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팩트체크] 폐손상 유발한 전자담배, 대마초 성분이 원인인듯

  • 기자명 뉴스톱
  • 기사승인 2019.10.29 10:1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연초담배에 비해 95%이상 독성물질이 적다고 알려져 왔던 액상형 전자담배 사용자 중에서 중증 폐손상으로 사망하는 사례들이 보고되면서 지구촌이 시끄럽다. 10월 24일 현재 미국에서 1,604건의 폐손상과 34건의 사망사례가 발생하였고, 10월 8일에는 국내에서도 의심 환자 한 례가 나타났다. 대통령이 관련 대책을 직접 챙기면서, 23일 정부는 <액상형 전자담배 사용중단 강력 권고>라는 내용의 보도자료를 내어 놓았다. 제목 그대로 ‘유해성 검증이 완료되기 전까지 액상형 전자담배 사용을 중단하라’는 것이 정부의 권고안의 주된 내용이다. 몸에 덜 해로울 것을 기대하고 어렵게 바꾼 전자담배가 중증 폐손상과 사망을 초래한다고? 전자담배 사용자들에게는 날벼락도 이런 날벼락이 없다. 그런데 우리 정부가 참조했을 것이 분명한 당사국, 미국 식품의약품안전처(FDA)의 권고문의 제목을 살펴보면 ‘이상한’ 단어가 눈에 띈다.

미국 FDA 권고문 캡처.

 

미국에선 대마초 환각성분 THC가 폐손상 유발 의심

번역하면 <현재 조사중인 폐질환과 관련하여 THC 흡입기기의 사용 중단에 대한 소비자 경고 권유문>이 권고안의 제목이다. THC(tetrahydrocannabinol)란 대마초로 알려진 마리화나의 주된 환각성분이다. 담배 얘기 하다가 갑자기 왠 마리화나? 이상하지 않은가? 마리화나의 사용이 합법인 미국의 일부 주에서 니코틴 대신 마리화나 성분을 흡입하는 전자담배가 있다는 사실은 필자도 이번에 처음 알았다.

전자담배 폐손상 사망사건의 당사국인 미국은 계속 늘어나는 환자 통계와 관련 역학 정보들을 미 질병통제국(CDC) 홈페이지를 통해 매주 목요일마다 업데이트하고 있다.

 

미국 질병통제국 홈페이지 캡처.

 

10월 24일 뉴스레터를 보니, 현재 확인된 사실(What we know)은 FDA 조사 결과 샘플의 대부분이 THC를 함유하고 있으며 환자 대부분이 이들 제품을 사용자들이라는 점, 따라서 THC 함유 제품, 특히 길거리나 불법적인 경로(친구, 가족, 불법판매업자)를 통해 구입한 액상이 이번 사태(outbreak)의 주요 원인일 것이라고 보도하고 있다. 아직 모르는 부분(What we don’t know)은 폐손상을 일으키는 원인 성분은 아직 밝혀지지 않았고 하나 이상의 성분일 수 있으나 현재 조사중이라는 것이다. 

 

현재 폐손상 원인 성분이 밝혀지지 않았다고 밝힌 미 질병통제국 뉴스레터.

 

이렇게 판단하는 근거는 현재까지의 역학조사 결과, 폐손상 환자 849명중 86%가 마리화나가 든 액상 사용자라는 점이다. 초기 환자의 조직소견에서 폐포내에서 지방 방울 성분이 다량 검출되면서, 마리화나 액상을 부드럽게 만들기 위해 첨가되는 비타민 E 아세테이트도 원인물질로 주목받고 있다.

물론 환자의 11%는 니코틴만 함유된 액상 사용자이므로, 우리 정부의 의심처럼 기존 니코틴 액상 전자담배의 성분이 원인일 가능성은 여전히 남아 있다. 국내에도 한 명의 의심사례가 보고되었고 영국에서도 니코틴 액상 사용자중 비슷한 양상의 폐렴이 보고된 바 있다는 점에서 전통적인 니코틴 흡입용 전자담배에도 프로필렌글리콜(PG)이나 식물성 글리세린(VG) 같은 유화제가 지방성 폐렴(lipoid pneumonia)의 원인일 수 있다고 보는 것이다. 그러나, 한 두 사례를 가지고 폐손상의 원인이 전자담배 유화제 때문이라고 확진하기는 거의 불가능하다는 것은 의사라면 누구나 아는 사실이다. 제발 좀 상식적으로 생각하자. 이미 10여년 이상 글로벌하게 사용중이라는 점, 전자담배를 금연도구, 혹은 위해경감(harm reduction) 목적으로 사용하면서 품질 관리가 비교적 철저한 영국 같은 나라에서는 확진 사례가 발견되지 않는다는 점 등을 고려한다면 이번 사태의 진범(?)은 니코틴이 아니라 대마관련 성분일 가능성이 매우 높다.

