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양 위치가 중국? 엉터리 연구에 놀아난 한국

  • 기자명 기경량
  • 기사승인 2018.01.22 0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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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1월 19일(금) 여러 언론 매체에 흥미로운 기사가 동시에 실렸다. 어떤 수학자가 고려 시대 만들어진 평양 고지도를 위상수학으로 분석하여 당시 평양이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한반도 서북부의 평양이 아니라 중국의 요양시 궁장령구 일대라는 사실을 밝혀냈다는 내용의 기사였다. 필자가 확인한 바에 따르면 <한겨레>(수학으로 푼 고지도...'고려, 고구려 영토까지 통치했던 나라'), <국민일보>(최규흥 인하대 수학교육과 명예교수, 수학으로 우리나라 고지도 분석 논문 발표 ‘월간 인물’ 1월호 보세요) 외에도 <아주경제> <에듀동아> <디지털타임스> <경기신문> 등에 이런 내용이 실렸다. 기사 내용이 거의 동일한 것을 보면 문제의 수학자 측에서 보도 자료를 배포하였고, 각 언론사가 이를 무비판적으로 보도한 것으로 짐작된다. 문제는 그 내용이 그야말로 황당하기 이를 데 없는 수준이라는 점이다.

1월 19일에 한겨레는 한국 연구자들이 위상수학으로 고지도를 분석해 고려시대의 평양의 위치가 요양시 일대임을 밝혀냈다는 보도를 했다.

 

수학자가 고려시대 평양 위치를 밝혀냈다는 논문 발간

언론 기사의 내용을 보면 인하대학교 수학교육과의 최규흥 명예교수가 고지도를 분석하여 논문을 쓴 주인공으로 등장한다. 해당 논문의 제목은 「위상수학 교육과 묘청의 고지도 분석에의 응용」이며, 학술지인 『교육문화 연구』 Vol.23에 실렸다고 한다. 이 학술지는 인하대학교 교육연구소에서 발행하는 잡지이며 KCI 등재지이다. 필자는 이런 터무니없는 글이 검증 시스템에 의해 걸러지지 않고 등재지에 당당하게 실리고, 또 언론은 아무 생각 없이 보도 자료를 받아 적으며 홍보지 역할을 수행한 이 반지성적 사건에 큰 충격을 받았다.

그렇다면 과연 이 논문이 어떤 문제점을 가지고 있는지 팩트 체크를 해보자. 언론보도에서는 최규흥 명예교수가 주로 노출되었지만, 실제 이 논문의 주저자는 군산대학교 수학과의 정택선 교수이다. 최규흥 명예교수는 교신저자로 이 논문에 참여하였다. 이 논문의 서론에는 이 연구를 수행하게 된 계기를 다음과 같이 밝히고 있다. 논문 저자는 2017년 8월 6일 ‘묘청의 서경 평양성 고지도’를 우연히 발견하였다고 한다. 이를 북한 평양의 지도를 찾아서 비교해본 결과 이 고지도는 북한의 평양을 그린 게 아니라는 점을 ‘위상수학적인 감각’으로 금방 확인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고려는 압록강 이남의 조그만 영토를 가졌던 소국이라고 인지해 왔다. 그런데 2017년 8월 6일 묘청의 서경 평양성 고지도를 우연히 발견하게 됐다. 이 고지도의 둘레에 흐르는 강을 북한 평양의 대동강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하지만 이 지도가 나타내는 지역은 북한 평양이 아니고 지도가 가리키는 지역은 요양시 궁장령구라는 것을 이번 논문에서 증명했다.”

언론 보도에서 최규흥․정택선은 두 개의 고지도를 제시하였다. 그중 그림 1)은 고려 태조 때의 서경 평양부라고 하였고, 그림 2)는 묘청이 난을 일으킬 당시 인종에게 바친 서경 평양성의 위상도라 하였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이는 전혀 사실이 아니다.

 

최규흥 정택선 교수가 작성한 논문에는 이들 지도가 고려시대 때 평양을 그린 것으로 나온다. 그러나 이 지도는 조선 후기에 작성된 것이다.

 

논문 속 고려시대 평양지도는 확인 결과 조선 후기로 밝혀져

그림 1)은 고려 초의 지도가 아니라 조선 후기인 1800년대 초에 제작된 『광여도』의 평양부 지도이다. 서울대학교 규장각 한국학연구원 홈페이지에서 누구나 쉽게 확인이 가능하다. 그림 3)은 필자가 직접 규장각 한국학연구원에서 다운받은 지도이다. 붉은 색 원을 보면 지도에 찢어진 부분이 보이는데, 그 위치가 그림 1)과 동일하다. 즉, 최규흥․정택선이 활용한 이 지도는 서울대학교 규장각 소장본이 분명하다. 서울대학교 규장각에서는 『광여도』의 서지 사항을 친절하게 제시하고 있으므로 이 지도를 고려 시대의 것으로 헛갈릴 여지는 전혀 없다. 그렇다면 최규흥ㆍ정택선은 도대체 무엇을 근거로 이 지도가 고려 태조 왕건 때의 것이라고 주장한 것인지 알 수 없다.

