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림픽스포츠 게임화는 왜 어려운가

  • 기자명 이경혁
  • 기사승인 2018.02.06 0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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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털게임에서 스포츠는 흔히 다뤄지는 소재다. 한국에서도 폭발적인 인기를 끌었던 플레이스테이션의 ‘위닝 일레븐’ 시리즈, 그리고 그와 함께 쌍벽을 이루는 ‘FIFA’ 시리즈가 대표적인 스포츠게임이다. 축구는 세계에서 가장 인기있는 스포츠다. 비단 카메라로 피치(구장)를 비춰주는 플레이방식 뿐 아니라, 직접 구단을 운영하고 선수를 영입, 훈련하는 감독 모드인 ‘풋볼 매니저’ 시리즈같은 시뮬레이션 장르로 다뤄지는 것이 게임 속 축구다. 

스포츠 규칙과 양식, 게임에서 구현하기 쉬워

대형 게임사인 일렉트로닉 아츠는 아예 EA Sports라는 별도의 브랜드를 통해 엄청난 수의 스포츠 게임들을 지속적으로 선보이고 있다. 게임 인트로에 그 유명한 ‘이 에이 스뽀ㄹ스~’ 라는 내레이션으로 유명한 이 시리즈는 축구, 농구, 야구, 아이스하키, 미식축구에 이어 최근에는 WWE프로레슬링과 UFC종합격투기까지도 게임화하여 출시하고 있다.

디지털게임이 스포츠를 자주 다루는 이유는 한 두 가지가 아니겠지만, 가장 근본적인 이유는 스포츠가 이미 게임의 양식들을 품은 채 현실에 존재한다는 점일 것이다. 현실의 규칙이 아닌 스포츠라는 종목 안의 규칙에 의해 지배받는 가상의 공간이 스포츠 안에 존재한다. 농구 규칙은 꽤나 보편적으로 알려져 있기 때문에, 게임제작사들은 굳이 새로운 규칙을 만들고 설명하기보다는 이미 존재하는 농구의 규칙을 게임 공간 안에 구현함으로써 보다 쉽게 게임을 제작할 수 있다는 장점을 얻는다.

인기 스포츠게임 하이퍼올림픽 게임 장면

그래서 디지털게임은 그 초기부터 적잖은 스포츠 게임들을 다뤄 왔다. 한국에서의 게임 경험을 돌이켜보면, 80년대 오락실을 경험한 세대들은 인기 콘텐츠였던 ‘하이퍼 올림픽’(국내에선 주로 ‘88올림픽’으로 알려짐) 시리즈를 기억할 것이다. 100미터 달리기, 멀리뛰기 같은 필드 종목들을 그려낸 오락실 게임은 각종 슈팅 게임과 경쟁을 펼치며 당당히 하나의 장르로 자리 잡았다. 90년대부터는 좀더 다채로운 스포츠 게임들이 대중의 눈길을 사로잡았는데, 축구의 ‘세이부 축구’ 나 농구의 ‘런 앤 건’, 그리고 배구 게임의 고전인 ‘파워 스파이크’ 등이 지금까지도 회자되는 대표작들이다.

'너무 쉽거나 혹은 어렵거나' 올림픽 게임의 딜레마

그런데 ‘하이퍼 스포츠’ 처럼 올림픽 종목을 다루는 게임은 프로화된 스포츠를 다루는 게임들에 비해 질적인 면이나 양적인 면에서 모두 열세인 편이다. 축구, 농구, 야구, 테니스, 골프 등 프로화된 스포츠들의 경우 매년 새로운 버전이 출시되는 반면, 올림픽 게임의 경우는 4년이라는 올림픽 주기보다도 뜸하게 출시된다.

왼쪽부터 농구게임 런앤건과 배구게임 파워스파이크

그나마 다뤄진다 해도 게임 속의 스포츠가 원래의 스포츠에 대한 충실한 묘사도를 가졌는지에 대한 의문도 적지 않다. 위에서도 잠깐 언급했던 고전 게임인 ‘하이퍼 올림픽’에 등장하는 육상 필드 종목은 나름 실제 육상의 여러 규칙들을 가져오고, 경기의 기록달성에 핵심이 되는 요소들을 적절하게 게임 인터페이스에 녹여냈음에도 불구하고 육상 경기의 충실한 묘사라고 부르기에는 근본적으로 어려운 부분들이 존재한다.

‘하이퍼 올림픽’의 속편인 ‘하이퍼 스포츠’에서는 좀 더 이런 난점이 극대화된다. ‘하이퍼 스포츠’의 종목 중 하나로 등장하는 양궁의 경우, 실제 양궁의 느낌보다는 간단한 미니 게임에 더 가까운 구성을 보인다. 과녁판이 스크롤하고, 적절한 타이밍에 버튼을 눌러 화살을 중앙에 맞추는 이 게임의 방식은 현실의 양궁과는 전혀 관계가 없는 방식이다. 올림픽 종목 시리즈를 다루는 게임들의 경우는 그 스포츠를 게임화했다기보다는 해당 스포츠로부터 모티브를 가져온 별도의 미니 게임이라고 보는 것이 더 타당하다.

