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내지 못하면 기억은 지워지지 않는다

  • 기자명 황부영
  • 기사승인 2017.11.29 16: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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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2017년 대입수능시험이 있었다. 이제 대부분의 수험생은 인생의 새로운 단계에 접어들 것이다. 시험의 형태가 학력고사이든 수능시험이든 우리는 중요한 시험을 치룬 적이 분명 있다. 이런 경험도 있을 것이다. 온 힘을 다해 중요한 시험을 치렀는데 불과 며칠 지나지 않아 평생 잊지 않을 것 같았던 공부 내용을 깡그리 잊고 놀랐던 기억 말이다.

시험 뒤에 깡그리 잊게 되는 이유

단기기억에 뚜렷이 남아 있던 내용이 장기기억으로 옮겨가지 못 하고 아예 머릿속에서 삭제된 경험이 있을 것이다. 과업이 끝나고 새로운 단계로 접어들었다고 자각되면 이전에 고민했던 문제는 더 이상 소용이 없게 되고 그 결과 기억회로에서 쉽게 지워진다. 

반대로 과업이 끝나지 않았고 그래서 새로운 단계로 올라가지 못했다고 생각될 때에는 그 해결되지 않은 문제에 대해서 우리는 계속해서 생각을 거듭하고 매듭을 지으려하는 경향이 있다. 성공보다는 실패를 더 오래 기억하는 이유는 바로 이러한 경향 때문이다. 

사람들은 끝마치지 못하거나 매듭짓지 못한 일을 더 오랫동안 기억한다. 잘 한 일보다는 아쉬웠던 일, 개운치 못했던 일들이 우리의 기억을 지배하게 되는 것이다. 왜냐하면 사람들은 실패를 결과가 아니라 성공이라는 다음 단계로 나아가지 못한, 진행 중인 상태로 인식하기 때문이다. 

이런 경향을 '자이가르닉 효과'라고 한다. 시험에 크게 실패했다고 생각하는 수험생 일부를 제외하고는 대부분의 수험생은 이제 과업이 완수되고 다음 단계로 접어든다고 인식한다. 그러니 조금 있으면 수능시험에 나왔던 문제조차 수험생들은 깡그리 잊게 될 것이다.

웨이터 때문에 발견한 자이가르닉 효과

지금은 독립국가지만 오랫동안 소련의 일원이었던 리투아니아란 나라가 있다. 그 리투아니아의 심리학자 이야기다. 1927년 리투아니아의 심리학자 블루마 자이가르닉(Bluma Zeigarnik)은 동료들과 함께 베를린의 한 식당에서 음식을 주문하고 있었다. 사람마다 주문한 음식은 제각각이었고 음료에 후식까지 더해져 주문내역은 복잡하기 이를데 없었다. 그런데 담당 웨이터는 메모도 안 하고 그 복잡한 주문대로 음식을 딱 맞춰 내 왔다. 웨이터의 기억력에 감탄한 자이가르닉은 유심히 그 웨이터를 관찰했다. 웨이터는 다른 테이블에서 주문을 받을 때도 똑 같았다. 메모도 없이 주문내역을 그대로 머릿속에 저장이라도 한 듯이 정확하게 맞춰서 음식을 내왔던 것이다.

식사가 끝난 후 두고 온 소지품 때문에 다시 그 식당에 간 자이가르닉은 깜짝 놀랐다. 엄청난 기억력을 가진 것 같았던 그 웨이터가 방금 식당에서 나간 자신을 잘 기억조차 못 했기 때문이다. 자이가르닉은 그에게 아까 무슨 음식을 주문했는지 기억하냐고 물어 봤다. 돌아 오는 답은 이랬다. “저는 서빙이 끝날 때까지만 기억합니다. 이미 계산도 다 끝났는데 제가 그걸 왜 기억해야 합니까?” 그랬다. 그에게는 하나의 과업이 끝나면 (한 테이블의 주문을 기억하고 서빙을 마치면), 그래서 다음 단계가 되면 이전 단계의 일은 잊는 것이 몸에 배어 있었던 것이다.

여기에서 아이디어를 얻은 자이가르닉은 실험을 통해 자신의 경험을 정리한다. 실험참가자들을 A와 B 두 집단으로 나누고 참가자에게 시 쓰기, 구슬 꿰기, 수학문제 풀기 등 20개 안팎의 과업을 맡겼다. A집단은 그 과업을 완성하게 하고 B집단은 도중에 중단시키거나 다른 일을 하도록 했다. 실험이 끝나고 참가자들에게 어떤 과업이 기억에 남는지를 물어 봤다. 그 결과 B집단 참가자들이 A집단 참가자들에 비해 두 배나 더 많이 과업을 기억해 냈고 그 중 무려 68%는 실험감독이 중간에 그만두라고 했던 과업이었다. 

