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웰다잉'의 시작, 연명의료결정법

  • 기자명 송영훈 기자
  • 기사승인 2017.11.06 2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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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0월 23일 ‘연명의료결정법’ 시범사업이 시작되면서 이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환자의 뜻에 따라 연명의료를 중단할 수 있는 ‘연명의료결정법’은 이번 시범 단계를 거쳐 내년 2월에 본격 시행하게 된다. 연명의료결정법과 관련한 오해와 사실을 뉴스톱에서 확인했다.

 

 

환자에게 생명연장 결정권 주는 웰다잉법

연명의료결정법’의 본래 명칭은 ‘호스피스, 완화의료 및 임종과정에 있는 환자의 연명의료 결정에 관한 법률’이며 '웰다잉(Well-Dying)법'으로 불리기도 한다. 지난해 1월 국회를 통과했으나 준비를 위해 내년 2월 시행하기로 늦춰졌다. 이 법이 제정된 배경에는 두 가지 사건이 있다.

하나는 국내에서 처음으로 존엄사가 논란이 됐던 1997년 ‘보라매병원 사건’이다. 당시 경제적 부담 때문에 식물인간 상태인 남편의 퇴원을 요구했던 아내와 이를 허락한 의사들이 살인방조 혐의로 유죄를 선고받았다. 당시 환자는 간이형 인공호흡기의 도움으로 자가 호흡이 가능했으나 이를 제거한 후 사망했다. 이 사건 이후 환자가 치료를 거부하더라도 사망할 때까지 치료를 이어가는 사례가 적지 않게 됐다.

또 다른 사건은 국내에서 첫 ‘존엄사’로 기록된 ‘신촌세브란스병원 김 할머니 사건’이다. 2008년 2월 15일 병원에 입원한 후 김 할머니는 치료 가능성이 사라지고 의료기기에 의존해야 하는 ‘식물인간’ 상태가 됐다. 평소 고인의 뜻을 따라 가족이 치료 중단을 요청했지만 병원이 반대하자 이른바 ‘존엄사’를 둘러싼 법정 공방으로 이어졌다.

대법원은 2009년 5월 21일 “사망에 임박한 환자가 인간 존엄과 가치 및 행복추구권에 기초해 자기결정권을 행사하는 것으로 인정되면 연명치료의 중단이 허용될 수 있다”고 밝혀 존엄사를 처음 인정했다. 연명의료결정법은 이 대법원 판결을 토대로 만들어졌다.

2009년 6월 23일 인공호흡기를 떼고 연명치료를 중단한 김 할머니는 6개월여가 지난 2010년 1월 10일 별세했다.

 

존엄사와 안락사는 무엇이 다른가

연명의료결정법은 회생 가능성이 없는 상태가 의학적으로 인정된 환자에게 생명연장 도구를 떼는 것을 허용한다. ‘존엄사’를 보장하는 것이다. 존엄사는 사망 시기를 앞당기는 ‘안락사’와는 차이가 있다.

안락사는 환자의 고통을 줄이기 위해 인위적인 방법으로 죽음에 이르게 하는 행위를 일컫는다. 어떤 방식을 사용하느냐에 따라 적극적 안락사와 소극적 안락사로 구분한다. 적극적 안락사는 약물 등 적극적인 수단을 사용해 생명을 단축시키는 행위다. 소극적 안락사는 생명 유지에 필수적인 영양 공급이나 약물 투여를 중단하는 등 생명을 연장할 수 있는 수단을 취하지 않음으로써 환자를 죽음에 이르게 하는 경우를 말한다. 대부분의 국가에서 적극적 안락사는 허용되지 않는다.

존엄사는 소극적 안락사와 유사하긴 하나 ‘환자에게 할 수 있는 치료를 다 했지만 회복이 불가능하다고 여겨질 경우 무의미한 연명치료를 중단하는 것’으로 정의한다. 임종 단계에 있는 환자가 생명을 연장하는 연명치료를 중단하고 자연적 죽음을 받아들이는 것이다. 연명치료 중단을 원하는 환자의 자기결정권을 존중하고 인간으로서 최소한의 존엄을 지킬 수 있도록 한다. 전 세계 여러 나라들이 엄격한 요건 아래 존엄사를 허용하고 있다.

