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팩트체크] '김일성 초상화'는 북에서 어떤 대접받나

  • 기자명 김준일 기자
  • 기사승인 2018.02.12 02: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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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평창올림픽이 한창인 시점에 뜬금없이 '김일성 가면' 논란이 불거졌다. 이는 해프닝으로 밝혀졌지만 정치권과 보수언론에서 계속 논란을 부추기고 있어 한국 사회의 '북한 알레르기'를 여실히 보여준 사건으로 기록될 전망이다.

시작은 CBS 노컷뉴스 보도였다. 10일 CBS는 '김일성 가면 쓰고 응원하는 북한 응원단'이라는 제목의 사진을 올렸다. 

CBS의 최초사진 '김일성 가면 쓰고 응원하는 북한 응원단'

11일 이 사진은 큰 논란이 됐다. 북한의 올림픽 참여를 못마땅해 하는 야당과 보수층에서 반발했다. 그러자 통일부가 북측에 문의했고, 김일성 사진이 아님을 확인했다. CBS도 사진 제목을 '북한 배우 가면 쓰고'라고 고쳤다. 노컷뉴스는 오보에 대한 사과문을 게재했다.

공식 해명에도 야당들 "김일성 가면 맞다"

공식해명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야당은 문제제기를 이어갔다. 자유한국당 전희경 대변인은 논평에서 “누가 봐도 김일성 얼굴인데 통일부 눈에만 달리 보입니까? 이젠 최고 존엄이 흰 것을 검다하고 검은 것을 희다해도 믿어야만 하는 북한식 사고방식까지 우리가 주입받아야 합니까. 하기사 미남 운운하는 변명도 이유가 있어 보입니다. 어차피 저들에게 최고 미남은 김일성일 테니까”라고 주장했다. 

바른정당 권성주 대변인은 논평에서 “그 가면이 김일성인지 배우인지가 중요한 것이 아니다. 최고 존엄을 가면으로 만들 리 없다는 준비된 탈출구를 우리 정부가 지켜주었고 IOC는 함구하였다”고 주장했다. 이어 “이제 스포츠 경기장에 ‘배우’ 가면응원의 선례가 만들어졌다. 미국 팀 경기장에 오사마 빈 라덴을 닮은 배우 가면을, 우리 팀 경기장에 이토 히로부미를 닮은 배우 가면이 등장해도 ‘잘못된 추정’이라면 그만이다”라고 덧붙였다.

국민의당 김철근 대변인은 논평에서 "정부는 김일성 가면 응원에 대해서 ‘김일성이 아니다’ 하면서 방어하기에 급급하다. 우리 국민과 언론이 보기에 ‘김일성 가면’으로 인식하면 김일성 가면인 것이다. 국민정서를 고려한 응원이 되도록 적절한 조치가 필요한 일”이라고 밝혔다.

'김일성 가면'논란에 가장 적극적으로 참여한 정치인은 하태경 바른정당 의원이다. 하 의원은 정부의 공식 해명에도 불구하고 김일성 젊은 시절 사진을 페이스북에 올려 비교하며 가면이 김일성임을 주장하고 있다. 

하 의원은 “가장 중요한 본질은 ‘김일성을 연상시키는 가면을 남북 단일팀 응원도구로 쓴 것이 적절했느냐’이다. 통일부의 발표처럼 미남배우의 얼굴에 불과하다고 해도 그 ‘미남배우 얼굴’이 김일성을 연상시킨다는 점은 누구도 부인하지 못한다. 왜냐하면 북한 기성세대에게 최고의 미남 기준이 바로 ‘김일성’이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김일성 초상화는 북에서 어떤 대접을 받나

그러면 북한 응원단이 사용한 것은 정말 김일성 얼굴 사진일까? 북한에서 김일성 사진의 위상을 살펴보자.

위 동영상은 2003년 대구 하계 유니버시아드 대회에 참석한 소위 '북 미녀 응원단'의 모습니다. 김대중 대통령과 김정일 위원장이 2000년 남북정상회담에서 악수하는 사진이 담긴 플래카드를 본 북한 응원단이 통곡을 하는 장면이 나오다.  "어떻게 썩은 통나무에다가 모십니까" "비가 오면 우린 장군님 영상이 다 젖어진단 말입니다"라며 분개했다. 이들은 결국 김 위원장 사진을 고이 모시고 행진을 한다. 이 영상만 봐도 김일성 주석ㆍ김정일 위원장 사진이 어떤 대접을 받는지 쉽게 짐작할 수 있다. 

북한에서는 김일성 사진이 들어간 화폐를 찢거나 훼손해도 최고 존엄에 대한 불경으로 처벌을 받는다. 북한은 1979년 지폐부터 김일성의 얼굴을 넣었으나 2009년을 마지막으로 더 이상 새로운 지폐에 김일성 얼굴을 넣지 않고 있다. 그래서 2017년엔 북한 주민들이 김일성 초상화가 그려진 5000원 구권을 외면하고 있다는 소식도 나왔다. 나온지 오래 되어 낡거나 찢어진 게 많기 때문에 장사꾼들이 정치적인 처벌을 우려해 구권을 받길 꺼리고 있다는 것이다.

지난해 러시아 정부도 북한 관광에 나선 자국민들에게 김일성 김정일 얼굴이 나온 지폐나 출판물을 훼손하지 말라는 행동지침을 내렸다. 심지어 김일성 김정일 사진이 걸려 있는 곳을 촬영할 땐 두사람의 모습이 잘리지 않도록 해야 한다는 가이드라인까지 제공했다. 미국인 오토 웜비어가 호텔에서 선전물을 훔친 혐의로 노동 교화형을 받은 것을 의식한 것으로 추정됐다.

최고 존엄 김일성의 얼굴에 구멍을 뚫거나, 바닥에 떨어뜨리는 일은 북한에서는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심지어 조선일보도 김일성 가면이 아닐 것으로 판단했다. 북한에서 김일성은 신적인 존재이기 때문에 김일성 배지를 분실할 경우 정치범 수용소까지 각오해야 하기 때문이다. 위 사진을 보면 가면에 눈구멍이 뚫려있고 바닥에 떨어져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김일성 얼굴이었다면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위 영상에서 북한 응원단에 직접 가면의 정체에 대해 물었더니 "뭐긴 뭐냐, 일반 우리 고운 아이"라고 답을 했다. 게다가 이 가면이 쓰일 때 나온 노래는 북한의 '휘파람'이다. 이 노래는 남녀의 애정을 표현한, 일종이 '날라리' 노래로 김일성을 모실 때 절대 나올 수 없는 노래다.  

모든 정황 증거가 '김일성 가면'이 아닌 것이 명확함에도 보수 정치권은 김일성 가면으로 보려고 한다. 김일성을 닮은 것만으로도 부적절하다고 주장한다. 일부 보수 언론도 사실관계를 파악했음에도 야당의 주장을 인용해 '평양올림픽 논란'을 부추기고 있다. 사실을 말해줘도 믿지 않는 사람들, 이들은 무엇을 원하고 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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