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든 원전이든 끝내 파국... 전환기적 현실을 직시한 영화”

  • 기자명 홍상현
  • 기사승인 2019.10.15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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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wo monks were arguing about a flag. One said: “The flag is moving”; the other said: “The wind is moving". The sixth patriarch happened to be passing by. He told them: “Not the wind, not the flag; It’s the mind that moves.”
두 승려가 깃발에 대해 논쟁일 벌이고 있었다. 하나가 말했다. “깃발이 움직이고 있어”; 다른 하나가 말했다. “바람이 움직이고 있다니까.”마침 두 사람 앞을 지나던 육조(六祖)가 말했다. “바람도, 깃발도 아닐세. 움직이는 것은 마음이라네.”

제미나르(Seminar) 멤버인 호주인 유학생의 노트에 적혀있던 짧은 문답에 시선이 멈추었다. 아니, ‘시선을 붙들렸다’는 표현이 적절하려나.

“이거... 어디서 찾은 거야?”

“아, 컴퓨터 프로그래밍 관련 책에서요.”

“의외인데? 원래의 출전에 대해서는 알고 있어?”

“중국 속담(a Chinese proverb)...?”

“혜능선사의 말씀이지. 선불교의 고승.”

“와우, 대단하군요!”

만면에 미소가 번지는 그와 목례를 나누고 밖으로 향했다. 카페테리아까지 이어진 길에 청명한 저녁바람이 불던 것을 떠올리면, 아마 이맘때쯤이었을 것이다. 수리통계학 데이터에 파묻혀 지냈다. 그도 그럴 것이, 지난 3세기에 동안 20개국을 넘는 나라들이 쌓아온 경제학적, 역사적 내용들이었으니까. ‘돈으로 버는 돈’이 ‘일해서 버는 돈’의 우위에 있는 현실, 경제적 불평등. 정책적 대안으로서의 글로벌 자본세. 파리경제대 토마 피케티와의 공동프로젝트를 진행하던 연구실에서 하루 24시간이 짧게 느껴지는 매일을 보내던 필자에게, ‘마음의 문제’라는 화두가 던져지는 순간은 이처럼 갑작스레 찾아왔다. 물론 그로 인해 도를 깨달은 것도, 출가를 하거나 불교 신앙을 갖게 된 것도 아니다. 다만, 광야로 걸어 나왔을 뿐이다. 늦가을이면 황금빛으로 물들어가던 은행나무숲은 아름다웠지만 필자를 둘러싼 성벽이 되어주기를 바라진 않았으니까.

대략 150년 전까지 영주들의 매사냥(放鷹)이 시작되는 기점이었다던 교정의 가을을 떠올린 것은, 자연과 조화로운 음식에 대한 성찰을 통해 선(禪)과 진리에 관한 물음을 던지는 영화 <전좌>로 DMZ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를 찾은 토미타 카츠야 감독을 만나면서였다. 2011년 <사우다지>로 로카르노 영화제 독립비평가연맹특별상과 낭뜨 3대륙 영화제 최우수작품상을, 2016년 <방콕 나이트>로 다시 로카르노 영화제 청년심사위원상을 수상한 토미타 감독은, 신작 <전좌>로 지난 5월 칸영화제 비평가주간에 초청되었다.

파리의 에이전트를 거치는 까다로운 연락절차가 무색하리만큼 소탈한 모습으로 약속장소인 DMZ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 사무국에 ‘홀로’ 나타난 그는, 역시나 “만들고 싶은 영화를 만들어, 마음대로 상영한다”는 모토를 내건 창작집단 '공족(空族)'의 리더 다운 모습이었다.

2011년 <사우다지>로 로카르노 영화제 독립비평가연맹특별상과 낭뜨 3대륙 영화제 최우수작품상을, 2016년 <방콕 나이트>로 다시 로카르노 영화제 청년심사위원상을 수상한 토미타 카츠야 감독(맨 앞)은, 올해 내놓은 신작 <전좌>로 지난 5월 칸영화제 비평가주간에 초청되었다. 출전: La Semaine de la Critique of Festival de Cannes

홍상현:

DMZ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 외에도 전주국제영화제부산국제영화제에 초청되는 등, 한국에서 개최되는 국제영화제에서 주목받아 왔다.

