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노란 리본을 ‘정치적’이게 했을까?

  • 기자명 송영훈 기자
  • 기사승인 2018.02.22 15: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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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TBC 방송화면 캡처

쇼트트랙 여자 국가대표팀 김아랑 선수 헬멧의 세월호 참사 추모 리본이 논란이 되고 있다.

김아랑 선수는 지난 17일 강릉 아이스아레나에서 열린 평창 겨울올림픽 쇼트트랙 여자 1500m 결승에서 4위를 차지했다. 최민정 선수의 금메달 획득과 문재인 대통령 부부의 관람으로 화제를 모은 이날 경기에서 김아랑 선수의 헬멧 뒷면에 세월호 참사 희생자를 기리는 노란색 리본 스티커가 붙어 있는 모습이 포착되면서 또 다른 관심을 끌었다.

논란은 이 같은 행위가 올림픽 헌장을 위반했다는 일부의 주장에서 시작됐다. 극우와 혐오 커뮤니티로 유명한 일간베스트저장소(일베) 옹호 논란이 있는 MBC 김세의 기자는 지난 18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김아랑 선수에게 묻고 싶다. 세월호 리본의 의미가 오로지 4년전 세월호 침몰에 대한 추모 뿐인가?”라는 글을 게시하며, 세월호 리본을 부착한 김 선수의 행동이 정치적 의미로 해석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이어 ‘일베’ 사이트 게시판에 김 선수를 국제올림픽위원회(IOC)에 제소했다는 글이 올라왔고, 류여해 전 자유한국당 최고위원은 “노란리본이 올림픽정신 위배 아닌지”라는 글을 자신의 페이스북에 올리기도 했다.

노란리본은 무사생환 기원하는 의미로 전세계에서 사용

세월호 희생자를 추모하는 의미를 담은 노란 리본은 언제부터 ‘정치적’인 상징물이 됐을까? 

노란 리본의 사용은 세월호 추모가 처음이 아니다. 노란 리본 달기는 여러 상징적 의미가 담겨 있는 ‘리본’캠페인의 하나로 주로 전쟁이나 재난후 무사생환을 바랄 때 많이 사용됐다. 1973년 토니 올랜도와 돈이 발표한 ‘Tie a Yellow Ribbon Round the Ole Oak Tree’라는 노래로 더욱 유행하게 됐고, 1979년 주 이란 미국 대사관 인질 사건이 발생한 뒤부터 노란 리본은 미국 전역에 널리 퍼지게 되었다. 이후 걸프 전쟁에 미국 군인들이 대규모로 참가하면서 캠페인의 하나로 노란 리본을 다는 관습이 퍼지게 되었고 영국 군인들을 기리는 노란리본재단이 운영되는 등 ‘노란 리본 달기 캠페인’은 세계 전역에서 여러 차례, 다양한 의미로 진행됐다.

한국에서도 크고 작은 노란리본 캠페인이 진행됐다. 2003년 ‘이라크전 참전 한인의 무사귀환 기원’, 2005년 ‘납북자 송환 기원’, 2007년 ‘출소자에 대한 용서와 포용’, 2008년 ‘아동학대 예방 및 근절’, 2010년 ‘결식아동 돕기’ 등에서 노란리본 캠페인이 전개된 바 있다.

한국백혈병재단에서는 소아암을 올바르게 인식하고 소아암 어린이와 가족을 돕는 캠페인으로 ‘노랑리본’ 홈페이지를 운영중이기도 하다.

세월호의 노란리본도 같은 의미로 시작됐다. 2014년 4월 16일 세월호 침몰 사건이 일어나고 며칠 후 커뮤니티 사이트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등에는 “카카오톡과 트위터 등의 프로필에 희망의 노란리본달기 캠페인에 동참해요”라는 글이 퍼졌다. 

글과 함께 올라온 사진은 노란 배경을 바탕으로 나비 리본 문양이 그려져 있고 ‘하나의 작은 움직임이 큰 기적을’이란 문구가 적혀있다. 이 노란리본 달기를 시작한 곳은 대학동아리 ALT였다. 그들은 세월호 침몰 실종자들이 가족의 품으로 돌아오기를 기원하는 마음으로 이미지를 만들어 무료로 배포한다고 밝혔다.

