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바른 ‘개’ 사용법은?

  • 기자명 정재환
  • 기사승인 2018.01.17 07: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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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은 개해다. 무술년의 술(戌)이 개를 의미하기 때문인데, 황금개해라고도 하는 것은 ‘무(戊)’가 황색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어릴 적 동네 골목에서 자유롭게 뛰놀던 ‘누렁이들’이 바로 이 황금개의 선조들이었을까?

술 취한 주인이 쓰러져 자고 있는 곳을 노리는 화마를 막기 위해 강물에 뛰어들기를 반복했던 전라북도 임실의 충견 ‘오수개’를 비롯해 디프테리아에 걸려 죽어가는 놈 마을 사람들을 구한 알래스카의 썰매 개 토고와 발토, 일본 시부야역의 상징이 된 하치에 이르기까지 심금을 울리는 개의 이야기는 인류 역사의 한 장을 차지하고 있다.

용맹, 충직 같은 말은 개의 성품을 묘사할 때 어김없이 등장한다. 요즘에는 개를 친구 혹은 가족처럼 생각하는 이들도 무척 많은데, 개를 가족이라 여긴다면 굳이 친근하다든가 사랑스럽다든가 하는 표현을 들먹일 이유조차 없을 것이다. 개는 내 친구, 우리 가족, 내 인생의 동반자!

그래서일까? 요즘 사람들은 ‘개’를 언어생활에서도 지나치게 자주 사용한다. 무엇이 이 같은 상황을 촉발했는지는 정확히 파악할 수 없지만, ‘개망신’은 고전이고, 수년 전 티저 광고에는 ‘집 나가면 개고생이다’란 표현이 등장했었으며, ‘무시’보다 한결 강한 어감의 ‘개무시’란 말도 인구에 회자되고 있다. 폭발적인 ‘개 열풍’의 사례를 나열하면 끝이 없겠지만, 인터넷에서 찾은 몇 가지만 살펴보자.

‘개 정말 개매너더라.’ (‘개’는 ‘걔’의 오타임이 틀림없음.)
‘이번 시험은 정말 개 어려웠어.’
‘어쩜 그렇게 개무식할 수가 있니?’
‘박보검 정말 개 잘생기지 않았니?’
‘이 구두 개싸게 샀어. 개이득봤다.’
‘득템, 아니 개득템.’
‘이 집 된장찌개 진짜 개 맛좋아.’
‘오늘 온 강사는 보기 드문 개강사였어.’

 

좀 어리둥절하다. 아니, 나도 ‘개 어리둥절하다’고 해야 할까? 왜냐하면 본디 접사 ‘개’는 안 좋은 의미를 나타내고자 할 때 붙이는 말이다. ‘매너’와 ‘무식’ 앞에 ‘개’를 붙인 것은 기존의 사용법에서 벗어나지 않지만, 형용사 ‘어렵다’ 앞에 ‘개’를 부사처럼 사용한 것은 어색하다.

문제는 그 다음이다. 잘 생겼다는 것을 강조하기 위해 ‘개’를 사용했고, 물건을 싸게 잘 샀다는 표현에도 ‘개’가 들어갔다. 심지어 찌개 맛이 좋다는 것을 강조하기 위해 ‘개’를 사용했고, 이런 상황이다 보니, 마지막 ‘개강사’는 그 강사가 훌륭했다는 것인지, 아니면 개만도 못했다는 것인지 종잡을 수가 없다.

외국어에서도 이런 게 없지는 않다. 영어에서 ‘오 마이 갓(Oh my God)’은 좋을 때도 나쁠 때도 쓴다. 일본어에서도 ‘야바이(やばい)’란 말이 양쪽으로 다 쓰인다. 하지만 개 열풍에서 드러나는 것처럼 아무 데나 접사 혹은 부사로 쓰이지는 않고 그저 감탄사일 뿐이어서, 여러 다른 말들과 결합하면서 말을 복잡하게 만들지는 않는다. 그러니 문제가 더 복잡해지기 전에 올바른 ‘개’ 사용법을 확인해 보자.

희한하게도 언어생활에 등장하는 ‘개’는 대부분 부정적이다. 술만 먹으면 개가 된다는 말은 ‘행실이 형편없는 사람을 비속하게 이르는 것’이고, 왜놈의 ‘주구(走狗)’는 ‘앞잡이’를, ‘개 발싸개’는 발싸개 같지도 않은 보잘 것 없는 것을, ‘개 잡은 포수’는 쓸데없는 일을 해 놓고서 우쭐거리거나 멋쩍게 노는 자를 조롱한다.

이밖에도 ‘개 눈에는 똥만 보인다, 못된 개가 부뚜막에 먼저 올라간다, 개 팔자가 상팔자, 개 꼬리 삼 년 묵어도 황모 되지 않는다, 개만도 못하다, 개 짖는 소리하고 있네, 개 방귀 뀌는 소리하고 있네’ 등등 무수히 많은 표현들이 있다. 접사 ‘개’ 역시 모두 안 좋은 의미를 나타낸다. 표준국어대사전의 '개' 정의는 다음과 같다.

1. (일부 명사 앞에 붙어) ‘야생 상태의’ 또는 ‘질이 떨어지는’, ‘흡사하지만 다른’의 뜻을 더하는 접두사.

▶개금/개꿀/개떡/개먹/개살구/개철쭉

2. (일부 명사 앞에 붙어) ‘헛된’, ‘쓸데없는’의 뜻을 더하는 접두사.

▶개꿈/개나발/개수작/개죽음

3. (부정적 뜻을 가지는 일부 명사 앞에 붙어) ‘정도가 심한’의 뜻을 더하는 접두사.

▶개망나니/개잡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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