토미타 카츠야:

“그저 감사할 따름입니다.”(고개를 숙이며)

처음 한국을 찾은 계기는 메가박스 일본영화제에 <국도 20호선>이 초청되면서다. 이후 <사우다지>로 전주국제영화제에 갔는데 역사가 숨 쉬는 고풍스런 풍경이 인상적이었다. 당시 만난 친구들과 지금도 연락하며 지낸다. 최근작 <방콕 나이트>가 부산국제영화제에 초청되었지만 직접 와보지는 못했고. 자비를 들여서라도 좀 더 자주 한국에 오고 싶다고 생각하던 참이다.

 

홍상현:

그리고 보니 <한여름의 판타지아>의 장건재 감독과도 전주에서 만나셨다고 들었다. (웃음) 그밖에 한국영화의 엄청난 팬이시기도 한데.

토미타 카츠야:

<살인의 추억>이나 <친절한 금자씨> 등 일본에서 대규모로 개봉한 영화는 거의 다 봤다. 하지만 그걸로 부족하다는 느낌이다. 좀 더 많은 작품을 접하며 배우고 싶다. 태국, 라오스 등 동남아시아 나라들은 좀 다녀 본 편인데 정작 가장 가까운 나라인 한국에 대해서는 모르는 게 많다. 영화제 초청이 아니라 저 개인적으로도 더 노력해야겠다.

 

홍상현:

세계, 그중에서도 아시아에 주목하며 창작의 거점으로 삼고 계신다.

토미타 카츠야:

제가 태어난 섬나라 일본은 역사적으로 늘 구미(the Occident)를 짝사랑해 왔다. 아시아의 일원임에도 불구하고 자기성찰이 없었던 거다. 현재도 정치적으로 한일관계가 몹시 악화되어 있지 않나. 일본은 일찍이 전쟁을 일으켜 아시아 주변국을 침략한 역사가 있다. 그런 역사를 알면 알수록 지금의 일본 정부가 과거와 같은 잘못을 되풀이하지 않을까하는 불안감이 든다. 정치인들을 보면 특히 심각하고. 영화를 만드는 사람들은 일본이 같은 잘못을 되풀이하지 않도록 아시아의 이웃들에게 먼저 다가가야 할 필요가 있다. 그런 맥락에서 아시아에 주목해왔다. 부산에서 초청받은 <방콕 나이트>도 같은 선상에 있는 작품이고.

“일본은 일찍이 전쟁을 일으켜 아시아 주변국을 침략한 역사가 있다. 그런 역사를 알면 알수록 지금의 일본 정부가 과거와 같은 잘못을 되풀이하지 않을까하는 불안감이 든다. 정치인들을 보면 특히 심각하고. 영화를 만드는 사람들은 일본이 같은 잘못을 되풀이하지 않도록 아시아의 이웃들에게 먼저 다가가야 할 필요가 있다. ”토미타 카츠야 감독의 어조는 단호했다. 출전: La Semaine de la Critique of Festival de Cannes

홍상현:

<사우다지>나 <방콕 나이트>는 말씀하신 부분 외에도 ‘평화롭고 아름다운 산 어귀 마을’이라는, 당신의 고향, 야마나시 현에 덧씌워진 사회적 이미지(social image)를 조소하며, 끝내 글로벌 자본주의의 먹이가 될 수밖에 없는 아시아 젊은이들의 분노를 보여준다. 동남아시아인 주인공이 나오는 에미넴(Eminem. ※ 토미타 감독과 동갑내기이기도 하다)의 뮤직비디오 같은 느낌이랄까. 하지만 <전좌>의 경우, 분위기가 이전 작품들과 다르다.

토미타 카츠야:

<사우다지>를 발표한 해인 2011년 일어난 동일본대지진, 후쿠시마 제1원전 사고가 하나의 전환점이 되었다. 열도의 동쪽이 전멸해 더 이상 사람이 살 수 없게 되어버릴 수도 있다는 공포를 맛본 건 실로 전쟁에 비견될만한 기억이었으니까. <사우다지>도 이러한 현실을 은유하는 작품이기는 하다. ‘예측불허의 커다란 변화와 인간’이라는 맥락에서, 오늘날 일본 정치의 상황 또한 이를 은폐하려는 반동이 힘을 얻고 있는 ‘혼란 상태(hysterical state)’아닐까 하고.

한편, 불교계의 분들을 접하고 <전좌>를 구상하면서 경제적으로 풍요로운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의 정신적 빈곤에 대해 주목하게 되었다. 오늘을 살아가는 적지 않은 사람들은 모든 갈등을 재화만으로 해결할 수 있다고 생각해왔다. 정작 마음의 문제는 아무래도 상관없다는 식으로 방치하면서. 그러다 끝내 파국을 맞지 않았나. 정치든, 원전이든.