그림 2) 역시 고려시대 지도가 아니다. 이 논문의 핵심 자료는 바로 이 지도였는데, 흥미로운 것은 출처이다. 앞서 언급하였듯이 최규흥ㆍ정택선이 2017년 8월 6일 우연히 발견하였다고 하는 ‘묘청의 서경 평양성 고지도’가 바로 이 지도이다. 그런데 이들이 이 지도를 발견했다는 곳이 특이하다. 규장각이나 장서각 같이 고문헌이 가득한 수장고가 아니었다. 논문에서 서술된 바에 따르면 2011년 출간한 『한국사를 움직인 100대 사건』(청아출판사)라는 대중 역사책이었다. 논문 핵심 자료의 출처가 대중 역사서라는 점은 매우 당혹스럽지만, 그래도 출처가 그렇다 하니 『한국사를 움직인 100대 사건』을 구해 조사를 해 보았다.

 

19세기 초에 그려진 광여도가 해당 논문에 쓰인 지도와 일치하는 것으로 밝혀졌다.

 

고려대학교 소장 '서경전도'가 고려시대 지도로 둔갑

확실히 해당 책에는 ‘묘청의 서경 천도’를 다루는 챕터에 보조 자료 격으로 문제의 지도가 실려 있었다. 그림 4)가 바로 그것이다. 하지만 지도 옆에 있는 설명을 보면 저자인 이근호는 이 지도가 ‘조선 시대에 그려진 지도’라고 명확히 제시해 놓았다. 어디에도 이 지도가 고려 시대의 것이라는 내용은 없다. 그보다 눈에 띄는 것은 이 지도의 원출처가 ‘고려대학교 박물관’이라는 점이다. 어처구니없게도 이 지도는 ‘고려 시대’에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고려대학교’ 소장의 지도였던 것이다. 고려대학교 박물관 소장품 목록에는 실제로 ‘서경전도’라는 이름으로 이 지도의 존재가 확인된다.

 

책 <한국을 움직인 100대 사건>에 실린 '서경의 모습' 지도 설명에는 "조선시대에 그려진 지도"라고 분명히 적혀 있다.

 

여기서 잠깐 최규흥ㆍ정택선이 이 논문을 쓴 목적을 상기해 보자. 이들의 목적은 고려 시대에 만들어진 고지도를 수학적으로 분석하여 고려 시기 평양이 지금의 평양이 아니라 중국 요양시 일대임을 증명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그 논증에 사용한 ‘고려 시대 고지도’ 2개가 사실은 모두 고려 시대와 무관한 조선 후기의 것이었다. 황당하기 이를 데 없는 일이다. 이 지점에서 이 연구의 가치는 이미 파탄이 났다고 할 수 있다. 위상수학이고 뭐고, 이후 작업은 아무런 검토 가치가 없는 데이터 낭비에 불과하다고 하여도 과언이 아니다.

나는 대학 교수직까지 가지고 있는 최규흥ㆍ정택선이 이런 말도 안 되는 행위를 한 이유를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 최대한 선의로 보아 준다면 무지의 소산으로 보아 줄 수 있겠지만, 냉정하게 객관적으로 따져본다면 자료 조작에 해당하는 행위라고 밖에 볼 수 없다. 당장 그들 스스로 밝힌 출처에 ‘조선 시대에 그려진 지도’라고 명시되어 있는 것을 어떻게 변명할 것인가.

이 논문의 심각성은 이미 다 드러날 대로 드러난 상태이지만, 최규흥ㆍ정택선이 주장하는 대로 정말 그림 1)과 그림 2)가 지금의 평양이 아닌 중국의 요양 지역을 그린 것인지 조금 더 확인해 보도록 하자. 그림 5)는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에 소장된 18세기 제작 기성도와 고려대학교 박물관 소장 서경전도를 비교한 것이다. 비교해 보면 두 지도가 같은 곳을 그린, 같은 유형의 지도임을 단번에 알 수 있다. 최규흥ㆍ정택선은 이 지도가 지금의 평양이 아니라 중국 요양 일대를 그린 것임을 위상수학을 통해 증명해 냈다고 하였지만, 당연히 설득력 없는 주장이다. 이 지도가 어디를 그린 것인지를 확인하는 데는 이름도 거창한 '위상수학' 씩이나 되는 건 필요 없다. 그냥 눈만 달려 있으면 된다.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에 소장된 18세기 제작 '기성도'(왼쪽)와 고려대학교 박물관 소장 '서경전도'. 두 지도 모두 평양의 특징이 잘 드러나 있다.

