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30분'동안 청와대와 세월호엔 무슨 일이

  • 기자명 최윤수
  • 기사승인 2017.11.09 17: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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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10월 12일 임종석 대통령 비서실장은 세월호 사고 당일 상황 보고 일지가 사후에 조작된 정황이 담긴 파일 자료를 발견했다고 발표했다. 지난 정부 청와대는 박근혜 당시 대통령이 2014년 4월 16일 오전 10시에 세월호 관련 최초 보고를 받아 오전 10시 15분에 사고 수습 관련 지시를 했다고 홈페이지에 게시했었다. 헌법재판소 탄핵 심판에서도 같은 내용의 자료가 제출되었지만, 실제로는 오전 9시 30분에 최초 보고가 이루어졌음에도 사후에 일지의 보고 시간을 오전 10시로 변경했다는 것이다.

세월호 완전 침몰까지 충분한 시간이 있었음에도 해경은 승객들을 구하지 못했다. 서해지방해양경찰청 제공

2014년 4월 16일 오전 9시 30분 세월호는 이미 45도 이상 기울어져 있었지만, 선내에서는 계속 현재 위치에서 움직이지 말라는 방송이 계속 되고 있었다. 해경 구조 헬기 511호가 막 도착해 기울어진 배 안에서 승객들을 끌어올리기 시작했으나, 세월호가 침몰할 때까지 구조 헬기 3대가 구조한 인원은 총 35명뿐이었다. 가만히 구조를 기다릴 게 아니라 모든 승객이 침몰하는 배 밖으로 빠져 나와야 하는 상황이었다.

현장지휘함으로 지정된 해경 경비정 123정은 오전 9시 34분경 도착했다. 현장지휘의 범위는 1) 조난현장에서의 인명의 수색구조, 2) 수난구호협력기관, 수난구호민간단체, 자원봉사자 등의 임무 부여와 인력 및 장비의 배치와 운용, 3) 추가 조난의 방지를 위한 응급조치, 4) 사상자의 응급처치 및 의료기관으로의 이송, 5) 수난구호에 필요한 물자 및 장비의 관리, 6) 현장접근 통제 등 효율적인 수난구호활동을 위하여 필요한 사항[수난구호법(2013. 3. 23. 시행 법률 제11690호) 제17조 제2항]이지만, 123정은 다른 구조세력과 긴밀히 상황을 공유하거나 수색구조에 대한 지시를 안했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다. 심지어 같이 출동한 구조 헬기 등은 123정이 현장지휘함이라는 사실도 통지 받지 못했다고 한다. 123정이 세월호에 접안한 시간은 단 9분, 그 중 4분 동안은 조타실에서 선장, 선원 등 10명을 구출했고, 나머지 5분 간은 유리창을 깨고 승객 6명을 구조했다. 그 외에는 고무단정으로 갑판에 있거나 바다에 뛰어 내린 승객 30명을 실어 날랐을 뿐이다.

123정장 김경일은 업무상과실치사상죄로 기소됐다. 만약 김경일이 제 때 퇴선명령을 하는 등 구조 업무에 소홀하지 않았다면 승객들이 사망하지 않았을 것이라는 게 기소요지였다. 김경일은 무죄를 주장했지만, 대법원은 “① 123정이 세월호 사고 현장에 도착하기까지 ‘세월호와의 교신 유지, 상황 파악, 승조원 임무 배치 등에 대한 조치’를 소홀히 한 과실, ② 현장 도착 이후 ‘세월호 선장 또는 선원과의 교신을 통한 승객 퇴선 유도’, ‘123정의 방송장비를 이용한 승객 퇴선 유도’, ‘123정 승조원에 의한 갑판에서의 승객 퇴선 유도’의 각 조치를 소홀히 한 과실”을 인정하여 유죄판결을 확정했다(대법원 2015. 11. 27. 선고 2015도11610 판결). 구조 공무원을 업무상과실치사상죄로 처벌한 최초의 사례였다.

김경일은 왜 퇴선명령을 내리지 않았을까. 현장에 도착한 오전 9시 34분부터 구조 철수를 보고한 오전 10시 15분까지 약 43분 동안 세월호에 접안한 9분을 제외한 나머지 시간 김경일은 대체 무얼 하느라 가장 기초적인 퇴선명령조차 잊었던 걸까. 해경 본청은 왜 김경일이 퇴선명령을 했는지 확인하지 않은 걸까.

그날 오전 9시 20분 청와대는 해경 본청 상황실과의 핫라인에서 여객선 조난 사실을 확인하고 카메라 나오는 것이 있다면 바로 연락을 달라고 했다. 2분 뒤 다시 전화해 신고시간, 여객선 이름, 탑승자수, 기상상황을 추가로 물었으며, 세월호가 침몰한 10시 30분까지 평균 3분 간격으로 해경 본청 상황실 핫라인을 울려댔다. 청와대는 구조지휘에는 관심이 없었거나 구조 주체로 인식하지 않았기 때문에 어떻게 구조하라는 구체적인 지휘는 없었고, 끊임없이 구조 지원하는 상선의 톤수, 사고 현장과 구조된 승객을 옮기는 섬의 거리 등을 시시콜콜 묻고 또 물으며 끊임없이 영상을 요구했다.

청와대의 집요한 요구는 123정까지 내려갔고, 승객을 구조해야 할 123정 승조원들은 승객 구조보다 VIP 보고용 자료를 만들기 위해 구조한 인원을 세고 또 세고, 사진을 찍느라 바빠졌다. 심지어 해정 본청 상황실은 오전 9시 39분경 123정에 ENG 카메라가 없다는 것은 확인하고 현장 직원들이 휴대폰으로 사진을 찍어 카톡으로 송신하라고 지시했다. 실제로 123정장, 항해팀장, 행정팀장의 휴대폰에는 수차례의 인터넷 접속 기록이 존재한다. 골든타임은 그렇게 보고용 사진을 찍으며 속절없이 흘러갔다.

김기춘 실장이 대통령의 위치를 몰랐다고 증언하고, 박근혜 대통령이 오전 10시에 최초 보고를 받았다고 알려졌을 때는 받을 사람도 없는 보고를 위하여 영상을 집요하게 요구하는 청와대 직원들을 쉽게 이해할 수 없었다. 그런데 대통령이 오전 9시 30분경 최초 보고를 받은 후 영상을 요구했다면? 현장 상황은 뒷전으로 하고 VIP 지시를 이행하는데 혈안이 된 모습은 더 납득하기가 쉽다.

인양되어 목포항에 안치된 세월호. 해양수산부 제공

수난구호법(2013. 3. 23. 시행 법률 제11690호) 제44조는 “구조본부의 장 또는 소방관서의 장이 행하는 수난구호를 방해한 자는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1천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구조활동에 전념해도 모자랄 현장대원들에게 보고용 자료와 사진을 찍어 보내도록 독촉한 사람도 수난구호를 방해하였다고 볼 수 있지 않을까.

이제 왜 청와대 직원들이 집요하게 영상을 요구했는지, 대통령이 지시한 것인지 질문할 차례다. 대통령이 보고 일지를 조작하면서까지 감추고 싶었던 것은 단지 보고를 받고도 45분 동안 아무 지시로 안 했다는 것뿐인지, 아니면 또 다른 이유가 있는지 밝혀져야 한다. 그래야 이런 어처구니없는 이유로 또 다른 참사가 발생하는 것을 막을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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