ALT가 설명하는 노란 리본의 의미 (출처 : ALT 블로그)

희생자들의 구조를 염원하는 노란리본 캠페인은 온라인상에서 빠르게 확산됐다. 많은 이들이 페이스북과 카카오톡 등 SNS의 프로필 사진을 노란 리본으로 바꾸고 유명 연예인이나 사회인사 역시 노란리본 캠페인에 동참했다.

심지어 당시 청와대도 노란리본달기 캠페인에 동참했다. (현재 조선일보의 원래 기사는 삭제되어 있다)

일베, 공화당, 최순실이 싫어한 노란 리본

희생자들의 구조를 염원하는 마음을 훼손하기 시작한 것은 ‘일베’였다.

당시 온라인에서 사용되는 여러 이미지에 일베 로고를 심거나, 일베를 연상하게끔 이미지를 변형해 배포하고 이를 이용한 방송사 등을 곤혹스럽게 해 사회적 물의를 일으키던 일베 이용자들은 노란리본에 일베를 합성한 이미지를 만들어 온라인상에 노출시켰다.

또 이에 앞서 일부 회원들은 세월호 사고와 관련해 실종자 가족들을 모욕하거나 비하하는 내용의 글을 올리기도 해 논란을 일으키기도 했다.

일베 회원들이 세월호 추모 노란리본을 다양하게 변형해 유가족을 조롱했다. 또 노란 리본이 귀신을 부르는 주술이라는 루머가 돌기도 했다.

일베의 훼손에 이어 노란리본에 정치적인 의미를 부여한 곳은 박근혜 당시 대통령의 제부인 신동욱 씨가 대표로 있는 공화당 창당준비위원회였다. 공화당 창당준비위원회는 5월 5일 배포한 보도자료를 통해 노란 리본이 노사모의 상징이고 “불순한 세력이 뒤에서 조문객들에게 정체불명의 노란리본을 달도록 부추기고 있다”며 ‘검정리본달기 캠페인’을 진행한다고 주장하며 난데없는 ‘종북논란’을 일으켰다.

또 박근혜 정권의 비선실세로 국정 전반에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했던 최순실씨가 ‘세월호의 노란색만 봐도 좋게 생각하지 않았다’고 한다.

그리고 세월호 사건 당시인 5월 16일 세월호 특별법·특검을 해야한다고 했던 박 대통령은 4개월 뒤인 9월 16일 세월호특별법에 수사권과 기소권을 줄 수 없다고 밝혔고곧 이어 교육부는 전국 시·도교육청에 공문을 보내 ‘리본 달기’ 등 세월호와 관련된 교사들의 활동을 금지하라고 지시했다.

당시 새누리당 이재오 의원은 다음 날 열린 최고중진연석회의에서 “지금이 어느 시대인가? 지금 대한민국 정부가 어디로 가는 건가”라며 “교육장관이 할일이 없어서 세월호 리본 달지 말라고 공문을 보내요? 말이 되는 이야기인가”라고 황우여 교육부장관을 질타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후 경찰이 세월호 추모집회가 벌어질 때마다 노란 리본을 달고 있는 이들을 불심검문하거나 통행을 제한하는 일이 생겨났다.

세월호 실종자들의 무사염원을 기원했고, 시민과 정치인, 스포츠 선수, 영화 어벤저스 홍보차 방한한 할리우드 스타들까지 가슴에 달았고, 이번에 일베 이용자가 신고한 IOC의 위원들까지 달았던 노란 리본은 세월호 참사를 빨리 덮고 싶던 일부 세력들에 의해 그렇게 ‘정치적 불온과 금기의 징표’가 되어버렸다.

그리고 헬멧에 붙인 노란리본 스티커 논란이 있은 3일 후인 지난 20일 오후 1,000미터 예선에 출전한 김아랑 선수 헬멧의 노란리본은 검정테이프로 가려져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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