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늑장 대응에 폭발 시민사회 "전세사기, 사회적 재난·특별법 촉구"

  • 기자명 김혜리 기자
  • 기사승인 2023.04.05 17: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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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세사기를 당한 피해자들이 호소하고 있습니다. 시민사회단체는 '전세사기·깡통전세 피해자 구제 특별법' 제정이 시급하다며, 이는 사회적 재난이라고 한 목소리를 내고 있습니다. 뉴스톱이 짚어봤습니다. 

지난 4일 오전 국회 소통관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전세사기와 깡통전세 피해자 구제를 위한 특별법 제정’을 촉구했습니다. 특별법 제정에 국민의힘도 적극 동참할 것을 호소했습니다.

​​2023. 4. 4. 전세사기/깡통전세 피해자 특별법 제정 촉구 기자회견. 사진=참여연대 
​​2023. 4. 4. 전세사기/깡통전세 피해자 특별법 제정 촉구 기자회견. 사진=참여연대 

이날 기자회견에는 김OO(빌라왕)피해자대책위원회(대책위), 미추홀구전세사기피해자대책위, 참여연대 민생희망본부, 민변 민생경제위원회, 주택세입자법률지원센터 세입자 114 등이 연대했습니다.

앞서 지난 30일 더불어민주당 조오섭 의원은 '전세사기·깡통전세 피해자 구제 특별법'(주택 임차인의 보증금 회수 및 주거 안정 지원을 위한 특별법)을 대표 발의한 바 있습니다.   

이 법안은 우선 매수를 통해 전세사기 피해자를 신속히 구제하는 내용이 담겼습니다. 임대차 종료 후 1개월 이상 보증금을 받지 못하거나 깡통전세·전세사기로 피해를 본 임차인들을 구제하는 내용이 담겨있습니다. 구체적으로 특별법에는 피해자가 스스로 권리 구제를 할 수 없는 경우 한국자산관리공사 등 채권매입기관을 통해 임대차보증금 반환채권을 우선 매수해 피해를 구제하는 내용을 골자로 하고 있습니다.

주요 내용은 ▲국토부와 지자체가 보증금 피해 규모 등 피해조사 ▲공공 채권매입기관의 피해 주택 보증금 반환채권 매입 ▲공공 채권매입기관의 임차 주택 매입 및 권리 ▲국세 등 우선채권의 안분 및 선순위 근저당권의 대위 ▲공공임대주택으로 공급 ▲ 재정 및 주택도시기금을 지원할 수 있고, 국세 및 지방세를 감면 ▲벌칙 규정 등입니다.

정의당 심상정 의원도 지난 30일 '깡통전세 공공매입 특별법‘(임대보증금미반환주택 임차인 보호를 위한 특별법안)을 대표 발의한 바 있습니다. 깡통전세 및 전세사기 피해 주택을 공공매입해 피해자 구제를 위한 임대주택으로 활용하는 방안입니다. 특히 보증금 반환 채권 매입으로 최악의 상황에도 피해 임차인이 임대보증금 절반은 돌려받을 수 있게 했습니다. 국가기관이 매수한 채권을 바탕으로 ▲경매신청권 ▲우선변제권 ▲우선매수권을 확보해 경매 등의 절차로 피해주택을 매입하고, 임차인에게 우선 입주권을 부여하는 것을 기본 골자로 합니다. 예산은 국가 재정과 주택도시기금으로 활용하도록 했습니다. 

 

◆ ­조직적 전세사기 공모­…피해자들 고통 호소

특별법 제정 촉구를 한 목소리로 내는 이유는 최근 이른바 ’빌라왕‘이나 '미추홀구 건축왕‘ 사건 등 전세사기 피해가 심각한 사회적 문제로 대두됐기 때문입니다. 

앞서 인천 미추홀구 일대에 2700채 소규모 주택을 보유한 건축업자(일명 건축왕)가 지난해 1월부터 7월까지 세입자 161명을 상대로 약 125억원 전세 보증금을 가로챘습니다. 그는 공인중개사들을 직접 고용해 전세사기를 돕도록 하는 등 조직적으로 범행을 저지른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또 다른 전세사기 사건도 있습니다. 빌라왕으로 불리던 임대업자가 서울과 수도권 빌라 1139채를 무자본 갭 투기 형태로 사들여 세입자들에게 전세보증금을 돌려주지 않고 숨지면서 문제가 수면 위로 떠올랐습니다. 뿐만 아니라 빌라왕, 빌라의신이라 불리는 또 다른 전세사기 불법 행위자들이 드러나고 있습니다. 서울 등 240여 채 강서구 빌라왕, 수도권 3493채 보유한 빌라의신, 수도권 413채 빌라왕, 광주 등 400여 채 빌라왕 등이 있습니다. 

이 사건들은 건물주로 소위 '바지 사장'을 내세웠고 건물주, 임대인, 중개인, 부동산 컨설팅업체 등이 함께 조직적으로 움직여 보증금을 가로채는 식으로 범행을 저질렀습니다. 대표적인 전세사기 수법은 '무자본-갭투자'로 미분양 주택 등을 자신의 자본 없이 세입자의 전세 보증금으로 주택을 매입해 보증금을 돌려주지 않는 것입니다. 또 ▲전세 보증금이 매매가격보다 높은 금액으로 보증금을 받는 깡통 전세 임대차계약 대상 건물에 압류 ▲경매 진행 등 숨기거나 허위로 알려 보증금을 가로채고 있습니다.

이에 경찰청은 지난해 7월부터 지난 1월까지 전세사기 전국 특별단속을 통해 전세사기 관련자 약 1941명을 검거하고 168명을 구속했습니다. 또 이와 관련된 사건 378건에 대해 1568명을 수사하며 범행을 공모한 공인중개사와 컨설팅업체 등 배후 세력을 밝혀내고 있습니다.

