여 박정희 쪽으로 다가선 사람이라 여긴다) 그 성취는 아직 잠재성의 영역에 있었을 뿐 서구 사람들이 보기에 눈이 크게 뜨일만한 것은 아니었다.

잠깐 옆길로 새자면 1987년의 민주화와 1988년의 서울 올림픽은 오히려 아직 무너지지 않았던 공산권, 동구권에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후자의 영향력은 1990년대에 한국 사회에서 너무 과장되게 적혀 있어서 실제로 어느 정도인지는 가늠이 되지 않는데, 오히려 1987년의 시위 모습이 중국 천안문 항쟁의 (적어도 일부의) 주체들에게는 큰 영향을 미쳤다는 사실이 최근에는 발굴되고 있다.

 

다시 돌아와 1990년대에 십대의 내가, 부모가 공부하라고 보낸 도서관에서 공부를 하기 싫어서 책들의 다발을 배회할 때, 1980년대의 책에서 한국인들은 서구인에게 아무런 이미지가 없는(혹은 전쟁과 극빈의 이미지나 가진) 자신들을 어필하기 위해 ‘제2의 일본’이라는 얘기나 해야 했다. 내 깜냥에 포착된 바로 한국의 성공담을 다룬 최초의 영어권 책은 <네 마리의 작은 용>이었는데, 1993년에 번역된 이 책에서도(쓴 게 이보다 몇 년 전인지는 내가 잘 모른다) 한국은 네 개의 사례 중 그렇게 인상적인 사례는 아니었다. 이는 그로부터 이십여 년 후인 2014년에 쓰여지고 2016년에 번역된 <아시아의 힘>에서 한국이 거의 진주인공이 되는 것과는 상반되는 일이다. <네 마리의 작은 용>의 저자 에즈라 보겔 교수는 1979년에 <재팬 이즈 넘버원>을 썼던 사람으로, 이 책에서 묘사된 한국의 경제성장은 일본에서 교육받은 박정희와 일군의 관료들에 의해 이루어진 것이었다(몇 번의 단계를 거쳐 지금의 나는 이제 이런 접근을 전적으로 부정하지는 않지만, 하여간 이 책의 서술은 한국인의 입장에선 이 방면에서 다소 극단적인 것이 사실이다).

 

한국 사회에선, 1990년대라 할지라도 초반과 후반은 천양지차다. 그로부터 몇 년 동안 나는 십대 중반에서 십대 후반이 되었고, 영어권 독자들에게 한국을 소개하는 대중적 개론서도 곧 나타났다. 1999년에 <한국인을 말한다>로 번역한 마이클 브린의 책이 그것이다. 원서 제목은 <The Koreans>였다. 마이클 브린은 ‘더 타임즈’의 한국 특파원으로 살았던 사람이다. 비슷한 시기에 프랑스 기자가 프랑스에서 낸 책도 <한국, 사라지기 위해 탄생한 나라?>라는 이름으로 번역되어 나왔는데(지금 검색해보니 장 피엘, 2000년 번역작. 이 사람 이름을 기억 못 하는 건 마이클 브린처럼 한국에서 계속 활동하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그 당시 읽기로도 두 책은 전형적인 서구 우파와 서구 좌파의 시선에서 민주화 이후의 한국 사회를 제1세계 타자의 시선에서 바라본 책이었다.

  

마이클 브린이나 장 피엘 같은 사람이 한국인들의 호기심만큼 자주 등장하지는 않았기 때문에 1990년대 내내 한국인들은 해외체류 경험이 있는 한국인들의 책을 읽었다. 교포, 특파원, 망명객, 유학생 등등의 책이었다. 개인의 성격과 이후의 삶의 궤적이 철저하게 갈리기는 하지만 1990년대에 베스트셀러였던 에리카김(<나는 언제나 한국인>, 1995년), 홍세화(<나는 빠리의 택시운전사>, 1995년), 전여옥(<일본은 없다>, 1997년) 등을 열거할 수 있다. 훗날 저자가 아닌 걸로 밝혀진 사람도 한 명 있다. 좀 더 늦게 나온 비슷한 계열(...좀 덜 팔린 것들)까지 포함한다면 박노자(<당신들의 대한민국>, 2001년)와 진중권(<폭력과 상스러움>, 2003년)까지 묶어볼 수도 있다.

