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석] 보조금 받았으니 회계장부 제출하라?

  • 기자명 선정수 기자
  • 기사승인 2023.03.10 15: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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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정부의 노조 때리기에 한국경영자총협회(경총)가 유탄을 맞았습니다. 윤핵관에서 시작돼 조선일보를 거친 뒤 다시 대통령으로 이어진 ‘노조 나랏돈 1500억원’ 공세의 여파가 엉뚱하게도 경총으로 전이되는 모양새입니다.

출처: 한국경영자총협회
출처: 한국경영자총협회

◈경총, “회계투명성 강화”

경총은 9일 ‘한국경총 정부 지원금 관련 일부 언론보도에 대한 입장’이라는 보도참고자료(윗 그림 참조)를 배포했습니다.

경총은 “최근 한국노총 보도자료(1. 30)와 일부 언론에 따르면 한국경총이 정부에서 지원금을 받았다고 보도되고 있는데 이는 사실과 다른 내용이 있어 바로잡고자 한다”고 밝혔습니다.

출처: 한국노총
출처: 한국노총

한국노총의 보도자료(윗그림 참조)에는 경총이 2022년 받은 정부지원금이 116억7000만원에 이르는 것으로 나타납니다. 이에 대해 경총은 “일부 언론에 보도된 경총에 대한 정부 지원은 한국경총이 아니라 15개 지방경총에서 별도로 진행하는 공모사업에 해당하는 내용”이라며 “한국경총과 지방경총은 완전한 별도 법인으로 독립채산제로 운영되고 있어 지방경총이 참여한 정부 사업은 각 지방경총마다 독자적으로 운영돼 한국경총이 이에 관여하거나 개입할 권한이 없다”고 해명합니다.

또 “국고 보조금과 관련된 노동조합의 도덕적 해이 등의 논란과는 그 취지나 성격이 전혀 다르다”고 주장합니다. 지방경총이 참여하는 정부 사업은 고용부, 행안부, 복지부 등 중앙부처나 각 지자체에서 실시한 공모사업에 응모하여 자격조건을 갖추고 경쟁입찰을 통해 적법한 사업자로 선정되면 사업비를 지원받고 관련 법령에 따라 정부나 지자체에 보고하고 정해진 절차에 따라 회계감사를 받고 있다는 게 이유입니다.

그럼에도 경총은 “법적 의무는 없으나 신뢰도 제고와 회계 투명성 강화를 위해 자발적으로 매년 외부기관에 회계감사를 실시하고 있다”며 “한국경총은 회계 투명성을 보다 강화하기 위해 일반 국민들에게도 사업보고, 재무제표 등 회계자료를 홈페이지에 공시할 예정”이라고 밝혔습니다. 잘하고 있지만 혹시 있을지 모를 오해를 불식시키기 위해 선제적으로 회계자료를 공개하겠다는 취지입니다. 나랏돈이 제대로 쓰이고 있는지 확인할 수 있는 자료가 늘어나는 것이기 때문에 분명히 환영하고 박수칠 일입니다.

 

◈한겨레, “노조 45억, 경제3단체 1226억”

한겨레는 9일 <노조 45억-경제단체 1226억인데…보조금 회계투명성 노조만 겨냥>이라는 제목의 기사를 발행했습니다. 나라살림연구소가 2017~2021년 5년 동안 노동조합과 경제단체들이 중앙정부로부터 받은 보조금을 헤아려 본 결과입니다. 2020년만 따져도 노조는 45억원의 보조금을 받은 반면 대한상의와 경총, 무역협회는 각각 1159억원, 686억원, 190억원을 받았다고 합니다. 지방정부가 제공한 보조금까지 고려하면 격차는 더욱 커질 것이라는 예상도 내놨습니다.

출처: KTV
출처: KTV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달 21일 국무회의에서 노조의 회계 투명성을 강조하며 이렇게 말합니다. “지난 5년간 국민의 혈세로 투입된 1,500억 원 이상의 정부 지원금을 사용하면서도 노조는 회계 장부를 제출하지 않고, 조직적으로 반발하고 있습니다. 다들 아시는 바와 같이 미국, 영국 등 선진국에서는 노조의 회계 보고와 회계 서류 제출 의무를 규정하고 있습니다.”