조동종 스님들 또한 이러한 변화를 감지하고 계시더라. 대부분 무신론자에 가깝던 절대 다수의 사람들 사이에서 심리적으로 의지할 무언가를 찾아보려는 움직임이 일어나기 시작했으니까. 이를 보다 가속화 시킨 요인이, 더는 ‘경제적 풍요’를 내세울 수도 없게 되어버린 현실이다. 현재 빈곤과 격차가 나날이 확산되고 있는 일본에서는 아이들 여섯 명 중 한 명이 빈곤을 경험한다. 그럼에도 이를 그저 감추려고만 하니 문제가 불거지지. 이런 전환기적 현실을 직시하며 이야기를 전개한다는 점에서, <전좌>는 제게 특별한 의미가 있다.

 

홍상현:

같은 절에서 수련했던 주인공인 지현(智賢), 융행(隆行) 두 사형제(師兄弟)의 운명도 동일본대지진과 후쿠시마 제1원전 사고를 기점으로 갈린다. ‘속세의 연(緣)’이라지만 융행 스님은 지진해일에 가족을 모두 잃고 상처에 괴로워하지 않나. 물론 심한 견과류 알레르기 때문에 과자만 잘못 먹어도 목숨에 위협을 받는 아이 때문에 고뇌하는 지현 스님도 크게 나은 상황이라고는 할 수 없지만.

토미타 카츠야:

후쿠시마에서 일어난 일을 ‘외재적 관점’에서 바라본다면 그 주체가 누구라도 큰 차이가 없다. 하지만 지역사회 안으로 들어가 보면 똑같은 후쿠시마에 살더라도 후쿠시마 제1원전이 있는 해안지역 주민들과 내륙지역 주민들의 원전에 대한 감정이 다르다.

원전이 입지에 있던 해안지역 주민들은 적지 않은 수가 관련업에 종사해 생계를 꾸리고 있었던 까닭에 사고로 입은 피해를 보상받을 수 있다. 하지만 내륙지역 주민들에게는 이런 기준이 적용되지 않는다. 후쿠시마도 ‘하나’가 아니라는 이야기다. 그래서 복잡한 감정이 요동친다. 실제로 보상을 받은 이들과 그렇지 못한 이들 사이에 다툼이 벌어진 적도 있다. 이런 이야기를 외부의 우리는 전혀 알지 못한다. 저 자신 사고 발생 직후에 후쿠시마 제1원전을 직접 방문해보고 나서야 상황을 피부로 느낄 수 있었으니까.

실제 조종동 승려로 <전좌>에 출연한 지현(智賢, 오른쪽), 융행(隆行, 왼쪽) 두 스님. 같은 절에서 수련했던 두 사형제의 운명은 동일본대지진과 후쿠시마 제1원전 사고를 기점으로 갈린다. 제공: DMZ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

 

홍상현:

이른바 ‘내재적 관점’을 강조하시는 듯하다.

토미타 카츠야:

예리하시다. (웃음)

‘내재적 관점’은 제 필모그래피에서 대단히 중요하다. 전작인 <방콕 나이트>도 바로 그 때문에 촬영을 거의 태국에서 진행했다. 태국도 후쿠시마의 경우와 다르지 않다. 오직 하나의 상(image)만을 가지고 있는 우리의 생각과 다르게, 수도인 방콕 주변 사람들과 나머지 지역의 사람들은 문화도, 삶을 영위해나가는 방식도 사뭇 다르다.

 

홍상현:

드라마와 다큐멘터리를 넘나들며 ‘장르’에 대한 관객의 선입견을 불식시킨다는 점도 주목할 만하다.

토미타 카츠야:

영화를 제작하면서 불교에 대해 좀 더 깊게 파고들어가야 할 필요가 있었다. 그래서 찾아간 사람이 청산 큰스님이다. 제자인 지현 스님이 큰스님을 만나 고민을 토로하는 장면도 이때 촬영했다. ‘매료된다’는 말이 의미를 다시금 생각하게 되는 계기였다. 한마디로 ‘세상에 이런 분이 살고 계시다니, 아직 희망을 포기하기에는 이르구나’ 싶더라. 불교적 세계관과 불교 자체의 도량을 느꼈다.

