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년 뒤 전 국민 매달 30만원" 기본소득 계산식은 어떻게 나왔나

  • 기자명 박강수 기자
  • 기사승인 2019.10.30 10: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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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소득은 “‘모든 개인’에 같은 액수의 급여를 ‘조건 없이’ 지급하는 제도”를 말한다. 공동체 내 구성원 전부를 대상으로 한다는 점, 지급에 조건을 달지 않는다는 점에서 기존 사회보장제도와 구별된다. 쓰임의 폭이 넓어 디자인에 따라 여러 정치 세력의 정책 수단이 될 수 있다. 천정배 대안신당 의원은 과거 보건복지위원회 시절 “기본소득은 도입 취지는 좌파적이지만 방식은 우파적인 독특한 제도”라고 평한 바 있다. 지난 19대 대선에서 주요 정책 화두로 거론되기도 했다.

관건은 결국 “‘구성원 전원에 조건 없이 줄 돈’의 재원을 어떻게 마련할 것인가”하는 문제다. 실제 1982년부터 주민들에 기본소득을 지급 중인 미국 알래스카 주는 석유 수출을 통한 천연자원 기금이 있어 꾸준한 배당이 가능했다. 2016년 6월 스위스의 기본소득 헌법개정안이 국민투표에서 부결될 때도 구체적인 재원 조달 방식이 불투명했던 점이 주요 원인으로 꼽혔다. 한국은 석유기금도 없고 스위스처럼 ‘복지천국’도 아니다. 이러한 맥락에서 기본소득 반대파는 “소비세를 인상하거나 근로자 세 부담을 늘리지 않는 한 현실성이 없는 제도”라며 도입 가능성을 비관한다. 국민소득에서 ‘증세 없는 복지’는 불가능하다는 말이다.

조선일보 '[핫이슈 기본소득]① "유일한 복지 대안" vs "비현실적 포퓰리즘" 격화되는 논쟁(2016.9.21)' 기사 캡처.

관련해 구체적인 제언이 나왔다. 지난 28일 민간 독립 연구소 LAB2050(랩2050, 대표 이원재) 주최하에 서울 대학로 공공그라운드에서 ‘국민기본소득제: 2021년부터 재정적으로 실현 가능한 모델 제안’ 연구 결과 보고회가 열렸다. 연구 결과의 요지는 “세목을 신설하거나 세율 인상 없이 기본소득제 시행이 가능하다”는 것이었다. 이원재 LAB2050 대표는 이날 발표에서 “실행 의지만 있다면 전 국민을 대상으로 2021년부터 월 30만원을 지급하는 정책이 가능하다”고 말했다.

'2021년부터 매달 30만원 지급' 기본소득안 실현 가능

<국민기본소득제: 2021년부터 실현 가능한 모델 제안> 보고서 발췌.

연구의 핵심은 ‘실현 가능성’이다. 보고서에서 제시하는 국민기본소득제 유형은 총 6가지다. 2021년부터 월 30만원 혹은 월 40만원을 받는 안, 2023년부터 월 35만원 혹은 월 45만원을 받는 안, 2028년부터 월 50만원 혹은 월 65만원을 받는 안이 있으며 각각의 모델에 대한 재정 수요와 계측을 담은 설계도가 제시되어 있다. 2021, 2023, 2028 세 개의 시점은 “전국 단위 대형 선거 주기에 맞춘 것”이라고 윤형중 LAB2050 연구원은 설명한다. 명칭이 ‘국민기본소득제’인만큼 선거를 통해 전국민적인 공론화 과정과 합의를 거쳐야 한다는 취지다.

재원 조달은 기존 세금 제도의 틀 안에서 재원을 찾는다는 원칙에 따른다. 기본소득과 함께 논의되곤 하는 환경세나 로봇세 신설, 토지보유세 강화, 법인세 인상은 없다. 대신 소득세제 항목의 모든 비과세 항목, 세금 감면 제도를 폐지하고 기본소득에 세금을 물린다. 이것만으로도 2021년 기준 71.3조원을 확보할 수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2021년부터 전국민에 매달 30만원씩 주는 방안의 필요 세수 총액인 187조원의 38%에 해당하는 금액이다.