이런 모습들은 단지 게임이 육상, 양궁을 대충 다뤄서 발생하는 문제일까? 꼭 그렇다고 단언하기 어려운 사례들도 있다. 이번에 이야기할 게임들은 앞선 ‘하이퍼’ 시리즈와는 반대의 측면에서 스포츠를 다룸으로써 오히려 괴이한 게임으로 남아버린 사례들이다.

‘제이니 톰슨의 마라톤’(Janey thomson’s Marathon) 이라는 플래시 게임은 고전 아케이드 스포츠 게임의 그래픽과 사운드를 고스란히 살려 만든 마라톤 게임이다. 실제 마라톤처럼 게임은 총 42.195km를 달려야 하는데, 키보드의 좌/우 커서키를 양 다리처럼 번갈아 리듬있게 누름으로써 달려가는 것을 기본적인 게임 구조로 갖추고 있다. 문제는 이 게임이 가진 쓸데없는 현실성인데, 게임 속의 42.195km를 완주하기 위해서는 실제 플레이어가 약 2시간 이상 커서 키를 연타해야 한다는 점이었다.

육상을 다루는 ‘QWOP’(왼쪽) 와 ‘제이니 톰슨의 마라톤’. 두 게임 모두 극도의 피지컬을 요구한다.

끝까지 플레이하면 '용자 취급'을 받는다. 유튜브에 공략 영상이 올라오기도 하는 일종의 괴짜 게임으로 자리잡은 ‘제이니 톰슨의 마라톤’은 어떤 면에서는 마라톤 종목을 대표하는 속성 중 하나인, 2시간 이상의 지구력이라는 점을 게임 안에 담아낸 작품이다. 문제는 실제로 2시간동안 키보드를 연타하는 일이 도대체 무슨 흥미로움을 일으키는지 알 수 없다는 점이다. '제이니 톰슨의 마라톤’은 마라톤의 중요한 속성을 담아냈다고는 하지만 그것이 게임으로서의 의미를 만들어내지 못했다는 점에서 시사하는 바가 크다.

또 하나의 사례는 육상 종목을 일반적인 생각 이상으로 난이도를 높여 깊게 파들어가버린 경우다. 2017년 대히트를 기록한 ‘항아리 게임’(원제는 ‘Getting over it with Bennet Foddy’) 의 제작자로 유명한 베넷 포디의 스포츠 게임 ‘QWOP’는 플래시로 만들어진 100미터 단거리 육상경기 게임이다.

제목인 QWOP는 게임 조작에 사용되는 네 개의 키를 가리키는 말이다. 게임이 시작되면 플레이어는 이 네 개의 키를 적당히 조작하여 화면 속의 육상선수를 달리게 만들어야 한다. QW는 허벅지 근육, OP는 종아리 근육을 조종하는 기능을 하며, 플레이어는 실제 달리기에 사용되는 다리 근육의 메커니즘을 반영했다는 게임의 룰에 따라 네 개의 키를 적당히 누르면서 캐릭터를 달리게 만들어야 한다.

실제로 해 보면 (링크) 어처구니없을 정도의 난이도때문에 혀를 내두르게 만든다. ‘QWOP’는 앞서 언급한 ‘제이니 톰슨의 마라톤’ 과 마찬가지로 지나치게 과도한 현실성 때문에 일반적인 스포츠 게임의 재미로부터 멀어진 사례에 속한다. 앞선 ‘하이퍼 스포츠’ 등이 스포츠를 대충 다뤘고, 뒤이은 두 게임이 스포츠를 과하게 묘사했다는 점에서 우리는 묘사의 세밀함 같은 부분이 비 프로 스포츠 게임이 잘 나오지 않는 문제의 원인이 아니라는 점을 생각할 수 있다

아마추어 스포츠의 게임화가 어려운 이유

다시 이번에는 가장 인기있는 프로 스포츠 게임인 축구 게임으로 돌아가 보자. 현대의 축구 게임을 다루는 방식은 크게 두 가지인데, ‘위닝 일레븐’, ‘피파’ 시리즈 등이 다루는 피치 위의 현장감있는 액션과 컨트롤을 다루는 방식과 ‘풋볼 매니저’ 처럼 선수단 운영, 전략과 전술을 다루는 방식이다. 선수를 직접 컨트롤하건, 아니면 감독의 입장에서 경기의 전략과 팀 구성을 짜건 상관없이 축구 게임의 인기는 여타 스포츠 게임 중에서도 하늘을 찌른다. 특정 스포츠 게임의 인기는 게임이 스포츠를 어떻게 묘사하느냐와는 무관하다는 뜻이다. 위에서 언급한 것처럼, 애초에 경쟁의 규칙이 오프라인 상에 이미 존재하는 스포츠를 게임화할 때 가장 중요한 지점은 바로 승패의 유무다.