자이가르닉은 하던 일을 완성하거나 목표를 달성하고 나면 기억에서 잘 잊혀 지지만 끝까지 완수하지 못 한 일은 미련을 남기고 더 오랫동안 기억된다고 정리했다. 그러한 심리적 메카니즘을 '자이가르닉 효과'라고 명명했다.

자이가르닉 효과를 이용한 설득의 방법

연속드라마는 궁금증을 유발하는 장면에서 끝을 맺는다. To be continued란 자막과 함께.

자이가르닉 효과는 사람들을 설득하는 일에도 쓰임새가 많다. 쉽게 잊어버리지 않게 하기 위해 역으로 자이가르닉 효과가 사용되는 것이다. 여러 날에 걸쳐 진행되는 세미나에서는 그날의 강의가 끝날 때 ‘생각해볼 문제’라는 과제를 많이 낸다. 이러면 학생의 머릿속에서 전날 강의 내용이 쉽게 소멸되지 않게 된다. 과업이 계속 진행중인 것으로 지각하기 때문이다. 

공부할 과목이 많을 경우에는 한 과목씩 끝을 내면서 공부하기보다는 여러 과목을 1시간씩 공부하는 것이 기억에 더 남게 된다. 왜냐면 마무리 된 과목에 대해서 우리는 ‘이 과목은 마무리 됐다. 그러니 일단 잊어도 된다’고 생각하게 되기 때문이다. 

텔레비전 연속극에서는 앞으로 어찌 될지 궁금한 장면에서 창졸간에 끝을 낸다. 시청자 입장에서는 끝이 제대로 된 끝이 아니게 되는 것이다. 그러니 잊기 어렵게 된다. 미국 드라마는 자이가르닉 효과 사용의 전형성을 보여준다. 미드에서는 한 회가 끝날 때면 사건이 거의 해결된 것처럼 보여주다가도 마지막 순간 1~2분에는 새로운 복선을 불쑥 던져준다. ‘To be continued’라는 자막을 깔아주면서.

미국 법정 드라마를 유심히 보자. 유능한 변호사는 재판의 초반에 사건이나 피고에 대해 자신이 알고 있는 정보를 다 드러내지 않는다. 재판이 진행되면서 배심원들이 추가적인 정보를 들으며 전체 그림을 그릴 수 있도록 조금씩 조금씩 공백을 남기며 얘기를 이어간다. 이는 게슈탈트 심리학의 지각원리 중 ‘폐쇄성(Closure)의 법칙’으로도 설명된다. 사람들은 여러 가지 개별 요소를 보았을 때 개별 요소가 여러 개 있다고 생각하지 않고 쉽게 알아볼 수 있는 단일 패턴으로 지각하려는 경향이 있다. 

옆의 팬더 그림은 완결된 그림이 아니다. 사실 다양한 도형이 모여 있는 것이지만 사람들은 공백이 있는 부분까지도 완결된 것으로 무의식적으로 지각하고 팬더로 보게 된다. 끊어지거나 불연속적인 부분들을 이어 붙여서 하나의 형태로 인식하는 것이다. 그러니까 완전히 완결되지 않은 상태로 끝을 내면 더 강하게 지각되고 강렬하게 기억에 남게 되는 것이다. 

제품 비주얼을 완성되지 않은 형태로 보여주면서 일관성 있는 캠페인을 벌이는 ‘앱솔루트’ 보드카도 자이가르닉 효과의 응용사례에 해당한다. 불완전한 상을 사람들은 완전한 것으로 인식하려 하며 그를 통해 메시지의 처리수준을 높이는 것을 활용한 것이다.

앱솔루트 보드카의 각국 광고.

누군가에겐 '악몽'이 되는 자이가르닉 효과

자이가르닉 효과는 일을 하다가 뒷마무리가 제대로 되지 않으면 찜찜한 마음이 오랫동안 가시지 않는 차원에만 머물지 않는다. 자이가르닉 효과가 힘든 사람들을 더 힘들게 만드는 경우가 있다. 군대 제대 후 다시 군대에 끌려가는 꿈을 꿔 본 사람들이 많다. 그 사람들에게는 악몽을 꾸는 그 때까지는 군생활이 마음속에서 완전히 마무리되지 않은 것이다. 그러기에 악몽으로 반복된다. 

군대에 다시 가는 꿈은 어찌 보면 애교에 속한다. 외상 후 스트레스 증후군(PTSD)을 앓는 사람들한테 자이가르닉 효과는 훨씬 더 끔찍하게 작용한다. 무서운 재난이나 사고 혹은 심각한 폭행 등의 피해를 당했을 때, 이 기억은 좀처럼 지워지지 않는다. 반복적으로 악몽을 꾸게 된다. 벌컥 벌컥 놀라고 감정의 기복이 통제되지 않게 된다. 심리적 충격이 너무 커서 어떻게 해도 완전히 ‘마무리’가 잘 안 되기 때문이다. 

