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팩트체크] 문재인 대통령 '유엔총회 기조연설'

  • 기자명 뉴스톱
  • 기사승인 2019.09.25 12: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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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일 오후(현지시각) 문재인 대통령이 제74차 유엔총회 자리에서 기조연설을 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한반도 허리를 가로지르는 비무장지대(DMZ)를 국제평화지대로 만들 것을 제안했다. 자유무역 질서, 인권과 환경 등이 거론됐지만 핵심은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이었다. 

뉴스톱은 세계 17개국 23개 팩트체크 기관과 함께 각국 정치 지도자들의 발언과 연설을 팩트체킹하기로 했다. 제안의 타당성과는 별도로 문재인 대통령이 연설에서 제시한 세부 사실관계에 대한 진위 여부도 중요하기 때문이다. 뉴스톱은 문 대통령 발언 중 검증할 수 있는 4개의 발언을 선정해 팩트체킹했다. 이 기사는 다른나라 팩트체크 기관을 거쳐 전 세계에 제공된다.

① 끊임없는 정전협정 위반이 남북 간의 군사적 긴장을 높이고 때로는 전쟁의 위협을 고조시켰지만 지난해 9·19 군사합의 이후에는 단 한 건의 위반행위도 발생하지 않았습니다.

대체로 거짓이다. 지난해 9월 19일 평양 남북정상회담에서 발표된 ‘역사적인 판문점선언 이행을 위한 군사분야 합의서(9.19 남북군사합의)’ 이후 북한은 10회에 걸쳐 20발의 단거리 미사일과 초대형방사포 등을 발사했다. 해당 합의서에는 “남과 북은 지상과 해상, 공중을 비롯한 모든 공간에서 군사적 긴장과 충돌의 근원으로 되는 상대방에 대한 일체의 적대행위를 전면 중지하기로 하였다”, “쌍방은 군사적 충돌을 야기할 수 있는 모든 문제를 평화적 방법으로 협의·해결하며, 어떤 경우에도 무력을 사용하지 않기로 하였다” 등의 내용이 담겨 있다. 최근까지 잇따른 북한의 무력시위는 이 대목을 저촉한 것으로 해석 가능하다.

다만 한국 국방부의 판단은 다르다. ‘9.19 남북군사합의’ 1주년을 앞둔 지난 18일 국방부는 지난 1년간 이행 현황을 평가하며 “(단거리 발사체 발사가) 군사합의에 명확히 조항으로 되어 있지는 않아 (9·19 군사합의) 위반은 아니다”라고 밝혔다. “합의 취지에는 어긋나지만 위반 사항이라 보기는 어렵다”는 것이다.

전반적으로 “남북은 군사합의사항을 충실히 이행해왔다”는 국방부의 입장과 달리 비판의 목소리도 많다. “군비통제는 양측이 지켜야 실효성이 있다. 북한은 합의를 지키지 않았다(남성욱 고려대 교수)”, “기존 정전협정만 잘 지켜도 충돌은 없다. 최근 미사일 실험을 보면 북한에 합의를 지킬 의지가 없어 보인다(문성묵 한국국가전략연구원 통일전략센터장)” 등 전문가들은 ‘9.19 남북군사합의’가 선언적 수준에 머물고 있다고 지적했다.

북한에서도 비난의 목소리를 냈다. 지난 23일 북한의 대남선전매체 ‘우리민족끼리’에는 "남조선 군부가 과거의 군사적 도발 악습을 버리지 못하고 북남 군사분야 합의에 역행하면서 우리를 겨냥한 전쟁 연습과 무력 증강 책동에 지속적으로 매달리고 있다"는 내용의 기사가 실렸다. “군사합의를 위반한 것은 남측”이라는 비판이다.

결국 ‘9.19 남북군사합의’의 실효성을 담보하기 위해서는 남북 군사공동위원회 구성 등 신뢰 구축 절차가 중요하다. 합의서에는 “쌍방은 남북군사공동위원회 구성 및 운영과 관련한 문제를 구체적으로 협의·해결해 나가기로 하였다”는 구절이 있지만 1년 넘게 구성조차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② 특별히 알려드리고 싶은 일은 한국전쟁 당시 남과 북, 유엔군과 중국군의 최대 격전지였던 ‘화살머리고지’에서 지금까지 모두 177구의 유해를 발굴한 것입니다.

진실이다. 국방부 산하 국방일보를 비롯한 여러 언론 보도에 따르면 화살머리고지 일대에서 발굴된 유해는 지난 19일 기준으로 모두 170여구다. 문 대통령이 연설에서 언급한 177구에 매우 근접한 숫자다. 유해 파편을 비롯한 부분유해를 기준으로 집계하면 잠정적으로 1488점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③ 비무장지대에는 약 38만 발의 대인지뢰가 매설되어 있는데, 한국군 단독 제거에는 15년이 걸릴 것으로 예상합니다.