  

한국이란 나라를 살다보면 1990년대 후반과 2000년대 초반이 또 천양지차다. 한국인들이 저런 책들을 뒤적뒤적하는 동안 또 한 번 천지개벽이 일어났다. 산업화와 민주화에 이어 한류라는 것이 시작된 것이다. ‘일본을 제외한 아시아’(서구권에서 실제로 쓰는 개념이다)와 일본에서 제각각의 이유로 불기 시작하더니 2002년 월드컵의 현장에서 서구권의 얼리어답터들도 나타났다. 2002년에 서울로 배낭여행을 왔다가 한국에 흥미를 느껴서 이후 프리랜스 글쟁이(사실 마이클 브린에 비하면 언론인이나 특파원이라 부르기는 어렵다)로 한국에 거듭 방문하여 2013년에 <기적을 이룬 나라, 기쁨을 잃은 나라>(원제는 <Korea: The Impossible Country>, 2012년)라는 책을 내게 되는 다니엘 튜더가 대표적인 사례이다. 그 즈음에 홍대에서 잡지를 만들던 스콧 버거슨이란 미국인도 있었는데, 이 사람은 한국에서 책을 쓰긴 했지만 영어권에 개론서를 내지는 않은 것으로 안다. 말인즉슨 다니엘 튜더라는 다소 예외적인 개인이 없었다면 아직도 영어권 한국 사회 개론서는 마이클 브린의 것이었을 거란 얘기다.

 

그리고 곧바로 이어서 영어권에 ‘한류’에 대한 개론서도 나오게 된다. 그게 이 책이다. 나는 책을 재밌게 봤으면서도 책 소개에 들어가기까지 A4 2장이나 써야 했다. 하지만 저자인 유니 홍이 이 글을 본다 해도 나를 용서할 것이다. 1973~4년생(1985년에 열두살이었다고 하는데 이게 한국 나이인지 미국 나이인지 불분명)으로 나보다 열 살이 많은 한국계 미국인 여성인 그녀는, 한국에서 거주한 기간은 6년에 불과하지만 가장 예민한 중고등학생 시절이었으며 해외(미국과 프랑스)에선 한국계로 살면서 역시 나처럼 한국인이라는 정체성의 콤플렉스를 벗어 던지는 과정을 거쳤기 때문이다. 물론 십 년의 세대격차와 개인사적 경험(나는 그저 한국에서만 살았다)의 차이로 양상이 달라지지만, 큰 틀에서 그렇게 포개지기에 나는 독서 내내 저자의 서술에 상당한 감정이입과 몰입을 경험하였다.

2편과 3편에서는 그 감정이입과 몰입의 이유를 설명하면서 이 책의 가치를 평가해보고자 한다.

책  영문판 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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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리안 쿨> 후기② : 내가 부끄러워하던 그 정체성이 트렌드가 됐을 때

“사람들이 한국을 쿨하다고 말하면, 한국인임을 싫어하며 거의 평생을 보낸 내겐 항상 놀라운 이야기로만 들린다.”(p247)
"이 나라는 20세기가 미국의 시대였듯이 21세기를 한국의 시대로 삼기로 결의했다. 반도체와 자동차만 만드는 걸로는 성에 차지 않는다. ‘쿨함’으로도 수위에 올라야 한다. 아닌 게 아니라 한국은 쿨해지려고 너무 용을 쓰면 별로 쿨해지지 않는다는 통념마저도 뒤엎고 있다.“(p21)
“대중문화 평론가 이문원은 이렇게 말했다. ‘언감생심 미국에다 자기네 대중문화를 팔려고 시도했던 나라는 거의 없습니다. 일본조차도 시도했던 적이 없어요.’ ”(p119)

 

이 책에서 나는 성별(저자는 여성이다), 세대(저자는 나보다 십여세 많다), 인생유전(저자는 부모 모두 한국인으로 태어난 한국계이지만 인생의 가장 예민한 중고등학생 시절 6년만을 서울에서 살았으며, 나머지 시간은 서구에서 보냈다)의 차이에도 불구하고 나도 인생에서 느꼈던 곤혹과 당혹, 그리고 쾌락을 공유한다. 그것은 하나의 장면으로 요약하자면 터무니없는 상승욕구를 가졌던 내 나라를 촌스러워 했으나, 그 상승에 실제로 성공하여 더 이상 남들이 촌스럽지 않게 봤을 때, 나 역시 ‘촌스럽지 않은 한국인’인 척했지만 결국엔 한국인임을 깨닫고 삼겹살에 상추에 마늘과 김치를 넣은 쌈을 싸서 소주와 함께 후르륵 먹어버리는 그 순간이다. 아쉽게도 저자는 상추쌈에서 김치는 뺄 것이다. “뒤늦게 멸치 알레르기가 생겼기 때문에 내가 아무리 원한다 한들 김치를 입에 댈 수 없었다”(p103)고 하니까.

 

한국인들이 상대방이 한국인(여기선 국적이 아니라 정체성의 영역이다)임을 본능적으로 감각할 때는, 가령 다음과 같은 에피소드를 읽을 때이다(그래서 아마 한국인이 아닌 사람이 한국인인 척 우리를 속여 넘기려고 할 때에는 일부러 이런 에피소드를 삽입할 것이다). 

