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팩트체크] 외국어 간판과 메뉴판은 불법?

  • 기자명 이나라 기자
  • 기사승인 2023.05.08 17: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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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SNS에는 잇따라 인기 식당, 카페 등 이른바 ‘핫플레이스’를 이용하다 겪은 불편함을 호소하는 글이 올라와 관심을 받았다. 일부 가게들이 간판이나 메뉴판을 영어나 프랑스어 등 외국어로만 표기하는 경우가 많아, 이용에 어려움을 겪었다는 것이다. 지난해에는 한 카페에서 미숫가루를 ‘MSGR’로 표기해 판매한 사실이 알려져 인터넷 커뮤니티를 중심으로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이런 상황에서 “가게의 간판이나 메뉴판을 영어 등 외국어로만 표기하는 것은 불법이다”라는 내용의 SNS 게시물이 100만 조회수를 넘기며 관심을 받았다.

 

트위터 갈무리
트위터 갈무리

해당 글은 네이버 포스트 ‘법률N미디어’에 올라온 기사를 근거로 제시했는데, 기사는 옥외광고물법에 따라 “원칙적으로 한글맞춤법이나 국어의 로마자표기법 및 외래어표기법 등에 맞춰 한글로 표시해야”하며, “외국어로 표시할 경우에는 한글과 같이 적어야” 한다고 설명했다. 이어 “메뉴판 역시 한글 표기가 없으면 불법”이라며 “이를 위반한 자에게는 500만 원 이하의 과태료가 부과된다”고 덧붙였다.

간판이나 메뉴판을 외국어로만 표기하는 게 정말로 법적 문제가 있는지 <뉴스톱>이 팩트체크 했다.


 

◆외국어 ‘간판’은 불법… 실효성은 떨어져

우선, 가게의 간판을 외국어로만 표기하는 것은 불법이다. ‘옥외광고물 등 관리법 시행령’ 제12조 2항은 “광고물의 문자는 원칙적으로 한글맞춤법, 국어의 로마자표기법 및 외래어표기법 등에 맞추어 한글로 표시해야 하며, 외국문자로 표시할 경우에는 특별한 사유가 없으면 한글과 병기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국가법령정보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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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로 법원은 2004년, 로마자로만 상호를 표시한 국민은행(KB)과 KT가 옥외광고물법을 위반했다는 취지의 판단을 내린 바 있다. 앞선 2002년, 한글학회 등은 “국민은행과 KT가 영어로 된 CI만 강조하고 있고 'Think Star', 'Let's KT' 등의 영어 슬로건을 광고의 기본 전력으로 삼고 있어 아픔과 분노를 느낀다”며 지난 소송을 냈었다.

법원은 "국민은행 등은 외국 문자로 기재하는 경우 한글을 병기해야 한다는 옥외광고물법 시행령을 위반했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국민은행 등의 옥외광고물 중 모두 외국 문자만 기재했거나 외국문자에 비해 한글이 인식될 가능성이 현저하게 낮게 기재된 것은 위법한 광고물"이라고 지적하기도 했다.

 

(출처=픽사베이)
(출처=픽사베이)

문제는 해당 법률의 실효성이 떨어진다는 점이다.

우선, 신고 대상이 한정적이다. 옥외광고물 시행령 제5조에 따르면, 4층 이하에 설치되는 크기 5㎡ 이하 간판들은 허가 및 신고 대상이 아니다. 보통 식당이나 카페가 4층 이하에 위치하고, 간판 크기 역시 5㎡를 넘는 경우가 많지 않기 때문에 대부분 규제에서 벗어나게 되는 것이다.

신고 대상에 해당하더라도 실제 처벌을 받는 사례는 거의 없다. 해당 법은 5층 이상의 건물에 5㎡ 넘는 간판을 외국어로만 표기할 경우, 500만 원 이하의 과태료를 부과할 수 있다고 명시하고 있다. 그러나 지자체가 나서서 전수조사하기도 어려울뿐더러, 수사와 기소가 진행된다고 하더라도 벌칙으로 이어질 가능성은 낮다는 게 대부분 전문가의 의견이다.