이제 미 FDA와 CDC의 권고사항을 살펴보자. 매우 중요한 사안이므로 전문을 필자가 (간략) 번역하여 소개하고자 한다(영어본문참조).

 

액상형 담배에 대한 미 식품의약품안전처(FDA) 권고사항.

 

*액상형 전자담배 관련 미 FDA 권고사항

THC를 함유한 전자담배 등을 사용하지 말 것

- THC 함유 전자담배중 특히 불법적인 소스나 길거리에서 입수한 제품을 사용하지 말 것

- 전자담배 액상에 THC나 기타 오일류를 첨가하거나 개조해서 사용하지 말 것

- FDA에 의해 치료목적으로 허용된 전자담배 제품은 없엄. THC의 사용과 관련한 의학적 문제는 의사와 의논할 것

- 청소년이나 임산부는 성분과 무관하게 모든 전자담배 사용을 금함. 현재 비흡연 성인은 이들 제품을 시작하지 말 것

- 연초담배를 대신해서 전자담배를 사용중인 성인은 연초담배로 돌아가지 말 것

- 전자담배 사용자는 기침, 호흡곤란, 흉통 같은 증상이 발생하는지 주의하고 문제 발생시 즉시 의사를 찾을 것.

 

 

 

액상형 담배에 대한 미 질병통제국(CDC) 권고사항

 

*액상형 전자담배 관련 미 CDC 권고사항

THC를 함유한 전자담배 등을 사용하지 말 것

- THC 함유 전자담배중 특히 불법적인 소스나 길거리에서 입수한 제품을 사용하지 말 것

- 전자담배 액상에 THC나 기타 오일류를 첨가하거나 개조해서 사용하지 말 것

- FDA에 의해 치료목적으로 허용된 전자담배 제품은 없엄. THC의 사용과 관련한 의학적 문제는 의사와 의논할 것

- 청소년이나 임산부는 성분과 무관하게 모든 전자담배 사용을 금함. 현재 비흡연 성인은 이들 제품을 시작하지 말 것

- 연초담배를 대신해서 전자담배를 사용중인 성인은 연초담배로 돌아가지 말 것

- 전자담배 사용자는 기침, 호흡곤란, 흉통 같은 증상이 발생하는지 주의하고 문제 발생시 즉시 의사를 찾을 것.

 

두 기관의 권고안 모두, 전자담배 전체가 아닌, THC 함유 액상이나 불법 개조한 액상의 사용을 중단을 강조하고 있으나 CDC의 경우 건강위해를 최소화 하려면 전체 전자담배 사용을 중단하고 역학조사 결과를 기다리라는 입장을 조심스럽게 추가했음을 알 수 있다.

이제 지난 23일 우리 정부의 대책이 왜 문제인지 자세히 들여다 보자. 우선 제목이 <액상형 전자담배 사용중단 강력 권고>이다. 가장 강력한 용의자인 마리화나는 국내에 들어와 있지도 않은데, 엉뚱한 니코틴 액상 전자담배를 중단하라고 하고 있다.

10월 23일 발표된 정부의 <액상형 전자담배 사용중단 강력권고> 보도자료.

한국에선 액상형 전자담배 전체를 중단 권고

제목만 봐서는 전자담배를 계속 피웠다간 언제 폐손상으로 사망할지 모를 것 같은 공포를 불러 일으킨다. 물론 내용 중에는 이번 기회에 국가가 제공하는 금연프로그램을 통해 완전 금연할 것을 권하고 있지만, 이게 쉬운가? 필자가 일요일을 반납하고 이런 글을 작성하는 이유는, 미국의 ‘마리화나’ 전자담배 때문에, 엉뚱하게도 한국에서 아직 95% 이상 덜 해로울 것이 확실한 니코틴 액상 전자담배 사용자가 연초흡연으로 회귀하는 웃지 못할 사태 때문이다. 이미 국내 일부 편의점과 이마트 등 대형마트들이 액상형 전자담배 판매 중단을 선언하기 시작했다. 참 착한 소매점처럼 보이지만, 그럼 이보다 훨씬 더 해로운 연초는 왜 파는데?...