 

장안성ㆍ바둑판 구획 등 평양도심 특징 그대로 드러나

조선시대에는 평양 지역을 그린 고지도가 엄청나게 많이 존재한다. 그리고 거기에는 공통적으로 표현되는 평양의 지역적 특성이 있다. 첫째는 그려져 있는 성의 형태이다. 평양 지역에는 몇 겹에 이르는 성벽이 조성되어 있는데, 이것은 바로 고구려 때 조성한 장안성의 흔적이다. 이 성벽은 조선 시대는 물론 일제 시기까지도 잘 남아 있었다. 지금은 평양 지역의 도시화와 함께 외곽성 부분이 많이 헐렸지만 여전히 일부 성벽은 형태를 보존하고 있다.

장안성은 전체 둘레가 23㎞ 가량이며, 북성, 내성, 중성, 외성의 4개 구역으로 이루어진 독특한 형태를 띠고 있다. 조선 후기에는 평양 지역을 그린 병풍 그림이 크게 유행하여 많이 제작되었기 때문에 이 역시 참고가 된다. 그림 6)의 경우 시계 방향으로 90도 회전하여 남쪽이 왼쪽, 북쪽이 오른쪽에 있는 형태로 제작한 병풍도다. 앞의 그림들과 비교해 보면 역시 같은 곳을 그린 것임을 쉽게 알 수 있다. 여기에는 평양성의 주요 장소들이 세세하게 다 묘사되어 있는데, 예를 들면 평양성의 정문 역할을 하는 대동문을 비롯하여, 연광정, 부벽루, 영명사, 을밀대 등이 모두 확인된다. 지금도 북한 평양에 가면 고스란히 남아 있는 건축 유적들이다.

 

 

평양 지역을 나타내는 두 번째 특성은 가장 남쪽에 위치한 외성 지역에 보이는 바둑판 형태의 가로 구획이다. 이것은 고구려 때의 도시 흔적이다. 고구려에서는 장안성을 건설하며 거주지에 방형의 가로 구획을 조성하였는데, 그 흔적이 조선시대에도 선명하게 남아 있었다.

다만 조선 시대 사람들은 이 가로 구획 흔적이 고구려의 도시 흔적이라는 것을 알지 못하였기 때문에 고조선 때 기자(箕子)가 와 정전제를 시행한 흔적이라고 생각하였다. 조선시대 평양의 별칭이 '기성(箕城)'인 것이 바로 이 때문이다. 외성 지역에 보이는 바둑판 형태는 평양 지역의 트레이드 마크이다. 따라서 조선 시대 평양 지역을 그린 그림에는 거의 반드시라고 해도 좋을 정도로 이 모습이 묘사되어 있다.

그림 7)에서 확인되다시피 일제시기까지도 외성 지역에는 바둑판 모양으로 가로 구획이 선명하게 남아 있었고, 이는 지금의 평양 시가지에도 그 흔적을 남기고 있다. 최규흥․정택선의 엉뚱한 주장과 달리 그들이 검증에 이용한 고지도는 중국 요양 지역이 아니라 지금의 한반도 평양 지역을 그린 것임이 분명한 것이다.

 

정부 지원받은 황당한 연구, 검증없는 언론보도가 빚어낸 참사

이상에서 살펴보았듯 최규흥․정택선이 행하였다는 자칭 '수학적 증명'은 처음부터 끝까지 오류로 점철된, 학문적으로 전혀 가치가 없는 작업이다. 이런 황당하고 무가치한 작업의 결과물이 아무런 제재 없이 등재지에 실렸다는 점에 개탄을 금하기 어렵다. 논문 심사가 그야말로 요식에 그쳤거나, 최규흥ㆍ정택선과 동일한 주장을 하는 이들이 맡았을 가능성을 생각해 볼 수 있다. 이 논문은 ‘정부(교육부)의 재원으로 한국연구재단의 지원을 받아 수행한 기초연구사업’임을 적시한 채 공간되었다. 적어도 국민의 소중한 세금이 이런 식으로 낭비된 것은 확실히 짚어야 할 부분이 아닌가 싶다.

기자들 역시 더 이상 이런 엉터리 선전에 농락되지 않았으면 좋겠다. 쇼비니즘에 기반하여 이런 비상식적인 행위를 일삼고 있는 이들은 언론 지면을 자신들의 황당무계한 주장을 선전하는 광고 전단지 정도로 이용해 먹고 있다. 기자들에게 보도 자료를 뿌리고, 언론들이 별 생각 없이 이를 받아 보도하면 이것을 대대적으로 홍보하여 학교 내에서 입지를 다지는 데 써 먹고 있는 것이다. 언론인이라면 모욕감을 느껴야 마땅한 상황이다.

 

기경량 팩트체커는 한국 고대사 전공자이다. '고구려 왕도 연구'로 박사 학위를 받고, 가천대학교, 강원대학교, 서울대학교 등 여러 대학교에서 강의를 하고 있다. 사이비 역사에 대응하기 위해 결성된 '젊은 역사학자 모임'에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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