윤 대통령이 언급한 1500억원은 조선일보가 권성동 의원을 인용해 보도한 내용입니다. 조선일보는 2월19일 < [단독] 회계 공개 거부 양대노총... 최근 5년간 나랏돈 1500억 타갔다> 기사를 발행했습니다. 최근 5년 동안 고용노동부와 지자체로부터 노조가 받은 지원금 내역을 공개한 것이죠. 조선일보는 “노조는 정부와 광역자치단체로부터 이와 같은 거액의 지원금을 받고 있지만 집행 내역을 제대로 공개하지 않고 있다”고 주장합니다. 이어 “정부는 지난 1일 이들 노조에 조합원 명부, 규약, 노조 임원의 이름과 주소, 총회와 대의원회 등의 회의록을 비롯 회계 관련 예산서와 결산서, 수입 및 지출 결의서, 각종 증빙서류 등 자체 재정 점검결과서와 증빙 자료를 공개하라는 공문을 보낸 바 있다. 노조들은 이를 묵살했다.”고 보도했습니다.

윤석열 정부는 노조, 특히 상급단체인 민주노총과 한국노총의 회계 장부를 들여다보고 싶어합니다. 그것이 회계 투명성이라고 주장합니다. 조선일보도 정부와 보조를 맞추고 있습니다. 노조는 회계장부를 정부에 제출하거나, 일반 대중에게 공개할 의무가 없다고 주장합니다. 한겨레는 노동계와 같은 입장입니다.

 

◈보조금 사업과 회계 공개는 별개

세금(보조금)을 받았으니 노조의 회계 자료를 정부에 보고해야 한다는 윤석열 정부의 주장은 사실일까요? “회계 장부를 제출하지 않는다”는 대통령의 발언은 뭘 근거로 나온 걸까요?

2월23일 고용노동부는 ‘노동단체 지원사업 개편방안’을 발표했습니다. 고용노동부는 “보조금 지원을 신청하는 노동단체에 대해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 제14조에 따른 재정에 관한 장부와 서류 등의 비치·보존 여부를 확인할 수 있는 증빙자료를 제출하도록 하고 이를 제출하지 않는 노동단체는 지원사업 선정에서 배제한다”고 밝혔습니다.

노조법 14조는 조합원 명부, 규약, 임원의 성명∙주소록, 회의록, 재정에 관한 장부와 서류를 작성해 비치하도록 규정하고 있습니다. 같은 법 25조는 6개월에 1회 이상 노조가 회계감사를 받도록 규정하고 있고 감사 결과를 조합원에게 공개하도록 정합니다. 회계연도마다 결산결과와 운영상황을 공표해야 하고 조합원의 요구가 있을 때는 열람시켜 줄 의무를 규정하는 조항도 있습니다. 행정관청은 노조에 대해 결산결과와 운영상황을 보고하도록 돼 있습니다.

노동관계법 어디에도 노조가 회계 장부를 정부에 제출하도록 하는 규정은 없습니다. 대통령과 정부는 현행법에 전혀 근거가 없는 “회계 장부” 제출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이유는 정부 보조금을 받았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여기서 간과해선 안 될 부분이 있습니다. 노동조합이든 사업자단체든 정부의 보조금을 받을 때, 특히 보조금 사업을 신청할 때 갖가지 서류를 제출하고, 집행 내역에 대해 결산하도록 돼 있다는 점입니다. 이미 보조금이 지급된 사업이라면 정산이 끝났다는 뜻이고, 정산이 끝나려면 중앙정부 또는 지자체의 회계 담당 공무원이 각 단체가 제출한 집행 내역을 철저히 검토했다는 뜻입니다. 보조금을 집행의 적정성은 보조금 사업을 발주한 공무원 또는 집행 내역을 정산한 공무원이 철저히 챙기고, 부적정한 부분이 발견되면 해당 금액을 환수하면 될 일입니다. 노조가 정부 보조금을 수령했다고 해서 전체 회계장부를 제출해야 하는 이유도 근거도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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