사실은 복지분 권고안도 자세히 들여다보면, 전자담배에서 연초로 회귀하지 말라는 문구가 들어 있다. 필자 등 대한금연학회 일부 임원들의 강력한 문제 제기로 초안에 없던, ‘궐련에서 전자담배로 전환하여 사용하고 있는 사람은 일반담배로 돌아가진 말라’는 문장이 겨우 살아 남긴 했다. 하지만, 전체 보도자료의 구성을 보면 이 문장을 보고 안도하기 보다는 불안 때문에 연초로 회귀할 흡연자가 훨씬 많을 것이 분명하다.

 

정부가 발표한 <액상형 전자담배 사용중단 강력권고> 보도자료 중 일부.

 

CDC의 전 관계자이자 담배 정책(tobacco control) 전문가인 미국 보스턴대 Siegel 교수는 대다수의 사례는 대마초 제품, 특히 암시장 THC 액상과 관련이 있다는 게 분명하며, 일부 사례는 니코틴 제품과 관련돼 있을 가능성이 있지만, 이들은 인터넷이나 길거리에서 판매되는 불법 제품일 가능성이 크다고 하였다. 그는 허가 후 시판되는 니코틴 액상 전자담배 제품은 십 여년 이상 세계 여러 나라에서 문제없이 사용되었기에 이들이 폐손상의 원인일 가능성은 적다고 하였다. 따라서 본 사태로 전자담배 판매를 섣불리 금하게 되면 수백만 명의 흡연자들이 다시 연초를 피우게 되고 액상형 전자담배 암시장(black market)이 생길 우려가 있다고 경고한다.

이런 상황을 이해한다면, 우리 정부의 대책은 사실(fact)과 인과관계를 제대로 고려한 것인지 걱정스럽다. 현재 복지부 발표안에 달린 댓글들을 보면, 일부 관심있는 흡연자들이 미국 발표와의 차이를 지적하면서 정부 발표에 대한 적극적인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정부 권고안의 의도는 이번 사태를 통해 전자담배 사용자들이 금연에 이르도록 하는 것이지만, 현실은 연초담배로 회귀하거나 정부의 섣부른 대책에 대한 불신으로 이어지지 않을까 염려스럽다. 만일 예상대로 역학조사 결과가 마리화나 관련 성분이 원인으로 밝혀진다면, 금번 정부 발표로 인해 금연 보다는 연초담배로 회귀한 흡연자들의 추가적 건강위해는 누가 책임을 질 것인지? 백번 양보해서 니코틴 함유 전자담배가 원인이라고 밝혀진다면, 지금 분위기로는 전자담배 판매 유통을 금할 것이 분명해 보이는데, 이 경우 한해 6만여명을 사망에 이르게 하는 연초담배는 어떻게 할 것인지, 지켜볼 일이다.

*필자 정유석은 단국대학교병원 금연클리닉 교수다. 책 <전자담배 위기인가 기회인가>를 썼다.

*2019년 10월 29일 오후 5시 35분 1차수정: 제목이 단정적이라는 필자의 지적에 <...대마초 성분이 원인이다>에서 <...대마초 성분이 원인인듯>으로 수정했습니다.

*핵심내용

1. 미국의 폐손상, 사망례의 86%는 마리화나(THC) 성분 함유 전자담배 사용자임

2. 폐손상 원인 성분은 현재 조사중이나 THC 관련 성분일 가능성이 높음

3. 당사국인 미국조차도 THC 함유 제품에 대한 사용 중단이 주요 권고 사항임

4. 액상형 전자담배는 연초에 비해 95% 이상 덜 해롭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며 이를 적극 금연도구로 사용하는(그만큼 전자담배 품질관리가 잘 됨을 의미) 영국의 경우 이런 문제가 발생하지 않고 있음

5. 우리 정부의 권고문은 전체 전자담배의 사용을 중단하라고 강력히 권유하고 있는데 이는 인과관계와 맞지 않는 섣부른 경고임

6. 니코틴의 강력한 중독성 등을 고려할 때, 정부의 의도와는 달리 본 조치로 인해 전자담배 사용자가 금연하기 보다는 연초로 회귀할 가능성이 높음

7. 현재 전자담배 사용자는 역학조사 결과가 나오기까지 연초로 돌아가지 말아야 함(물론 이번 기회에 금연하면 최고!!)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오늘의 이슈
모바일버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