한국은 각종 공제와 감면 제도가 많아 법정세율과 실효세율 차이가 크다. 이는 곧 잠재적인 세수 손실이 크다는 뜻이기도 하다. 홍우형, 강성훈의 <소득세 법정세율과 실효세율 격차에 대한 연구> 논문에서 발췌한 그래프를 보면 법정세율에서 실효세율을 뺀 세율 격차가 한국의 경우 중위소득을 넘어서는 대부분의 소득구간에서 10% 언저리를 유지하는 데 반해 일본과 싱가포르는 5%대, 뉴질랜드와 호주 등은 0%대에 그래프가 위치한 것을 볼 수 있다. 이 격차가 소득세의 누진성을 약화시킨다. 실제 내수 진작과 세원 투명화 등을 목적으로 김대중 정부에 의해 1999년 도입된 신용카드 소득공제 제도는 법의 시효가 다했다는 비판이 지속되고 있음에도 6차례나 일몰기한이 연장돼 여전히 시행 중이다. 연구진의 의중은 이 같은 역진적 제도들을 정비해 세수를 확보하자는 것이다.

홍우형, 강성훈(2018), '소득세 법정세율과 실효세율 격차에 대한 연구', 재정학연구 제11권 제2호, 90쪽

또한 역외 탈루, 임대소득 탈루 방지, 간이과세제도 폐지, 기본소득을 통해 대체 가능한 복지 제도 폐지 및 축소, 재정 구조조정을 통해 필요한 재원을 확보할 수 있다는 내용이 발표에 담겼다. 발표자로 나선 정창수 나라살림연구소 소장은 “미국은 만 달러(약 1160만원)만 탈루해도 50%를 추징하는데 우리는 5억 이상 탈루해야 4~5% 과태료를 매긴다”며 “조세 체계의 근본을 바꾸는 단순하고 누진성 강화된 소득 세제 체제”를 강조했다. 재원 마련 방안의 요체는 ‘공정한 세금 제도’의 확립, 즉 조세정의의 실현인 셈이다.

그 밖에 주요 재원 마련 원칙으로 ‘기초생활보장제도 수급자는 손해를 입지 않는다’, ‘4대 사회보험 관련 재정, 기금을 끌어 쓰지 않는다’, ‘국민 모두 세금을 내게 한다’ 등이 있다. 국민기본소득제 실행으로 실질적 손해를 입게 되는 계층은 연소득 4700만원 이상인 사람들로 2021년 추정 전체 인구의 12%에 불과하며 그 마저도 가구 유형에 따라 손익 기준이 바뀌기 때문에 더 줄어들 수 밖에 없다는 것이 연구진의 설명이다.

이들이 국민기본소득제의 직접적인 효과로 예측한 것은 소득 불평등 완화, 빈곤 감소, 소비 진작 등이다. 연구진은 시뮬레이션 결과 지니 계수 감소, 분위별 소득 배율 격차 감소, 상대적 빈곤율과 빈곤갭 지수 감소 등 유의미한 계측을 얻어냈다고 밝혔다. 아울러 기본소득이 불평등한 한국사회가 맞닥뜨린 각종 사회적 불안과 갈등에 대해 안정성을 공급하는 정책 혁신이 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실제 올해 초 발표된 핀란드 기본소득 정책 실험 보고서에 따르면 기본소득이 기존 실업급여와 비교해 고용 촉진 효과는 떨어졌으나 자존감과 주관적 건강 평가, 신뢰도 등 행복도는 높인 것으로 파악됐다.