또한 법률은 “특별한 사유가 없으면 한글과 병기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는데, 애초에 상호를 외국어로 등록한 경우라면 ‘특별한 사유’로 인정받아 해당 규제에서 벗어날 수 있다. 이른바 ‘핫플레이스’로 불리는 대부분의 식당과 카페가 외국어 상호인 점을 고려하면, 실제로 처벌 대상이 되는 경우는 극히 드문 것이다.

 

◆외국어 ‘메뉴판’은 규제 대상 아냐

그렇다면 ‘메뉴판’에도 해당 규제를 적용할 수 있을까. 옥외광고물법에서 규정하는 ‘광고물’은 “공중에게 항상 또는 일정 기간 계속 노출되어 공중이 자유로이 통행하는 장소에서 볼 수 있는 것”으로, 간판·디지털광고물·입간판·현수막·벽보·전단 등이 해당한다.

 

국가법령정보센터
국가법령정보센터

 

행정안전부 생활공간정책과 관계자는 <뉴스톱>과의 통화에서 “옥외광고물은 불특정 다수가 볼 수 있어야 하는데, 메뉴판은 식당이나 카페를 이용하는 사람들만 볼 수 있기 때문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즉, 메뉴판은 ‘옥외광고물’에 해당하지 않기 때문에 ‘의무 한글 표기’ 대상이 아닌 것이다. 다만 일부 가게 밖에 메뉴판을 두는 경우라면 옥외광고물로 볼 여지가 있다는 게 행안부 관계자의 설명이다.

 

◆절반이 ‘외국어 간판’... “취약소비자 배려 필요”

2019년 한글문화연대가 12개 자치구 7252개 간판을 대상으로 한글표기 실태를 조사한 결과, 외국어 간판은 1704개로 23.5%를 차지했다. 외국어와 한글을 병기한 간판은 1102개(15.2%)였다. 절반 가까이 되는 간판이 외국어로 표기돼 있다는 것이다.

인하대 소비자학과 이은희 교수는 <뉴스톱>과의 통화에서 “개인영업장인만큼, 사업장 분위기나 주 고객층의 특성에 따라 업주가 외국어 표기를 사용하는 것은 존중돼야 할 자유”라면서도, “모든 소비자가 직관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 게 가장 좋은 표기 방식이라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최근 노인들이 키오스크 이용에 어려움을 겪는 사회적 문제도 있는 만큼, 노인이나 아동 등 취약소비자가 경제활동을 하는 데 있어서 언어나 기술 문제로 소외당하지 않도록 사업장에서 배려하는 자세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의안정보시스템
의안정보시스템

 

이처럼 무분별한 외국어 사용을 막기 위해 지난 2월, 국회 문화체육관광위원회 국민의힘 김예지 의원은 문화유산 주변의 정체불명의 외국어 간판을 규제하기 위한 '옥외광고물법 개정법률안'을 대표 발의하기도 했다. 문화재 보호구역과 역사문화환경 보존지역에 설치하는 간판 등을 외국어로 표시할 경우에는 지자체장의 허가를 받도록 해 문화재와 역사문화환경을 보호하자는 게 골자다.

김 의원은 “작년 문화재청 국정감사에서도 지적한 바와 같이 유네스코 세계 문화유산인 수원 화성과 서울의 4대 궁 주변에 일본어와 영어 등 정체불명의 외국어 간판이 난립하고 있다”며 “우리 유산의 역사적, 문화적 가치가 정체불명의 광고물로 훼손되지 않도록 개정안의 국회 통과에 최선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정리하자면, 최근 논란이 된 “가게의 간판이나 메뉴판을 영어 등 외국어로만 표기하는 것은 불법이다”라는 주장은 ‘절반의 진실’이다. 옥외광고물법은 5층 이상의 건물에 설치된 5㎡가 넘는 크기의 간판은 “한글로 표기하거나 한글을 병기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지만, 메뉴판의 경우 해당 법의 ‘광고물’에 포함되지 않아 법 적용 대상이 아니기 때문이다. 다만, 한글을 보호하고 소비자들의 접근성을 높이기 위해 간판이나 메뉴판 등에서의 한글 표기를 확대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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