해서, 이를 표현하려면 드라마와 다큐멘터리, 프로페셔널과 아마추어, 무대 앞뒤의 사람들을 포괄하는 게 좋겠다고 판단했다. 사람들은 여러 가지를 생각하지만 결국 한 가지에 초점을 맞추기 마련이니까. 그래서 혼란스러워질 수도 있겠지만 그건 또 그것대로 좋지 않겠나.

올해 86세인 청산 큰스님은 5세 때 비구승으로 출가한 조동종의 스승. 15세 때 도를 깨닫고 평생토록 종교학 연구에 공헌해 것으로도 유명한 그는 제자 지현과의 문답에서 마르크스와 현대사상의 계보를 아우르는 심오한 이야기를 생활인의 언어로 풀어낸다. 제공: DMZ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

홍상현:

역시! (웃음) 올해 86세로 5세 때 비구승(比丘僧)으로 출가한 조동종의 스승, 청산(青山) 큰스님은 15세 때 도를 깨닫고 평생토록 종교학 연구에 공헌해 것으로도 유명하다. 그는 제자 지현과의 문답에서 마르크스와 현대사상의 계보를 아우르는 심오한 이야기를 생활인의 언어로 풀어낸다.

토미타 카츠야:

큰 스님과의 대담은 일부밖에 나오지 않지만, 실제로는 2시간 반이나 진행되었다. 그 부분만 따로 떼어내 편집하더라도 충분히 한 편의 작품이 만들어질 수 있을 정도로 내용도 훌륭하고.

영화에 쓰인 부분은 만물이 서로 연결되어 있다고 설명하시는 부분이다. 사찰음식은 동물성 재료를 취하지 않는다지만, 피가 흐르는 것뿐만 아니라 푸성귀 한 장, 쌀알 한 톨도 같은 무게를 지니는 생명이다. 단순히 육식을 하지 않는 자체에 연연할 게 아니라는 말씀이다. 이와 관련해서 드는 예시가 몽골의 경우다. 기후적으로 농사를 짓기 힘들어 대부분 식자재를 수입에 의존해야 하는 몽골 사람들에게 무조건 고기를 먹지 말라고 강요하는 건 무의미하다. 그저 고기를 먹지 않는 사람이 훌륭하다면서 상대를 재단할 생각이라면, 차라리 안 하느니만 못하니까. 그밖에, 영화에서는 다루지 않았지만 우리가 살아있지 않다고 생각하는 사물도 생명체와 다르지 않다는 생각을 가져야 한다고 강조하신 점도 인상 깊었다.

 

홍상현:

<전좌>는 조형미가 매우 돋보이는 작품이기도 하다. ‘표현’의 측면에서도 남다른 과정을 거쳤을 것 같은데.

토미타 카츠야:

방금 말씀드린 대담을 촬영하는데 ‘이거 되겠다’는 확신이 들더라.

다만, 두 사제(師弟)의 문답을 영화의 중심에 두되, 지현 스님이나 저와 같은 세대의 승려들이 어떤 생각을 하며 살고 있는지도 보여주고 싶었다. 그들도 우리도 다 같은 인간이며 애초에 성인군자로 태어난 게 아니니까. 모든 과정은 미리 어떤 큰 그림을 그려놓은 게 아니라, 촬영이 계속되면서 자연스레 형태를 갖추게 되었다. 모든 것을 있는 그대로 작품에 받아들이는 한편, 부분에 집착하기보다 전체적인 맥락에서 불교를 바라보는 관점을 최대한 자연스럽게 유지했다. 아울러 한 컷 한 컷의 앵글을 어떻게 잡아낼지 촬영감독과 수없이 협의했고.

 

조형미가 무척 뛰어난 <전좌>의 시각화는 처음부터 어떤 큰 그림을 그려놓지 않고 촬영이 계속되면서 자연스레 형태를 갖추게 된 것이라고 한다. 모든 것을 있는 그대로 작품에 받아들이는 한편, 부분에 집착하기보다 전체적인 맥락에서의 관점을 유지한 것이다. 제공: DMZ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

홍상현:

<전좌>의 중심에는 단순히 ‘종교’ 또는 ‘믿음’이 아니라, ‘세계관(weltanschauung)’으로서의 불교가 있다.

토미타 카츠야:

그렇다. 무척 간단한 명제인데, 우리는 결국 자연을 무시하고 살아갈 수 없다.