“알다시피 일본은 다케시마, 한국은 독도라고 부른다. 당연히 나는 독도라고 지칭하겠다.”(p77) 

“작년에 파리의 내 아파트를 일본에서 온 젊은 학생에게 임대하려던 과정에서 문제가 터졌다. 그 여학생은 일본말밖에 할 줄 몰라서 통역해 줄 사람까지 대동하고 프랑스인 부동산 중개인과 함께 나타났다. 천지분간 못하는 이 중개인은 내가 한국인이고 미래의 세입자가 일본인이기 때문에 집주인과 세입자로서 이보다 더 좋을 수 없는 짝이라고 떠들어 댔다. 그녀는 그 순간 아시아 민족중심주의가 맞부딪히는 한가운데 있다는 사실을 꿈에도 몰랐다. 젊은 일본인 여성과 내가 무의식중에 마치 개들처럼 서로를 향해 소리없이 으르렁대고 있는데도 말이다. 그 학생이 냉장고를 열어 냄새를 맡더니 통역자에게 일본말로 뭐라고 얘기했다. 통역자가 내게 말했다. ‘김치 냄새를 없앨 수 있는지 알고 싶다네요.’ 

내가 말했다. ‘제가 김치에 알레르기가 있다고 전해 주시겠어요? 저는 냉장고에 김치를 두지 않아요. 그리고 그건 프랑스 치즈 냄새랍니다.’ 나는 속으로 빌었다. ‘어디, 이 나라에서 한번 자알 살아 봐라.’ “(p104)

  

저자는 1985년 열두살의 나이로 한국에 와서 아마도 중고등학교 시절 6년을 보낸다. 한국의 동년배와 엇비슷한 경험을 한 건 그 중에서도 3년이었고, 도저히 버틸 수가 없어서 고등학교는 국제학교로 도주했다. 열두살의 나이는 문화에 적응하기 힘든 일이었다고 적고 있고, 나는 그에 동의하니, 그때 좀더 어렸다는 두 동생들은 어땠을까 궁금하기는 하다. 부모님은 그녀가 한국에서 결혼하려면 대학원은 미국 유학을 갈지언정 대입은 한국에서 해야 한다고 생각했지만 그녀는 대입을 위해 미국을 가면서 한국 생활을 끝냈던 것 같다.

현대 한국인이 가진 콤플렉스와 서구를 향한 상승욕구가 어찌나 거대했기 때문인지, 나는 한 번도 한국을 떠나서 산 적도 없는데도 그 심정들이 절절하게 박힐 지경이었다. 책 이곳저곳에 박혀 있는 그녀의 정체성의 혼란들을 적어보면 다음과 같다.

“1985년, 대한민국은 별로 근사하지 않았다. 미국에서 근 20년을 보낸 우리 부모님은 그해 다시 대한민국 서울로 돌아가겠다고 결정했다. 콕 집어서 어딘고 하니 가수 싸이가 장차 그곳의 ‘스타일'을 노래로 불러 유명세를 떨치게 될 부자 동네, 강남이었다.

그때 나는 열두 살이었고 내 여동생들은 아홉 살, 일곱 살이었다. 나는 그 결정에 적극 찬성했다. 내가 어린 시절을 보낸 시카고 근교에는 옥수수와 소고기와 우유와 건초열과 인종차별주의자들이 드글댔다.

믿기 어렵겠지만 여덟 살짜리 남자애들은 나를 ‘쪽발이’라고 불렀다.

(...) 내게 한국은 유대인의 시온 같은 땅, 그러니까 반드시 돌아가야 할 본향 같은 곳이었다. 그 시절 내가 읽었던 수많은 영국 소설에는 비참한 처지의 아이들이 자기가 실은 고귀한 집안 태생임을 알게 된다는 이야기가 담겨 있었다. 그래서 김포공항에 도착하자마자 나는 넙죽 절이라도 하고 싶은 심정이었다.“(p14-15)

 

하지만 물론 이해할 수 있는 여러 이유들로 인해 한국에 와서는 상황이 반전된다.

“내가 한국에 살던 당시에 볼 수 있던 영어 방송은 AFKN 밖에 없었다. 나는 AFKN에 나오는 옛날 옛적 미국 프로그램 재방송을 수도 없이 봤다. 예를 들어 샐리 필드가 열다섯 살짜리 캘리포니아 10대 소녀로 나온 1960년대 시트콤 <기젯> 같은 시트콤 말이다.

