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로 가다’에 담긴 아픈 현대사

  • 기자명 정재환
  • 기사승인 2017.12.19 02: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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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로 가다’는 죽음을 뜻하는 말이다. 어원사전에서는 ‘골’을 ‘관(棺)’을 뜻하는 옛말로 보고 있다. 만약 ‘골’을 ‘棺’의 뜻으로 보면, ‘골로 가다’는 ‘관 속으로 들어가다’가 된다. 죽어서야 관 속으로 들어가므로 ‘죽다’라는 비유적 의미로 발전했다고 본 것이다. 그러나 소설가 이재운은 ‘골로 가다’가 비교적 최근에 생긴 표현이기 때문에 관(棺)을 뜻하는 옛말 ‘골’에 어원을 둔다고 보는 것은 적당하지 않다는 견해를 밝혔다. (우리말 숙어 1000가지)

글쓴이가 진행하고 있는 YTN '재미있는 낱말풀이'에서는 골이 관을 의미하므로 ‘골로 가다’는 ‘관으로 들어가다’ 즉 ‘죽는다’는 의미라고 소개하였으며, ‘고택골로 가다’라는 말이 줄어서 ‘골로 가다’가 되었다는 설도 전했다. 고택골은 지금의 은평구 신사동에 해당하는 마을의 옛 이름인데, 이곳에 공동묘지가 있었다. 그래서 ‘누군가 죽어서 고택골로 갔다’라고 표현했다는 것이다. (YTN '재미있는 낱말풀이')

이에 대해 충북대의 조항범 교수는 ‘고택골로 가다’에 얼마든지 ‘죽다’라는 비유적 의미가 생겨날 수 있지만, ‘고택골로 가다’에서 ‘고택’이 생략돼 ‘골로 가다’가 될지 의심스럽다고 하면서 ‘골로 가다’의 ‘골’은 ‘곡(谷)’의 뜻이 아닐까? 사람이 죽으면 대체로 깊은 골짜기에 묻혔고 또 늙고 병들면 먼 골짜기에 버려졌기 때문이라고 추정했다. (문화일보, 조항범 교수의 어원이야기)

방송에서는 골이 관이자 골짜기이며, 고택골의 준말이라고 소개했다. 소설가 이재운은 골이 관에서 왔다는 설에 의혹을 제기했으며, 조항범 교수는 고택골이 골이 되었다는 설에 의문을 품으며, “‘골로 가다’는 ‘뒈지다’ ‘거꾸러지다’와 같이 속된 말이어서 함부로 쓸 수 없다. ‘돌아가다’ ‘눈을 감다’ ‘숨을 거두다’ 등과 같은 좋은 우리말 표현이 있다.”고 했다.

따라서 골은 ‘관’에서 온 것이 아니고, ‘골짜기(골)’에서 왔다고 봐야 할 것이다. 표준국어대사전에는 골짜기와 함께 골이 올라있다. 골짜기는 “산과 산 사이에 움푹 패어 들어간 곳.”이다. 안정효의 소설 '하얀 전쟁'에는 “공중에서는 관측이 안 되는 깊숙한 골짜기에 자그마한 폭포가 있었고”라는 표현이 나온다. 마찬가지로 “설악산은 골이 깊고 경치가 빼어나기로 유명하다”는 예문도 제시돼 있다.

그런데 골은 자연을 가리키는 말로만 쓰이지 않는다. ‘가슴골’이란 말은 “가슴 한가운데 오목하고 길게 팬 부분”을 가리킨다. 산과 산 사이가 움푹 팬 것처럼 젖무덤과 젖무덤 사이가 움푹 들어갔기 때문에 ‘가슴+골’이 되었다. 그런가 하면 인간관계를 나타내는 관용적 표현으로서 “그들은 화해하기 어려울 정도로 골이 깊어졌다.”라고도 말할 수 있다.

글쓴이는 ‘골로 가다’는 속된 표현이니 ‘돌아가다’와 같은 표현을 사용하자는 제안에 찬성한다. 다만, 뭔가 중요한 빠진 것이 있는 것 같아 사족을 단다. 소설가 이재운은 왜 이 말이 ‘비교적 최근에 생긴 표현’이라고 했을까?

“간밤에 김 생원이 돌아가셨어”

“에휴, 골로 가셨구만.”

좀 이상하다. 굳이 골로 갔다고 맞장구 칠 필요가 없다. 이런 식으로는 거의 쓰지 않는다. 일상에서 ‘골로 가다’라는 표현은 상대를 협박(?)할 때 자주 쓴다. “너 자꾸 까불면 골로 가는 수가 있다.” “골로 가고 싶니?” “저런 쓰레기들은 다 골로 보내야 돼.” 속된 표현을 넘어 공포와 전율을 느낀다. 그러면 왜 이런 식으로 표현하게 되었을까? 자세한 설명을 생략한 소설가 이재운이 말한 ‘최근’은 한국전쟁을 전후한 시기일 것이다.

해방 후 좌우의 대결 속에서 스러져 간 국가폭력의 희생자들, 즉 1948년 4월의 제주4.3항쟁, 한국전쟁 시기의 보도연맹사건, 거창양민학살사건과 같은 천인공노할 역사의 현장에서 무고한 민간인들이 좌익으로 몰려 골짜기에 끌려가 죽임을 당했거나, 학살당한 후에 골에 버려졌다. 실제 좌익도 있었지만, 대다수의 희생자들은 억울하게 목숨을 잃었다. 한 예로 대구·경북 지역에서 3만 명의 보도연맹원이 죽었는데, 그 중 실제로 좌익은 5분의 1이었다. 설령 좌익일지라도 재판 없이 처형한 것은 학살이었다.

부역혐의자들이 자신의 무덤을 파고 있다. 출처: 다음스토리펀딩 (https://storyfunding.daum.net/episode/23761)

사건을 저지른 불량 정권은 그들의 만행을 소리 없이 덮고 싶었겠지만, 인구에 회자된 ‘골로 가다’라는 표현이 비극의 현대사를 증언하고 있다. 우리가 무심히 쓰는 ‘골로 가다’는 무고한 희생자들의 아픔을 끌어안고 있다. 어원 분야의 전문가들이 긴 역사에서 비교적 ‘최근’에 널리 퍼진 이 말의 사연을 굳이 설명하지 않은 것은 상기할 때마다 마음이 불편한 탓도 있겠지만, 오랫동안 강요(?)된 침묵의 시대를 통과한 까닭도 클 것이다.

‘골로 가다’는 속된 표현이므로 ‘돌아가다’, ‘숨을 거두다’와 같은 말을 쓰는 것이 좋지만 이 말에 담긴 역사는 절대 잊지 않아야 한다. 아름다운 자연의 일부인 깊은 ‘골’을 찾아가는 것은 좋지만, 인간관계의 ‘골’은 파지 않는 것이 좋다. ‘가슴골’에 대해서는 취향과 선호가 다를 수 있으므로 언급을 회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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