동일본대지진 당시 지진해일이나 후쿠시마 제1원전 사고를 봐도 알 수 있잖은가. 영화의 제목으로 쓰인 ‘전좌’는 원래 공양간에서 식사를 준비하는 스님을 가리키는 말이다. 먹을 것은 자연으로부터 온다. 하지만 이것이 하나의 상품으로 포장돼 나와 있는 상태에서 구입하게 되니 우리는 종종 이 사실을 간과한다. 물론 ‘삶의 근거’로써의 ‘자연’에 대해 소홀히 생각하더라도 당장 죽지는 않는다. 하지만 이 사실을 망각하면 제 아무리 거창한 말잔치를 벌이더라도 설득력을 잃는다.

종교란 삶 속에서 쉽게 접할 수 있으며, 때로는 사람들을 갈라놓기도 한다. 그렇지만 이게 다가 아니다. 중요한 건 세계를 바라보고, 파악하는 일이니까. 그렇게 얻어낸 깨달음을 통해 행동도, 사고도 바뀔 수 있다고 생각한다.

 

홍상현:

아울러, ‘먹는다’는 것의 의미에 대해서도 깊이 성찰한다.

토미타 카츠야:

우리의 육신은 음식을 통해 만들어진다. ‘먹는다’는 건 그 바탕에 자리한 가장 기본적인 행위다. 그 ‘기본’으로 돌아가자는 차원에서 스님들이 몸담고 계신 조동종(曹洞宗)에서는 ‘식사’를 중시한다. 저 또한 그들로부터 많은 것을 배웠다.

 

홍상현:

‘육미(六味)’, 즉, 여섯 가지 맛에 따라 시퀀스를 구분한 점도 인상적이다.

토미타 카츠야:

식사에 대한 조동종의 가르침이 구분하는 여섯 가지 맛은 짠맛, 신맛, 단맛, 매운맛, 담담한 맛 등이다. 이 여섯 가지를 어떻게 조합하느냐에 따라 감각이 달라진다. 불교의 철학은 매우 논리적이어서, 하나하나의 현상을 놓치지 않으며 원인을 찾아낸다.

인간에 대해 파악할 때, 일단 자기와 자아가 애초에 존재하지 않는 것으로 본다. 눈은 색과 형상을, 귀는 소리를, 코는 냄새를, 혀는 맛을, 촉각, 마음은 의식을 파악하는 기관이다. 이 모두는 서로 독립적인 한편, 유기적으로 이어져 있다. 이러한 불교적 사고체계를 작품 속에서 어떻게 그려낼까 고민하던 끝에, 영화 속 ‘하나의 시간’을 ‘육미’에 따라 구분하기로 했다. OST(Original Soundtrack)도 먼저 여섯 개의 장으로 나뉘었다가 나중에 하나의 하모니로 합쳐진다.

동일본대지진 당시 발생한 지진해일에 가족을 모두 잃은 융행 스님의 슬픔과 고뇌는 지극히 담담하게 묘사되지만 바로 그렇기 때문에 오히려 관객의 눈물샘을 자극한다. 스님은 현재도 고향을 떠나지 않고, 재해로 유명을 달리한 사람들의 넋을 위로하며 살고 있다. 제공: DMZ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
<전좌>가 보여주는 것은 단순히 ‘종교’또는‘믿음’이 아니라, 실제적‘세계관(weltanschauung)’으로서의 불교이다. 이에 관한 토미타 카츠야 감독의 입장은 명확하다. “<전좌>는 불교에 관한 영화지만, 불교의 멋지고 근사한 면만 보여드리지 않습니다. 제 아무리 숭고하고 거룩한 이야기를 할지라도 번뇌와 갈등에 휩싸여 살아가는 필부의 눈높이를 생각해야 하니까요. 이 시대의 대중은 결코 보여주고 싶은 것만 보여주는 이들에게 눈길을 주지 않습니다. 제공: DMZ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

홍상현:

하지만 뭐니 뭐니 해도 <전좌> 최고의 매력은, 삶에 대한 태도, 그리고 진리에의 탐구를 이야기하되 어떤 결론도 내리지 않는 것이라 생각한다.

