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팩트체크] 구미시장은 정말 독립운동기념사업을 가로막았나

  • 기자명 김수민
  • 기사승인 2019.09.26 09: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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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지방선거에서 경북 유일의 더불어민주당 소속 단체장으로 화제가 된 장세용 구미시장이 지난 9월 20일부터 또다시 관심을 모으고 있다. 이날 장 시장은 독립운동가 왕산 허위 의병장의 후손들과 면담한 자리에서 고성을 냈고, 이 과정에서 이창숙 옹(88)은 119구급차를 통해 인근 병원으로 이송되었다. 일부 단체는 장 시장이 욕설을 했다고 주장했다. 

이 사건이 벌어진 배경은 구미시의 물빛공원 조성사업에 있다. 구미국가산업단지 제4단지의 확장단지에 지어지는 물빛공원에는 당초 허위 선생의 호를 딴 '왕산광장'과 '왕산루'가 조성될 계획이었다. 구미시는 그러나 계획을 바꿔 광장과 누각의 명칭을 각각 '산동광장', '산동루'로 변경하기로 했다. 광장에 허위 의병장 일가의 '독립운동가 14인 동상' 역시 설치가 무산되었다. 허 의병장의 후손들은 이에 항의하며 구미시청에서 현수막 시위를 했고, 그 직후 시민단체 관계자들이 동반한 시장 면담 자리에서 이 사건이 터졌다. 

다수 언론의 보도는 '구미시장이 당초의 약속을 뒤집고 독립운동기념사업을 무산시키며 운동가 후손을 홀대했다'는 논조를 띠고 있다. 장세용 시장이 박정희 전 대통령에 비판적이며, 최근 제작된 구미공단 50주년 홍보영상에서 박 전 대통령을 제외한 것을 묶어서 함께 문제삼고 있다. <박정희 지우기 하더니, 독립운동가까지" 구미시장 또 논란>(중앙일보), <박정희 빼더니.. 독립운동가 광장 이름도 바꾼 구미시장>(조선일보)와 같은 제하의 기사가 그 사례다. 

하지만 다수 언론의 보도태도와 물빛공원 관련 구미시의 결정에 비판적인 단체의 논리는 검증이 필요하다. "왕산 허위 선생을 비롯한 그 일가 독립운동가는 기념해야 할 훌륭한 분이다"라는 전제와 "그러므로 물빛공원에 조성될 광장과 누각의 명칭은 허위 선생의 호, '왕산'이 되어야 한다"는 결론 사이에는 넓은 간극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팩트1. '욕설'은 확인 안됐으나 고압적 태도는 문제

구미 물빛공원내 왕산기념시설 조성의 타당성을 살펴보겠다. 먼저 이날 사건에 대한 논란을 짚어보겠다. 

장세용 구미시장이 심장수술 전력도 있는 노년 시민 앞에서 고성을 내며 다툰 것은 사실이다. 명백히 그릇된 행동이다. 장 시장도 지난 21일 입장을 내 "독립유공자 왕산허위선생의 장손자 허경성 옹 내외분과의 면담과정에서 예우를 다하지 못해 송구하게 생각합니다", "조금 더 사려 깊은 설명과 유족에 대한 세심한 배려를 하여야 했으나 그렇지 못한 점 다시 한 번 진심어린 사과의 말씀을 드립니다"라며 사과했다. 

장 시장은 다만 "일부 언론에서 보도된 면담과정에서 욕설을 했다는 내용은 사실이 아님을 분명히 밝힙니다"라고 반박했다. 당시 상황을 담은 동영상을 보면 욕설 여부는 확인되지 않는다. 그러나 장 시장의 자세는 고압적이며, "(독립운동가인) 우리 할배는 산소도 없다"와 같은 감정적인 표현이 등장한다. 

허위 의병장의 후손들이 고생해온 현실을 감안한다면 더더욱이나 시장의 처신은 조심스러워야 했다. 서대문형무소에서 허 의병장이 순국한 이후 네 아들과 그 가족은 만주·연해주로 흩어져 떠나야 했다. 허위의 손녀이자 허형의 딸인 허로자 옹은 카자흐스탄으로의 강제 이주에 이어 우즈베키스탄에서 생활하다 나이 여든에 즈음해 2006년 처음으로 귀국했다. 2011년, 국적을 회복하고 보훈처가 제공한 임대주택에 들어가기 전까지 그는 여관골목을 전전하기도 했다.
 
팩트2. 산동면은 왕산 허위 일가와 관련 없는 지역

물빛공원에 왕산광장과 허씨 일가 독립운동가의 동상 그리고 왕산루를 조성하는 계획은 2016년 9월에 수립되었다. 장 시장 직전 시장인 남유진 구미시장(자유한국당, 당시 새누리당 소속) 시절의 일이다. 왕산광장 등을 찬성하는 시민들은 전임 시장의 방침을 약 3년만에 뒤집은 현 구미시장에게 분개하고 있다. 