기젯은 매주 어쩜 그리 진부한 곤경에 빠지는지, 어이가 없어서 말이 안 나왔다. 서핑보드를 잃어버려서 새 걸 사야 한다거나 하룻밤에 데이트 두 건을 해야 한다거나 뭐 그런 내용이었다. 나한테는 완전히 딴 세상 얘기였다. 대체 저 여자애는 언제 시험공부를 했을까? 쟤네 아버지는 왜 딸내미가 비키니를 입게 놔둔 걸까? 1960년대의 캘리포니아 문명은 어째서 1980년대의 한국보다 훨씬 앞서 있었을까?

(...) 나는 내가 태어난 나라, 이전에는 도저히 살 수 없을 정도로 적대적이고 인종차별적이라고 여겼던 미국을 동경하기 시작했다.“(p203)

  

이 지점에서 나는 1991년 즈음, 미국에 살다가 한국으로 돌아온 친구네 집에서 비디오테이프로 <백투더 퓨처>를 처음 봤을 때, 1985년의 주인공이 역행해서 돌아간 1955년의 미국이 풍요로움으로도 우리보다 낫고(당시 지방도시 대전은 마이카 시대가 개막하기 직전이었다. 1992년 즈음부터 갑자기 모든 가구가 차를 사는 것 마냥 미칠 듯이 사대기 시작했다), 자유의 향기는 도저히 닿을 수가 없는 수준이라 눈이 휘둥그래졌던 기억을 떠올릴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6년의 세월이 결코 짧지는 않았으리라. 그녀는 그 시기에 대해 “사회적 변화는 프랑스혁명 못지 않게 급진적이었고 경제적 변화는 산업혁명만큼 혁명적이었다. (...) 서울에 산다는 건 불협화음과 대혼돈의 시기를 관통하는 동시에 굉장한 시간대를 통과한 경험이기도 했다. 로마가 하루아침에 건설되는 광경을 목도했다고 자랑할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되겠는가. 놀랍게도 내가 바로 그런 사람이다.”(p16)라고 적고 있다.

하지만 읽으면서 민주당 지지자 중 정파성이 심한 이들이 본다면 저자의 창작의도에 의심을 하게 될 수도 있다는 생각을 했다. 이 책은 박근혜 정부 시절에 쓰여졌다. 그리고 저자는 책 여기저기서 한국이 국가홍보를 위해 벌이는 일들의 상당수는 관공서와 기업의 은밀한 협력과 지원 속에서 이루어졌다고 서술하고 있다(한국인들은 일본인이 한류를 폄하하는 식의 기술이라고 이런 서술을 싫어하기도 하지만, 이 책이 그런 식으로 쓰여져 있지는 않다).

이는 독자 입장에선 보기에 따라선, 저자가 내게 ‘이 책을 내가 왜 썼게?’라는 숨바꼭질 게임을 제안하는 것처럼 여겨지기도 한다. 이명박 정부 시절 김윤옥의 한식세계화와 한국관광공사 사장이 된 독일계 한국인 이참에 대한 긍정적인 해석, 박근혜 정부 창조경제에 대한 긍정적인 언급과 창조경제를 가수 싸이와 연결시키는 부분 등이 그렇다. 책 내용 전체가 관제로 보이진 않으나 용역 발주처를 적당히 만족시키기 위한 부분처럼 보이기도 한다. 위에서 나왔듯이 대중문화평론가로 등장하는 유일한 사람이 미디어워치의 이문원인 것도 다소 수상쩍다. 나는 이문원 평론가의 한국 대중문화에 대한 시선이 총론의 차원에서는 괜찮다고 생각하는 편이기 때문에 크게 신경쓰지는 않았지만 말이다.

창작의도에 의심이 가는 또 하나의 이유는, 저자의 사춘기의 한국 회상 경험에서 좋은 바는 별로 없으며, 새로운 바는 주로 2013년에서 2014년 사이에 진행된 수십 명에 대한 인터뷰를 요약한 것에서 나오기 때문이다. 서울에서 1985년에서 1991년까지 산 사람이라면 ‘로마가 하루아침에 건설되는 광경을 목도했다고 자랑할 수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되기는 하지만, 내가 보기엔 책 내용에서 그 부분이 등장하는 바는 거의 없다. 기본적으로 그녀는 한국 거주기간 6년 이후에는 한국을 잊으려고 애를 쓴 기간이 길었고, 그러나 2천년대 이후 서구권을 향해 진격해온 한국과 다시 조우하게 됐던 것이다.

그러나 이 책은 용역 발주라고 한들 놀랍지 않으나, 그런 게 없었다고 한들 불가능했던 체험으로 쓰여져 있지는 않다. 그녀는 1980년대 한국의 현실에 대해 신랄하게 말하지만, 거기서도 후대의 번영의 씨앗을 발견해 내기는 한다. 그런 면에서 한국에 거주하면서 한국의 나쁜 점을 열거하는 한국의 진보주의자들보다는 균형잡힌 부분이 있다. 가령 한국 교육에 대해 서술할 때는 다음과 같은 부분이 그러하다.