토미타 카츠야:

불교적 사고에서 기인한 것이다. 누군가에게 이래라 저래라 말하지 않고, 함부로 틀리다고 규정하지 않기. 끝까지 상대의 이야기를 경청한 뒤, 자연스러운 이해를 이끌어내는 큰스님의 화법처럼 말이다. 지극히 당연한 이치를 쉽게 설명하고, 결론은 각자의 판단에 맡기는 것이다. 오래전 인도에서 태어난 불교는 현재 그곳에서 거의 소멸되어 있다. 그렇게까지 크게 융성하지 못했던 이유는 강제력이 없었기 때문이라고 하는데, 그래서 그게 문제라고 할 수 있을까? 아닐 거다. 저 역시 이러한 사고의 패턴을 유지하며 영화를 만들었다.

 

홍상현:

이번에 커다란 작가적 화두를 찾아내신 것 같다. (웃음)

토미타 카츠야:

(웃음) 우리는 물질이 지배하는 세상에서 살아가는 까닭에 종종 물질에 시선을 빼앗긴다.

예전엔 불교든, 기독교든 수천 년 전에 용케 그런 것들을 고안해냈구나 싶었는데, 이제와 보면 오히려 당시였기 때문에 가능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인간은 진보하고 있는 게 아니라 진보하는 것처럼 보일 뿐이며, 오늘날 손에 쥐고 있는 모든 것들도 실은 놓쳐버린 뭔가를 대신해서 손에 넣게 된 건 아닐까. 마음의 문제가 방치되며, 더욱 비관적인 전망이 나오는 시대에, 사고의 여지를 제공하는 것이야말로 영화작가로서 제게 주어진 소명일 것이다.

토미타 카츠야 감독은 <국도 20호선>으로 만 11년 전 서울에 온 이후, 한 순간도 포기한 적 없는 꿈을 이루고자 한다. 바로 “깊이 존경하는 한국 영화인들과 함께하는” 것. 어쩌면, 조만간 우리가 잘 아는 누군가가 그의 손을 잡고, 로카르노나 낭뜨, 혹은 칸의 레드카펫을 걷는 모습을 볼 수 있을 지도 모르겠다. 출전: La Semaine de la Critique of Festival de Cannes

“<전좌>는 불교에 관한 영화지만, 불교의 멋지고 근사한 면만 보여드리지 않습니다. 제 아무리 숭고하고 거룩한 이야기를 할지라도 번뇌와 갈등에 휩싸여 살아가는 필부의 눈높이를 생각해야 하니까요. 이 시대의 대중은 결코 보여주고 싶은 것만 보여주는 이들에게 눈길을 주지 않습니다. ‘진실함’이라는 가치에 주목해볼 때, 이는 일본과 한국, 그리고 중국과의 관계에도 적용될 수 있을 겁니다. 스스로가 저질렀던 인정하기 싫은 일들을 인정하고, 반성하며, 어떻게 그런 잘못을 저지르게 되었는지 분명히 인식하는 게 중요할 테니까요. 앞으로도 이와 같은 인식에 근거해서 현재의 문제를 조망하는 영화를 만들어가고 싶습니다.”

토미타 감독은 최근 고향인 야마나시 현으로 돌아가 지내고 있다. <사우다지>를 비롯한 그의 작품 대부분의 무대가 되는 ‘원점(square one).’온갖 어려움 속에서 데뷔작 <구름 위에서>를 연출하던 시절보다 여러 가지 면에서 악화되어 있는 일본의 마음이 무겁지만 창작활동에서까지 위축되고 싶지는 않단다. 곧 <사우다지>의 후속편 제작에 시작되고, 타이완과의 합작영화 제작도 진행될 것이다.

그리고 <국도 20호선>으로 만 11년 전 서울에 온 이후, 한 순간도 포기한 적 없는 꿈을 이루고자 한다. 바로 “깊이 존경하는 한국 영화인들과 함께하는”것. 어쩌면, 조만간 우리가 잘 아는 누군가가 그의 손을 잡고, 로카르노나 낭뜨, 혹은 칸의 레드카펫을 걷는 모습을 볼 수 있을 지도 모르겠다.

필자 홍상현은 사회과학과 영화이론을 넘나드는 전문적 식견을 갖추고 한ㆍ일 두 나라 매체에 분석 기사를 쓰고 있다. 파리경제대 교수 토마 피케티와 『21세기 자본』 프로젝트를 진행한 도쿄대 시미즈 연구실 출신으로, 현재도 같은 대학 이미지인류학연구실(IAL)의 네트워크 멤버다. 번역가로 『마르크스는 처음입니다만』 등의 논쟁적인 저작을 소개했다.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프로그램 어드바이저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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