새로 마련되는 공원에 독립운동가 기념 공간을 조성하는 그 자체에 반대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계획을 뒤집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원칙론, 일반론도 있다. 하지만 함께 인정해야 할 대목이 이 사업에 존재한다. 지난해 11월, 산동면주민협의회 등 공원 인근에 거주하는 주민 350여명은 '왕산광장'이라는 명칭을 변경해달라는 민원을 제출했다. '우리 마을 광장에 우리 마을 이름을'이라는 또다른 원칙이다.

왕산 허위 의병장의 고향인 구미시 임은동에서 '왕산광장' 조성이 계획되었던 구미시 산동면까지의 거리

물빛공원이 있는 구미시 산동면은 왕산과 직접적인 관련이 없는 지역이다. 왕산의 고향동네인 임은동에서 출발해 산동면에 들어서려면 차량으로 20~30분은 족히 걸린다. 두 동네 사이에는 낙동강이 흐르며, 임은동은 칠곡군 북삼읍에 닿아 있고 산동면은 군위군 소보면에 접해 있다. 시군통합으로 구미시에 묶였을 뿐 문화권이 다른 지역이다. 

항간에서는 "서울시 동대문구의 한 거리에도 '왕산로'라는 명칭이 붙었다. 꼭 고향동네에서만 기념해야 하는가?"라고 반문한다. 허나 왕산로는 왕산과의 연관성이 뚜렷하다. 왕산이 이끄는 의병부대가 진격했던 길이다. 

팩트3. 왕산기념시설은 이미 임은동에 존재

지역사회에 여러 독립운동가가 있고 그들을 기리는 시설이 필요하다면, 두 가지 방법이 있을 수 있다. 첫째, 한 데 모아 기리는 시설을 만드는 법이 있다. 둘째는 각 운동가의 기념시설을 그 고향에 조성하는 것이다. 

왕산의 고향인 임은동에는 왕산을 기념하는 건물과 공원이 모두 있다. 왕산기념관과 왕산기념공원이 그것이다. 장세용 시장은 왕산 일가 독립운동가들의 동상을 물빛공원 대신에 이미 조성된 이곳 시설에 설치하려 하고 있다. 물빛공원내 동상설치는 무산되었지만, 설치 자체는 추진된다. 

구미시 임은동 왕산기념관 인근에 이미 조성된 왕산허위기념공원
왕산의 고향동네인 구미시 임은동에 소재한 왕산기념관

구미 지역 독립운동가 가운데 가장 조명을 많이 받은 인물이 왕산임은 부인하기 어렵다. 여러 후손들이 타국에서 고생했지만, 지역사회에 남은 일가친척들도 있고 그중에는 기초의원을 역임한 인사도 있다. 후손 없이 요절한 구미시 진미동 출신 이내성 의사 같은 경우와는 대비된다. 

산동면 공원에 또 하나의 기념공간을 조성하는 건 중복투자이며 역사적 조명의 편중이라는 지적도 있을 수 있다. 

구미 지역에는 여러 독립운동가들이 있다. 금오산 저수지에 동상이 설치된 박희광, 영화감독으로서 항일에 나선 김유영, 폭탄투척의거의 주인공들인 이내성과 장진홍, 박정희의 형으로도 알려진 진보적 지역운동가 박상희, 허위 일가의 일원인 중국공산당 혁명가 허형식 등이 그들이다. 앞으로 이들을 기리는 시설을 조성한다면 입지로는 그들의 고향 동네가 유력할 것이다.

팩트4. 구미시장은 왕산 대신 자기 조상을 기리려한 것 아니다

조선일보는 장세용 시장이 '남의 가문 독립운동가 지우기'에 나섰다고 표현했다. 다음은 그 기사다. 

장 시장의 '남의 가문 독립운동가 지우기'는 시장 취임 열흘 만인 지난해 7월11일 시작됐다. 장 시장은 한국수자원공사 구미사업단을 찾아 "인물 기념사업은 태생지 중심으로 해야 한다"고 운을 뗐다. 이어 "왕산광장을 조성하고 있는 강동(낙동강을 중심으로 한 구미 동쪽으로 산동면이 포함)은 독립운동가 장진홍(독립운동서훈 3등급) 선생이 태어난 곳이라 장진홍 선생 기념사업을 해야 한다"고 했다. 장진홍 선생은 장 시장과 같은 인동 장씨 가문이다. 조선은행 대구지점에 폭탄을 던져 사형을 선고받았으나 집행 전 자결했다.
시장 취임 열흘 만인 지난해 7월11일 시작됐다. 장 시장은 한국수자원공사 구미사업단을 찾아 "인물 기념사업은 태생지 중심으로 해야 한다"고 운을 뗐다. 이어 "왕산광장을 조성하고 있는 강동(낙동강을 중심으로 한 구미 동쪽으로 산동면이 포함)은 독립운동가 장진홍(독립운동서훈 3등급) 선생이 태어난 곳이라 장진홍 선생 기념사업을 해야 한다"고 했다. 장진홍 선생은 장 시장과 같은 인동 장씨 가문이다. 조선은행 대구지점에 폭탄을 던져 사형을 선고받았으나 집행 전 자결했다. 당시 장 시장의 시도는 "행정의 일관성에 문제가 있다"는 수자원공사 측의 반대로 성사되지 못했다. 

