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년 홍콩, 87년 한국에서 교훈을 찾다

  • 기자명 김준일 기자
  • 기사승인 2019.09.05 09: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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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리 람 홍콩 행정장관이 4일 반정부 시위 도화선이 된 범죄인 인도법안, 세칭 송환법을 공식적으로 철회한다고 밝혔습니다. 지난 6월 9일 반정부 시위가 처음 시작된지 88일만입니다. 그간 홍콩에서는 시민 740만명 중 200만명이 시위에 참가해 왔습니다. 홍콩 정부의 이번 조치로 시위가 잦아들까요. <송환법 철회한 홍콩정부> 이 뉴스의 행간을 살펴보겠습니다.

범죄인 인도법안에 반대하는 홍콩시민의 시위 현장. KBS 화면 캡처.

1. ‘서울의봄’과 ‘6월항쟁’의 교훈

홍콩 시위는 한국의 민주화시위와 여러모로 닮았습니다. 1979년 박정희 대통령 사망 이후 전두환 신군부에 의한 12.12 쿠데타가 발생하자 계엄령 철회와 민주화를 요구하는 시민들 수십만명이 거리로 뛰쳐나왔습니다. 1980년 5월 15일 서울역에 10만명의 대학생들이 모였습니다. 16개 대학 총학생회장은 준비되지 않은 상황에서 서울역에 탱크가 들어온다면 유혈사태가 발생할 수 있다며 해산을 결정했습니다. 역사적인 ‘서울역 회군’입니다. 이후 신군부는 5.17 계엄 확대 및 광주학살을 실행했고 독재정권이 시작됐습니다. 7년 뒤인 1987년 박종철의 고문치사 은폐사건을 계기로 6월항쟁이 시작됐고 직선제를 이끌어냈습니다.

홍콩 시위도 비슷한 상황입니다. 2014년 행정장관 직선제를 요구하며 홍콩시민들은 79일간 민주화 시위를 벌였습니다. 현재 홍콩 행정장관 선거는 중국이 추천한 3인중 한 명을 홍콩시민이 투표로 뽑는 간선제입니다. 당시 시위진압용 물대포를 막기 위해 우산을 펼친 모습 때문에 ‘우산 혁명’이라고 불렸지만 이름만 혁명이었지만 실질적으론 ‘실패한 혁명’이었습니다. 그리고 5년 뒤, 정부의 송환법 도입을 계기로 더 큰 민주화 시위가 벌어졌고 송환법 철회를 이끌었습니다.

홍콩은 지금 갈림길에 서 있습니다. 시민들 시위가 이어져 제도적 민주화로 이어질 것인지, 아니면 시위동력이 사그라들어 이대로 끝이 날 지. 홍콩 시민들의 핵심 요구는 송환법 철회 외에도 Δ경찰 폭력에 대한 독자적 조사위원회 설치 Δ시위대 폭도 규정 철회 Δ체포된 시위대의 석방 및 불기소 Δ행정장관 직선제 등입니다. 캐리 람 행정장관은 송환법 철회 외에는 절대 받아들일 수 없다고 밝힌 상태입니다.

 

2. 무역전쟁의 여파

친중 성향으로 사실상 중국정부의 꼭두각시라는 평가를 받는 캐리 람 장관이 독자적으로 이런 결정을 했을리는 없습니다. 중국 정부와의 상의 끝에 나온 결론입니다. 경제와 정치적인 이유 때문입니다.

미중 무역전쟁으로 중국 경제가 어려움을 겪고 있는 상황에서 민주화 시위로 인해 홍콩 경제가 큰 타격을 입었습니다. 홍콩을 찾는 관광객 수는 지난해보다 절반이 줄었고 관광경기 침체로 소매업과 호텔 여행업계는 무급휴가 중입니다. 시민들은 아예 홍콩공항을 장악했습니다. 홍콩 정부는 올해 GDP 성장률을 2~3%에서 0~1%로 대폭 낮췄습니다. 여기에 더해 미국과 영국 등 서방국가의 압력도 한몫을 했습니다. 미국은 중국과 다르게 홍콩에 대해 무역 투자 등에 있어서 특별 지위를 부여하고 있는데, 미국 정부가 홍콩 시위를 계기로 이를 협상카드로 사용할 것이란 예측이 나온 상태입니다.

정치적으론 ‘중국 건국 70주년’ 행사 때문입니다. 시진핑 국가주석은 70주년을 계기로 본인의 1인 지배체제를 강화하고 초강대국 부상을 만방에 알리겠다는 의도를 갖고 있습니다. 최근엔 중국정부는 톈안먼 광장 개방도 일시적으로 중단할 정도로 통제를 강화하고 있습니다. 홍콩 시위가 지속될 경우 본토의 민주화열기에 불을 붙일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유화책을 사용한 것입니다.

 

3. 직선제에 달렸다

시민들은 홍콩 행정부를 상대하고 있지만 사실상 중국 정부를 상대로 한 투쟁인 것을 다 알고 있습니다. 특히 5대 조건 중 행정장관 직선제는 중국 정부에게 직접 요구하는 겁니다. 그런데 중국 정부로서는 직선제는 받아들이기 힘든 요구조건입니다. 중국은 소비에트 연방의 해체를 본 뒤 지역의 자치권은 외견상 인정하지만 사실상 공산당 지배를 받는 지역정부를 세우도록 만들었습니다. 공산당의 강력한 헤게모니 속에 지역정부는 중앙정부에 정치적으로 예속된 상황이 나타났는데요. 중국식의 강력한 통제가 있었기에 가능했습니다.

그런데 홍콩의 경우는 서구식 민주주의를 경험한 뒤 중국에 편입됐고 일국양제라는 별도의 정치경제 체제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하나의 중국에서 항상 ‘약한 고리’가 될 수 있는 우려가 있었습니다. 직선제를 허용해 자치권이 확대되면 중국분리독립 움직임이 커질 수 있어 하나의 중국 정책에 위배될 가능성이 있는 겁니다.

홍콩시민들도 이 사실을 잘 알고 있습니다. 홍콩시민들은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정부이자 70년간 사실상 일당독재중인 중국정부를 상대하고 있습니다. 홍콩시민들 중에서도 이 정도 했으면 그만하자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나오고 있습니다. 직선제를 이끌어낼 수 있을지, 아니면 다시 봉합수순으로 갈지는 홍콩 시민과 중국 정부의 ‘의지’ 및 상호작용에 달려 있습니다. 홍콩에서는 아직도 ‘임을 위한 행진곡’이 울려 퍼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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