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란의 '김일성 가면' 빅데이터로 검증해보니

  • 기자명 최민규
  • 기사승인 2018.02.14 23: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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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창 동계올림픽의 ‘김일성 가면’ 논란에 대해 조선일보는 12일자 만물상 칼럼을 통해 다음과 같은 ‘김일성 가면 식별법’을 소개했다.

“인터넷에서 누군가 김일성 가면인지 아닌지 알아보는 식별법을 제안했다고 한다. 북 응원단 앞에서 그 가면을 태워보면 안다는 것이다. 실행은 불가능하겠지만 답은 바로 나올 것 같기도 하다.

북한에서 김일성은 신격화된 존재이니 정말 김일성 가면이 맞다면 ‘신도’들인 북한 응원단은 이에 저항할 것이라는 얘기다. 일본 에도막부 시절 기독교인을 가리기 위해 성상을 밟게 했던 ‘후미에'(성상 밟기)의 재연이다.

답이 바로 나올지는 모르겠지만, 비유하자면 입증 책임을 피의자에게 돌린다는 점에서 유력 매체가 지면에서 소개할 방법으로는 적절치 않다. 역사적으로 양심(혹은 신앙)의 자유 문제를 촉발시켜 왔으며, 칼럼에서 지적하고 있듯이 실행도 불가능한 방법이다.

보다 나은 식별법이 있다. 마이크로소프트(MS)의 Face API는 빅데이터를 이용한 안면 인식 소프트웨어다. 데이터와 알고리즘에 의해 서로 다른 이미지 상 인물의 동일성 여부를 판단한다. 김일성 가면 사진을 구글 이미지에서 다운받을 수 있는 김일성의 젊은 시절 사진 4장과 초상화 1장을 비교했다. 결과는 다음과 같다.

<테스트1> 결과=신뢰도 0.48965 / 다른 사람

<테스트2> 결과=신뢰도 0.3711 / 다른 사람

<테스트3> 결과=신뢰도 0.30539 / 다른 사람

<테스트4> 결과=신뢰도 0.31716 / 다른 사람

<테스트5> 결과=신뢰도 0.40847 / 다른 사람 (이 사진은 김영섭 자유한국당 상근부대변인이 11일 국회 정론관 브리핑에서 김일성 가면과 관련 “누가 봐도 김일성이 분명”하다며 근거로 든 사진이다.)

다섯 번의 테스트에서 모두 ‘다른 사람’이라는 결과가 나왔고, 평균 신뢰도는 0.37835다.

안면 인식 소프트웨어는 완벽하지 않다. 남성보다는 여성, 백인보다는 유색인종에서 오인식율이 높아진다. 뉴욕타임스가 올해 2월 9일 소개한 한 연구에 따르면 Face API는 100번 중 21번 꼴로 흑인여성을 정확히 인식하는 데 실패했다. 얼굴 인식은 27개의 얼굴 특징을 기준으로 하므로 나이, 화질, 활영 각도 등에 따라 인식도가 달라질 수 있다. 비교 대상이 사진이 아닌 그림이라면 더욱 그럴 것이다.

테스트에서 사용한 김일성 사진 4장을 각각 비교한 6번의 테스트에서는 모두 ‘같은 사람‘이라는 결과가 나왔지만 신뢰도 평균값은 0.56648로 상대적으로 낮았다. 하지만 ’김일성 가면‘을 실제 김일성 사진과 초상화와 비교한 일치 신뢰도 평균치(0.37835)보다는 확연히 높다. 테스트1에서 사용한 김일성 공식 초상화와 나머지 실제 사진 4장을 비교한 결과는 평균 신뢰도 0.547298로 사진 4장 각각 비교 결과(0.56648)와 비슷했다.

공식 초상화가 존재하며, 인상이 변했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최근 마음 고생이 심하며, 성형 논란도 있었던 한국 정치인인 박근혜 전 대통령을 대조군으로 삼아봤다. 그의 공식 초상화와 과거와 현재 사진 5장을 테스트한 결과는 평균 신뢰도 0.60865에 모두 ‘같은 사람’이었다.

마이크로소프트의 안면인식 프로그램은 이 제한된 실험에서 문제의 ‘김일성 가면’의 모델이 실제 김일성이 아닐 것이라는 결과를 보여줬다. 만일 정말 가면의 모델이 김일성이라면, 가면을 그린 화가(가면이 그림이라면)의 모사 실력을 의심할 수밖에 없는 결과다.

전희경 자유한국당 대변인은 11일 김일성 가면 논란에 대해 “누가 봐도 김일성 얼굴인데 통일부 눈에만 달리 보이냐”고 따졌다. 전 대변인 외에도 ‘누가 봐도 김일성’이라는 반응은 온라인과 오프라인 반응에서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Face API와는 사뭇 다른 안면 인식이다.

12일자 조선일보 <만물상>도 “가면의 얼굴이 김일성 젊었을 때 모습과 무척 닮아 보이는 것도 사실”이라고 썼다. 그리고 다음 문장은 이렇다. “북한의 얕은꾀에 속고 뒤통수 맞아온 국민으로선 '김일성 가면 아니냐'는 의심이 들 만하기도 하다”.

사람의 인지는 왜곡되기 쉽다. 범죄수사에서 몽타주 범인 초상화를 몽타주 기법으로 그리는 이유는 기억의 왜곡 가능성 때문이다. 범죄 피해자는 범인의 얼굴을 실제보다 더 나쁜 인상으로 기억한다.

기계학습에 기반한 안면인식 프로그램을 좀더 신뢰한다면 지금 한국에선 평창을 중심으로 ‘집단적 안면인식장애’가 일어나고 있는 셈이다. 장애의 이유는 <만물상>에 따르면 의심과 과거의 경험이다. 국민이 북한에 대해 의심과 두려움을 가질 이유는 충분하지만, 의심과 두려움에 지배되거나, 이를 증폭시키는 건 바람직하지 않다.

‘김일성 가면’에 대한 의심을 푸는 데는 에도 막부에서도 1856년에 폐지한 후미에보다 더 간단하고 신뢰할 수 있는 이미 개발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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