'남의 가문'을 밀어내고 '자기 가문'을 기리려 했다는 요지로 읽힐 위험이 있는 기사다. 그러나  장진홍 의사의 기념시설을 산동면에 조성하는 건, 관계기관이 행정 일관성을 들어 반대했을 뿐, 그 자체로 잘못된 행정인 것은 아니다. 장 의사의 고향은 산동면 인근 양포동이다. 그밖의 구미 동부 지역 독립운동가들을 한꺼번에 모아서 기린다 해도 산동면 지역은 어느 정도 적정성을 갖고 있다. 

장진홍, 장세용 두 사람이 같은 가문임을 상기시키는 기사 문장도 악의적이다. '인동 장씨'의 인동은 옛날의 칠곡군 인동면, 현재 구미 지역의 인동동, 진미동, 양포동을 가리킨다. 구미 지역에는 인동 장씨가 수두룩하다. 

팩트5. 장세용 시장의 조부가 독립운동가인 것은 사실

장세용 시장이 왕산 후손과 논쟁을 벌이는 과정에서 언급된 '산소도 없는 우리 할배'는 장홍상, 일명 장적우이다. 장 시장의 조부는 일제강점기애 조선사회단체중앙협의회, 신간회 대구지회, 신우동맹, 혁우동맹, 조선청년동맹 경북연맹에 참가했다. 

해방 후에는 조선공산당과 민주주의민족전선에서 활약했다. 좌익계열 인사로 명확히 분류될 수 있다. 구미 지역 사회 일각에서는 장 시장이 취임 직후부터 박정희기념사업과 각을 세우자 조부의 이력을 들먹이며 장 시장에게 색깔론 시비를 거는 분위기도 있었다. 

장세용 구미시장과 지역사회의 과제는?

이번 사안은 독립운동가기념사업에 대한 찬반 구도와는 관련이 없다. "새로 지어지는 구미 지역 시설에 구미 지역 출신 가운데 가장 유명한 독립운동가와 그 일가를 기념하는 공간을 조성하자"는 논리와 "구미에는 여러 독립운동가가 있고, 독립운동가 기념시설은 가급적 그분의 고향이나 그 인근 또는 관련 지역에 짓자"는 논리가 충돌한 것일 따름이다. 

다만 이미 계획된 사업을 바꿨다는 점은 이 사안에 중대한 지점이다. 이는 특히 고령의 왕산 후손들에게 깊은 실망을 안겼다. 구미시는 꾸준한 설명과 설득을 거쳤는지 돌아볼 일이다. '산동면과 왕산의 관련성 부족'이라는 기준에 자신감이 있다면 널리 공론화했어야 했고, 그러지 못했다면 앞으로 보완해야 한다. 또 장세용 시장은 자신의 소신과 철학, 이력만을 앞세우지 않고 독립운동기념사업을 하나둘씩 실현시켜야 한다. 

왕산광장 조성을 찬성해온 시민단체는 이미 임은동에 있는 기념시설을 놔두고 산동면에 조성하는 이유, 다른 운동가보다 왕산 일가가 기념에서 여전히 우선순위인 이유를 설명해야 한다. 그리고 다른 주민 여론도 존중해야 한다. 필자는 과거 구미시가 상모동에 신설한 청소년도서관에 박정희•육영수 부부의 이름을 따서 '정수도서관'이라는 명칭을 붙였다가 인근 주민들의 원성을 사는 풍경을 목도한 바 있다. 왕산의 이름을 따는 것이 일부 인근 주민에게는 충분히 억지스럽게 느껴질 수 있음을 인정해야 한다. 

상기했듯 구미 지역사회에는 여러 독립운동가들이 있었다. 이들을 각기 그리고 다같이, 어떻게 기념하는가를 두고 민관이 머리를 맞댈 때다. 방식, 공간 배치, 예산 배분의 우선순위 등등을 두고 치열한 고민과 세심한 조율이 필요하다. 다른 지역에서도 참고할 모범사례를 만들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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