“한국에서의 내 학창 시절을 어떻게 평가해야 할지 갈피를 못 잡겠다. 한편으로는 마치 디킨스 소설에 나올 법한 분위기였다. 규율과 복종, 가혹한 매질로 점철된 이미지다. 나는 그 분위기에 잔뜩 겁을 먹어서 3년 후에는 기가 푹 죽어 서울의 국제학교로 전학을 갔다. 다른 한편으로는 그러한 억압적 체계가 한국의 성공 신화를 뒷받침하는 근간이었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p51)  
"장담하건데, 선생님들은 가끔 자기들이 즐거우려고 우리를 벌준 게 분명하다.“(p57) 
"나는 한국의 높은 청소년 자살률을 낮출 수 있는 교육개혁이라면 뭐든 반대하지 않을 테지만, 수학과 기계적 암기를 위축시키려는 시도는 유감스럽다고 생각한다. 이 부분은 내가 체험한 한국 교육의 일면이자 내가 가장 높이 평가하는 측면이기도 하다.“(p65) 
"내가 한국 학교와 관련해 정말 높이 평가하는 면이 있다. 여자애들이 남자애들만큼 공부를 많이 한다는 점이다. 수학과 과학에서 재능을 드러내면 혹시 남자애들이 싫어할까 봐 걱정하는 미국 여자애들의 콤플렉스가 한국 여자애들한테는 없었다. 한국 남자애들은 수학과 과학에 젬병인 여자들한테 특별히 끌리거나 하지 않는다.“(p67)

  

나는 혼자서 재미있는 망상썰을 펼쳐 보았는데, 이 책의 저자가 은근한 관공서와 기업의 협력, 일종의 용역발주로 인해 책을 쓰기 시작했더라도 저술 작업 말미엔 인상적인 자아체험을 했을 거라는 그런 종류의 소설이었다. 나는 저자가 본의 아니게 이 책 저술을 통해 다시 만난 한국과 화해를 하는 광경을 떠올렸다.  

그것은 인상적인 자아체험이겠지만, 해외로 진격한 한국의 대중문화가 타지 사람들에게 어떤 의미였는지와는 아직까지 별 상관이 없다. 사실 한국에 붙박혀 사는 우리가 이 책에서 정보값의 측면에서 가장 크게 건져야 할 부분은 그것인데 말이다. 그러나 이 부분 역시 우리가 느꼈던 정체성의 혼란, 열등감과 우월의식의 교차 문제와 완전히 무관하지는 않다. 

2014년 미국에서 출간된 <K-Pop Now! - The Korean Music Revolution> 단행본 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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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리안 쿨’ 후기③: 위기를 기회로, 늦게 시작했음을 장점으로 만들다

지난 1편에서는 ‘한국을 해외로 소개한 저술의 역사, 한국인에게 타자의 시선을 가르쳐준 저술의 역사’를 간략히 살폈다. 2편에서는 ‘내가 부끄러워했던 한국인이라는 정체성이 트렌드가 됐을 때 겪었던 혼돈과 희열’을 다뤘다.

3편에선 ‘왜 그것이 해외에서 매력적이었는가?’를 다뤄야 한다. 하지만 이렇게 시작하자 2편에서 보였던 그 요소가 3편으로 이어지기 때문에, 한식 파트에서 인용하고 싶었던 이 인용문으로 시작할 수 있었다. 꼭 인용하고 싶었지만 2편의 분량이 너무 길어져서 참았던 부분이다.

“지인 중에 사회 초년생 시절 보스턴 병원에서 근무했던 한국인 의사가 있다. 그는 간호사들이 그의 입 냄새 때문에 불평을 토로한다는 말을 상사를 통해 들었다. 그의 아내는 김치 양념에 마늘이 덜 들어가도록 요리법을 바꾸어야 했다.

내가 어렸을 때 미국에 사는 한국인들의 삶은 요즘 흡연자들의 처지와 비슷했다. 우리는 주변 친구들이 같이 놀고 싶은 마음이 싹 사라지게 만드는 불결하고 더러운 습성을 지닌 부랑아처럼 따돌림을 받았다.“(p101)

 

확실히 해외에서 살아본 적이 없는 나 역시 그저 어린 시절 읽은 책에서 해외에서 한국인들이 마늘 냄새 때문에 고생하는지를 접해야만 했다. 물론 이후의 내용은 ‘...그랬던 김치를 그들이 먹게 됐을 때’로 전개된다. 이런 식으로 아래에서부터 올라왔다는 정서는 다른 선진국에서는 거의 찾아보기 어려운 것이리라. 그러나 제3세계에서부터 이 특질이 주목받기 시작되자 갑자기 이 촌스러움과 단점으로 보였던 것이 강점으로 전환됐다. 인류 사회에 흔히 있었던 일이다.

