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사 6개월' 박 간호사를 죽게 한 것은?

  • 기자명 송영훈 기자
  • 기사승인 2018.03.08 08: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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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호사 사회 가혹행위 ‘태움’... 살인적 근무환경이 원인

설 연휴가 시작됐던 지난 달 15일 서울아산병원 내과계중환자실에 근무하던 입사 6개월 차의 신입 박○○ 간호사가 병원 인근 한 아파트 화단에 투신해 숨진 채 발견됐다. 유족들은 박 간호사가 병원의 ‘태움’문화 탓에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고 주장하고 있고, 보건의료계에서는 간호사들의 열악한 근무환경을 지적하고 있다.

 

간호학과/간호사 대나무숲 페이스북을 비롯한 SNS에서는 박 간호사의 남자친구가 쓴 글이라는 게시물과 유가족 입장서를 공유하며 유족들의 주장을 지지하는 게시물들을 쉽게 찾을 수 있다.

현재 유족 측은 서울아산병원에 정확한 진상규명과 공식사과, 재발방지대책 마련 등을 요구하고 있지만, 서울아산병원은 아직 공식적인 입장이나 대책을 내놓지 않고 있다.

 

재가 될 때까지 태운다 '태움'

‘태움’은 간호사 조직에서 선배들이 후배들에게 과도한 업무량을 시키거나 일부러 괴롭히는 행위를 뜻한다. 재가 될 때까지 태운다는 뜻에서 태움이라는 이름이 붙여졌다. 생명을 다루는 직종이다 보니 작은 실수로도 치명적 결과를 불러올 수 있다는 측면에서 후배를 엄격하게 가르치는 관습이 생겼다고 한다. 전국보건의료산업노동조합 조사 결과 설문에 참여한 간호사 41.4%(2524명)가 태움을 ‘경험했다’고 답했다.

대한간호협회의 지난 1월 ‘간호사 인권침해 실태조사’에서도 비슷한 결과가 나왔다. 지난 1년간 직장에서 태움을 당한 적이 있는 간호사는 40.9%였고 가해자는 직속상관 간호사 및 프리셉터가 30.2%로 가장 많았다. 다음으로 동료간호사가 27.1%, 간호부서장이 13.3%, 의사가 8.3%로 주로 병원 관계자에 의해 발생하고 있었다. 폭언과 험담, 소문 퍼뜨리기가 많았고 일과 관련한 굴욕 또는 비웃음거리로 만드는 경우도 있었다. 이와 같이 다수의 간호사들이 열악한 업무환경에서 비인간적인 대우를 당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주간한국 보도에 따르면, 대부분의 병원에서 태움이 상습적으로 행해지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간호학과 재학생들은 인터넷 게시판을 통해 태움이 없는 곳이 아니라 덜한 곳이 어딘지 물어볼 정도로 태움은 간호계에 깊이 뿌리 박혀 있다. 신입간호사는 프리셉터(preceptor)에게 실무교육을 받는데 교육기간에도 프리셉터와 신입 모두에게 과도한 업무가 주어지기 때문에 두 사람 모두 막중한 스트레스를 받는다. 프리셉터는 교육과정에서 신입간호사에게 언어 및 신체 폭력을 하는 경우가 많으며 왕따를 시키기도 한다. 아직 업무가 서툰데 아무도 도와주지 않는다면 신입간호사는 극도의 스트레스를 받게 되고 이번 경우처럼 비극적인 선택을 할 수 있다고 밝혔다.

도가 넘는 인격모독과 폭력은 간호 인력 이탈의 한 요인으로도 꼽히고 있다. 대한간호협회에 따르면 2015년 기준 신규 간호사의 평균 이직률은 33.9%에 달하고 평균 근속연수는 5년4개월에 불과하다.

지난 2월 28일 故 박 간호사의 입사동기라고 밝힌 동료간호사를 비롯한 간호사연대는 서울아산병원 인근 통행로에 추모 리본과 함께 ‘故 박 간호사의 죽음은 우리 모두의 죽음입니다’라는 제목의 대자보를 게시했다.

이들은 대자보를 통해 “이번 사건의 가장 근본적인 원인은 태움 문화가 아닌 간호사 근로 환경의 구조적 문제에 있다. 간호사 한 명당 돌보는 환자 수가 많아 업무 부담이 높으며, 간호사의 업무는 환자 안전과 직결되므로 실수가 용납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죽음까지 이르게 하는 열악한 업무 환경

중환자실이나 응급실, 일반 병동이라도 중증환자가 많은 병동 등은 업무량이나 숙련도 등에서 부담이 크다. 신규 간호사는 업무 속도가 느리고 익숙하지 않아 실수를 할 위험이 있으므로 경력 간호사의 도움을 받게 된다.