절반의 진실이다. 합동참모본부가 작년 국회 국방위 소속 최재성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에 제출한 국정감사 자료에 따르면 DMZ 786개소에 약 38만발의 대인지뢰가 매설돼 있다. 민통선 (CCZ) 이북 지역 433개소까지 포함할 경우 모두 77만발에 달한다.

대인지뢰 제거에 소요되는 시간은 추정치마다 다르기 때문에 정확한 판단이 어렵다. 다만 문 대통령이 언급한 15년은 매우 낙관적인 수치로 보인다. 서울신문은 현행 방식대로 공병부대 장병들의 수작업에만 의존할 경우 200년이 걸릴 것이라는 전망을 내놓았다. 지뢰제거차를 비롯한 무인 지뢰제거장비를 대거 동원할 경우 속도는 빨라질 수 있다. 하지만 기존 장비 노후화와 예산 문제 등으로 인해 실전 투입이 요원한 것으로 알려졌다.

 

④ 한국은 ‘한국형 지속가능발전목표(K-SDGs)’를 수립하여 국제사회에 약속한 지속가능발전목표 이행에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습니다

대체로 거짓이다. 이번 유엔 총회 최대 화두는 온실가스 배출로 인한 기후변화 문제였다. 전날 기후행동 정상회의 (Climate Action Summit)에 참석해 연설한 문 대통령은 오늘 일반토의 기조연설에서도 정부의 친환경 정책을 소개하며 지속가능발전 실천을 위해 국가적인 노력을 기울이고 있음을 강조했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기후변화 대응은 여전히 국제 기준에 비해 매우 미흡한 실정이다. 일례로 비영리 독립연구기관인 기후변화추적 (CAT; Climate Action Tracker)은 지난 19일 최종 업데이트된 연구자료에서 한국을 중국, 일본 등과 함께 대응 노력이 ‘매우 불충분 (Highly insufficient)’ 한 국가로 분류했다. 전 세계가 현재 우리나라 수준으로 온실가스를 계속 배출할 경우 지구 평균기온이 산업화 이전에 비해 3~4도 상승할 것이라 진단한 것인데, 이는 지구 평균기온을 산업화 이전보다 1.5도 이상 상승하지 않게끔 노력하자고 합의한 파리기후협정의 합의기준을 크게 웃도는 수치다. 이런 경우 자체 평가기준에서 ‘매우 부족’에 해당한다는 것이 기후변화추적의 설명이다.

글로벌 에너지기업 BP가 지난 6월 발표한 '세계 에너지 통계 보고서’는 더욱 적나라한 결과를 보여준다. 지난해 우리나라의 CO2 배출량은 OECD 회원국 가운데 4번째로 높은 6억7천970만t으로 집계됐다. 더욱 주목할 것은 가파른 증가율이다. 2007년에서 2017년 사이에만 CO2 배출량이 24.6% 증가했는데, 이는 같은 기간 OECD 국가들 가운데 두번째로 높은 상승폭을 보인 것이다 (1위 터키 50.5%). 같은 기간 OECD 회원국 전체 배출량이 8.7% 줄어든 것과는 극명하게 대조된다.

이처럼 우리나라의 기후변화 대응 수준이 국제사회의 눈높이에 미치지 못하는 이유로는 현저히 낮은 재생에너지 비중이 꼽힌다. 전기 생산에서 원자력 및 석탄 발전 비중이 지나치게 높은 데 반해, 시간이 지남에 따라 재생이 가능한 재생에너지 (대표적으로 태양열, 풍력, 수력 등) 발전 비중은 턱없이 낮다는 것이다. 실제로 G20 국가들의 기후변화 대응 현황을 집계하는 비영리기관인 기후투명성 (Climate Transparency) 보고서에 따르면 우리나라는 전력 사용에서 재생에너지가 차지하는 비중이 17년 기준 3%에 불과하다 (G20 평균 24%).

여기에 정부가 ‘신재생에너지’라는 불명확한 개념을 도입해 혼란을 가중시키고 있다는 지적이 제기된 바 있다. 신에너지 (새롭게 개발되고 있는 에너지로서 대표적으로 수소에너지가 포함)는 재생에너지와는 달리 지속이 불가능함에도 불구, 정부가 둘을 뭉뚱그려 집계함으로써 통계적인 ‘착시’를 유발하고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신에너지와 재생에너지 비율을 합쳤을 경우 7.6%까지 올라간다정책의 미흡성은 고사하고 공식적인 통계 기준 자체가 국제 기준을 따라가지 못하고 있는 현실이다.

*기사 작성: 김준일·문기훈·박강수 팩트체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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