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삭발' 이언주, 안티조국 '상징자본'을 얻다

  • 기자명 김준일 기자
  • 기사승인 2019.09.11 07: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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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일 무소속 이언주 의원이 삭발식을 감행했습니다. 국회 본청 앞 계단에서 이 의원은 조국 장관 임명 철회와 대국민 사과를 요구하며 머리를 밀었는데요. 뒤에는 ‘대한민국 민주주의는 사망하였다’는 현수막을 걸려 있었습니다. 이에 대해 정치권의 반응은 크게 엇갈렸습니다. <국회에서 항의 삭발한 이언주 의원> 이 뉴스의 행간을 살펴보겠습니다.

 

1. 역치의 딜레마

역치란, 특정한 현상을 일으키기 위해 필요한 최소한의 에너지 혹은 자극을 의미합니다. 생물체가 지속적으로 특정 자극에 노출이 되면 이 역치값이 올라가게 되어 더 강한 자극이 필요하게 됩니다. 현재 이언주 의원의 정치가 바로 역치의 딜레마에 빠져 있습니다.

이언주 하면 떠오르는 것이 철새, 그리고 독설입니다. 이 의원은 2012년 민주통합당 당적으로 국회에 입성한 뒤 2016년에 더불어민주당 의원으로 재선에 성공했지만 이후 국민의당-바른미래당을 거쳐 현재는 무소속이며 자유한국당행이 유력한 대표적 철새 정치인입니다. 또 여성비하, 노동자비하, 공무원비하, 성소수자혐오 발언 등으로 막말 정치인이라는 이미지가 강합니다. 그런데 이런 '독설정치'는 상당한 피로감을 유발합니다. 웬만한 자극이 아니면 언론이 반응을 하지 않기 때문에 더욱 더 강한 자극이 요구됩니다.

이언주 의원은 지난 7월 출판기념회 뒤 언론의 스포트라이트를 전혀 받지 못했습니다. 이런저런 발언을 하긴 했는데 너무 약했던 겁니다. 결국 삭발이라는 강력한 퍼포먼스가 필요했습니다. 이에 대해 박지원 의원은 "국회의원이 하지 말아야 할 3대쇼는 의원직 사퇴, 삭발, 단식이다. 사퇴한 의원은 없고 삭발해도 머리는 자라고 단식해도 굶어 죽은 사람이 없다"며 평가절하했습니다. 반면 홍준표 전 대표는 "이 얼마나 아름다운 삭발이냐"라며 "야당 의원들은 이언주 의원의 결기 반만 닮았으면 좋으련만"이라고 페이스북에 썼습니다. 일단 관심을 끄는데는 성공해 '남는 장사'를 했습니다.

2. ‘안티조국’의 개막

그러면 왜 이 시기에 ‘안티 조국’을 택했을까요. 현재 정치권에는 크게 두 가지의 힘이 작용하고 있습니다. 하나는 패스트트랙 연대, 다른 하나는 반문연대입니다. 거대 양당이 합종연횡을 통해 상대당을 고립시키려는 전략입니다. 현재 반문연대의 명분은 ‘반조국연대’입니다. 민주당과 정의당을 제외하곤 모든 정당이 조국 장관 임명을 반대했기 때문에 불씨는 살아있습니다. 어제 퍼포먼스는 반조국연대의 중심에 이언주 본인이 서겠다는 선언입니다.

또 하나는 상징성입니다. 현재 조국의 반대편에서 서 있는 대표적인 정치인은 누구일까요. 대부분은 나경원 원내대표를 떠올릴 겁니다. 서울대 법대 82학번 동기이자 법조계 출신. 그리고 최근 자녀 연구실적 제1저자 논란까지 상당히 '싱크로율'이 높습니다. 그런데 나경원 의원과 이언주 의원은 소위 ‘캐릭터’가 겹칩니다. 나이차와 위상차는 좀 있지만, 수려한 외모와 법조계 출신이라는 공통점, 당 대변인을 거치면서 주목을 받았다는 점과 막말 논란의 중심에 선 전력 등입니다. 삭발 덕분에 이제 '안티조국'의 선두주자로 이언주를 떠올리는 사람이 증가했을 겁니다. 삭발 퍼포먼스는 안티조국 '상징자본'을 선점하기 위한 '비장미 흐르는 쇼'였습니다. ‘조국 정국’은 법무부장관 임명으로 일단락된 게 아니라 이제부터 시작입니다.

 

3. 투쟁의 정치학

조국 민정수석이 법무부 장관 후보자로 임명되기 전, 부산 영도 출마가 거론됐습니다. 영도는 이언주 의원이 호시탐탐 노리고 있는 곳으로 자유한국당 전략공천을 내심 기대하는 곳입니다. 이 의원은 조국이 영도에 출마하기를 진심으로 바랐을 겁니다. 한 보수언론 논설위원은 이언주 의원을 두고 ‘586의 천적’ ‘우파의 암사자’라며 치켜세운 바 있습니다.

이언주 의원은 지난 7월 부산 서면에서 출판기념회를 가졌습니다. 책 제목이 ‘나는 왜 싸우는가’였습니다. 그날 발언의 대부분은 조국 당시 민정수석과 문재인 대통령을 비판하는데 할애했습니다. 이렇듯 이 의원은 스스로의 정치적 위상을 투사로 자리매김했습니다. 실제 보여준 정치적 역량에 비해 더 많은 관심을 받아왔습니다. 그 관심의 동력은 반대와 증오였습니다. 어제 삭발이라는 퍼포먼스가 딱히 어색하지 않았던 것도 이런 이미지 때문이었습니다. 선거를 전쟁이라는 프레임으로 본다면, 그 어느 때보다도 이언주 의원 같은 투사가 필요한 시절입니다. 이언주의 몸값은 당분간 올라갈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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