스스로는 끝났다고 생각하려고 노력하더라도 특히 본인이 당한 일에 책임이 있다고 생각되는 사람이나 단체가 응당 지어야 할 책임을 지지 않았다고 생각될 때 이러한 악몽은 계속해서 반복되기 마련이다. 전혀 마무리가 안 되었고 그렇기에 도저히 다음 단계로 나아가지 못 하기 때문이다. 

자이가르닉 효과의 끔찍함에서 벗어나는 길은 무기력하지만 마음에서나마 마무리를 짓도록 노력하는 것이다. 큰 사고를 당한 사람들끼리 서로를 부둥켜안고 “다 끝났다. 이제 괜찮다.”라고 위로하는 것이 바로 그 경우다. “그 일을 인생에서 떠나 보내고 다 용서해라”라는 맥빠진 조언도 마음속에서라도 마무리를 지으라는 얘기다.

잘 끝내야 잊을 수 있다

자이가르닉 효과를 종식시키기 위해서는 마무리가 필요하다. 싱가포르 국립대학의 연구사례다. 80명의 학생을 대상으로 최근에 겪은 가장 가슴 아픈 이별에 대해 써 보라고 시켰다. 한 그룹에게는 그 글을 과제로 제출하라고 하고 다른 그룹에게는 봉투에 넣어서 아예 봉해버리라고 했다. 마음 아픈 기억을 긍정적으로 바라보게 된 집단은 자신이 쓴 글을 스스로 봉인한 집단이었다. 봉인하는 행위가 과거의 문제를 마무리하고 새로운 단계로 나아가는 것처럼 스스로에게 지각되기 때문이라고 설명된다. 그렇다. 어떻게든 마무리 지어져야 자이가르닉 효과에서 벗어 날 수 있다. 책임져야 할 사람이 상응하는 책임을 진 것으로 생각되어야 우리는 마무리를 짓고 다음 단계로 접어들 수 있게 된다. 

생각해보자. 일제 식민지 시대의 반민족 친일행위자의 경우는 어떠한가? 오랜 세월이 흘렀지만 그 문제가 마무리가 지어 졌을까. 그래서 국체도 바뀌었고 정권도 바뀐 것처럼 그 문제도 이제는 종결되었고 그래서 새로운 단계로 접어들었을까. 세월호는 어떠한가? 피해자는 자이가르닉 효과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이를 위해선 마무리 되었다는 확신이 필요하다. 피해자끼리 서로를 위로하며 다 끝났으니 이제 괜찮다고 하는 것도 소극적인 마무리이지만 일정 정도 필요하기도 하다. 피해자가 스스로 마무리를 지으려는 노력은 아름다운 일이다. 

2015년 4월 세월호 참사 1주기를 맞아 유가족들이 피해를 돈으로 보상하려는 정부 시행령안 폐기를 요구하며 광화문광장에서 삭발을 하고 있다. 세월호 참사로 응어리진 마음은 책임을 져야할 사람이 책임을 지는 단계를 지나야 풀리기 시작할 것이다.

문제는 반대편에 있다. 책임을 져야 되는 사람들이나 가해자로 여겨지는 사람들이 “이제 끝났으니 더 이상 신경 쓰지 않으셔도 된다”고 말하는 건 자이가르닉 효과를 극복하는데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가해자들도 대놓고 “다 끝난 일이다”라고 우기기는 쉽지 않다. 아직 다 끝나지 않았음을 모르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가해자의 커뮤니케이션 스킬은 정교하다. "끝났다" 말하지 않고 이미 끝난 것으로 기정사실화 한다. 피해자의 주장을 진부한 옹고집으로 인식시키려고 자원을 투입한다. 대표적인 표현이 “지겹다. 도대체 언제적 일인데...”라고 말하거나 “피로감이 쌓인다”라고 말하는 것이다. 어디 사람만 그러한가. 인용인 척 하면서 자신들의 주장을 드러나게 써대는 일부 언론도 자유롭지 않다.

그 어떤 이념의 순수성보다 이 시대에 필요한 것은 ‘지치지 않는 삶의 태도’다. 영화 <변호인>의 양우석감독 말이다. 그렇다. 지치지 말아야 한다. 끝날 때 까지는 끝난 것이 아니다. 이제 슬슬 마무리가 되어간다 싶어 잊어줄 만하면 잊지 못 하게 만들어 주는 사람들이 있어 자이가르닉 효과는 지금도 위력을 떨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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