“제3세계 국가들은 대부분의 서구 국가가 당장 관심을 갖기엔 너무 빈곤하다. 때문에 한국이 유리한 고지를 점할 수 있었다. 전 세계 대중문화의 실권을 쥔 다른 어떤 국가도 따라할 수 없는 독특한 특징, 바로 한국도 한때는 제3세계 국가였다는 사실이다. 그래서 한국은 빈국의 발전단계를 잘 알고 있다. 한국 경제학자들은 제3세계 국가들이 부유해지고 구매력을 키워 가는 속도를 측정하는 데 매진한다. 게다가 어떤 종류의 케이컬쳐 상품이 인기를 끌 수 있을지 판단하기 위해 정부는 대중문화를 면밀히 연구하고 있다. 

장담컨대 한류 열풍이 부는 국가들의 국민에게 일단 핸드폰과 세탁기를 구매할 여력이 생긴다면 분명 한국 제품을 살 것이다. 왜 그럴까? 그들이 이미 한국이라는 ‘브랜드’에 푹 빠졌기 때문이다. 이게 혹시 국가적인 캠페인처럼 들린다면, 제대로 봤다. 이건 국가 차원의 홍보 전략이다. 대한민국 정부는 한류를 국가 발전 전략의 최우선순위로 삼았다.“(p18-19)

  

위 서술은 이 책의 핵심 주장이기도 한데, 내가 동의하지 않는 부분을 덜어내고 동의하는 부분을 추출하기 위해 되도록 길게 인용했다. 밖에서 지나간 뒤에 서술하면 대체로 이렇게 보인다. ‘한국 정부’라는 주체가 이 모든 것을 예견하고 계획적으로 움직여서 이렇게 만든 것처럼 보인다.

다만 여기에도 양면적인 부분이 있다. ‘국가시책으로 인해 만들어낸 일각의 유행이며, 순위는 날조된 것일 뿐’이라는 건 한류의 존재 자체를 부정하는 일본인들의 말이다. 그들의 말을 반박하기 위해 한국 정부와 한국인들은 ‘국가시책이 아니다’라고 말하기도 한다. 그러면서도 가끔은 자신들이 만들어낸 것이라고 자부하는 홍보부 대변인의 말을 들어야 할 것이다.

위 서술에서 내가 추출해낼 수 있는 사실로 재구성해본다면 이러하다. ‘한국 대중문화는 제1세계에서 바로 흥행하지 못했기에(일본이란 독특한 사례 제외) 수익을 실현하기 위해 제3세계로 흘러들어갈 수밖에 없었다. 제3세계로 들어갔을 때 한국이 후발주자임은 갑자기 단점에서 강점으로 변했다. 또한 여기서부터 흥행하기 시작했기 때문에, 한국 대중문화의 유행이 가져올 한국 산업계의 수익실현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고 볼 수 있다. 제3세계가 더 부유해질수록 한국은 한류의 덕을 더 보게 될 것이다.’

서로 동의하는 두 개의 사실, ‘제3세계에 어필했음’과 ‘그렇기에 아직 수익실현이 충분하지 않음’을 주체의 계획이 아니라 여러 우연적 상황의 조응으로 재서술하면 방금 내가 쓴 것처럼 된다.

한국 정부가 기획한 순간들도 분명히 있었다. 유니 홍은 박근혜 정부 시절 내국인이 한국 내에서 썼다면 절대로 나올 수 없는 조합의 서술을 했다. 한국 정부의 노림수와 대응을 전반적으로 칭찬하면서도, 김대중 정부를 특히 칭찬한 것이다. 유니 홍은 잘 모를수도 있겠지만 그 시기 한국에서 썼다면 아예 한류를 빠는 책을 안 썼으면 안 썼지 이명박 정부의 한식세계화와 박근혜 정부의 창초경제를 칭찬하지 않았을 것이다. 반대로 책을 썼다면 한식세계화와 창조경제와 싸이를 언급할 때 김대중 정부의 역할은 되도록 덜어냈을 것이다. 그런 점에서 볼 때 이 책은 오히려 외국인들이 보기에, 그리고 우리가 보기에도 ‘좀 더 객관적인’, 혹은 이 말이 싫다면 ‘좀 더 중립적인’, 이도 싫다면 ‘좀 더 타협적인’ 어떤 지점을 전달하는 책일 수 있다.

사실 한국이 대중문화를 해외에 팔려고 노력하기 시작한 것은 금융위기 전의 일이다. 이 책 역시 그것을 알고 서술한다. 다만 김영삼 시기와 김대중 시기를 명확하게 나눠서 구분하는 우리 한국인들이 아닌 외국인들이 본다면 별로 눈치채지 못할 만큼 미약하게 서술되어 있다.