선임간호사는 자신의 업무 외에 신규 간호사의 교육을 맡게 된다. 이에 따라 선임 간호사의 업무 부담도 늘어난다. 박 간호사의 죽음은 보다 근본적으로 신규 간호사와 경력 간호사 간 대립 문제가 아닌 간호사들이 내몰린 열악한 근로 환경에서 비롯됐다는 것이다.

전국보건의료노동조합도 지난 19일 성명서를 내고, “자살 사고의 정확한 원인은 수사를 통해 밝혀지겠지만, 지금까지 확인된 정황으로 보면 신규간호사 적응 교육기간 받은 직무스트레스, 과도한 업무량과 긴 노동시간, 실수에 의한 사고 책임 부담이 신규간호사를 극단적인 선택으로 내몬 원인으로 판단된다”고 주장했다.

이어 “국내 최대병원이자 최고병원을 내세우는 서울아산병원에서 벌어졌다는 점에서 충격적이며 사회적 파장이 크다”며, “신규간호사를 죽음으로 내몬 직무스트레스와, 긴 노동시간, 과도한 업무량, 열악한 노동조건과 조직문화는 간호등급 1등급인 서울아산병원만이 아니라 전체 의료기관에 만연돼 있다”고 덧붙였다.

박 간호사는 적응교육기간 동안 제대로 식사도 하지 못하고, 수면 부족에 시달려 체중이 5kg 빠질 정도였고, 삼교대 근무 중 저녁 근무의 경우, 오후 1시에 출근해 다음날 새벽 5시에 퇴근할 정도로 극심한 업무량에 시달린 것으로 알려졌다.

 

'고된업무'-'그만둠'-'인력부족'-'고된업무'의 악순환

대한간호협회에 따르면, 우리나라 면허 간호사 수는 338,629명(2016 보건복지통계연보)이며 활동 간호사 수는 21만 4,000여 명(2016 건강보험심사평가원 의료기관 종사자수 및 대한간호협회 면허신고데이터)으로 추정된다. 또 2015년을 기준으로 국내 병원에 근무중인 간호사는 모두 152,865명이다.

국내에 간호과가 설치된 대학은 모두 85개로 매년 2만 명 정도의 신규 간호사가 배출된다. 간호학과 입학정원은 2004년 10,816명에서 2015년 18,659명으로 72.5% 증가했다.

그러나, 인구 1,000명당 활동간호인력수는 5.2명(간호보조인력 포함)으로 OECD 회원국 평균 9.1명(2013년 기준)에 비해 크게 부족한 수준이다. 게다가 간호보조인력을 제외하면 2.4명으로 4분의 1 수준에 불과하다. 간호사 1인당 환자수도 5.4명인 미국, 7명인 일본에 비해 우리나라는 25~40명에 이른다.

또, 대한중환자의학회와 심평원에 따르면, 중환자실 간호사 1인당 담당하는 적정 환자수는 1~2명이다. 그러나 국내 상급병원 중환자실 간호사 1인당 평균 담당 환자 수는 그보다 많은 3~4명 정도다. 이처럼 여러 통계들이 전체적인 간호인력 부족과 거기서 비롯된 태움문화를 설명해주고 있다.

 

앞에서는 '의료의 질', 뒤에서는 '병원수익'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실제로는 병원들의 저비용 간호사 관리정책 때문이라는 지적이 제기됐다. 병원들이 비용을 아끼기 위해 경력직 간호사가 떠난 자리를 신규 간호사로 채울 뿐 ‘전체 숫자’는 늘리지 않는다는 것이다.

유선주(목포대학교)·김진현(서울대학교)·김윤미(을지대학교) 교수 연구팀은 ‘신규면허간호사 공급량 증가가 의료기관 간호사 확보수준에 미친 영향과 정책적 함의’ 연구에서, 전국 1천42개 병원의 2010년과 2015년 간호인력을 비교한 결과, 새롭게 면허를 취득한 간호사 수의 변화는 병원 내 간호인력 증가와 관련이 없는 것으로 확인됐다고 밝혔다. 매년 2만 명 정도의 간호대학 졸업생들이 쏟아져 나와도 병원에서 근무하는 간호사는 증가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병원 입장에서는 경력이 많은 간호사 1명 대신에 숙련도는 떨어지지만 아직 사회경험이 적어 통제하기 쉬운 신규간호사 2~3명을 쓰는 것이 당연히 병원수익에 도움이 된다.

또 논문에서는 입원환자 사망의 6~7%는 환자를 돌보는 간호사가 적정수준으로 확보되지 않아서 발생하는 문제이며, 근무간호사가 담당하는 환자수가 1명 증가할 때마다 입원기간 중에 환자사망률이 8%씩 높아진다고 밝히고 있다.

간호사들의 ‘태움문화’, ‘의료의 질’을 내세우면서도 ‘수익창출’을 중요시하는 병원의 인력운용 과정, 거기서 발생하는 피해는 결국 환자에게 갈 수 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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