승자와 패자가 명백히 갈리는 스포츠 종목은 프로화가 쉽다. 사람들은 승리의 짜릿함과 패배의 분노감이라는 급격한 감정의 변화를 즐기기 때문이다. 응원하는 팀의 승리를 고대하며 프로 스포츠 경기를 시청하는 것은 우리 팀이 질 수도 있다는 가정 하에서 유의미하다. 상대적으로 경쟁의 느낌이 드러나지 않으며, 실력 외에 운적인 요소의 개입이 구기종목 등에 비해 적을 수 밖에 없는 올림픽 종목들은 프로스포츠화가 어려웠던 것과 같은 이슈로 인해 게임화되기도 어렵다.

그래서 올림픽을 다루는 게임들은 대체로 미니게임 모음집 형태로 등장하며, 그나마도 큰 인기를 모으기 어려운 편이다. 당장 평창 동계올림픽을 코앞에 두고 있지만 관련 게임의 출시가 그다지 화제로 떠오르지 않는 이유도 그 때문이다.

동계스포츠 게임 불모지, '게임강국' 한국에 대한 아쉬움

사실 동계올림픽의 경우는 한때 오락실의 인기 게임에 속했던 하계올림픽에 비해 게임에서도 그리 주목받지 못했다. 그나마 히트했던 것이 ‘윈터 게임즈’ 와 ‘스키냐 죽음이냐’ 정도의 고전 게임이 전부이다. 최근에 꾸준하게 올림픽 게임 시리즈를 출시하고 있는 ‘마리오와 소닉 올림픽 시리즈’는 대표적인 올림픽 스포츠 게임이지만, 이 또한 앞서 이야기한 대로 스포츠를 모티브로 한 미니 게임 모음집으로서의 의미가 강하다. 물론 이런 미니 게임 모음집으로서의 재미는 상당한데, 특히 이 시리즈가 모션컨트롤러를 기반으로 하는 Wii와 같은 기기를 베이스로 한다는 점에서는 큰 강점이 되기도 한다.

동계올림픽을 다루는 메이저 타이틀은 사실상 ‘마리오와 소닉의 올림픽’ 시리즈 외에는 보기 드물다.

하지만 올림픽 스포츠의 게임화가 어렵다는 것이 그런 게임들의 출시가 불가능하거나 무의미하다는 의미는 아니다. 모든 게임이 메이저 장르여야만 하는 것은 아니며, 또 제작이 어려워 마땅한 대표작이 없다는 것은 다른 의미로 아직 아무도 정상의 경지에 다다르지 못한, 전인미답의 영역이라는 의미도 포함하기 때문이다.

제작의 가능성은 여러 가지다. 일종의 경영 시뮬레이션 방식을 이용해 선수선발, 훈련 등의 과정을 거쳐 평창에 참가하는 봅슬레이팀, 컬링팀 등의 이야기를 담아볼 수도 있을 것이다. 쇼트트랙 스케이팅의 전략적 측면에 포커스를 맞춘 게임도 제작이 불가능한 것은 아닐 것이다. 세계 최대의 동계스포츠 제전이 펼쳐지는 2018년 평창올림픽의 시점에서, 게임 강국이라 자부하는 대한민국이 스포츠 게임 출시나 흥행에 관한 소식을 만들지 못한다는 점은 조금 의아한 부분이기도 하다.

평창 올림픽을 홍보하고 준비하는 기간 동안 정부 예산 지원을 받은 여러 콘텐츠들이 제작된 뒤, 전 세계의 인터넷에 배포되어 온 과정을 본 적이 있었다. 때로는 콘텐츠의 낮은 퀄리티 문제로 인해 ‘예산을 어떻게 쓰는거냐’는 질타를 받는 걸 목격하기도 했다. 그런데 왜 평창올림픽을 주제로 한 게임 제작 및 배포 같은 아이디어는 올라가지 못했을까 하는 궁금증을 가졌다.

평창올림픽 공식 게임으로 지정된 ‘스팁: 윈터게임 에디션’. 그래도 게임 강국이라고 자부하는 나라에서의 동계올림픽에 국산 게임 출시 소식이 들려오지 않는 것은 여러모로 아쉬운 일이다.

1988년 하계올림픽 이후 간만에 국내에서 열리는 초대형 국제 스포츠 행사로서 2018년 평창 올림픽은 결코 작은 이벤트가 아니지만, 1988년의 경제부흥기와는 사뭇 다른 사회상황과 올림픽 이벤트 자체의 흥행력 감소, 북핵 이슈 등으로 인해 평창올림픽은 과거만큼의 이슈는 되지 못하는 듯 싶다. 하지만 게임과 e스포츠로는 전 세계에서 이름을 빼놓기 어려운 나라에서 열리는 동계올림픽 행사가 있는 해임에도 딱히 이렇다 할 동계올림픽 게임의 출시가 없었다는 점도 무척 이상해 보이지 않는가? 현재까지 유일해 보이는 평창 올림픽을 주제로 한 게임은 평창올림픽 공식 게임으로 지정된 ‘스팁: 윈터 게임 에디션’ 하나뿐이며, 국내 제작사가 아닌 유비소프트를 통해 출시된 게임이다. 게임강국으로 해마다 게임산업의 위상을 자랑하는 나라에서 동계올림픽이 열리는 상황이라면 능히 예상되는 흐름이 없다는 점은 여러 모로 아쉬운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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