피해 규모는 이미 늘고 있습니다. 대법원 등기정보광장에 따르면 이번 달 전국 임차권등기명령 신청 건수는 모두 3371건에 달했습니다. 지난해 8월 1043건 이후 올해 1월 2081건을 기록했고 두 달여 만에 3000건을 넘어섰습니다. 임차권등기명령은 임대차 계약 기간이 끝났지만 전세 보증금을 돌려받지 못한 임차인을 위한 제도입니다. 임차권등기명령 신청 건수가 늘어나고 있다는 건 전세보증금을 반환하지 못한 임차인이 증가했다는 것입니다. 

이에 따라 주거지를 잃은 피해자들은 경제적 어려움과 심리적 고통을 호소하고 있습니다. 특히 미추홀구의 경우, 미추홀구 전세사기피해 대책위원회에 따르면 집계한 미추홀구 전세사기 피해자 수는 5000명 이상입니다. 지난 달 기준 65%가 경매 대기 중이거나 경매 절차를 밟고 있는 실정입니다. 지난 2월 28일 미추홀구 전세사기 피해자인 청년이 '정부 대책에 실망했다'는 내용의 유서를 남긴 채 극단적 선택을 한 비극적인 사건도 발생했습니다.

전세사기를 당한 피해자들 중 청년층이 가장 많습니다. 지난 2월 기준 경찰청에 따르면 확인된 피해자는 1207명, 피해금액은 2335억 원으로 사회경험이 많지 않고 부동산 거래지식이 부족하거나 경험이 부족해 중개인에게 의존할 수 밖에 없는 청년층(20대‧30대)이 피해가 많은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피해자 1인당 피해금액은 1억~2억 원, 피해 주택유형는 다세대주택(빌라)가 다수로, 전세사기 피해가 대부분 서민층에 집중됐습니다. 

지난 8일 전세사기 피해자 추모행진 및 기자회견에 참가한 미추홀구전세사기피해대책위 등 53개 주거·시민사회단체·정당들 사진=추모행진실무단
지난 8일 전세사기 피해자 추모행진 및 기자회견에 참가한 미추홀구전세사기피해대책위 등 53개 주거·시민사회단체·정당들 사진=추모행진실무단

◆ 정부 늑장 대응, 피해 지원 대책 한계 커…특별법 제정 촉구

대규모 전세사기 사태가 가능했던 것은 궁극적으로 제도적 허점과 정부의 안일한 대책 때문입니다. 정부의 주택담보대출, 전세대출의 확대 정책, 금융기관의 무분별한 대출, 주택도시보증공사(HUG)의 느슨한 적격심사 등이 문제를 일으켰습니다. 

또 징조가 있었지만 정부가 손 놓고 있어 사태를 키웠습니다. 전세 보증사고 금액은 지난 2019년부터 급증하기 시작했습니다. 지난 2018년 792억대였던 전세보증 사고 금액은 다음해 3442억까지 증가했습니다. 이어 ▲2020년 4682억원 ▲2021년 5790억원 ▲2022년 1조1726억원까지 급증했습니다. 당시 정부도 이런 문제를 알고 있었지만, 급증하는 전세 보증사고액에 대한 원인을 진단하고, 문제를 해결하지 않아 골든 타임을 놓친 셈입니다. 

전세사기 피해가 겉잡을 수 없이 커지자 정부는 피해지원 대책을 마련했습니다. 앞서 지난 달 29일 제15차 비상경제민생회의에서 ▲임차보증금보다 늦게 발생한 당해세(국세, 지방세 등)에 대한 보증금 우선 보호 ▲경·공매 종료 전 긴급저리 전세자금 대출 지원 ▲경·공매에서 전세보증금을 미회수 전세대출 상환의 경우, 보증기관 대위변제 후 분할 상환 또는 연체정보 등록 유예 등 방안을 발표한 바 있습니다.

하지만 시민사회단체는 정부의 전세사기 피해 지원 대책을 마련했지만 한계가 크다고 지적하고 있습니다.  이들은 "전세사기와 깡통전세는 정확한 피해 규모를 추산하기 힘든 사회적 재난임에도 정부의 대책은 여전히 현행법 제도의 한계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비판이 제기됐습니다..

시민사회단체는 "국토연구원이 최근 집값이 매매가 보다 20% 하락할 경우 갭투자 주택 10채 중 4채는 해당 주택을 팔아도 세입자에게 보증금을 돌려주지 못할 위험이 있고 내년 상반기에는 전세보증금 미반환 위험 주택 비율이 가장 높을 것이라고 분석했다"며 "깡통전세·전세사기가 사회적 재난 수준으로 이렇게 심각한데 윤석열 정부의 대책은 이미 피해를 입은 임차인들을 구제하는 데 한계가 있을 뿐만 아니라 향후 예상되는 피해도 제대로 대응하기 어려운 실정"이라고 주장했습니다. 

또 “퇴거 자금 대출 한도와 주택 처분의무를 폐지 등 다주택자에 대한 규제를 대폭 완화하는 방안을 내놓고 정부가 나서서 보증금 미반환의 원흉인 갭투자 임대인들에게 면죄부를 주려고 한다”고 말했습니다. 

따라서 이들은 “피해 임차인의 개별적인 권리 행사만으로는 보증금 회수가 사실상 거의 불가능한 상황으로 특별법(전세사기와 깡통전세 피해자 구제를 위한 특별법)을 통한 집단 권리구제만이 실질적인 ‘해결책’이 될 수 있다”라고 촉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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