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미사일, 미국은 '압박', 일본은 '거래', 한국은 '패싱'

  • 기자명 김준일 기자
  • 기사승인 2019.10.03 09: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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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이 2일 강원도 원산 인근 해상에서 동쪽으로 중거리 탄도미사일 1발을 발사했습니다. 1일 북미실무협상을 발표한 다음날입니다. 전문가들은 신형 '북극성' 계열의 SLBM이라 불리는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을 쏜 것으로 파악하고 있습니다. 북한은 지난 5월 이후 11차례 미사일과 방사포를 발사했습니다. SLBM은 2016년 8월 북극성 1호 발사 이후 3년여 만에 처음입니다. 2017년 5월 문재인 정부 출범 직후 북한은 북극성 2형을 지상에서 발사한 바 있습니다. <북미 실무협상 직전 미사일 쏜 북한> 이 뉴스의 행간을 살펴보겠습니다.

 

1. 미국을 압박했다

이번 중거리 탄도미사일 발사가 미국 압박용이라는 건 이견이 없습니다. 북미실무협상이 열린다는 사실은 미국이 아닌 북한이 먼저 발표했습니다. 그리고 발표 다음날 미사일을 쐈습니다. 그것도 미국이 가장 신경쓰는 SLBM입니다. 북한이 올해 들어 발사한 미사일은 총 11개인데 대부분 미국 본토에는 닿을 수 없는 단거리/중거리 미사일이었습니다. 하지만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은 미국에게 실질적 위협이 되는 발사체입니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지난 7월 23일 새로 건조된 잠수함을 시찰한 바 있습니다. 이 잠수함에는 SLBM을 최소 3발 탑재할 수 있는 것으로 관측됐습니다.

이번 발사 관련, 미국이 상당한 인내심을 보여줬습니다. 미국 국무부 대변인은 “북한은 도발을 자제하고 실질적이고 지속적인 비핵화 협상에 참여할 것을 촉구한다”고 밝혔습니다. 공식 입장이 나오기 전 미국 행정부 고위 관계자는 “상황을 주시하고 동맹국과 상의하고 있다”는 원론적 입장을 낸 바 있습니다. 미국의 이런 신중함은 역설적으로 이번 북미협상의 중요성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지금 탄핵 위기에 처한 트럼프 미국 대통령으로서는 북미대화를 통해 이슈전환을 해야할 필요가 있습니다. 국제무대에서의 성과도 보여줘야 하는 상황입니다. 지금 아쉬운 것은 미국이라는 것을 인지한 북한이 딱 판이 깨지지 않을 만큼의 도발을 감행한 것입니다. 블룸버그통신은 북한이 이번 발사를 통해 트럼프 대통령의 인내심을 시험하고 있다고 보도했습니다.

 

2. 일본을 의식했다

북한의 미사일은 1년 11개월만에 일본의 배타적경제수역(EEZ)에 떨어졌습니다. 일본 입장에선 코앞에 떨어진 것입니다. 일본은 난리가 났습니다. 아베 총리는 북한이 유엔결의안을 위반했다며 강력하게 비난했습니다. 그런데 한국의 국방부장관에 해당하는 스가 요시히데 관방장관도 북한을 비난했지만 '북일정상회담 개최'라는 목표에는 변함이 없다고 밝혔습니다.

일본의 이런 유화적인 태도는 최근 국제정세 변화와 관련이 있습니다. 일본 입장에서는 한국과의 갈등으로 한일군사정보보호협정이 종료예정인 상황에서 북한과의 관계를 개선할 필요가 있습니다. 북미협상이 재개되는 상황에서 소위 '왕따' 당하지 않기 위해서 적극적으로 한반도 문제에 개입하려 노력중입니다. 북한 역시 최근 일본과 대화하려는 노력을 하고 있습니다. 일본이 '돈줄'이라는 인식때문인데요. 얼마전 북한이 일본에 평양-원산구간에 신칸센을 설치해달라는 요청을 했다는 뉴스가 나왔습니다. 이번 미사일 발사는 북일정상회담 비용이 만만치 않을 것임을 북한이 일본에게 예고한 겁니다.

 

3. 한국을 패싱했다

올해 들어 11번째 미사일입니다. 그동안 북한 미사일 발사가 한국 정부에 대한 불만 표출이었음은 자명합니다. 북한 입장에서는 미국의 눈치를 보며 개성공단 재개 등 경제협력를 실시하지 않는 한국에 대해 상당한 불만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번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은 미국에게 보여주기 위한 발사체입니다. 북미협상테이블이 깔렸고 한국은 상대적으로 덜 중요하게 됐습니다.

북한의 최근 행보에서 두 가지를 읽을 수 있습니다. 첫 번째는 문재인 정부는 북한이 어떤 도발을 하더라도 인내심을 가지고 기다릴 것이란 걸 알고 있다는 겁니다.  이번 유엔총회연설에서 문재인 대통령은 9.19남북군사합의 이후 한차례도 위반한 일이 없다고 말을 한 바 있습니다. 미사일 10차례 발사를 합의 위반이 아니라고 인식한 것에 대한 논란이 있었습니다.

두 번째는 한국은 변수가 아니라 상수니, 다른 국가들과의 관계를 돈독히 하자는 전략, 즉 한국 패싱이 보이기 시작한다는 겁니다. 북한은 십수년 이래 중국과 가장 가까운 사이가 됐고, 일본과도 '딜'을 하고 있고, 미국과는 협상테이블에 앉았습니다. 그렇다고 북한이 괘씸하다고 한국이 먼저 판을 깰 수도 없습니다. 북한의 한국 패싱 움직임은 우리 정부에 또 하나의 고민을 안겨주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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