<국민기본소득제: 2021년부터 실현 가능한 모델 제안> 보고서에서 재인용.리처드 윌킨슨, 케이트 피킷(2019), '불평등 트라우마', 생각이음.소득 불평등이 심한 국가일수록 사회 구성원들이 자신의 지위에 대해 불안을 느끼는 정도도 크다.

"정치는 사람을 건드리고 사람의 이익을 건드리는 기획"

다만 이날 발표회 현장에서는 국민기본소득제의 재정적 실현 가능성과 별개로 ‘정치적 실현 가능성’에 대한 의문이 제기됐다. 토론자로 나선 서복경 현대정치연구소 교수는 2004년 민주노동당의 공약으로 처음 제기되어 2010년 전국적 이슈가 된 무상급식 정책을 예로 들어 지적했다. “복지 정치의 기획에서 필요한 것은 다양한 복지 정책의 혜택을 본 사람들의 뿌리가 깊어지면서 서로간에 복지 동맹과 연대가 형성되는 절대적 시간”이며 “(세금 공제 제도를 폐지하는 이 정책안은) 다수의 이해관계를 건드리는 기획이라 더 섬세한 접근이 필요해 보인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윤형중 연구원은 “누군가의 이익을 파괴하는 일에 대해서는 세심한 접근이 필요하지만 그 이익이 공정한가 문제에 대해 질문하고 논쟁하는 것은 필요한 일이라고 생각한다”고 답변했다.

백승호 가톨릭대학교 교수는 “명칭에 지향점이 담기지 않으면 무용지물이 될 수 있다”며 “기본소득에는 좌우 버전이 다 있는데 기존 복지제도를 총합해 N분의 1로 나누는 우파식 기본소득을 ‘국민기본소득’이라고 기재부 같은 곳에서 들고 오면 어떻게 설득할 것인가”라고 물었다.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도 처음에는 기본소득 형태에 버금가는 제도로 설계되었으나 제도의 지향점이 명시적으로 담기지 않아 지금 형태에 그치고 말았다는 것이 백 교수의 주장이다. 관련해서 이원재 대표는 “기본소득은 밥과 비슷하다. 너는 무엇을 위해 밥을 먹냐고 물으면 대답이 다 다를 것이다. 지향점이 합의가 안 됐다고 하지만 본질적으로 그런 면이 있다”고 대답했다. 또 이 대표는 “명확한 지향점은 국가총생산의 10%를 나눠보자는 것이다”라고 강조했다.

<국민기본소득제: 2021년부터 실현 가능한 모델 제안> 보고서에서 재인용.홍민기(2019), '2017년까지의 최상위 소득비중'. 한국노동연구원, 월간 노동리뷰 2019년 2월호, 63-65

기본소득은 국가 재정과 분배, 복지 전 영역의 패러다임을 뒤흔드는 거대한 테마다. 여기에는 기술 발전에 따른 산업 체계 개편과 노동 소외, 양극화와 불평등에 따른 사회 불안, 저성장 저출생 사회에서 가족과 노동 형태의 변화 등에 대한 고민과 문제의식이 깃들어 있다. 이원재 LAB2050 대표는 보고회 토론 말미에 “때가 온 것 같다”며 “말할 수 없을 정도로 분열이 심각한 우리 정치와 시민사회가 함께 총선 전까지 공론화해 이야기해봤으면 한다”고 말했다.

최근 미국 민주당 대선 경선에서는 대만계 기업가 출신 후보 앤드루 양이 ‘자유배당(Freedom dividend)’이라는 이름의 기본소득 공약을 주창하면서 주목을 받았다. 이미 미국에서는 여러 차례 기본소득에 대한 논의가 있어 왔다. 토마스 페인(1796년), 마틴 루터 킹(1967년), 리처드 닉슨(1969년)이 기본소득을 주장했고 닉슨 대통령 시기인 1971년에 입법 문턱까지 갔다가 좌초됐다. 한국에서는 이제 막 기본소득 논쟁에 불이 붙으려는 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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