 

연명의료 중단 결정은 '회생불능'이 핵심

연명의료결정법에서는 연명의료를 다음과 같이 정의하고 있다. (제2조)

‘임종과정에 있는 환자에게 하는 심폐소생술, 혈액투석, 항암제 투여, 인공호흡기 착용과 같은 의학적 시술로 치료 효과 없이 임종과정의 기간만을 연장하는 것’. 이때 임종과정이란 ‘회생 가능성이 없고, 치료해도 회복되지 않으며 급속도로 증상이 악화되어 사망에 임박한 상태’를 뜻한다.

연명의료 중단 결정은 회생 가능성이 없고 치료에 반응하지 않는 임종과정의 말기 환자를 대상으로 한다. 담당의사는 연명의료 중단 결정전에 환자가 임종과정에 있는지 여부를 전문의 1명과 함께 판단하고 결과를 기록해야 한다. 연명의료 중단 결정이 가능한 말기환자의 질환으로는 암과 후천성 면역결핍증(AIDS), 만성폐쇄성폐질환, 만성 간경화 등이 있다.

환자나 그 가족이 존엄사를 원한다고 해서 연명의료를 중단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연명의료 중단을 위해서는 의료진의 의학적 판단과 함께 연명의료 중단 결정에 대한 환자 의사를 확인해야 한다. ‘사전연명의료의향서’나 ‘연명의료계획서’ 등이 유효하다.

의사를 표현할 수 없는 의학적 상태이면서 사전연명의료의향서 등이 없다면 평소 의사를 추정할 수 있는 가족 2명 이상의 진술과 전문의 1명의 확인을 거쳐야 인정된다. 또 환자의 의사를 확인할 수 없다면 가족의 전원 합의와 담당 의사 및 전문의 1명의 확인이 있어야 한다. 미성년 환자의 경우 법정대리인이 연명의료 중단 결정 의사표시를 하고, 담당 의사와 전문의 1명의 확인이 필요하다. (관련기사)

 

‘사전연명의료의향서’와 ‘연명의료계획서’ 필요

연명의료 중단을 원하는 경우 연명의료의향서나 연명의료계획서를 작성해야 한다.

사전의향서는 19세 이상 성인이면 병 유무와 상관없이 작성할 수 있다. 추후 죽음이 임박한 환자라는 의학적 판단이 내려졌을 때 무의미한 연명의료를 거부할 수 있는 자료로 쓰일 수 있다. 연명의료계획서는 사전의향서를 쓰지 못한 상태에서 병원에 입원하게 된 말기의 임종과정 환자가 작성할 수 있다. 의사가 환자를 설득해 작성을 요청할 수도 있고, 환자가 의사에게 요청할 수도 있다. 사전연명의료의향서와 연명의료계획서는 전적으로 본인의 자발적 의사에 따라 작성되어야 하며 작성 후에도 언제든지 변경하거나 철회할 수 있다.

보건복지부는 연명의료결정법 시행 4개월여를 앞두고 지난 10월 23일부터 시범사업을 진행중이다. ‘사전연명의료의향서 상담·작성·등록’에는 각당복지재단, 대한웰다잉협회, 사전의료의향서실천모임, 세브란스병원, 충남대병원이, ‘연명의료계획서 작성·이행’에는 강원대병원, 건강보험공단 일산병원, 고려대 구로병원, 서울대병원, 서울성모병원, 세브란스병원, 영남대의료원, 울산대병원, 제주대병원, 충남대병원이 참여하고 있다.

시범사업 기간 중 작성된 의향서와 계획서는 내년 2월 개시되는 연명의료계획서 등록시스템에 정식 등재되고 법적으로 유효한 서류로 인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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