“누군가는 한류가 1992년에 서울과 홍콩 사이에서 주고받던 외교 행낭에서 발생했다고 말한다. 그 행낭의 내용물은 무엇이었을까? 무슨 비밀 마이크로 필름 같은 게 아니라 한국 드라마 <사랑이 뭐길래>의 베타맥스 테이프였다. 한국 공무원 두 명이 은밀하게 전달할 물건이 그것 말고 뭐가 있었겠나?”(p207) 
"그 당시에는 한국의 텔레비전 프로그램에 대한 수요가 전혀 없었다. 심지어 아시아 내에서도 없었다.“(p208) 
“한국은 배수의 진을 치는 심정으로 아시아 국가들에 한국 영화와 텔레비전 프로그램과 음악을 팔아야겠다고 결심했다. 자기들이 아시아에 중독의 씨앗을 심고 있는지는 꿈에도 몰랐다.”(p120)

  

하지만 금융위기가 기점이 된 것도 사실이었다. 일단은 국가 브랜드 계획이란 것이 생겼다는 점에서 그랬다. 그 전에는 홍보하려고 해도 홍보할만큼 주목받은 적이 없었지만, IMF 구제금융이라는 세계적으로 민망한 일로 주목을 받은 상황이었다. 김대중 정부 청와대는 글로벌PR 컨설팅 회사 에델만 한국 지사 대표였던 이태하에게 전화를 걸었다.

“대한민국 대통령이 PR 회사에 도움을 처하는 전례 없는 조치가 이루어진 것이다. 이태하는 ‘지구촌에 합류한다’는 메시지를 널리 알리기 위한 한국의 캠페인 전략을 설명했다. 대단한 첫 걸음이었다. 

그 당시 제대로 된 광고맨이라곤 없던 나라에서 이태하의 접근법은 꽤나 급진적이고 저돌적이었다. 만약 사람들이 한국을 위기에 처한 나라라고 생각한다면 정확히 그 부분을 붙들고 자세히 이야기하는 건 어떤가? ‘한국인들은 위기가 닥치면 발벗고 나서는 사람들입니다.’ 그는 이 나라가 러시아, 중국, 일본, 미국, 영국 등 외세의 침략에 늘 시달렸다는 사실을 짚어 주었다. ‘수백 년의 외세 침략에도 여전히 건재한 나라가 딱 둘 있습니다. 스코틀랜드와 대한민국이죠.’ 

그러므로 ‘위기’란 말에서 멀어지려고 숨느니 차라리 대면하는게 나았다. (...) 에두르지 않은 확실한 제목 ‘한국: 예정대로 계속 영업 중’은 잠재적 국제 투자자들을 겨냥했다. 위기가 닥치면 사람의 능력이 최고조로 발휘된다는 신념을 주제로, 해고당한 한국 근로자들이 새로운 기술을 배워 자기 삶을 개혁했다는 사기 진작용 이야기들이 담겨 있었다.“(p121-122)

  

이런 얘기들은 본인들을 억척스러운 존재로 상상하고픈 한국인들에게 꽤 와닿는다. 아마 외부에서 보기에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그리고 억척스러움만 문제가 아니라 그 시기에 적시의 테크트리를 올리기 시작한다.  

“한국은 위기를 기회 삼아 몇 가지 훌륭한 판단을 내렸다. 현재 우리가 잘 알다시피 정보통신기술, 대중가요, 드라마, 영화, 게임 등의 산업은 위기에서 벗어나기 위한 마지막 기회이자 모험을 건 시도였다.”(p123)

 

그 시기 벤쳐사업가들이 나타나고 어쩌고 하는 얘기는 우리 입장에서는 다 아는 얘기이니 줄이겠다. 그러나 위기가 기회로, 단점이 장점이 됐다고 한들 그게 왜 남들에게 좋았을지 문제는 여전히 남는다. 1편과 2편에서 추적한 바 나같은 한국인들의 마음 속에는 그래봤자 ‘그게 뭐 볼 게 있다고 보고 있어?’라는 생각이 스며든다.

하지만 남들이 봐준다는 것이 뭐 그렇게 엄청나게 대단한 일도 아니었던 것이고, 여러 가지 사례를 선택지로 올리는 가운데 우리의 독특함이 가미된 서구화 사례도 그 안에 들어오게 되었다는 것이 핵심일 것 같다. 그 독특함이 무엇인지에 대한 궁금함은 해외 사람에게도 있기에, 저자는 몇 가지 요소를 끊임없이 설명해야 했다. 이전에는 우리가 설명하고 싶어도 남들이 들어주지 않았던 것들이다. 다음과 같은 서술들은 유머러스한데, 한국인 입장에서 봐도 웃긴다.  

“그런데 한국인은 한을 결점으로 여기지 않는다. 한국인이 스스로를 평가할 때 바꾸고 싶어 하는 특질 중에 한은 없다.”(p74) 
"한국인들은 <아리랑>에게 해외 사절의 역할을 맡긴 것 같다. 이러한 적개심을 대놓고 드러내는 게 괜찮은지 아닌지 문제 삼지도 않는다.“(p75)

  

또한 한국의 성공사례 이면에 저자와 내가, 그리고 우리가 끔찍해왔던 한국 사회의 어두운 부분이 있다는 것 역시 엄연한 현실이다.

“한국은 케이팝 수출 모델을 모방하려는 다른 나라들의 노력을 두려워할 이유가 별로 없다고 보는데, 그 근거가 다소 암울하다. 스타 제조 과정이 너무 불쾌하기 때문에 지망생들이 그 과정을 기꺼이 감내하려는 나라가 많지 않다. 반면에 한국의 젊은이들은 강도 높고 가학적인 학업의 압박과 과도한 훈육과 끊임없는 비판과 수면 부족에 이미 익숙해져 있다.”(p163)

  

요즘 일본과의 갈등 관계 속에서 이런 부분들이 다시 고민이 되기도 한다. 나는 콤플렉스를 그럭저럭 떨친 국가/민족 정체성을 가진 개인이 되고 싶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그렇다고 일부 일본인들에게서 보이는 망상적 자기애(‘나-일본인은 모든 이에게 사랑받을 특질을 지니고 있어. 그러지 않는 한국과 중국은 미친 놈들이야.’)를 소유하고 싶지는 않다.  

결과적으로는 우리의 분투의 삶의 연장선상에서 다른 나라 사람들은 중국과 일본 사이에서 분투했던, 그래서 그 전에는 ‘중국 아류’나 ‘일본 아류’라고 여겨졌을 뿐 캐릭터를 잡기 쉽지 않았던 한 캐릭터를 발견하게 된 것이고, 그게 그저 우리의 모습 그대로였던 것 뿐이다. 그것도 테이블에 올려지게 된 것이다. 

저자는 한국이 제3세계에 “자기계발서와 마셜 플랜을 합해 놓은 듯한 ‘부국 세트’를 전파하러 다닌다. 한국이 제공하는 작은 패키지에는 자금 제공, 국가 설립 전문가, 전략 등이 깔끔하게 담겨 있다”(p304)고 말한다. 하지만 다른 나라가 한국을 흉내내기는 어려울 거라고도 생각한다. 그 어려움을 논하는 속에서도 명과 암이 드러난다.

“이 책에서 논의한 한국의 성공 사례는 거의 다 이렇게 대단히 가부장적이고, 대체로 호의적인 ‘자발적 강요’에 빚지고 있다. (...) 즉 국가에 이로운 것은 기업에도 이롭고, 기업에도 ㄷ이로운 것은 개인에게도 이롭다는 의식이 성공의 이면에 있었다. 

(...) 결국 핵심은 이것이다. 한국인은 비록 정부의 뜻에 수긍하지 않거나 기업의 탐욕에 분개하더라도 스스로를 (플라톤이 의도한 의미에서) 한 국가의 국민이라고 생각한다. 국민은 자기 주변 사람들의 행복이 자기 자신의 행복에 기여한다고 믿는다. 이런 의식이 한국이라는 나라 안에 고루 배어 있다. 그렇기 때문에 한국의 모든 학교는 똑같은 교과과정을 따른다. 학교생활이 그토록 고된 이유도 여기에 있다. 한국 최고의 엘리트들 역시 모든 사람이 양질의 교육을 받을 권리가 있다고 믿는다. 이를 계몽화된 자기 이익이라 부를 수도 있겠다. 하지만 어쨌든 한국인은 모두가 함께 일어서지 않으면 아무도 일어서지 못한다는 것을 경험으로 터특해 알고 있다.(p306)

  

그리고 콤플렉스를 떨친다 해도 특질이 사라지지는 않는다. 그러니까 콤플렉스가 사라졌다기보다는 콤플렉스를 가진 나를 평범한 개인으로 받아들이고 악수하는 과정이라고 하겠다. 저자는 시니컬과 애정이 섞인 어조로 자신을 괴롭혔던 그 나라 사람들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아마 이 정도에서 서평을 마무리지어도 좋을 것이다. 

“이 두 가지 특징, 한과 수치심은 한국인의 집단적 무의식 속에 깊이 뿌리박혀 있다. 만약 한국이라는 국가를 의인화한다면 한국은 열등감과 우월감 콤플렉스를 동시에 지닌 신경과민 환자로 진단받았을 것이다.”(p3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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